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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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산당
大韓共産黨
당기 기호형 상징
문자형 상징
약칭 공산 (KCP)
영문명 Korean Communist Party
표어 세계의 무산계급이여, 단결하라!
창당 1909년 10월 12일
북부당사 황도특별시 남동구 자유로 167
서울당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5
중앙위원장 유호준 / 5선 (40~44대)
중추원 원내총무 박평우 / 5선 (중:41·43회 , 민:39~41대)
국민원 원내총무 임상우 / 4선 (41~44대)
서기국장 장세린 / 3선 (40,42~44대)
정치국장 임보명 / 3선 (41~43대)
중추원의원 113석 / 270석 (41.9%)
국민원의원 228석 / 624석 (36.5%)
성장/부지사 19석 / 24석 (79.2%)
광역정부장 20석 / 32석 (62.5%)
기초정부장 12석 / 16석 (75.0%)
성/부의회 의원 12석 / 16석 (75.0%)
광역의원 12석 / 16석 (75.0%)
기초의원 12석 / 16석 (75.0%)
산하 조직 대한청년전위대(청년조직)
한국노동자정치협회(노동자조직)
향당 북해사회당
연대정당 대마은기 사회당
홍콩 민주사회당
기관지 노동신문
월간노동
당색 적색 (#CC0102)
산하연구원 노동정책연구원
책임당원 8,472,239명
등록당원 25,472,239명
국제조직 아시아공산당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
선거연합 시민연합
사민공산연대

개요

대한공산당대한국의 집권여당이다.

1909년 창당된 한국의 공산주의 정당이며 합법화 이전 지하활동기까지 포함하면 현재 존속하는 한국의 정당중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12.10 운동과 합법적 활동 시작후 지역민주주의 발전, 토지개혁등 여러 정치개혁과 노동운동, 농민운동등 한국 사회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역사

창당과 해산, 지하활동기 그리고 12.10 운동

1909년 10월 12일, 여운형을 비롯한 전국 대학이나 공장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룹이 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 때 공산당은 반왕정-반제국주의를 내세워 무력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여 공화정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각지에서 총파업, 무장봉기를 모의하였으나 1910년 5월 7일, 여운형을 비롯한 각 노동자협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공산당은 한차례 강제 해산된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로 도피하는데 성공한 일부 인사들은 각지에서 대한공산당을 재조직했고 연락부를 통해 재결합, 한국 본토에도 지하 연락부를 두어 지하활동을 계속해나갔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공산당은 마르크스의 <자본>과 <공산당 선언>등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배포했고 리다자오, 천두슈등 젊은 중국 지식인들과 연대하였다. 이는 1917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는 배경이된다.

이후 김세원등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공산당내 지식인들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제국주의들끼리 전쟁이 터지자 전세계가 공산주의를 통해 무산계급의 국가를 만들면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칸트주의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영구평화론>과 <한국과 지나, 일본의 삼국 공산주의 평화체제>등을 집필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산혁명을 통해 무산계급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시대를 종말시키면 세계 평화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박원술등 다른 지식인들은 중국의 상황에 맞추어 농민 중심의 혁명을 구상하였고 각 국가마다 혁명의 주체와 그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대한공산당과 중국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이에 대한 열렬한 지지선언을 보냈으며 때맞추어 만주에서 여운형이 공산주의 세력을 규합하자 1918년 2월 베이징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이 한데 모여 <동아시아공산당연합>을 결성,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위한 무력투쟁을 결의했고 1918년 12월 10일 한국 대련에서 항구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장장 8개월에 걸친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12.10 운동으로 한국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최근

2020년 중추원 선거에서 원내 2당이라는 고무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대한공산당은 얼마뒤 사민당 탈당파 의원 32명에 대한 심사후 입당을 허용하며 국민원에서도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대한공산당 창당 이후 유례없는 부흥기라 당원들도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며 대한공산당은 2023년 차기 선거에서 집권하기 위한 계획을 20년 연내로 세워 발표할 예정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비연정, 독자노선을 버리고 좌익 세력의 단결을 추구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과감한 정책 홍보등이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2월 1일, 집권 가이드라인이 공개되었다. 예상외로 비연정과 독자노선은 유지하되 지역 현안에 대해서는 여타 좌파 정당, 인사들과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며 정책적 선명성을 강화하고 국민당이 조명하지 못하는 주택 부족 문제, 일부 지역에서의 빈곤과 일자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2021년 2월 20일, 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당 정권에 대한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올해 6월 2일에 예정된 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 국민당을 역전, 3월 첫째주 기준 38%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16%인 국민당을 여유롭게 제쳤다. 국민당 텃밭인 외흥안령부를 제외하면 모든 성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성부급 정부장 23명중 18명을 당선시키면서 창당 이후 최초로 지방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정책

  • 정치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민주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1] 권한을 대폭 확대하며 노동자 대중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기 위해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조직을 결성하는데 조력하는 것은 물론 당이 그들의 민주적 집합체로서 기능케 한다. 장기적으로 선거를 통한 의회권력을 타파하고 노동자 조직의 숙의와 표결을 통한 민주정치를 실현한다.

  • 경제
  • 교육

완전한 교육의 평등을 위한 교육혁신

  • 황실 재산 전면 정부 예산으로 재편

기타

  • 1992년까지 한국 법률상 성명을 호적과 주민등록부에 기재할때 한자 이름은 반드시 한국어 독음으로 적어야 했다. 가령 한화계인 조흥림(趙興林)은 한어로는 ‘자오싱린’이라고 읽지만 호적에는 반드시 ‘조흥림’이라고 기재해야 한다. 또한 일본계인 전중양평(田中陽平)도 일본어로 ‘다나카 요헤이’지만 호적에는 ‘전중양평’이라고 기재된다. 하지만 대한공산당은 이것을 거부하고 한화계는 한어발음대로, 일본계는 일본어 발음대로 당적에 기재했었다.
  1. 지방자치체조직법에 명시된 기관으로써 지역의회 이외에 시민이 자체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협력기관’이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지방정부장과 의회에 대한 안건 상정, 자문 역할 이상은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