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의 영토

대한국
大韓國 / Korean State
대한국의 국기[1]
정치체제 일민주의(一民主意) / 실질적으로 군국주의, 파시즘
정부 체제 명목상 국무령제 공화국 / 실질적으로 세습 전제군주정
경제 체제 국가 자본주의
국가의 표어 모든 한민족의 몸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설립 연도 1948
국가 ISO 코드 KOR
소속 국제기구 범대륙 연합Pan-Continental Coalition
수도 한정도韓正都
국가 충정가
세계관의 국가 상징색 #43BAE5
화폐 단위 환/KRH
현재 인구수 약 8,819만 명
대한국 정부 인사 목록
현직 국가원수 국무령 이홍근
현직 정부수반 부국무령 겸 총괄의장 이순민

개요

대한국大韓國 / Korean State가상지구 BF 세계관에 존재하는 독재국가이다. 이 국가의 체제는 형식적으로는 '국무령'이 국가원수인 공화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구 한국 왕실가문 인사가 국무령직을 맡고 있고, 초대 국무령 이우준이후로 그의 아들들이 계속 국무령직을 계승하고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세습 전제 군주정'으로 분류되고 있다.

성립

가상지구 BF 내의 한반도는 1904년 일본국의 군대를 앞세운 침공을 맞았을 때, 여전히 전근대적 국가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했고, 단 20일 만에 수도가 함락당한 다음, 한반도 침공군 총사령관 '우가키 카츠나가'가 구 한국의 수도에서 국왕의 항복 선언과 합병 조인문서를 받음으로서 한반도의 독립국가는 사라지고 '일본령 한반도'만이 남았다. 당연히, 많은 조선인들은 이에 반발했으며 몇몇 우국지사들은 한반도 내에서 비폭력적 시위를 하거나, 반군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에 나서는 등 목숨을 바쳐 일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외국으로 도망가기도 했는데, 그 중 일부는 '좀 더 안전한' 외국에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였고, 다른 일부는 단지 한반도의 꼴을 보기 싫어 도망간 것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국을 빠져나간 사람들 중에는 구 한국의 방계 왕실 인사였던 '이우준', 훗날의 초대 국무령이자 파시즘적 대한국의 시초가 된 사람이 있었다.

'이우준'의 아버지 '이도응'은 적극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규탄했기 때문에, 일본 점령군이 한반도를 점령했을 때 점령지 안정화 계획의 일환으로 '구 한국의 왕족은 우대한다'라는 정책을 실행했지만, 이도응과 같은 적극적 반대자들은 암암리에 탄압하고 숙청하고 있었다. 이도응이 노령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건강하고 체력이 장년층 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병사'하자, 즉시 이우준은 일가를 이끌고 유럽 대륙, 라이클란트로 도주하게 된다.

1920년대 말, 국가 분열을 막기 위해 간신히 민족 자치와 민주주의 보장을 약속해 가며 '막스 폰 코르덴Max von Korden'이 성립시켜놓은 '대 라이클란트 합중국'이 대공황과 민족 갈등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할 때, 역시 라이클란트의 귀족 출신이었던 파시스트 '에른스트 폰 골덴바움Ernst von Goldenbaum'이 권좌를 잡고, '대 아들러 군단'이라는 파시즘 정권을 출발시킨다. 골덴바움의 아들러 군단 정권은 강압, 대중선동, 미디어 장악 등을 통해 '어쨌든 겉보기로는' 라이클란트 말기의 혼란상을 진정시켜 갔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망명자 이우준은 골덴바움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구 한국이 멸망한 것은 멍청한 백성들과 무능한 관리, 정승들이 제각기 다른 뜻을 품고 이익만 쫓아서다. 나라가 살려면 저런 방법만이 답이다! 국가는 오직 하나의 뜻으로만 굴러가야 한다!"

라는 결심을 품게 되고, 이것의 한국판을 속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그것이 훗날 나타날 '일민주의' 이다.

비록 대 라이클란트 합중국은 미텔란트 코무네군의 반격에 의해 붕괴했지만, 이우준은 그것이 대 아들러 군단 파시즘 사상의 한계라고 보지 않았다. 단지 골덴바움 정권의 '힘이 약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하간 패전의 징조를 귀신같이 맡은 이우준은 적당한 시기에 루테니아 제국으로 내뺐다.

