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 육군
大韓國陸軍
대한국 육군의 기
활동 기간 1946년 1월 15일 ~ 현재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종류 육군
규모 50만 6000명 (2012년 12월 기준)[1]
명령 체계 국방부
육군참모총장
본부 계룡대 산하 육군본부
표어 "간부정예화 장병인성바로세우기"
군가 "육군가"
마스코트 "호국이"
참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지휘관
참모총장 대장 김용우(육사 39기)
2014년 6월 DMZ 일대를 수색정찰 하는 대한국 육군 3사단 수색부대


대한국 육군(大韓國 陸軍, 영어: Korea Army,혹은 KA)은 대한국지상군 전력으로서 대한국 국군(國軍)의 3군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예산도 가장 많다.

2016년 12월 기준으로 대한국 육군에는 41개 사단(기계화 보병 사단 6개[2], 보병 사단 16개, 향토 방위 사단 12개, 동원 보병 사단 7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역사

초기

대한제국 시대의 대한제국군대한국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 광복군이 기원이다. 한편으로는 대한국 육군의 시작을 남조선국방경비대미군정이 설립한 군사영어학교 에서 찾기도 한다. 국방부는 1948년 12월 15일, 8명의 중령(만주군 출신 백선엽, 양국진, 김백일, 신학진, 박동균, 일본군 출신 유재흥, 기타 이용무, 최덕신)을 대령으로 특진발령하였다.[3]

한국 전쟁

1950년 대한국 육군 57mm 대전차포

한국전쟁 초기 대한국 육군은 동부전선의 이성가,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8사단, 6사단이 선전을 했으나, 서부전선의 경우 고전을 치뤘다. 옹진반도를 방어하던 육본직할 17연대(백인엽 지휘)는 개전 직후 철수했으며, 청단-개성-문산을 방어하던 1사단(백선엽 지휘)은 동년 동월 27일까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였으나, 우측의 7사단이 괴멸하여, 서울이 점령됨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1사단도 전투력의 60%이상을 상실하였으나 건제를 유지하였다. 의정부-포천축선을 방어하던 7사단의 경우 의정부지구 1연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포천축선의 9연대가 괴멸되고 이에 축차투입된 수경사 3연대, 2사단, 5사단도 붕괴되었다.

이에 중국 국부군 2성 장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여 혼성 사단을 조직 한강선을 7일간 방어함으로써 미군이 전개할 시간을 얻었다. 50년 7월 5일과 7월 24일에 단행된 사단 재편성을 거쳐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는 사단은 1사단, 6사단, 8사단 이상 3개 사단이며 3사단은 예하 22,23연대의 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7월 24일부 다시 사단이 구성되었다. 상기 4개사단 (1, 3, 6, 8 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사단 (2, [[대한 국 5보병사단|5]], 7사단)은 사라졌다가 후에 재창설되었다. 수도경비사령부의 경우 7월 5일부 수도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초기 창군 과정에서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장군이라고 해도 김홍일, 김석원, 이응준 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장성들이 20대 후반 ~ 30대 중반이었던 관계로 지휘 경험과 대규모 군대 운영 및 행정 경험이 부족하여 전쟁 기간 내내 지휘력, 전투력 부족 문제로 시달렸다. 그나마 위의 3 장군도 50년 9월 이후는 전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단급 제대가 다시 10개로 늘어난 후에도 군단 편성이 늦어진 점이나 편성된 군단도 다른 나라 "군단" 급 부대에 비하면 보병사단 3개를 모아둔 것에 불과할 뿐, 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제1, 2군단은 모두 해체되었고, 현재의 제2군단은 1952년에 지리산 공비 토벌전을 위해 임시 편성인 기동 부대 성향의 백야전사령부를 모태로 새로 창설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한국군은 투지는 강했으나, 훈련의 양과 질, 장교의 지휘 능력, 보유 장비 등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백선엽 장군은 회고록에서 "1개 보병사단 전체를 105mm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하고, 연대는 4.2인치 박격포 중대가 지원하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보병사단은 1개 155mm 대대와 3개 105mm 대대로 사단 포병을 구성하고 있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군의 1개 사단을 지원하는 포병전력은 155mm 자주포 내지는 견인포로 1개 연대 정도다. 물론 편제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으며 105mm포는 향토사단 등에서만 사용할뿐 현역 사단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1951년 이후 미국이나 대한국 모두 한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도 NATO의 창설과 냉전 분위기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병력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1년까지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증강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존 10개 사단 외에 10개 사단 추가 증설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기존 사단들도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무슨 10개 사단 증설이냐면서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이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즉, 양이냐, 질이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주장한 것이다.

