고니시 유키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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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 유키나가
小西 行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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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십자가 가몬
꽃십자가 가몬
제1대 고니시 막부 정이대장군
1603년 5월 7일 ~ 1619년 11월 6일
시대 센고쿠 시대 ~ 고니시 막부
출생 에이로쿠(永禄) 원년 (1558년) ?월 ?일
이즈미 국 사카이
사망 겐나 5년 (1619년) 11월 6일
별명 키리시탄 쇼군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묘소 타마츠쿠리 성당
관위 정이대장군
막부 고니시 막부
씨족 고니시 가문
부모 아버지 : 고니시 류사
어머니 : 와쿠사 (세례명 : 막달레나)
형제 조세이, 유키카게, 도노모노스케
아내 정실 : 키쿠히메 (세레명 : 유스타)
측실 : 타츠노도노 (세례명 : 카타리나)
자녀 고니시 히데사다, 마리아, 오타아 줄리아

고니시 유키나가(일본어: 小西 行長 (こにし ゆきなが),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1558년 ~ 1619년 11월 6일)는 야마토니아 상인(商人) 출신의 무장(武將) 겸 정치가(政治家)로 고니시 막부의 첫 번째 쇼군이다. 유키나가는 당시 대조선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쓰시마 국소 요시토시의 장인이었고 가토 기요마사와 앙숙 관계였다. 그의 종교는 로마 가톨릭교회였으며, 그의 부장이자 사위인 요시토시를 비롯한 그의 휘하 책사를 포함, 병사들 역시 키리시탄으로 구성되었다.

생애

에이로쿠(永禄) 원년(1558년) 5월 7일, 이즈미 국(和泉國) 사카이(堺)에서 약재 장사를 하던 고니시 류사(小西隆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을 교토에서 보냈다. 본명은 고니시 야쿠로(彌九郎)였다.

처음에는 비젠(備前) 후쿠오카(福岡)의 거상 아베 요시사다(阿部善定)의 데다이(手代) 겐로쿠(源六)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그가 장사를 하던 지역의 영주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直家)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무사로 발탁, 나오이에의 가신이 되었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던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가 미키 성(三木城)의 나오이에를 공격할 때에도, 노부나가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한 나오이에의 명으로 유키나가가 히데요시와 교섭에 나섰는데, 이 때 히데요시로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아 나오이에 사후 다시 히데요시의 가신이 되었다. 이후 유키나가는 도요토미 정권의 후나부교(船奉行)으로 임명되어 수군을 통솔했다. 덴쇼(天正) 13년(1585년)에는 셋쓰노카미(涉津守)로 임명되고 아울러 히데요시로부터 그의 도요토미 성을 하사받기도 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세례를 받고 기리시탄이 된 것은 덴쇼 13년(1585년) 쇼도 섬(小豆島)의 영지 1만 석을 하사받기 1년 전인 덴쇼 12년(1584년)으로,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의 소개로 세례를 받아 키리시탄이 되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키리시탄이 된 유키나가는 새로 자신의 영지가 된 쇼도 섬에 포르투갈 출신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를 초빙해 기독교를 포교하고 섬의 전토 개발을 적극적으로 행했다.

이후 덴쇼 15년(1587년) 히데요시의 바테렌 추방령에 반대하여 결성된 키리시탄 동맹을 이끌며 히데요시에 대항했다. 유키나가는 예수회 신부들의 도움으로 에스파냐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아시아 식민지 함대 지원을 받아 히데요시를 축출했다. 히데요시를 제거한 유키나가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해 반대 세력을 평정하고 게이초(慶長) 8년(1603년) 5월 7일,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되었다.

쇼군의 자리에 오른 유키나가는 그가 죽기까지 약 20년간 아들 히데사다와 함께 대화 열도를 개종하는데 주력했다. 유키나가는 상당히 평화로운 방법으로 선교했는데, 꾸준한 선교 활동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묵인하는 대신 추가적인 세금을 부여했다. 이는 대화 열도의 토착 종교인 신토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아직까지 존속하는 이유이다. 또한 주요 도시마다 대성당을 건축하고 이를 거점으로 신학교를 설치하거나 빈민 구제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고니시 막부 중반 부턴 대다수의 국민들 특히 하위층을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전도하고 유럽 국가들과 활발하게 교역하며 고니시 막부의 기틀을 다지다가 겐나(元和) 5년(1619년) 11월 6일, 6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