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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연맹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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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t of the League of Nations W.png
국제 연맹
국제 연맹
Map of the League of Nations(1947~1989).png
      상임이사국       창립회원국       일반회원국       참관국
수도 제네바 본부 (북위 46° 12′ 00″ 동경 6° 09′ 00″)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약 38억 (1980)
공용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공용 문자 라틴문자
군대 다국적 연맹군


정치


정부 형태 정부간 국제 기구, 간접 민주정
정치 체제 자본주의, 반공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반독립주의, 집단주의, 반분리주의
입법부 국제 연맹 총회
국가
원수
사무총장 1947년 ~ 1951년;
초대
1952년 ~ 1956년;
2대
1957년 ~ 1961년;
3대
1957년 ~ 1961년;
4대
1962년 ~ 1966년;
5대
1967년 ~ 1981년;
6대
1982년 ~ 1986년;
7대
1987년 ~ 1990년;
8대
1990년 ~ 2002년;
9대
2002년 ~ 2005년;
10대
정부
요인
총회 의장 1947년 ~ 1951년;
초대
1952년 ~ 1956년;
2대
1957년 ~ 1961년;
3대
1957년 ~ 1961년;
4대
1962년 ~ 1966년;
5대
1967년 ~ 1981년;
6대
1982년 ~ 1986년;
7대
1987년 ~ 1990년;
8대
1990년 ~ 2002년;
9대
2002년 ~ 2005년;
10대


경제


경제 체제 블록 경제
화폐 공식화폐 금 (G)


국제 연맹(國際聯盟, 영어: League of Nations 리그 오브 네이션스[*], 독일어: Völkerbund 푈커분트[*], 프랑스어: Société des Nations 소시에테 데 나시옹[*], 이탈리아어: Società delle Nazioni 소치에타 델레 나치오니[*], 스페인어: Sociedad de Naciones 소시에다드 데 나시오네스[*])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당시 독일의 황제의 였던 빌헬름 3세의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 기구였다. 전쟁 및 분쟁 방지와 조정, 인권 보장을 표면상의 명분으로 내세워 출범했지만 이면으로 제국주의식민주의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고 식민지 출신 국가거나 공산권 국가에 대해서 처음에 참가를 거부하는 등 출발부터 유럽 열강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을 제외하고는 유럽 열강 이외의 국가는 개입할 수 없는 형태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연맹 회원국에 소속되어 있었다.

국제 연맹 상임이사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5개국이었다. 초기의 국제 연맹은 회원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사회에 직접적인 힘을 행사하지는 못했는데, 이후 이들은 공통으로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국적 연맹군을 창설하며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으로 바뀌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제노바에 있는 본부에서는 매년 총회를 열어 주요 안건을 상정 및 논의한다. 그 아래로 상설 국제 사법 재판소, 국제 노동 기구, 상설 위임통치위원회, 상설 군사자문위원회, 군비축소위원회, 법률전문가위원회 등이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권에 급급한 열강들의 이해관계 충돌로 끝내 붕괴되었고, 평등주의에 기반한 유엔(1939)이 출범하면서 모든 업무를 승계했다.

개요

국제 연맹은 국제 협력의 촉진과 국제 평화 및 안전을 유지한다는 일반적·정치적 목적을 갖는 정기적 국제 기구로서는 역사상 최초의 것이었다. 국제 연맹 규약은 회원국이 전쟁에 호소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그 상호간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명시했다. 또한, 평화 유지의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군비 축소의 필요성을 승인하고, 연맹 총회는 적용이 불가능하게 된 조약의 재심의, 계속되면 국제 평화를 위태롭게 할 상태에 대한 심의를 회원국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또한, 연맹 규약의 약속을 무시하고 전쟁에 호소한 회원국에 대해서는 모든 회원국이 경제 제재를 할 것을 규정했고, 군사적 제재에 대한 가능성도 예정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피지배민족의 탄압, 독립한 식민국에 대한 경제 보복과 같은 식민지배에 옹호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피지배인 인권 확대, 기본권 보장등 피지배국을 위한 정책도 실시했다.

