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녹빛 청기사의 역사에 대해 정리한 문서

녹빛 청기사

1842~1999 청기사의 세기

1842년 8월 12일 - 영국 애버딘셔에서 착생식물, 밀꽃 겨우살이(Viscum siligo) 가 최초로 발견됩니다. 에버딘 주변의 산림에서 지금껏 본적없는 겨우살이가 발견되었으며, 숙주인 나무는 순식간에 고사한것으로 추정됩니다.

1843년 4월 - 케언곰스 산림지대의 나무들이 집단으로 고사했습니다. 주변의 초본들도 전부 신종 겨우살이의 기생으로 인해 사라지고 초본과 나무들은 신종 겨우살이들로 전부 대체됩니다.

1846년 - 영국에서 기생식물로 인한 밀의 대흉작이 발생했습니다. 잉글랜드의 농학자들은 품종을 교체하여 기른다면 될것으로 안일하게 생각했으며, 그들의 생각은 내년이 되어서야 틀렸음이 증명됩니다.

1847년 - 캐나다, 인도 등의 대영제국의 식민지들에서도 비슷한 패턴의 대흉작이 발생했습니다. 대영제국 당국은 이 원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섭니다.

결과는 역시나 밀꽃 겨우살이 인것으로 밝혀졌으며, 이에대한 대대적인 방제작업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1850년 - 대영제국이 밀꽃 겨우살이에 대한 방제작업에 고전하고있는 사이,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영국의 것과 비슷한 패턴의 대흉작이 보고되어옵니다. 세계 경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1852년 - 밀꽃 겨우살이가 청나라와 조선, 일본, 게다가 대양주에 까지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생물학자들이 이를 '녹색 페스트' 라고 부를정도로 경각심을 크게 가지기 시작합니다.

1855년 5월 - 훗날 사회학자들이 추정한 세계 전역의 국가들이 대기근을 통제할 모든 자본력과 행정 역량을 전부 고갈시킨 시기입니다. 세계 정역에서 정부들의 파산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1858년 - 지질학적인 추적과정을 통한 결과, 이 시점부터 밀꽃 겨우살이가 전 지구를 장악합니다.

1859~1864년 - 밀꽃 겨우살이가 타이가 지대의 침엽수들이 가지는 특유의 베타성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침엽수림 자역 곳곳에서 침엽수림을 방패막이 삼아 안전하게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대기근은 통제할수 없어 세계의 인구는 8억명으로 축소됩니다.

1864년 - 캐나다 토론토에서 세계 생물학 협회가 건립되며, 초대 의장으로 미국의 저명한 식물학자인 아사 그레이가 지목됩니다.

1865년 - 세계 곳곳에서 포드졸과 피트모스에 효과적으로 성장할수 있는 밀, 보리, 겨자 등이 종자개량에 성공되면서 대기근의 돌파구가 형성됩니다. 넓은 침엽수림을 가진 여러 나라들이 품종 경쟁을 시작합니다.

1867년 - 작물을 온실이나 건물내부에 가둬두고 수경재배나 분무경으로 키운다는 아이디어인 '격리농업' 이 제안됩니다. 포드졸 토양이 부족한 남유럽 부근에서 폭발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하며, 이에 세계 생물학 협회가 연구진을 지원합니다

1875년 - 그리스에 위치한 세계 생물학 협회가 지원하는 온실이 상용적인 격리농업이 최초로 성공하며, 이에 남유럽, 미국 남부, 라플라타 유역 격리농업에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농업은 타이가 농업과 도시 외곽의 격리농업 고층건물들이 양분하게 됩니다.

1878년 - 아사 그레이가 세계 생물학 협회의 다음 계획으로 밀꽃 겨우살이의 '독소' 를 파악해내는 '해독 프로젝트'를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격리농업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비 타이가 국가들은 이에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1880년 - 해독 프로젝트 중 수많은 세포들을 관찰하며, 세포를 인공으로 배양하는 것에 대해 많은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인공 뱌양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제안되지만, 해독 프로젝트에 집중한 학회는 이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1881년 - 밀꽃 겨우살이의 샘플을 전자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관찰하면 더욱 정밀한 결과가 나올것이라는 아이디어가 제안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얼마 가지않아 음극선관의 개발로 돌파구가 마련됩니다.

