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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연합제국
大韓聯合帝國
United Empires of Greater Korea
국기
국장
국가 정보
지도
국가 표어 광명연합
光明聯合
(영어: Let the United Empires be enlightened)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국가연합
수도 서울(한성에서 개칭)
공용어 한국어, 중국어(공용어)
역사 정보
개화 정책 개시 19세기 중순
대한제국 수립 1860년
한청전쟁 1895년
대한연합제국 수립 1897년
정치 정보
국왕 철종황제 -> 고종황제
그외 정보
어림 인구 약 19,000,000명 (1900년)

대한연합제국(大韓聯合帝國)은 1897년 수립된 군주정 국가이다.

역사

19세기 초 조선은 그동안의 신분 질서가 무너지고 자연재해 등으로 경제가 피폐해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곪머리를 앓던 조선의 엘리트 계층 중 일부가 서구 문물을 그 대안으로 제시, 헌종 임금에게 건의하면서 조선은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들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개화파라 부르며 헌종에게 서구 문물 수용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세도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침해하는 개화파들을 용납할 수 없었고, 이에 맞서 개화파들은 러시아와 일본을 통해 조달한 병기와 군량, 그리고 사병을 동원해 세도 정치가들을 몰아내고 헌종에게 실권을 돌려주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이 사건은 헌종의 실권 회복이 성공함으로써 훗날 효성유신孝成維新이라고 불리게 된다)

효성유신의 성공으로 실권은 헌종에게 돌아갔고 그는 개화파들을 요직에 앉혀 국가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각종 서구 문물이 조선으로 유입되었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 혼란도 있었으나 개화파의 학교 설립과 도로와 철도 등 공공 시설 건립, 농업과 중공업 장려 등 각종 개혁들을 단행하여 조선 사회는 이를 빠르게 극복하였다.

헌종 사후 개화파는 철종을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시켰고 그의 치세 말기인 1860년 개화파의 건의에 따라 대한제국이 수립되었다. 대한제국 수립으로 그때까지 명목상 외세인 청의 속국이었던 조선은 나라의 자주권과 독립권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대한제국은 그때까지도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일본을 개방시키고 근대조약을 맺어 우방국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행보에 청은 달갑지 않아했으며 대한제국 역시 약해진 청으로부터 만주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895년, 철종이 승하하고 고종황제가 즉위하자 개화파는 청과의 전쟁 준비에 착수한다. 때마침 청의 군사들이 대한제국 군함을 상해항으로부터 몰아낸 사건이 발생했고 대한제국은 이를 빌미삼아 일본과 동맹을 맺어 청과의 전쟁을 일으켰다. 한청전쟁의 발발로 대한제국은 그동안의 개혁 성과를 유감없이 투사하였으며 결국 청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대한제국에 남만주 일대를, 그리고 일본에게 대만을 할양하였다. 또한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였다.

1897년 고종황제는 획득한 만주 남부를 만주제국이라 명명하고 자신을 만주의 황제라고 선포한 뒤, 대한제국과 만주제국을 합쳐 나라 이름을 대한연합제국으로 고친다고 하였다. 아시아 최초의 이중제국이 수립된 것이다.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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