이 와중에 현리 전투에서 제3군단이 패배하여 수십Km를 후퇴했고, 이웃한 미군 사단들이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결국 미국 8 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의 중대 결단을 낳게 했다. 당시 육군 본부는 최전방에 전방 지휘소를 두고 국군 군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협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한국군의 전체 지휘권을 넘겨주었지만, 미군은 융통성을 발휘해 육본의 독자 지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전방지휘소 뿐만 아니라 제3군단마저 폐지하고 모든 한국군 사단을 미군 군단에 배속시키게 된다. 군단급 이상 상급 부대가 모두 폐지된 것은 한국군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쟁 중 한국군의 1차 증강은 미군의 주장에 따라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과 장교에 대한 교육 과정 강화를 우선 사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휴전 후 병력증강과 M4 셔먼, M47 패튼 전차 도입 등 장비증강이 진행되었고, 1954년까지 제1, 2군 사령부와 군수기지사령부·군관구사령부, 10개 예비사단이 창설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대한국 육군 9사단 병력

1963년부터 미국베트남 전쟁에 파견, 지원할 군사적 협력을 세계 각국에 요청하였고 대한국 역시 미국의 파월 지원 요청에 응하여 비둘기부대를 비롯한 건설공병대대 파견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약 32만명의 국군을 파병하게 된다. 32만명 파견 중 전사 5천명, 부상 1만 9천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국군 발전사상 베트남 전쟁 파병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64년 9월 11일 1300명으로 구성된 제101 이동외과 병원과 10명으로 구성된 태권도 교관단의 파견, 1965년 3월 16일 육군 건설공병부대인 비둘기 부대(1개 공병대대, 해병 공병중대, 경비대대, 수송중대)가 파견된 이후 계속 증파되어 10월 9일에는 제 2해병사단 인청룡부대를, 10월 22일엔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인 맹호부대를, 1966년 4월 그리고 8월 30일에 9사단 백마부대가 파병됨으로써 무려 약 5만명(군단 규모)을 헤아리게 되었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그 때마다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과 대한국 국회의 승인이 있었으나 그 심의과정에서는 야당인사인 윤보선, 장준하 등의 반대를 시작으로, 파병 찬·반 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월남전에 파월(월남에 파병)한 국군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점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대한 전공과 업적을 쌓았으며, 베트남 땅에 국군에 대한 많은 신화를 남겨 놓게 되었다.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과 회수한 무기로 군사무기 개량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경제 개발 사업 자금 등으로 활용되었다. 베트남전이 서서히 막을 내리던 1973년 3월 파월 국군은 완전히 베트남 땅에서 철수하였다.

21세기

2004년 9월 이라크 아르빌에서 지뢰 탐지 중인 대한국 육군 자이툰 부대 병력

틀:부분 토막글

2014년 10월 1일, 이라크 전쟁에서의 군수 문제 발생 사례를 토대로 병기, 병참, 수송 병과를 묶어 군수 병과로 창설하였다. 새로운 병과를 위한 교육과정인 통합군수관리과정을 신설 및 운용할 계획에 있다.[4]

계획

야전군 통합

국방개혁 2020에 따라 2000년 12월에 집행될 예정이었던 제1야전군3야전군지상작전사령부로의 통합 계획이 2014년 3월 6일에 발표된 국방개혁 기본계획 2014~2030으로 재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군단 중심의 작전 수행체계를 구축하기로 예정이다.[5][6]

현재의 군단 8개는[2020년까지 7개로, 2030년까지는 6개로 줄일 계획이다[7]. 다만 이 외 수도방위사령부는 기능 사령부 중 하나로 그대로 존치할 계획이다.

현대화

  • 분대당 대전차 화기 1정씩 배치
  • 사제 장비 착용 허용, 개인전자제품 소지 허용
  • 야간 야시장비, 스코프, 도트사이트, 광학장비, 고글, 방탄복, 피복, 보병장비, 개인장비, 장구류, 군장 등 개선
  • 저격수, 정찰 저격수 양성 (저격수 학교 창설)
  • 155mm 자주포 증강 (105mm 곡사포, 155mm 곡사포 전부 퇴역)
  • 방독면 등 화학 제독장비 최신 장비로 교체
  • 공병 장비 확충, 노후화된 공병 장비 교체
  • 트럭·지프 등 각종 차량의 80%가 수명연한(12년) 넘음, 최신 차량으로 교체
  • 전 부대 차량화, 기계화
  • 무인 항공기 증강
  • 레이다 시설 확충, 노후화된 레이다 교체

사업

율곡 사업

1970년대에는 M16A1 소총을 국내 라이선스 생산과 수류탄과 방독면의 국산화에 성공하였다. 또 1984년에는 현재 기계화 전력의 대부분을 이루고있는 K-200 장갑차를 차체생산하고 1987년에는 3세대 전차인 K1 전차를 도입하였다.