1887년 - 드디어 오랜 노력의 결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토론토의 연구소에서, 전자총과 집속렌즈로 이루어진 진공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밀꽃 겨우살이의 샘플을 관찰했으며, 가존 광학현미경의 한계보다 17배나 더 정밀한 관측을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독소'의 윤곽이 보이가 시작합니다.

1888년 - 세계 생물학 협회의 의장인 아사 그레이가 사망합니다. 그는 밀꽃 겨우살이의 영향으로 황폐해진 아사 그레이 정원에 안치되었으며, 유언으로 자신이 묻힐 정원을 다시 청기사 이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달라 하였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의장직은 독일의 미생물학자인 로베르트 코흐가 이어받습니다.

1888~1960 생물공학 혁명기

1888~1960년도 - 바이러스가 밀꽃 겨우살이 내부에서 최초로 발견되자 이 바이러스들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각 지역의 밀꽃 겨우살이의 샘플을 관찰할때 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이들이 식물 속을 점령해나가는 방법에 대해 이해해 나갔습니다. 그에 따라서 식물용 액비형 백신, 항바이러스제, 바이러스 내성 품종 작물 둥 여러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 끈질긴 번식전략을 지닌 병원체들을 막기 위해, 수많은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오고, 시도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류 문명은 생물공학 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접하게 되며, 이 시대를 학자들은 생물공학 혁명, 제 2차 산업혁명이라 부릅니다.

1894년 - 세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며, 인공 배양에 대한 아이디어가 다시 조명을 받습니다. 인공 배양으로 인간을 공장에서 뽑아낸다는 생각은 충격을 주었지만 흥미를 가진 자본가들이 이를 지원합니다.

1896년 - 화학자인 아그네스 포켈스가 진균으로 밀꽃 겨우살이를 진균의 감염을 이용해 잡아내는 방식에 대한 실험을 하는 도중, 한 진균이 튼튼하고, 열에 강한 구조의 물질을 만든다는것을 발견합니다. 이는 매우 튼튼하여 유압으로 작동되는 프레서에도 유연성 있게 버텼습니다. 진균을 이용한 가벼운 건축자재는 자본가들의 눈길을 끌었고, 철근 콘크리트와 목조 골격 사이의 범용재이자 대체제로 부상합니다.

1899~1910년도 - 청기사 이후 심각하게 떨어진 인구와 낮아진 출산률로 인해 인구가 점점 유지세에서 도로 감소세로 전환될 조짐이 보이며, 각 국가 정부들은 인공배양을 이용한 인간 공장에 대한 건설을 허가하였으며, 수없이 태어날 아동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대규모로 확충합니다.

1903년 - 오랜 혼란에 시달렸던 아프리카를 포르투갈의 정찰대가 다시 정찰한 결과, 사헬 지대의 사바나 기후가 다른 아과로 분화된 밀꽃 겨우살이로 가득 찼으며, 이런 '변형 사바나 초원'이 사하라를 향해 북상중이며, 이미 600km나 전진했다는것이 밝혀집니다.

1904~1906년 - 전자 현미경으로 세포의 속을 관찰하던 중, 핵산을 발견하고, 이들이 중앙 원리라는 과정을 통해 세포를 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1908~1911년 - 밀꽃 겨우살이가 가진 바이러스에 버티는 벼의 샘플을 관찰하던 중, 해당 벼의 세포 속의 crRNA가 일종의 면역 반응을 일으켜 바이러스를 격퇴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것을 아용해 인간과 같은 다른 생물체들의 유전자도 자르고 붙히며 편집할수 있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1913년 - 브라질의 순찰대가 60년 전의 자료와 현재를 비교한 결과, 아마존 열대우림이 기존보다 규모가 줄어들고 황폐화되고 있다는것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아직 그 원인은 오리무중인 상태입니다.