그러나, 연맹 규약의 규정은 많은 허점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연맹 자체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에 대한 전승국의 전후 처리 문제, 공산주의의 확산 문제와 열강들의 식민지 관리 등을 열강에 유리하게 이끌고 나가려는 기구로서의 구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피지배국과 공산주의 정권의 호응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은, 이러한 세계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의 반발과 열강 사이의 이해관계 문제로 국제 연맹은 해체되었다.

국제 연맹은 1950년대 중기부터 군사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연맹은 분쟁에 개입하는 등 군사적 제재를 내릴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제재만 내리던 이전보다 세계 속의 현실적 갈등에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 또한, 정치체계도 꾸준히 개력하여 중기부터는 국제 기구로는 사상 처음으로 모든 회원국의 의견 수렴을 시도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의 권한이 강했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대로 여론이 형성되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등의 문제가 심했다. 특히 식민지 문제에 관하여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배경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가 하나의 조직을 만들려는 생각은 인류가 오랜 옛날부터 품어온 것이었다. 중세의 중엽부터 말엽에 이르기까지 종종 일어났던 봉건영주 사이의 전쟁을 방지할 목적으로 기독교적인 유럽 연대의 관념을 기초로 하는 몇가지 국제기구를 계획한 바 있었다. 이들 가운데 몇 가지는 1461년에 보헤미아의 왕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1420~1471)가 제기한 마리니의 계획이나, 프랑스와 왕 앙리 4세(1553~1610, 재위 1589~1610)가 주창한 1603년의 슈리 계획 등과 같이 실제로 군주가 제기하여 여러 국가간의 교섭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성직자인 생피엘(1658~1743)의 영구평화안(1713)이나 독일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를 위하여’와 같이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기구의 플랜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플랜은 실현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국제관계가 발달되지 못했고, 국제기구의 성립을 가능하게 할 만한 정치적·경제적인 여러 조건들이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함께 여러 국가간의 교통과 거래가 발달함에 따라 1865년의 만국전신연합(ITU)과 일반우편연합(GPU)과 같은 행정적·기술적인 목적을 갖는 국제 기구가 다수 탄생하게 되었다.

국제 기구로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 협력의 기구로서 1815년에 성립한 신성동맹과 또한 1899년의 헤이그 평화 회의에서 설립된 상설중재재판소를 들 수 있다. 그 이후 7월 위기로 열강들은 그들의 전쟁 위험을 줄이고 경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계기로 국제협의회가 임의로 출범했으며 이곳에서 중대한 외교사안을 다루었다. 이후 비정기적 활동을 이어오던 국제협의회는 1930년에 이르러 활동을 멈추었다.

국제 연맹의 설립 및 경위

1947년 당시 독일의 황제의 였던 빌헬름 3세의 '국제 협력 원칙' 에 의해 제창되어 뮌헨 조약 제 1장에 따라 국제 연맹 규약이 결정됨으로써 설립되었다. 원래 회원국 18개국에서 1952년 발트3국의 가입 등으로 회원국 수가 25개국에 달했으며, 이후로 참관국을 초청하여 6개국을 추가로 총회에 참가시켰다. 연맹 탈퇴에는 가혹한 조건이 명시되어 있거나 암묵적으로 존재했기에 연맹 붕괴 이전까지 비활동국은 있었으나 탈퇴국은 없었다.