1947년, '세계의 참화' 전쟁에서, 역시 신성동맹에 참가했던 일본국이 패배한다. 그리고 미시온 왕국군이 만주를 넘어 한반도로 진공할 때쯤, 그는 '한국 정통정부'의 수장을 내세우며 미시온 왕국측과 접촉, 일본국을 패퇴시킨 다음 한국을 독립시켜 달라고 주장했다. 그가 통치자가 되어 '일민주의'를 실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시온 왕국 정부는 그가 파시스트이고, 적국이었던 라이클란트 출신이었던 것은 알지만(라이클란트는 미텔란트 코뮌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미시온 왕국에도 기습 선전포고를 함으로서 미시온과도 전쟁하였다), 애석하게도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당시 대통령 '퀜틴 로즈필드'였다면 그가 파시스트였다는 것 때문에 이우준을 문전박대했겠지만, 루테니아 제국 정부는 파시즘 국가는 아니었지만 파시즘이라는 사상 그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었기에, 주한 루테니아 군정 사령관과 함께 이우준을 개선시키고, 그를 군정사령관 보조 한국 군정 행정관으로 삼고 말았다.

이우준은 그 자신이 왕족이었기에, 처음에는 그가 '왕'이 되어 통치하기를 원했지만, 일본이 패퇴했을 때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귀국했고, 이들 상당수는 공화국으로서의 한국을 희망했기에 이우준은 일단은 공화국을 기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독립운동가들과의 타협을 통해 이우준은 대한국大韓國이라는 나라를 출범시켰고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식 '민주주의'나, 미텔란트 코무네 식 '사회주의' 나라를 꿈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뜻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는 비공산주의-반공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출신들을 교묘히 포섭하고 선동하여, 사회주의자들을 쫓아내버렸고, 그 다음 '친일파' 척결 문제에서, 많은 친일파들이 기회주의적으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연줄을 댔고 자비를 애걸했던 것을 꼬투리 삼아[2] 그들 모두 민족반역자라는 혐의를 씌워 즉결처분, 수용소로 보내거나 '제거' 해버렸다. 최종적으로 1953년, 그가 다른 '정치적 경쟁자'들을 모두 숙청했을 때, 이제 이우준과 그를 추종하는 '일민주의 계열' 인사만이 정부에 남아 있었고, 그는 본격적으로 일민주의 국가 대한국을 내세우며 파시즘 정치를 시작했다.

그 후에도 1961년 5월 16일에, 대한국의 장군이었던 '박상희'가 공화주의를 내세우며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이미 군부는 일민주의의 충성파들로 남아 있었기에 실패했고[3] 이후에도 깨어있는 시민들 위주로 시위, 봉기 등이 있었지만 모두 진압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로는 젊은 층의 현정권 지지 및 일민주의 이념의 내면화가 진행되면서 변혁의 가능성은 희미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사회

대한국의 일민주의는 '한국 파시즘'으로서, 한민족이 오직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한 몸'으로[4] 움직여야 하며, '한 몸'의 움직임과 다르게 움직이는 병균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일민주의 대한국에서는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존재해서는 안되는데, 자유주의는 '여러 사람이 자유로우면 제각기 다른 길로 가는데, 이는 한 몸을 여러 갈래로 찢는 일'이 되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여러 사람이 제각기 주인이 되면, 한 몸에 명령하는 이가 수천 수만명이기에 어지러워 넘어지게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고, 사회주의는 '국가가 바로 한 몸의 대변자인데 그 국가를 부인하는 것은 한 몸의 머리를 없애자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개괄에서는 대한국의 사회가 상당히 군국주의적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이우준이 '식민지가 된 것은 게으른 구한국의 백성과 무능한 관료들이 힘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아서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는 '고대 한민족은 위대한 전사였다'를 내세우며, 한반도 고대 국가들의 군사 문화를 취사선택, 과대포장하여 일민주의의 군국주의적 요소를 부합하였다. 따라서 성년이 된 모든 한국인들은(남녀를 불문한다) 모두 군대에 24개월 동안 복무해야 하며[5], 군대에 복무하는 것은 신성한 의무 이기에 어떠한 이유로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회적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다. 그래서 선천적 장애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병역을 이행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에' 투표권(어차피 민주국가와 같은 투표는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공무원 임용권, 복지 수령권 등에서 배제된다.

물론, 병역을 이행하는 것을 신성하게 여긴다고 해서 병역을 이행하는 이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거나 장병복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국주의적인 문화 하에서 이러한 가혹행위는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로 여겨지고 있으며, 병사들을 향한 정신교육에서는 '고대 스파르타'의 예시를 들며 병사가 고통을 받을수록 더욱 강해진다고 선전하며 이를 정당화한다. 게다가 병역 복무자는 전역 시 '복무행위 종합평가'를 통해 그의 '병역 성적'을 평가하고 이는 국가의 신원정보 시스템에 공공연히 박제되어, 더욱 높은 성적을 받은 이일수록 사회적으로 유, 무형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이에 감히 항의하기라도 하는 이는 나쁜 평가를 받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다.