1916년 -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토대로 간단한 진균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사람이 원하는 용도로 만드는, 일종의 '진균 나노봇'이 개발됩니다. 이것의 목적은 대부분 밀꽃 겨우살이에 대한 방역이 목적입니다. 아그네스 포켈스의 시도가 결국에는 성공으로 끝났다 볼수 있겠군요.

1918년~ - 아그네스 포캘스가 개발한 진균 기반 자재에 유전자 가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진균 기반 자재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유전자 가위기술로 조작된 진균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며, 진균 기반 자재는 더욱더 싸지고, 더욱더 튼튼해집니다.

1919년 - 세계 생물학 협회에서 파견된 과학자들이 사하라에 서식하는 변형 밀꽃 겨우살이들을 조사합니다.

겨우살이들은 땅에 붙어 기는줄기 형태로 확장하며, 수분을 가진 지역에서 수분이 없는 지역으로 수분을 대량으로 전달하는 형태를 보이며, 사하라의 생태계와 기후또한 점점 바뀌어 간다는것을 알아냈습니다.

1920년 - 토마스 헌트 모건이 주도하는 "밀꽃 겨우살이 백신 프로젝트"에서 최초로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백신이 나왔습니다. 이들은 청기사류의 바이러스에 모두 효과가 있던것은 아니었지만, 유의미한 면역향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실외농업이 다른 대체농업의 확장에 맞설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1925년 - 유전자 가위기술을 통해 조작된 진균을 통해 밀꽃 겨우살이의 착생을 방해하여 농업과 조림사업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계획이 발표됩니다. 이는 얼마 가지 않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둡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다른 장애물을 맞이합니다.

1926년 - 세계 각국이 육안으로 구분되는 큰 이상저온을 겪습니다. 타이가 지역의 타이가농업 지대에서 대흉작이 보고되면서, 캐나다, 북유럽, 러시아의 경재가 엎어지며, 세계 식량파동이 일어나고, 경제위기가 발생합니다. 이는 타이가 농업의 몰락을 의미했습니다.

1929년 - 동아시아 또한 큰 이상저온울 겪으며, 여러 발명품들로 되살아나던 실외 쌀 농사가 몰락하게됩니다. 이는 실외농업의 몰락의 단초였습니다.

1932년 - 리비아의 순찰대가 변형된 사하라 초원이 리바아의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습니다. 사하라의 초원화가 절정을 달해갑니다.

반대로, 아마존의 규모는 끝없이 축소중이며, 점점 초원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아마존 화전 농업의 몰락을 우려합니다.

1934년 - 급격히 추워지는 기후애 맞춰, 단열성을 가진 진균 자재가 개발되고, 진균을 급격하 증식시켜 거품형태로 팽창시키는 단열 스프레이가 개발됩니다.

1937년 - 전세계의 기후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이를 괸측하고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의 지구과학자들이 서로의 정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단체인 세계 기상연구 연맹이 건립됩니다.

1941년 - 세계 기상연구 연맹은 이 모든 문제가 밀꽃 겨우살이가 생태계의 1차 생산자를 무너트려 그 위의 포식자들을 전부 약화시킨뒤, 나머지 빈지리를 모두 자신으러 채워넣었기 때문이라 추측했습니다. 불어난 밀꽃 겨우살이의 광합성에 이산화탄소가 극적으로 줄어들고, 인류의 횔동이 농업 생물공학에 최대한 집중되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크개 줄게 되었다 말합니다.

세계 기상연구 연맹은 빙하기를 막기 위해선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도록 기계공업을 통한 공장을 확충해야할것이라 발표합니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진균을 이용한 생산시설로 자재를 생산하고 있으며, 기계공업은 크게 몰락했다는것이 문제로 작용합니다.