장비 개발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는 K2 전차(K2 흑표, Black Panther)를 개발했다.2014년 실전배치된다.K-21 전투장갑차는 2012년경 전력화하였고 복합형 소총인 K-11 소총을 운용하고 있다. 대형 공격헬기와 고정익 항공기를 증강중이다.들의 개인화기 및 개인장비도 개선시키는 중이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개인장비, 장구류, 군장이 늘어나고 저격소총, 옵션장비, 사격장, 1인당 교탄증가가 되었다. 소대장이 항공근접지원을 직접 유도할 수 있고 사들은 무인 정찰기를 수시로 띄울 수 있다.

조직

참모총장

대장 계급의 현직 군인중에서 국방부장관의 선임에 따라 임명되며, 현재 육군참모총장은 2015년 9월 취임한 장준규 대장이다.

편성

현재 육군본부 및 7개 기능 사령부와 3개 구성군(2개 야전군, 1개 야전군급 작전사령부)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주한 미군과의 군사 연계를 위한 한미연합사령부가 있으며, 전시에 대한국 제1,3야전군과 미국 제 8군지휘통제한다.

2015년 7월 6일 현재 육군본부,제1,3야전군사령부,제2작전사령부,수도방위사령부,특수전사령부,항공작전사령부,미사일사령부,군수사령부,교육사령부,인사사령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방개혁 기본계획 2014~2030에 근거 2030년 제1,3야전군사령부를 통합,지상작전사령부를 창설하여 산하에 5개 지역군단과 1개 기동군단을 지휘하게 될 예정이다.

논란과 비판

장비

교육 및 훈련

후반기

과거에 보병충청남도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6주 훈련을 받은 후, 논산시 금마면보병학교에서 3주간 보병 후반기 교육을 받았지만 현재 보병 후반기 교육은 폐지되었다.

부대별 운영비용

[8]

  • 평균 경상운영비(전력운영비로 개칭)에는 인건비, 급식 및 피복, 국방정보화, 장병보건복지향상, 군수지원 및 협력, 교육훈련, 군사시설운영, 예비전력관리, 기타 행정경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 육군과 해병대의 경상운영비에서 소속부대 인원으로 나누어보면 해병대의 장병 1명의 경상운영비가 더 높으나, 이러한 산출법으로 장병 1인의 경상운영비를 나타 낼 수는 없다. 다만 해병대원 1명의 양성비용이 육군대원 1명의 양성비용보다 더 많으며, 그에 따른 종합적인 교육훈련비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병과

전투

보병
기갑
1950년 10월 미국 육군에서 인수받은 M-36 잭슨 6대으로, 1950년 11월 10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90호에 따라 경상남도 동래에서 육군종합학교 교수부에 전차과를 신설하고 병과 교육을 시작하였다. 1951년 10월 5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143호에 따라 제51, 52전차중대를 모체로 병과가 창설되었다.[9] 현재 관련 병과학교는 1953년 5월 15일에 설립된 육군기계화학교.[10]
포병
1948년 10월 23일 창설.
방공
정보
공병
1948년 12월 15일 창설, 관련 병과학교는 공병학교로 1948년 11월 25일에 설립되었다.
정보통신
1946년 6월 15일 남조선 국방경비대 총사령부 예하에 통신과를 설치하였다. 설치한 날이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병과는 1948년 12월 15일에 국군조직법에 따라 제정되고, 2005년 1월 1일 정보통신병과로 개정되었다. 현재 정보통신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한다.[11]
항공

기술

화생방
  • 군수
    • 병기
    1946년 7월 1일 창설, 종합군수학교 예하 병기교육단에서 교육을 담당한다.
  • 병참
    1948년 12월 15일 창설, 1954년 7월 10일이 병참병과의 날로 제정되었다. 현재 종합군수학교 예하 병참교육단에서 담당한다.
  • 수송
    1951년 4월 16일 창설, 야전수송교육단과 종합군수학교 예하 수송교육단에서 교육을 담당한다.

