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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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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나강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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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공화국
República del Paraguay | Tetã Paraguái
국기(앞면) 국장(앞면)
국기(뒷면) 국장(뒷면)
Paz y Justicia
평화와 정의
상징
국가 파라과이인들이여,공화국이 아니면 죽음을
국화 시계꽃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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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아순시온
면적 546,750km2
접경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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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4,100000명
인구밀도 - 명/km2
민족구성 메소티소, 백인, 원주민, 동양인 등
공용어 스페인어, 과라니어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
분포 가톨릭(80%), 개신교(15%)
군대 파라과이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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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의원내각제, 공화국, 양원제
민주주의 지수 6.00점, 혼합된 체제 (2023년)
(167개국 중 74위)
국가요인 대통령
(국가원수)
산티아고 페냐
총리
(정부 수반)
에프라인 알레그레
여당 인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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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 GDP 전체 GDP $539,835
1인당 GDP $71,200|10등
GDP(PPP) 전체 GDP $700,000
1인당 GDP $80,000
국부 5,422$(10억 달러)
통화 파라과이 과라니(₲)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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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수교 현황 대한민국: 1962년 6월 12일
북한: 미수교
무비자 입국 기간 양국 모두 30일
국가 코드
600, PY, PRY
국제 전화 코드
+595
위치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의 야경


개요

남아메리카 중부에 위치한 국가

남미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선진국으로 안정된 치안, 높은 국제적 위신, 발전하는 경제와 수준급인 사회복지 시스템을 가진 국가로 외교적으로도 파라나강 연합을 창설하면서 남미 국가들과 높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국명은 국토를 남북으로 관통해서 흐르는 파라과이강에서 유래한다. 과라니어에서 유래했으며 원래는 강 이름이었다는 점에선 우루과이와 비슷하게 지어진 국명인데,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모두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과라니어로 para는 강, y는 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강이나 물과 관련된 이름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수도는 위성도시까지 합치면 전체 인구의 40% 정도가 거주하는 아순시온(Asunción)이다.

남아메리카 대륙 남부의 사바나 대평원인 그란차코(Gran Chaco)가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원국가다. 공용어는 과라니어와 스페인어다. 통화까지 과라니일 정도인데 아메리카 원주민 과라니족의 피가 많이 섞였기 때문이다.

상징

국기

파라과이 국기(앞면)

파라과이 국기(뒷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앞면과 뒷면이 다른 국기이다. 프랑스 국기의 영향을 받았으며, 지금의 국기 형태가 나타난 시기가 1806년 남아메리카 남부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스페인령)의 영토였던 라플라타 강 하류 유역이 영국의 침략을 받자 이 때 이곳으로 파견을 했던 파라과이 군대가 썼던 깃발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본격적으로는 파라과이의 독립 때 쓰였으며, 이후 1826년, 1842년 때 국기 형태가 바뀌었고 1842년 이후에 지금의 모습에 가깝게 되었다.

국장

지리

남미에서 볼리비아와 함께 유이한 내륙국이다. 때문에 내륙국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와 협력하면서 내륙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

로페스 독재정권

파라과이 역사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가문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로페스 가문이다. 로페스 가문은 초대 대통령인 카를로스 로페스, 프란시스코 로페스, 바리스타 로페스 총 3대에 이르는 독재정권을 구축하면서 초기 파라과이를 이끈 지도자들이다.

카를로스 로페스는 파라과이만에 국가계획경제 체제를 확립하였으며 군국주의 사회를 수립하면서 파라과이를 성장시켰다.

뒤를 이어 세습한 카를로스 로페스의 아들인 프란시스코 로페스는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고 차코개척, 군대의 현대화를 일으키면서 파라과이군을 당시 남아메리카 최강의 군대로 우뚝 서게 했다.

프란시스코 로페스 이후, 집권한 바리스타 로페스는 무장중립국을 선언하면서 파라과이를 남미의 강대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사이에 있는 데도 생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 파라과이 여당이기도 한 인민당을 창설하면서 권력을 공고히 했다.

바리스타 로페스는 순순히 권력에서 물러나면서 로페스 가문의 독재정권은 막을 내린다.

파쿤도 마차인과 자유당 시기

로페스 독재정권 이후, 정권을 장악한 것은 파쿤도 마차인의 자유당 정권이었다. 자유당 정권은 확대되었던 군부의 권력을 축소시키고 파라과이 경제를 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로 만든다.

자유당의 이러한 개혁들은 파라과이 내의 자본가 계급들을 형성하였고 이러한 자본가 계급이 자유당을 지지하게 되면서 자유당은 인민당과 함께 파라과이의 양대 정당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마차인은 금권선거를 통한 직선제를 주장하였고 이러한 정책은 인민당의 불만을 가져오게 되면서 쿠데타가 발생한다. 결국 마차인은 실각한다.

2차 로페스 정권

마차인의 실각 이후 바리스타 로페스와 인민당이 2차 로페스 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이들은 자유당의 경제 정책들을 계승하고 타세력들을 탄압한다.

하지만 로페스의 재집권은 인민당의 소수세력, 자본가 계급의 지지를 받던 자유당 정권의 불만을 샀고 이들의 혁명으로 파라과이는 다시 자유당-인민당 연립 정권이 차지한다.

리바롤라 정권

새롭게 대통령이 된 리바롤라는 파라과이를 다시 부흥시켰다. 자유당의 경제 정책을 계승하면서 자본가 계급을 성장시켰고 무주지였던 지역들을 개척하고 개간하면서 국가 경제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정책으로 리바롤라 정권은 파라과이를 남미의 산업, 공업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파라과이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자원들을 파라나강을 통하여 수출하면서 파라과이는 부흥을 맞이하였다. 때문에 로페스 독재정권에서 리바롤라 정권까지의 시기를 영광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단임정권들

대공황과 좌파세력의 성장

군사독재 시기

민주화 운동

남미의 선진국으로

현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파라나강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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