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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우
盧鉉佑 | |
청화국의 제18대 내각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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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2007년 2월 10일~2011년 2월 10일 |
군주 | 최욱 |
전임: 김태호(제17대) 후임: 김태호(제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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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국적 | 청화국 |
출생일 | 1952년 9월 1일 |
출생지 | 청화국 군천부 |
사망일 | 2013년 5월 23일 (60세) |
사망지 | 청화국 군천황립대학교 병원 |
정당 | 민주당 |
학력 | 군천황립상업고등학교[1] |
배우자 | 김연숙 |
자녀 | 1남 1녀 |
부모 | 아버지 노연석, 어머니 이례선 |
자기소신이 확실하고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았던 총리대신이자 검찰의 살인적인 수사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총리대신
김재인을 정계로 이끈 사람 중 한 사람
개요
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인권 변호사로 2월 사건 등의 변론을 맡으며 박필용 내각과 이명헌 내각 초기 시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1988년, 김곤성[2]의 제의로 정계에 입문하여, 박필용내각 청문회 당시 노현우 명패사건 등으로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며 정치인으로서의 가치를 높였고, 이후 정태주 내각에서 후생노동대신과 김태호 내각에서 농림수산대신을 거쳐 제18대 청화국 민의원 의원 총선거를 통해 총리대신에 선출되어 제1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게 된다.
선거 관련 발언 논란으로 인해 재임 중 헌정 사상 첫 내각 불신임를 당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최욱 황제에 의해 기각이 되어 직무에 복귀하였다.[3][4] 임기종료 후 퇴임한 뒤 역대 내각총리대신들 중 처음으로 금양부가 아닌 고향 지화마을에 귀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2012년에서 2013년까지 친형 노정우 등 친인척의 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2013년 5월 23일, 지화마을 사저 뒷산의 바위에서 스스로 투신하였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지만[5] 결국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 이후로 지지 세력인 친노는 폐족 위기에서 벗어나 2014 제1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을 기점으로 빠르게 재결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이자 내각관방장관이었던 김재인을 필두로 친노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2017년 민주당 임기환 총리후보가 2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이 되는 등 2018년 현재까지도 청화국 정치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