대한국의 사회에는 '피해자 신화'가 상당히 퍼져 있다. 대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한민족이 타국으로부터 침략당하고 수모당한 역사를 매우 강조하여 적는다. 이리하여 대한국인들은 피해자의 후손이며, 마땅히 이를 잊지 않고 힘을 떨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은 외국인에 대해서 적개심을 조장하며, 외국에서 한국의 독재와 인권탄압[6]을 무시하도록 조장한다.

경제

대한국의 경제체제는 '국가자본주의', 공산주의 경제는 아니지만 국가의 개입이 잦은 국가주도 경제체제이다. 대한국 초창기 경제체제는 1대 국무령이었던 이우준과 2대 국무령이었던 이용범이 '국무령으로서의 권력'을 통해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였으며, 이 경제개발계획의 성과가 수준급이었고 가상지구 BF 세계관의 대한국은 전세계 경제력 순위 15위 안에 드는, 경제적 지표로는 상당한 경제 강국이다.

대한국의 기업들은 명목상으로는 민간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준 공영기업인데, 이는 국무령 또는 정부가 기업들에게 경제정책을 지시하고, 대부분의 기업체들이 국가와 여러 가지 관계로 얽혀있고 대부분의 국가 사업에 입찰하고 참여하며, 기업의 역량으로 국가의 공적사업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민간기업이 정부를 장악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엄연히 정부가 우위를 가진 체제이다.

대한국에서는 사회주의가 불법화 되어있고, 자유 노조도 불허되어 있어 모든 공업 노동자들은 '대한 근로자 총회'에 소속되어있고, 모든 농민들은 '농민 총동맹'에 참여한다. 대한 근로자 총회와 농민 총동맹 모두 단일 국영 조합이며 정부의 의향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국가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예상외로' 노동자에 대한 근로여건은 넉넉한 편인데, 이는 초대 국무령 이우준의 유럽 생활로 인하여 '굶주린 노동자들이 어떻게 국가에 반역할 수 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노동자를 배불리 먹여야 그들이 대한국 정부에 '한 몸'으로서 복종하며 다른 생각을 품지 않는다는 지론을 세웠기 때문이다.[7]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 몸'에 충정하는 애국 대한인으로서의 혜택일 뿐, 국가에서 주목하지 않는 기타 '소외 업종'에 해당하는 이들에게는 국가의 자비는 없다. 국가에서 사상범으로 찍힌 이들의 유관자, 병역의무의 결과가 '불량'으로 나온 이들은 각종 '소외 업종'에 종사하며 비참하고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외교

대 유라시아국과의 관계

대 유라시아국(이하 유라시아)의 실질적 전신인 '루테니아 제국'은 어쨌든 한국을 직접적으로 독립시켜 준 나라이며, 또한 루테니아 제국의 붕괴 후 실질적 계승국인 유라시아 입장에서도 대한국은 대양과 접하고 있고 한국의 항구를 이용하여 유라시아 해군의 거점으로 삼을 수 있기에 유라시아 정부와 한국의 관계는 밀접한 편이다. 루테니아 제국은 대한국을 쓸모있는 우군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많은 원조를 해 줬기에, 대한국 입장에서도 그 후신인 유라시아에에 우호적인 편이며, 초대 국무령이었던 '이우준' 또한 다른 나라와의 관계 파탄은 감수할 수 있더라도 루테니아와의 관계를 결코 악화시킬 생각은 없었으며, 후대의 국무령들 또한 루테니아-유라시아와는 절대 관계를 악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현 대한국 수도의 '한정도'에는 루테니아군이 수도를 해방시키는 모습과 이를 환영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린 조상[8]이 있는데, 이는 루테니아-유라시아가 한국에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라시아와 과 대한국 간의 사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동아전쟁', 1960년에 루테니아 제국이 북중국과 연합해 동북아시아의 중화민국(가상지구 BF)과 벌인 전쟁에서, 제국의 당시 내부 문제로 인하여 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하기 어려웠을 때, 대한국은 루테니아의 혈맹을 자처하며 대규모의 병력을 파병했던 적이 있었다. 이 전쟁에서 대한국은 '옛 나라의 증오스런 역사를 되갚을 때'라고 외치며 잔학행위를 일삼았고, 국제사회에서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넘쳐났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UN과 같은 최소한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국제기구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 루테니아 측이 강력하게 이를 비호하였기에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넘어갔다.

현재 시점에서도 각국은 한국을 비난하지만[9] 여전히 유라시아는 한국의 주된 후원자 중 한 명이며, 한국의 비인도적 행위에 침묵하고 있다. 다만 유라시아 내에서도 대한국을 편드는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없지는 않으며, 꾸준히 발생하는 대한국 출신 난민, 숙청 위기에 몰린 정치인들의 망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이들이 제 3국으로 도망가는 것도 간혹 묵인하고 있다.