1943년 - 격리농업의 비율이 60%까지 상승합니다. 브라질의 화전농업이 아마존의 초원화로 크게 위축되면서 세계는 격리농업에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1945년 - 소빙하기의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세계 기상연구 연맹에 지원을 하며, 연맹은 본격적인 소빙하기 완화에 시도합니다. 생물공학 혁명 이후 인기를 잃어가던 화석연료를 다시 찾아내 사용을 장려하고, 밀꽃 겨우살이의 번식을 최대한 막고, 생태계를 최대한 복구하려 노력합니다.

1947년 - 세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며, 점차 식물에 의존하는 농사가 아닌 미생물 자체를 섭취하는 방식을 사용하자는 제안이 들어옵니다. 클로렐라는 이것의 대표적인 후보 미생물이었으며, 소빙하기의 피해를 입은 여러 국가들에서 클로렐라의 품종 개량을 시도합니다.

1952년 - 해안에 위치한 국가들은 해초를 식용하는 식습관이 이 시기부터 완전히 정착하며, 인류의 식습관은 땅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1954~1960년 - 세계 기상연구 연맹 내부에서 기상공학 프로젝트 무제한 허용을 요청하는 건의가 점점 많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이는 세계의 소빙하기가 전전 심해지면서 더욱 빗발칩니다. 보수적인 입장을 지닌 인사들은 세계 기상연구 연맹에서 점점 퇴장합니다.

1960~1987 기상공학 폭발기

1960년 - 기상공학 프로젝트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됩니다. 그동안 연구만 되거나 실험만 이루어졌던 여러 기후조작 기술들이 족쇄를 풀고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무기한 연기되오던 최초의 대규모 기상공학 프로젝트인 '스코펙스 작전'이 다시 본격적인 진전을 보이며, 지구의 모습은 점점 달라집니다.

1960년도 -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개발되지 못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이산화탄소 생산을 위해 개발됩니다. 이로인해 부족한 자원이었던 헬륨의 수요도 어느정도 해결이 됩니다. 미비한 기술로 인해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소와 공장은 기술적인 경험이 많이 쌓인 생물공학 공장과는 달리 비효율적이었지만, 기상연맹의 지원으로 이산화탄소 생산을 이어갑니다. 효율에 대한 개선은 계속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1966년 - 이산화탄소를 상당한 속도로 산소와 교환하면서 급속히 엄청난 열을내어 결국엔 화재를 일으켜 자신의 포자를 퍼트리는 이색적인 진균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들은 공장이나 발전소의 일부 공정에서 포도당을 투입하여 강한 열을 내는데 사용되며, 화석연료가 없는 지방에서 주로 쓰이는 연료로 쓰이게 됩니다.

1968년 - 대기의 일정한 부분을 화재등의 수단을 이용해 대규모로 가열하거나 소규모 냉각하여 공기의 순환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아이디어인 '인위적 순환'이 미국의 대평원에서 처음으로 실행됩니다. 이 작업은 멕시코 만류의 흐름을 3.4% 더욱 촉진시키는데 성공하며, 소빙하기의 돌파구로 제시됩니다.

1974년 - 진균 자재로 제작된 기상 풍선을 적도 해상에서 대량으로 띄워 위험한 열대요란(investigative area)를 감지하고 이를 진균 입자들과 인위적 순환 기술을 이용하여 태풍을 잡아내는 아이디어가 제시됩니다. 인간은 점점 자연재해에서 해방됩니다.

1975년 - 인위적 순환 기술이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됩니다. 1975년 초여름의 대서양에서 처음으로 생성된 허리케인 후보인 invest 95L "alex"가 기구를 통한 조사 뒤에 인위적 순환 작업으로 소멸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재해에 맞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게됩니다.

1978년 - 인위적 순환 기술로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대폭 감소합니다. 진균 기구를 이용한 초정밀 기상관측과 병렬처리에 강한 인공 대뇌피질을 사용하는 효율적 기상예보로 지구공학은 더 빠르게 발전합니다.

1980년 - 사용할수 있는 지형이 제한적인 고속 발화 진균을 통한 인위적 순환을 대체하기 위해 거울과 연막으로 지상에 들어오는 태양광을 조절시키는 방식인 "시에라&마이크 유도 기술"이 제안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훗날 정지궤도 거울을 통한 테라포밍 기술에 큰 영감을 줍니다.