일부 패전국, 제1차 세계 대전의 협상국들과 공산권 국가는 연맹 초기에 참여가 허락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미합중국소비에트 연방이 그들이었다. 그 외에도 반식지화가 진행되고 있던 네지드, 이란, 시암, 중국 등과 식민지에서 갓 독립한 대한민국,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일본 등은 초기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맹이 국제기구로 자리잡은 만큼 미국, 소련,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영향력있는 국가는 이후 참관국으로 초청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적 분위기가 강했기에 스위스와 같은 비-반제국주의 국가나 제국주의적 성격이 옅은 국가들, 소련과 같은 공산국가는 자주 불참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1950년대부터 각국의 식민지 독립운동 문제를 다루기 시작해서 많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등의 열강의 이익을 대변하는 측에서 움직이기도 했으나, 그와 함께 식민지 국가와 국민에게 높은 교육의 질과 생활 수준, 차별 폐지, 노예화 금지를 지원했다. 이 밖에도 열강 간의 영토 분쟁을 해결한 성공 사례도 있었다. 러시아가 내전의 늪에서 나와 발전하기 시작한 1960년대에는 러시아와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을 견제하기 위해 인근 회원국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식민지 독립 문제, 식민지 간 국경 문제와 식민지 매각과 인수 문제는 오랫동안 국제 연맹의 주요 안건으로 자리잡았다. 이때 불이익을 받은 일부 국가는 잠정적으로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으나 연맹을 탈퇴하지는 않았다.

언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가 국제 연맹의 공식 언어였다. 이들은 상임이사국과 그 식민지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정해졌으며,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어는 명목상으로만 지정되어 있었다.

조직체

  • 총회 (Assembly)
  • 이사회 (Council)
  • 사무국 (Secretariat)
  • 상설 국제 사법 재판소 (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
  • 국제 노동 기구 (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 국제 평화유지위원회 (International Peace Keeping Council)

위의 주요 조직 이외에도 상설 위임통치위원회, 상설 군사자문위원회, 군비축소위원회, 법률전문가위원회 등으로 구성되었다. 국제 연맹 출범 당시 초기 상임이사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5개국이다.

유엔과는 달리 국제 연맹의 최고결정기관은 '이사회'가 아니라 총회였다. 또한 결정 방식은 '다수결'를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국제 연맹 본부는 스위스제네바에 있었다.

국제 연맹 사무국

국제 연맹 사무국연맹 사무총장이 수장이며 국제 연맹의 직원들이 일하는 곳이다. 세계 각국을 위해 업무를 본다는 뜻으로 국제 공무원(international civil servants)으로 불린다. 회원국 간의 회의에 따라 필요한 시설 확충, 연구 사항에 대해 실질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총회를 통해 결의되거나 상정된 안건에 대해서 제안을 하기도 한다.

직원에 대해서 업무를 제한하거나 요청하는 것은 유엔을 제외한 어느 권력 기관도 할 수 없다. 특정 국가에서 공무원으로 지내다가 파견되는 경우도 있기에 어느 국가의 정치적 이해가 반영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사무총장만이 직원의 임명에 권한을 가진다.

사무총장의 의무는 국제 분쟁을 조정하며 다국적 연맹군 관련 결의를 조정, 국제 회의 준비, 총회의 결의안에 대한 이행, 회원국 정부와의 다양한 이해 사안 조정 등이다. 다국적 연맹군 사무소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부속 기관 상주와 업무 처리는 제네바 본부에서 이루어지며, 일부 사안은 빈 본부에서도 맡아서 처리한다. 연맹은 지역 사무국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지역별로 효율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기 위해서이다. 아프리카는 알제 지역 사무국에서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각각 뉴올리언스리우데자네이루에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다. 아시아는 두개의 지사에서 분할 담당하고 있으며 각각 싱가포르 지역 사무국캘커타 지역 사무국가 각각 그것이다.

국제 평화유지위원회

국제 평화유지위원회는 국가 간 민족 간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위원회는 다국적 연맹군을 운영 · 유지하는 책임을 가지며 그들을 분쟁 지역에 파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다른 조직에서는 권고안 선까지만 발표할 수 있지만 사안의 심각성과 국제 사회의 영향에 따라 평화유지위원회는 구속력있는 법안을 통해 회원국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다.