행정

인사행정
1946년 7월 21일 창설. 1951년 7월 21일이 부관병과의 날로 제정되었다.
2014년 9월 13일. 부관병과가 인사행정병과로 변경되었다.
재정
1948년 12월 15일 창설,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한다.
2012년 2월. 육군중앙경리단국군재정관리단으로 통합되었다.
경리병과가 재정병과로 변경되었다.
헌병
정훈

특수

의무
1948년 12월 21일 창설.
수의
1949년 3월 7일 창설.
간호
1948년 5월 26일 창설.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한다.
법무
군종
1950년 12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 비서실 지시 제29호에 따라, 1951년 2월 7일 육본 일반명령 제31호에 의거하여 육군본부 인사국에 군승과(軍僧課)를 설치한 것을 계기로 창설되었다. 1951년 4월 14일, 육본 일반명령 제55호에 따라 군목, 1968년 8월 17일에 국방부 일반명령 제34호에 따라 군종으로 개칭되었다.[12]
군악

같이 보기

참고

  1. http://www.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 국방부 2012년판 국방백서
  2. 2.0 2.1 수도, 8, 11, 20, 26, 30
  3. 틀:뉴스 인용
  4. 틀:뉴스 인용
  5. 틀:뉴스 인용
  6. 틀:뉴스 인용
  7. 수도군단, 1군단, 2군단, 3군단, 5군단, 7군단
  8.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pn=1&num=65560 유용원의 군사세계 2012년 2월 1일 국방부 질의 자료
  9. 틀:웹 인용
  10. package.lua 80번째 줄에서 Lua 오류: module 'Module:Citation/CS1/Configuration' not found.
  11. 틀:웹 인용
  12. 틀:웹 인용

외부 링크

틀:위키공용분류

틀:대한국 국방부

대한국 국군
大韓國國軍
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에 헌신함은 군인의 본분이다
국가 대한국
소속
대한국 군무부
통수권자
유승민
군령권자
김승겸
상비군
613,000명
예비군
2,293,400명
병역제도
모병제
육군력
[ 펼치기 · 접기 ]
전차 총합
3,431대
견인포 총합
4,300문
박격포 총합
12,900문
자주포 총합
2,300문
야포 총합
6,700문
다연장 로켓 총합
500문
해군력
[ 펼치기 · 접기 ]
해군 함정 총합
250여척
전투함정 총합
134척
상륙함정 총합
30여척
지원함정 총합
20척
잠수함정 총합
27척
주력 수상함
20,000톤 이상 25,000톤 이하
순양함
2척
10,000톤 이상 15,000톤 이하
구축함
8척
3,000톤 이상 6,000톤 이하
구축함
16척
2,000톤 이상 3,000톤 이하
합동화력함
2척
2,000톤 이상 5,000톤 이하
호위함
26척
500톤 이상 700톤 이하
미사일 고속함
30척
200톤 이상 300톤 이하
고속정
50척
모함, 상륙함, 수송함, 상륙함
5만톤 이상
항공모함
2척
10,000톤 이상 20,000톤 이하
상륙함
4척
3,000톤 이상 8,000톤 이하
상륙함
18척
20,000톤 이상 25,000톤 이하
군수지원함
4척
8,000톤 이상 10,000톤 이하
군수지원함
6척
3,000톤 이상 5,000톤 이하
상륙수송함
8척
잠수함
3,000톤 이상 5,000톤 이하
재래식 잠수함
9척
1,100톤 이상 1,200톤 이하
재래식 잠수함
18척
공군력
[ 펼치기 · 접기 ]
5세대 전투기
80기
4.5세대 전투기
305기
4세대 전투기
104기
조기경보통제기
12기
공중급유기
8기
헬리콥터
800여대
해상초계기
20기
수송기
45기
예산
국방비 총합 592억 달러(2.9%)

틀:대한국의 장교과정 틀:대한국의 대체복무제도

대한국 육군
KOREA ARMY
국가 대한국 대한국
소속  대한국 국군
종류 육군
역할 대한국 내 지상작전 담당
규모 현역 214,200명
예비역 132,400명
명령 체계 육군본부
본부 충청도 계룡시 육군본부
별명 화랑(花郞)
표어 國家防衛中心軍
국가방위중심군
군가 육군가
참전 한일전쟁
한청전쟁
제2차한일전쟁
한중전쟁
제2차 세계대전
김일성의 난
월남전쟁
기념일 7월 27일 (대한국군 창설일)
지휘관
육군참모총장 김태중 대장
제1통위영사령관 김경수 대장
제2통위영사령관 이택준 대장
제3통위영사령관 이준기 대장
주요 지휘관 신규식 육군원수, 김좌진 육군원수, 지청천 육군원수, 이범석 육군원수, 김홍일 육군원수, 백선엽 육군원수

틀:대한국 육군 장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