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의 모든 설정은 공식이자 허구이며, 맹목적인 비난·비하, 미화는 일절 하지 않습니다.
대문 · 설정 · 분류 · 별점
시즌 1 · 시즌 2

 3.5 / 5

변화의 시대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모든 설정은 공식이자 허구임을 밝히며, 자세한 정보는 각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2024 WRSW & AOC PRJCT ARR.
본 문서는 국민의힘의 계파를 다루는 하위 문서입니다.
계파 분류
[ 펼치기 · 접기 ]
친유 비유
친유
신인규
오신환
김웅
김용태
친안
이태규
정점식
최연숙
지성호
나경원계
김근태
구자근
정희용
김선동
친오
서강석
김경호
권택기
강철원
무계파 · 소장파
최재형
김현아
옥지원
김가람
친홍
조경태
하영제
홍문표
홍문종
본 계파 구성은 국민의힘과의 야권 통합 직전공정당 출범 이후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정당별 계파 (민주 · 국민 · 변화 · 정의 · 진보 · 통합 · 공정)
계파 요약

  유승민 비상대책위원장을 위시한 친유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을 위시한 친오
  나경원 전 대표를 위시한 친나
  안철수 전 의원을 위시한 친안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을 위시한 친홍
  당 주류에 속하지 않는 무계파 및 소장파

상세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의 주요 세력은 김영삼의 상도동계(민주계), 김종필의 청구동계(공화계), 노태우의 민정계였는데, 당시 민정계가 최대 계파로서 그 주도권을 잡았으나, 문민정부 출범을 계기로 상도동계가 당권을 잡으면서 최대 계파가 된다. 이 과정에서 청구동계가 YS와 충돌해 계파 수장과 함께 이탈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차렸고, 민정계는 전노 구속과 5·18 특별법 제정으로 비주류로 밀려난다. 민주계에 반대한 일부는 탈당하여 신당을 차리거나 통일국민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민정부 시절 두 번째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회창이 한나라당 총재가 되었고, 민정계의 다수와 상도동계 일부, 통합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이회창을 따르며 소위 이회창계가 활개를 치면서 주류 계파로 자리매김했다. 때문에 YS의 민주계는 분열되고, 민정·공화계 출신 신민주계가 이회창을 따르게 된다. 한편 자민련은 DJP연합을 꾸리면서 연립여당의 지위까지 얻었으나 1999년 이후 새정치국민회의와 심각한 갈등에 직면했으며 결국 16대 총선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맞는다.

2000년대에는 일명 "친이 vs 친박"의 시대였는데, 차이점이라면 친박은 민정·공화계 인사는 물론 자민련 출신들까지 끌어모으며 강한 결집력을 보인데 비해 친이는 단지 친박을 견제하기 위해 각 계파들이 구성한 빅 텐트라 해도 무방했다. 양대 계파는 17대 대선 경선 내내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나 이명박이 최종 후보가 되면서 친박이 밀려났고, 18대 총선을 앞두고는 친박에 대한 공천 학살로 인해 탈락 인사들이 대거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로 흩어진다.

하지만 18대 총선 이후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지면서 서서히 친박으로 당 주도권이 바뀌게 되고, 새누리당으로의 명칭 변경과 18대 대선 승리로 친박이 당 내 최대 계파로 등극한다. 때문에 친이는 19대 총선에서 비주류로 전락하지만, 김무성과 유승민의 탈박으로 생겨난 친무와 친유의 부상으로 계파 구도가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친박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엄청난 타격을 입고, 이재오, 유승민, 김무성 등 비박계가 대거 이탈해 보수 진영의 분열이 이루어졌다.

19대 대선에서는 홍준표 당시 경상남도지사의 대선 출마로 친홍이 급부상했고, 바른정당에서는 김무성계 주축의 집단 탈당 사태가 일어나 당세가 줄었지만 4위로 선전하면서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또 홍준표 본인이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친홍의 주류화가 잠깐 이루어졌지만 선거 지방선거 이후 다시 당권에서 밀려나고, 황교안 전 법무부장관이 이끄는 친황이 당권을 잡았다. 친황은 보수 통합을 주도하며 미래통합당으로 총선을 지휘하기도 했으나, 총선 패배로 좌절된다.

그 후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이끌다가, 국민의힘으로의 당명 변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합류, 이준석의 당 대표 취임 등을 거치며 친윤이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이 중 당 내에 속한 인물들의 절반 이상이 윤석열 캠프로 모이면서 당을 장악했고, 20대 대선 이후에는 핵심 계파로서 당 내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제3회 전당대회에서 김기현이 당 대표에 당선됨에 따라 지도부가 완전히 친윤으로 구성되면서 22대 총선까지 국민의힘의 최대 계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후 지도부가 한동훈 비대위 체제로 재편되고, 이준석계의 이탈과 유승민 탈당 등으로 새보수계의 입지가 감소하면서 계파의 수장을 맡고 있던 안철수와 홍준표가 당 내 비윤의 중심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 대통령비서실 공직자 집단 성접대 의혹과 22대 총선 참패로 친윤이 큰 타격을 입자 수도권 친윤으로 불리던 나경원이 당 대표에 당선되며 친나라는 독자 계파를 형성했고, 친윤 인사들 상당수가 친나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당원 내란 모의 사건의 여파로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 친나의 입지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비주류로 내몰렸으며, 친홍 출신인 조경태 비상대책위원장의 후임으로 국민의힘 재합류를 선언한 유승민이 새 비대위장을 맡아 새보수계가 당의 주류가 된다. 이 과정에서 비주류인 친윤 세력과 극한 충돌이 벌어졌고, 21대 대선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가 당선된 것을 두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끝에 친윤 세력이 대거 한동훈 캠프에 참여하며 내부 해당행위로 이어진다.

결국 친윤과 새보수계 간 계파 갈등은 야권 통합 과정에서 파국으로 이어졌는데, 이로 인해 야권 통합에 부정적이던 친윤 계열이 국민의힘을 집단 탈당하고 공정당을 창당하면서 분당을 맞게 된다. 이는 야권 통합에 반대하는 비명계의 집단 탈당으로 이어졌고, 주류 세력 뿐만 아니라 계파를 불문한 다수의 구성원들이 야권 통합에 찬성했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국민통합당으로 통합한 후에는 국민의힘의 모든 계파가 범국민의힘계로 승계되었다. 이후의 계보는 개별 문서 참조.

여러분은 지금 변화의 시대를 보고 계십니다. 모든 문서는 공식 설정이자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