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공회운동(중국어: 共民共會運動)은 1898년을 기점으로 대요동국(大遼東國) 내에서 공민주권(共民主權) 원리에 입각하여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실현을 활발히 요구했던 정치·사회 운동이다. 제가(諸加)들이 주축이 되던 귀족 정치와 경오홍범(庚午洪範, 1870)에서 주창된 전제 정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으며, 고일전쟁(高日戰爭, 1894~1895) 이후에 전근대적 정치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 의식이 확산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민의원(民議院) 개설과 근대 약법 제정, 러시아 제국(Российская империя)과의 불평등 조약 개선 및 언론·집회의 자유를 내걸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1901년, 선정약법(宣政略法) 제정으로 이어져서 성과를 거두었으며 국권약진론(國權躍進論)의 대두로 민권 운동이 쇠락하여 분열되기까지 근대 정치에서의 다수 민중에 대한 대의(代議) 역할을 수행했다.

계해경장 이전까지의 상황

경오홍범 제정 및 전국공회 개최

고일전쟁과 민권 운동의 전개

선정약법을 통한 군민동치 선언

1910년대의 민권 운동

민권 운동의 쇠락과 변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