일본국 과의 관계

'일본국'은 대한국 정부의 '공식 증오 대상'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할 이유가 있는가? 대한국 정부가 갓 설립되었을 때, 미처 한반도를 탈출하지 못한 일본국민들이 억류되어 있을때, 국무령 이우준이 이들을 모두 수용소에 몰아넣고 학살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주한 미시온군에서 이것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일본국민들의 처우를 모두 군정사령부로 이관시키고 일본으로 신속히 추방하는 것으로 끝낸 전력이 있었을 정도이다.

현재까지 대한국과 일본국은 국교를 맺고 있지 않으며, 일본국민은 '대한국에 입국하는 것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역대 국무령 목록

  • 1대 국무령 이우준(1948~1960)

1대 국무령 이우준은, 루테니아 제국의 도움을 받아 집권한 다음, 다른 이념을 가졌던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을 모두 숙청한 다음 '일민주의'를 내세워 파시즘 국가의 기초를 만들었다.

  • 2대 국무령 이범용(1960~1984)

2대 국무령 이우준 때, 본격적으로 경제발전을 시작했으며, '대 유라시아국의 관계' 문단에 나와있는 '동아전쟁' 때 자진하여 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함으로서, 그 댓가로 다수의 군사적 원조를 받아 대한국의 군사강국화를 꾀한 인물이다. 초창기에 이우준의 다른 자식들을 제치고, 다소 맹하고 어벙해 보였던 이범용이 차기 국무령으로 발탁되었을 때, 이 일민주의 정권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오판이 있었지만[10] 그것이 오판으로 밝혀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3대 국무령 이신곤(1984~2003)

3대 국무령 이신곤은 대한국 일민주의의 '외국인 증오'를 강화시킨 인물이다. 당대 루테니아 이 휘청거리고, 내부적으로 정권이 혁명으로 뒤집히는 등 혼란이 발생하자, 미시온 왕국의 후원을 크게 받던 한국은 고립무원이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서 대한국의 내부 단속을 위해 교육 및 미디어를 통해 외국인에 대한 반감 의식을 크게 조장한 것이 이신곤 정권 때의 일이다.

  • 4대 국무령 이홍근(2003~)

4대 국무령 이홍근은 현재 대한국의 사실상의 세습군주이며, 그의 계승자는 부국무령이자 총괄의장인 이순민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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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실제 한국 역사에서도, 독립 직후에는 어떠한 독립운동가든 가리지 않고 당대의 친일적 유지, 관료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연줄을 댔다. 그리고 사실 독립운동가들 입장에서도 이 '친일 한국인'들에 대해서 적당히 반성시키고 교화시킨 다음 초기 한국의 행정체계를 세우려 했다.
  3. 박상희의 일가 중에 일본에서 유학하며 공화주의 이념에 투철했던 이념가가 있었고, 박상희가 이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우준 정권에 1961년까진 꾹꾹 참아가면서 순종했지만, 그 때 더 버틸 수 없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해외의 역사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박상희는 '그저 무도하게도 돌아버린 국무령님의 은혜를 저버린 대역죄인'으로만 알려져 있다.
  4. 여기에서 일민주의의 표어에 있는 '한 몸'은, 하나의 몸이자 한민족 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의도한 언어유희이다.
  5. 징병제 국가에서는, 상식적으로는 '국가에서 요구되는 만큼만' 징병하기 때문에, 징병제 국가에서도 모든 인구를 징집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도, 병역 이행 가능 인구 중에서 60%만을 실제 병사로 이용하였다.
  6. 일반적으로 억압적 독재 정권에서는 외국에서의 자국 비판을 가급적이면 알리지 않기 위해서 매체에 대한 검열 등을 조장하는데, 물론 대한국에서도 외국에 대한 검열 조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외국에서의 '자국 비판'을 소개하는 편이다. 대신 이렇게 하여, '외국인들의 자국 모독'을 선전하고 반외세 감정을 키움으로서, 외국에서의 비판에 대해 대중들을 '면역' 시키는 것이다.
  7. 실제 파시스트 정권들도,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사회주의 이론가나 노동운동가를 탄압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노동자 대중에게는 어느정도 노동의 여건과 보수를 좋게 해줌으로서 그들의 환심을 샀다.
  8. 사실, 이 그림에는 루테니아군과 함께 개선하는 이우준의 모습을 미화함으로서 이우준을 우상화하려는 의도도 있다.
  9. 한 사례로, 2000년대 초반,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입헌당 의원인, 과격한 성격에 막말로 유명한 기인 '프레스캇 부시넬Prescott Bushnell'이, '한국은 악의 축이다'라고 외쳤을 때, 당시 그를 싫어하던 타 당 정치인들마저도 그 말엔 동의했을 정도였다.
  10. 박상희의 5.16 쿠데타 시도 또한 이 오판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