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6공은 20대 대통령 김승규의 취임 이후부터 눈에 띄게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내·외부적으로 수많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다. 대통령의 참모들과 국회의원은 최소한의 판단력도 갖추지 못한 채 정책을 시행했으며 권력은 그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결국, 제6공 최후의 5년은 무능한 정치인들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 지지하지 않는 국민 간의 정쟁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이어졌으며, 이 5년간 대한민국 정부는 사태를 개선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대외 요건도 좋지 않았는데, 5년 전 발생한 모종의 전염병으로 연월 감염자가 10만 명 이상 발생하고, 점차 경제적 생산력이 감소하였다. 전염병을 피해 한국으로 이주하려는 탈북민들의 빈번한 침입으로 안보 위협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였다. 대한민국이 아직 건재할 때도 북한의 탈북민이나 간첩이 군의 경계망을 뚫고 잠입해 들어오는 일이 일어났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선 더 많은 군대를 최전방에 배치해야 했지만 이미 저출산과 국민 갈등, 무능한 정치인, 모종의 전염병으로 몰락해 버린 한국은 그럴 돈도 인력도 부족했다. 결국은 예비군, 공익 요원, 남성 대부분과 여성 등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징집해 병력으로 사용하는 가장 쉬운 길은 택했다.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로마제국, 후한과 마찬가지로 결국 대한민국 역시 이 군인 출신 장교들의 쿠데타로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된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2029년 2월, 강제 징집된 군인 출신의 장교였던 홍준일이 반란에 가담한 장교들과 군인을 이끌고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홍준일은 뛰어난 조직력과 상상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의지할 곳이 없었던 국민에게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울 방법을 설파하며 사로잡았다. 동년 5월이 되자 전국에서 군경과 쿠데타군의 충돌이 본격화되었다. 12월에는 진압을 명받은 모든 병사가 쿠데타 편에 가담하여 대한민국 제6공화국은 결국 무너졌다.

홍준일의 쿠데타 성공 이후 대부분의 군대는 홍준일 정권의 휘하에 들어갔지만, 쿠데타 시점에서 홍준일이 이끄는 계엄군은 한국의 중심 도시들만 장악했을 뿐이었고, 지방엔 아직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하는 군벌과 홍준일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들이 상당했다. 따라서 홍준일 정권이 대한민국 전역을 통제하려고 하자, 반 쿠데타 진영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내전이 발발한다.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하는 군벌은 대한민국 제7공화국을, 반 홍준일 세력은 대구 공화국을 수립하고, 기타 군벌과 국민도 내가 최고가 되겠다며 들고 일어나는 등 각 세력은 군웅할거에 들어갔다. 여기에 좌우갈등, 세대갈등, 남녀갈등 등의 봉기 세력까지 겹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직이 홍준일에 대항했다. 또 미국, 일본을 위시한 UN군이 홍준일을 계속 지원했다. 게다가 중국 역시 내전을 전후하여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중국의 꼭두각시 정권을 세울 목적으로 반 홍준일 세력을 지원하면서 내전은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홍준일 세력과 반 홍준일 세력은 수도권에서 8년간 교전했고, 곧 다른 세력들로 내전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내전의 확산은 대한민국 제6공화국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이 권력의 공백을 지역 세력들이 메웠다. 그리고 각지에서 격화된 세력들의 분쟁은 결국 대한 전국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은 사실상 행정력이 청와대 근처에만 미칠 정도로 초라한 세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