1981년 - 가볍고 튼튼한 진균 기반 자재를 이용하여 최초의 초대형급 비행선인 루크 하워드급이 건조됩니다. 이 비행선은 공중에서 기상 관측과 인위적 순환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며, 지구공학의 최전선에서 자료의 지속적인 수집을 담당할것입니다.

1983년 - 소빙하기는 해빙되고 있었지만, 밤은 여전히 추웠습니다. 추워진 밤 기온을 높히기 위해 밤하늘을 구름층으로 가리는 형태의 지구공학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진행됩니다.

1987년 - 세계 생물학 협회에서 "현재 태어난 사람들은 160세의 평균 수명을 완전히 누릴수 있다" 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인간은 죽음마저 싸워 이기고 있습니다.

1988~2064 번영공학 반등기

1988년 - 최초의 진공관식 컴퓨터가 개발됩니다. 이 컴퓨터는 비록 대뇌피질 복제 컴퓨터와 결합된 구조였으나, 진공관이 컴퓨터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것으로, 최초의 전자공학적인 컴퓨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90년 - 대뇌피질 복제 컴퓨터의 단점인 낮은 속도와 부족한 정확성, 기억의 휘발성을 보완하기위해 전자적인 컴퓨터와 대뇌피질 컴퓨터를 연결시키는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시도됩니다.

1994년 - 그래핀과 카바인이라는 탄소의 동소체들이 발견됩니다. 이는 몇년뒤 캄퓨터 공학에 큰 영향을 주게 될것입니다.

1998년 - '로켓' 이라는 발명품이 다시 재조명됩니다. 우주개발의 꿈은 영영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9년 - 아이작 아시모프가 그의 유작으로 '번쩍이는 세계'라는 작품을 집필합니다. 번쩍이는 세계는 녹빛 청기사가 일어나지 않은 다른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며, 이 세계속의 사람들은 실험동이 아닌 너른 평야에서 농사를 짓고, 대뇌피질이 아닌 집적회로로 이루어진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포도당이나 ATP 수용액이 아닌 전기가 도시 곳곳에 흐르며, 사람들은 전기로 세워진 문명 위에서 살아갑니다. 이는 수많은 전기공학도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본격적인 컴퓨터공학의 발전을 촉진시킵니다.

2000년 - 미국을 주도로 하여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호를 발사하여 궤도에 안착시킵니다. 인간은 녹빛 청기사라는 시궁창속에서 벗어나 다시금 별을 바라봅니다.

2002년 - 세계 최초의 원자로와 핵실험이 성공하다.

2005년 - 세계 최초의 달 착륙선이 미국 소속으로 고요의 바다에 착륙하다

2006년 -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발사됩니다. 케플러 망원경의 활약으로 인류에게 '외계의 존재' 라는 개념이 다시 각인됩니다.

2006~2045년 - 세계 기상연구 연맹이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기후조작계획이 성과를 보다. 소빙하기의 영향이 줄어들어 포드졸 농업이 다시 성행하기 시작하고, 브라질의 아마조니아 황무지가 생기를 되찾다.

2010~2060년 - 50년 동안의 우주산업의 급격한 발달, 생명공학을 응용한 재료공학의 독특한 발달로 인해 우주진출의 허들이 낮아지며, 달과 화성, 라그랑주 점에 대한 시험적인 자립 거주지가 건립되다.

2064년 -


세계는 갑작스러운 우발적 핵전쟁으로 파괴됩니다. 원인은 북러시아 공화국의 핵미사일 오발로 추정되며, 이는 인류의 우주 진출(또는 도주)를 가속시킵니다.

이후 세계의 역사는 카르다쇼프를 향하여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카르다쇼프를 향하여의 세계관속에서 녹빛 청기사 세계관의 물리적인 흔적은 많이 지워지지만, 기술, 사회, 사상적인 유산들은 영원히 전해질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