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den Griezliegenstadt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
국기 국장
표어 Dum fata sinunt, vivite laeti[1]
Per ardua ad astra.[2]
운명이 허락되는 동안 즐겁게 놀아라.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해.
수도 리겐슈타트Ligenstadt
정치
공용어 그라이츠어, 보편 정교어
제1사도
Ersten Apostel[3]
파를로스 레오니오
Parlos Leonio, R.1896~현재
역사
교국 역사  
 • 세속금지령 철폐 R.456년 1월 8일
 • 교국 선포 R.731년 4월 15일
 • 아젠바르드 왕국 침략 격퇴 R.981년 3월~10월
 • 로벤베르그 전쟁 R.1421년 ~R.1436년
 • 클레버스 조약 체결 R.1867년 3월 12일
  1. 교국 공식 표어
  2. 교국 비공식 표어
  3. 제1사도는 '메텔란트 백작'(Grafden Meteland)을 겸임한다.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그라이츠어:Reiden Griezliegenstadt)은 헤르덴 제도(그라이츠어:Herden Archipel)에 위치한 세속적 성격을 띈 신권국가이자 도시국가이다. 보편 정교회에 총본산이며, 국가원수 및 보편 정교회 내 영적 지도자 직책을 수행하는 '제1사도'(보편 정교어:Ersten Apostel)의 통치 아래 대다수의 성직자들이 전반적인 국가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륙력 R. 5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타를리오스 2세(보편 정교어:Tarlios II)의 세속금지령 철폐 이후 보편 정교회를 믿는 신앙심 깊은 귀족들의 토지 기부를 시작으로 제1사도의 사유 재산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헤르덴 제도를 공동 통치하게 된 빌레이스 공가(그라이츠어:Series ad Villeis)의 계승위 단절은 보편 정교회 중심의 종교국가화가 가속화되었다.

로메니덴 제국(로메니어:Imperium Lomeniden)의 메텔란트 정벌 이후 획득한 영지와 백작위를 제1사도에게 기증하면서 독립 영지가 됨에 따라 티레니엔 2세(보편 정교어:Tirenian II)가 R.731년, 기존의 독립 영지들을 하나로 묶어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 건립을 선포했다.

국호

교국의 정식 명칭은 '그라이츠리겐슈타트'(그라이츠어:Griezliegenstadt)이며, 이는 그라이츠어로 '신성된 리겐의 영지(혹은 국가)'으로 번역된다. 빌레이스 공가의 초대 대공이자 헤르덴 제도의 세속 영지를 처음으로 확보했던 리겐슈티른(그라이츠어:Liegenstirn der Villeis)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보편 정교회의 최고 수장인 제1사도가 단절된 빌레이스 공가의 뒤를 이어 영지에 대한 세속권을 확보 및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한편, 제정 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한다.

과거 로메니덴 제국에서는 '로키에 아드 아포트루스'(로메니어:Locie ad Apotrus)라고 불렀다. 의미는 '사도의 나라'이며,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현재까지 동부대륙 지방에서도 과거 로메니덴 제국의 표기를 거의 따르거나 변형시켜 칭한다.

세속 교국민들이나 외국에서는 대체로 '리겐(혹은 리헨)'(그라이츠어:Liegen or Liehen)이라는 약칭으로 부르며, 동부 대륙 국가들도 이러한 약칭을 부르는게 일반적이다.

역사

그라이츠리겐슈타트의 역사
Histerien ad Greizliegenstadt
빌레이스 공동 공국
Communio Ducis ad Villeis
제1 사도령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
Reiden Griezliegenstadt
신성된 리겐의 영지

빌레이스 공동 공국(그라이츠어:Communio Ducis ad Villeis)을 통치하던 엘레이츠 3세(그라이츠어:Eleiz III)가 급사하면서 빌레이스 공가를 이을 후계가 단절되자, 공국을 함께 통치했던 제1 사도를 중심으로 한 단일 정치체제가 가속화 되었다.[1] 이후에 헤르덴 제도 일대에 대해 확고한 통치 제도와 인망을 얻게 되자 당시 제1 사도였던 티레니엔 2세가 압도적인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신정에 입각한 교국을 건립함으로서 단일 국가 수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R. 981년에는 남부의 체르시코 섬을 기반으로 하던 아젠바르드 왕국(보편 정교어:Regnim ad Azenbard)이 침략하기도 했으나, 네를리스 파르티시오(보편 정교어:Nerlis Partisio) 제1 사도가 성공적으로 이들을 격퇴하고 교국 사회를 안정화시켰다. 안정화된 사회 기반을 구축한 뒤 그는 루젠티아(론디니아어:Luzentia) 왕국의 후계권을 둔 분쟁에서 개입을 시도하면서 리펜하이겐 왕가(보편 정교어:Husia ad Lifenheigen)가 왕위를 획득하는데 큰 기여를 함에 따라 형식적인 루젠티아 내 세속화된 보편 정교회의 영지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게 되었다.

각주

  1. 물론 제1 사도와 보편 정교회의 단일 통치를 견제하고자 남아있는 빌레이스 공가 일원과 빌레이스 공가에서 떨어져 나온 분가들과의 통치권 대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