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기니아 내전
날짜2025년 11월 4일 ~
장소노이기니아 노이기니아
상태 진행중
교전국
노이기니아 노이기니아
노이기니아 노이기니아 근위대
노이기니아 노이프로이센군
노이기니아 서부친정부군
지원국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노이기니아국(-2025년 12월 26일)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2025년 12월 26일-)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혁명군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서부혁명군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공산주의자 의용군
지원국
파일:노르웨이연방공화국국기.png 노르웨이
파일:칠레인민공화국국기.png 칠레
지휘관
노이기니아노이기니아 빌헬름 왕태자
노이기니아 델베르트 폰 노이야르스
노이기니아 오스발트 폰 미텔베르크
노이기니아 에른스트 폰 노이프로이센
노이기니아 만프레트 올렌도르프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프리츠 폰 넨도 (-2025년 12월 13일)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모리츠 바이에를라인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헤르베르트 베포르트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율리우스 디트리히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지크 오트
병력
노이기니아 132,000명
노이기니아 7,000명
노이기니아 47,000명
노이기니아 62,000명
총 합계: 248,000명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94,000명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37,000명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18,300명
총 합계: 149,300명

노이기니아 내전(독일어: Neuguineer Bürgerkrieg 노이귀니어 뷔르거크리크[*], 영어: New Guinean Civil War 뉴기니 시빌 워[*])은 2025년 11월 4일, 11·4 사건으로 발생한 노이기니아의 내전이다. 빌헬름 왕태자가 이끄는 왕국정부프리츠 폰 넨도모리츠 바이에를라인이 이끄는 노이기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간의 벌어지고 있는 내전이다.

노이기니아 혁명 정부는 "부패한 호엔촐레른 왕실로부터 노이기니아를 구원하고 민주 공화정으로의 이행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빌헬름 2세가 즉위식을 이유로 노이쾨니히스베르크에 머물때 11·4 사건을 일으켜 빌헬름 2세자모아 내각의 청차관들, 대관식을 위해 노이쾨니히스베르크에 방문한 극동 하바롭스크 왕국, 칠레 인민 공화국, 아랍 에미레이트, 대성제국, 제3공화국의 정상의 인질을 잡는다. 노이쾨니히스베르크를 탈출한 빌헬름 왕태자헤르베르트쇠헤로 돌아가 혁명 정부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내전이 시작된다.

배경

범죄와의 전쟁

2024년 10월 28일 오전 4시경, 헤르베르트쇠헤 노이볼린 구역에서 갱단 간의 총격전이 발생한다. 노이기니아 근위대에 의해 진압이 되었으나, 총격전이 발생한 곳은 헤르베르트쇠헤궁에서 고작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였다. 이로 인해 총기 규제법이 왕국의회 양원을 통과한다. 그러나 16일 후인 11월 13일, 헤르베르트쇠헤에서 다시 총격전이 발생한다. 지난 총격전과 같은 갱단 사이에서 발생하였으며, 진압에 투입한 왕립육군근위대에서 피해가 발생하였다.

두 사건들로 인해 빌헬름 1세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갱들을 비롯한 여러 범죄에 대한 강경 진압을 선언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지 약 4개월뒤, 정부의 공식적이며 강경한 대처로 갱들은 서로 단합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3월 9일9월 4일의 전투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진압군에게도 큰 피해를 입히며 계속해서 연합을 유지해나갔다.

군 내 비리 조사

헤르베르트쇠헤에서의 전투 이후 군대 내 비리에 대한 의혹이 증폭된다. 조사 결과 군대의 몇몇 장교가 갱들의 연합에 무기를 빼돌렸음이 밝혀진다. 이 사건은 공론화되어 노이기니아 근위대가 경찰 중에도 부패한 자가 있을 수 있다며 조사를 담당했다. 조사는 꽤나 성공적으로 수많은 비리를 발견하고 비리 장교를 체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그러나 독립적인 단체인 근위대가 국가의 최고 군사 단체에 대해 어떠한 사법적 조치 없이 독단적으로 조사와 체포를 진행했다는 점에 대해 군부의 불만이 증폭되어갔다.

그러던 중 라헤에서 한 비리 장교의 체포 과정 중 근위대와 비리 장교의 휘하 병사들 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비리 장교는 일부 병사에 의해 체포에 성공하였으나, 이로 인해 빌헬름 1세근위대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군부의 불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된다.

헨리에트 사건

2025년 9월 10일, 빌헬름 1세의 암살 미수로 인해 선포된 계엄령의 일환으로 파덴부르크주를 포함한 서부 지역의 반정부 성향을 띈 원주민 부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제2사단 전원이 투입되어 작전이 시작된다. 작전은 9월 14일까지 이어져, 원주민 부족에 대한 대량 학살로 끝이 난다. 4일간의 기간동안 3,000개의 원주민 촌락이 파괴되었으며, 3,000명의 원주민이 사망, 20,000명의 원주민이 체포된다. 그에 반해 제2사단의 피해는 단지 밀림으로 인한 1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로 끝이 났다.

헨리에트 사건G급 기밀 문서로 두번째로 높은 등급의 기밀 문서였으나, 아랍 에미레이트의 한 언론을 시작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된다.

빌헬름 1세 붕어

빌헬름 1세2025년에 들어서 점차 건강이 악화되왔다. 결국 2025년 5월 2일, 뇌졸증으로 인해 쓰러진다. 빌헬름 1세는 국정의 운영이 불가하자 프리드리히 왕태자에게 국정을 맡겼다. 대리청정 이후 빌헬름 1세의 건강은 점차 회복되어갔다.

2025년 9월 8일, 주변인의 만류에도 불과하고 전사자와 부상자들의 훈장 수여를 위해 노이슈테틴 국립 묘지노이브레슬라우 대학 병원에 직접 행차하여 훈장을 수여한다. 노이브레슬라우 대학 병원에서 훈장 수여를 하던 도중, 공산주의자에 의한 암살 시도가 발생한다. 빌헬름 1세는 목숨은 건졌으나, 1발이 옆구리에 명중한다. 이로 인해 호전되어가던 건강은 후유증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어 간다.

결국 9월 22일, 빌헬름 1세는 서거하게 된다.

11·4 사건

경과

노이프로이센 전선

남부 전선

서부 전선

노이안할트 전선

북부 전선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