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니케아 | Νίκαια
상징 키 로
국조 흑금색 쌍두독수리
지도
역사
  • 콘스탄티노플 함락 1204년
  •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 즉위 1205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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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최대도시 니케아(명목)
님페온(실질)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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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구성 로마인 다수, 일부 소수 룸인 거주
공용어 그리스어
공용 문자 그리스 문자
종교 국교 정교회
분포 정교회 다수, 일부 이슬람(수니파)
군대 로마군(니케아군)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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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니아 3개
-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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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공화주의적 전제군주제
국성 라스카리스 왕조
황제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
정부
요인
총리 -
군사장관 -
외교장관 -
입법부 니케아 원로원
집권 세력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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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프로니아 제도

로마 제국(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혹은 니케아 제국(Νίκαια) 은 아나톨리아 서부에 자리잡은 구 로마 제국(-* 1204)의 잔존국이다. 로마의 잔존국 가운데 가장 규모가 거대하며,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어 향후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할 때에 그 주인공이 될 가장 유력한 국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 공식적인 수도는 니케아지만, 실질적인 수도로 기능하는 것[1]님페온이다. 국가의 원수는 "로마 황제"이며 라틴 제국과 서유럽의 외국에게는 니케아 황제 혹은 그리스 황제라고 불리고 있다. 황제 이외 제국의 주요한 기관으로는 원로원과 군대, 그리고 시민이 있는데 이 중 원로원은 입법기관이었으나 제정 수립에 들어 사실상의 명예적 자문기관으로 기능하였던 구 로마 제국의 원로원을 테오도로스 황제가 그대로 니케아에 설치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군대는 제국의 군사력을 표현하는 가장 막강한 수단이나 가치로써 황제의 명을 받들어 국내외의 평화를 유지하는 충성스런 로마군이다. 시민은 말 그대로 니케아 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로써, 황제에 대한 여론을 표현하는 로마의 3기관 중 하나이다. 제국은 이 3기관의 균형이 적절히 유지되어 공화주의적 전제군주제라는 개념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니케아 제국은 1204년 이전의 로마 제국 정체를 가장 확고히 가지고 있는 잔존국임을 알 수 있다. 1204년 4월 13일, 4차 십자군의 공격으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라틴 제국이 성립된 이후에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던 아나톨리아에서는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가 일시적으로 황제로 재임하였으나, 대관받지 못해 황제로 인정되지는 못했다. 그의 사망 이후에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가 로마인의 황제로 즉위 및 공식적으로 대관하니, 이것이 현재 니케아 제국의 성립이다. 니케아 제국은 라틴 제국과의 대립과 룸 셀주크와의 부분적 적대 관계를 통해 2면의 가(假) 전선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불가리아 제국과의 혼인 동맹을 구축하여 "적의 적은 동맹"이란 생각을 통한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정책을 시행했다.

역사

1204년 4월 13일, 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당황과 충격에 휩싸였다. 그 분위기는 점차 제국 전역으로, 더욱 파괴적인 영향력과 함께 퍼졌다. 교황에게마저 버림받은 베네치아 주도의 십자군이 동방 제국의 심장에 칼을 넣은 것이었다. 라틴인들이 세운 제국이 초반부터 삐걱거릴 때, 아나톨리아 서북부 해안가의 도시 니케아에서 흑금색 쌍두독수리가 날갯질을 시작했다. 독수리는 바로 젊은 청년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였다. 테오도로스는 니케아의 인민들의 지지를 받들어 형 콘스탄티노스의 제위를 이었다.

그렇게 니케아에서의 제국은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들의 피묻은 철갑을, 피의 강물로 닦아내었던 십자군이 그토록 바라던 영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리라.