다국적 연맹군

다국적 연맹군은 국제 연맹이 행사할 수 있는 최종적인 폭력적 도구로서 창설되었다. 이들은 주로 분쟁지역에 개입하여 연맹의 결의안에 따른 사안을 확실히하고 분쟁을 끝맺는 업무를 맡았다. 이러한 업무는 모두 회원국의 분담금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중 주도국인 독일은 가장 많은 자금과 자원을 투자하였다. 1950년, 회원국에서 차출한 부대로 구성되어 총 7만명의 지상군으로 창설되었다. 이후 지상군은 계속해서 증강되어 60년대에는 15만명을 넘었다.

1958년부터 해군도 양성되었는데 국제 해군사관학교가 수립되었고, 해군 군축에 의해 전역한 전함과 일부 국가에서 발주하여 함대를 구성했다. 1960년대에 정규 항공모함 2척, 전함 4척과 순양함 18척, 구축함 20척, 잠수함 31척을 운영했다. 공군도 비슷한 시기에 창설되었는데 비슷하게 국제 공군사관학교로 양성했으며 오직 300여기의 전투기와 수송기만 운영했다.

연맹군 함대는 리우데자네이루, 노이쥐트하펜(포트 엘리자베스), 알제, 싱가포르, 캘커타 등에 기지를 두고 있으며, 주요 공군기지와 육군 기지는 빈에 위치하고 있다.

회원국

국제 연맹 회원국      상임이사국      창립회원국      일반회원국      참관국

국제 연맹에 가입한 원래의 회원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동맹국과 국제 연맹 가입을 권유받은 일부 협상국과 중립국을 합쳐 총 18개국으로 구성되었다(국제 연맹 규약 제1조 제1항). 기타 국가는 국제적 의무를 성실히 지킨다는 확약과 군비에 관하여 연맹이 결정한 준칙을 수락한다는 전제하에 총회의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가입한 회원국은 1952년에는 4개국(발트3국과 루마니아), 1955년에는 1개국(그리스), 1959년에는 2개국(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1963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을 제외한 5개 총회참관국이 참여했으며 1969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마지막 참관국이 되며 총 회원국 25개국, 참관국 6개국으로 유지되고 있다.

회원국은 2년에 걸친 예고(豫告)를 통해 연맹을 탈퇴할 수 있었다. 단 탈퇴할 때까지 모든 국제적 의무와 국제 연맹 규약상의 의무를 이행하며 다국적 연맹군에 소속된 자원을 연맹에 유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동 1조 3항). 다수의 국가는 자신이 투자한 다국적 연맹군을 위해서라도 연맹에 남아있는 것을 선택했다. 또한 연맹 경제체제 특성상 경제적 결속도 회원국의 탈퇴를 막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이러한 결속력은 상임위원회가 국제사회에 끼치는 영향때문이었는데 그덕에 회원국 중 탈퇴한 국가는 없었다.

상임이사국

상임이사국은 그 지위에 있어 연맹 활동에 많은 부분을 지원하며 그러할 책임이 뒤따른다. 따라서 상임이사국의 대표들은 다른 회원국보다 2명 더 많은 수로 참석가능하며 따라서 안건에 대한 투표에서 2개의 표를 추가로 행사할 수 있었다.

국제 연맹 상임이사국은 아래와 같이 변해 왔다.

1947년 - 국제 연맹 창립. 창립 당시 상임이사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5개국이었다.

1958년 - 비상임이사국선출.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비상임이사국에 선출

1960년 - 네덜란드 비상임이사국 권한 만기와 포르투갈 비상임이사국 권한 연장

1963년 -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임이사국 교대법 비준 (2년 단위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가 상임이사국 권한을 교대로 가짐)

총회참관국

총회참관국은 총회에 참가할 수 있지만 정식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안건을 제안하거나 국제 연맹의 업무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분담금을 지급할 의무도 없으며 결의를 따를 책임도 없다. 그럼에도 총회에서 일반 회원국보다 적은 1표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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