니케아/연표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 시대

  • 1207년 11월 27일, 니케아의 황제가 라틴 황제 보두앵을 암살하였으나 알려지지 않다, 제위는 전임 황제의 형제인 앙리 플란데런이 이어받다
  • 1208년 3월 14일, 니케아 국내 기록을 시작하다.
  • 1208년 3월 모일., 황제가 수도인 니케아, 그 외에 칼게돈, 키지코스 등에 대규모 논밭을 지으라 명하다
  • 1208년 4월 16일, 주후 * 1208년 첫 궁정 알현하다
    • 동日., 제국 영토 전역의 토지 조사 사업 요청에 대하여 황제가 비용의 문제로 이를 거부하다
    • 동日 2., 라오디케아 군수 마누엘이, 황태제 미하일과 그의 군대가 라오디케아를 약탈하여 마을과 농장을 수탈한 것에 대하여 배상을 요구하였으나 황제는 병사를 두둔하여 이를 거부하다
  • 1208년 5월 10일, 타르소스 현지의 주민 대표단이 타르소스의 무너져가는 성벽에 대하여 제국의 보수와 지원금 제공을 요청하였으나 황제의 설득으로 제국 경제에 무리를 주지 않고 성벽 보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다
  • 1208년 8월 11일, 테오도로스 황제의 혼인정책으로 하여금, 니케아 황녀 에이레네가 테살로니카의 요안니스 바타제스와 부계 혈통의 혼인(테오도로스 1세의 남계 후사가 없을 시)을 약속하는 약혼식을 거행하다
  • 1209년 3월 10일, 황제가 니케아 성채의 아성을 둘러 축성할 것을 명하다
  • 1210년 10월 31일, 제2황녀 헬레네(* 1210년 출생)를 불가리아 황태자 코즈마와 약혼토록 하다(니케아-불가리아 동맹)
  • 1210년 11월 1일, 황제 테오도로스 1세가 병치레에 시달리기 시작하다
  • 1211년 2월 15일 황제가 룸의 술탄 슐레이만 2세를 니케아로 초청하기로 하여 룸에 사절을 파견하다, 룸의 술탄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다
  • 1211년 4월 10일, 슐레이만 2세가 룸으로 돌아가다, 양 군주의 우정으로 니케아와 룸 사이의 우호관계 형성되다
  • 1211년 6월 13일, 황제의 병치레가 완쾌되다
  • 1211년 8월 17일, 박해받는 정교회 신도들을 위하여 니케아가 콘스탄티노플로 사절단을 파견하다, 라틴 황제 앙리가 그들을 두팔벌려 환영하며, 정교회 신도들을 보호하겠노라 약속하다
  • 1212년 1월 19일, 에이레네 라스카리나와 요안니스 바타제스가 혼인하다
  • 1212년 1월 28일, 트라페준타 제국의 폰토스 문화가 형성되어 로마 본래 문화와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하다
  • 1212년 10월 28일, 니케아가 6,2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라틴인들이 점거한 칼리오폴리스 지역을 침공하다
  • 1213년 3월 20일, 아우구스타 안나 앙겔리나가 제1황자 테오도로스와 제2황자 콘스탄티노스 쌍둥이를 건강하게 출산하다, 계승권은 라스카리스 왕조에게로 돌아오다
  • 1215년 3월 11일, 칼리오폴리스가 제국의 품으로 돌아오다, 지방관으로 귀족 가문의 세라피온 무잘론을 파견하다
  • 1218년 6월 8일, 니케아가 라틴인들이 점거한 아이노스 지방을 침공하다
  • 1219년 8월 23일, 아이노스 지방이 제국의 품으로 돌아오다, 라틴인들의 제국이 테살로니카와 셀림브리아 지방 두 영토로 양분되다
  • 1221년, 니케아의 도심이 라틴인들에게 점거당한 옛 수도 콘스탄티노플보다 번성하다(니케아 개발도 31, 콘플 개발도 29)
  • 1221년 11월 25일, 황제가 니케아에 원형 성채를 둘러 지을 것을 명하다
  • 1222년 2월 4일, 14년만에 신년 궁정 알현을 거행하다
  • 1222년 9월 26일, 니케아의 프로피로옌니토스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당시 9세)가 필리스 무잘로나(당시 1세)와 약혼하다
  • 1225년 8월 4일, 니케아에 원형 성채가 완공되다
  • 1226년 * 12월 15일, 니케아 황녀 프로피로예니타 헬레네 라스카리나와 불가리아 신임 황제 코즈마와 혼인하다
  • 1227년 1월 26일, 테오도로스 황제가 예루살렘에 대한 성지순례를 시작하다
  • 1227년 3월 27일, 황제의 예루살렘 성지 도착
  • 1227년 4월 26일, 황제, 니케아로 환궁
  • 1227년 11월 28일, 라틴 동란 이전 출생 황후의 종말, 로마인의 아우구스타 안나 앙겔리나 서거
  • 1227년 6월 8일, 라틴 제국 황제 오통(사망 당시 15세)이 자기네 봉신들에게 죽다! 라틴 제국이 점점 분열할 기운을 보이다, 라틴 제위는 전전임 황제 앙리의 동생이자 그 부친 플란데런공 바우더베인 7세의 6남 외스타슈가 이어받다
  • 1228년 3월 25일, 테오도로스 황제가 궁정 알현을 거행하다
  • 1228년 10월 22일, 십자군 계열의 통치자의 아들이 다스리던 제국의 자치 키비르하이오타이 지역 둑스 프란체스코(당시 14세)가 그리스 문화를 수용하다

분류

  1. 테오도로스 황제는 니케아에서 기거하지만 정부의 기본적인 모든 기능과 집행은 님페온에서 이뤄진다. 황제 역시 니케아와 님페온을 자주 오가는데 님페온에서 주요한 모든 결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도가 님페온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