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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동백 유니버스 내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들.

<오늘을 살다>(2000~2045)

한국항공 HAL 416 추락

모티브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2014년 4월 15일, 인천발 하노이행 한국항공 HAL 416편이 진도 앞바다에 추락한 사건이다. 기장 이준식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으며, 그 중 대부분은 수학여행 중이던 상록고 학생들이었다.

피의 추수감사절

모티브는 이태원 참사. 2023년 11월 24일 인사동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이다.

삼국연합전쟁

제2차 한국전쟁

모티브는 차코 전쟁.

삼국연합전쟁으로 약해진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북한이 일으킨 전쟁. 이재영 대통령의 후임 이나연 대통령은 여기서 승리하여 남북통일을 이루어내게 된다. 단, 그대로 남북을 합치기에는 경제력 차이 등 여러 문제가 있었기에 구 북한 지역에 '신 조선인민공화국(신 인공)'을 설치하게 되고, 남한(대한민국)과 함께 대한민주국의 구성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방국봉의 난

오늘 내각에서 교육부장관이 되는 방국봉이 일으킨 내란음모 사건. 모티브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 <피리 부는 사나이>+대보살고개 사건[1]+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2]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저명한 인물인 방국봉은 그 대의에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이 반란을 계획했다. 이 반란은 기존의 사회 및 교육 시스템 내에서 아동의 권리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으로 인식된 것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방씨는 아이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열정에 이끌려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며 이 봉기를 계획하고 이끌었다.

때는 2038년 5월. 먼저 중국에 사는 그의 사촌 방연지를 통해 AK 소총 수십 정을 밀수해 어린이의 체형에 맞게 개조하였다. 다음으로 자신의 뜻을 따르는 아이들을 모아 무등산 자락의 한 산장을 거점으로 군사 훈련을 시켰다. 이들의 행동강령은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선생을 만나면 선생을 죽여라'였는데, 과격하지만 나름대로 그들의 목적과 이상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최종 목표는 어른이 차지한 정부를 뒤집고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보는 허술했는데, 잠복이라고는 해도 산장 자체가 그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반인도 머무르는 상태였고, 이미 '5월 무장투쟁'을 공언하는 등의 정보가 새어나가는 바람에 아침일보, 중심일보 등은 기자들을 산장에 숙박시켜 특종을 노리고 있었다.

방국봉이 체포된 계기도 그다웠는데, 봉기 전날인 4월 30일, 자신도 어른이라며 아이들에게 자신을 쏘라고 했고, 아이들이 주저하는 동안 아이들의 부모가 부른 경찰이 들이닥쳐 체포된 것이었다. 체포된 멤버 대부분은 방국봉의 감언이설로 아무것도 모르고 동원된 유치원생 및 초등학생들이었다. ​ 방국봉이 내란음모죄로 재판을 받을 때, 그는 첫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린이는 지금 놀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지금 건강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반동분자는 발견하는 즉시 대로 총살입니다! 법정은 여러분이 싸워야 할 전쟁터에 있는 것입니다! 도처에 어린이의 손으로 법정을 만드십시오! 총을 드십시오! 총이 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한편, 나중에 법무부장관이 되는 오영오는 다음과 같이 방국봉을 변호했다고 한다.

"전두봉처럼 총으로 내란을 일으킨 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은 적은 없습니다[3]. 하지만 입으로 내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내란음모죄'로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대부분 조작된 증거에 의한 것이었죠. 한국의 법리에선 내란보다 내란음모죄가 훨씬 무겁습니다. 총보다 입이 위험하고, 행위보다 생각이 위험하고, 현실보다 가정(假定)이 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죠. 내란으로 흥한 자들이 터를 닦은 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국가에서 내란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럿이 모여서 그런 국가를 비판하면 '내란음모죄'로 무거운 처벌을 받을 뿐이죠.[4]"

오영오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방국봉은 내란음모죄로 징역 6년의 형을 받았는데, 오늘은 방국봉의 대의명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녀는 그의 옹호의 가치와 그것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이해했다. 그녀의 노력을 통해, 오늘은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조명하고 방씨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에 힘입어 방국봉은 이듬해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오늘의 구명운동은 방씨의 대의에 대한 인식과 지지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방국봉의 난'은 아동권리 쟁탈전의 전환점이 되었고, 그는 오늘 내각에서 오영오의 추천에 힘입어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임명은 그에게 교육 정책의 긍정적인 변화를 제정하고 전국적으로 아이들의 복지를 증진할 수 있는 발판과 권한을 제공했다.

학교 제도 철폐 반대 시위

오늘이 주도한 학교 철폐에 반대하여 일어난 반정부 시위.

오늘은 학력폐지법안 제출 후 시범적으로 수도서울대학 폐교를 결정하였는데, 수도서울대학 학생과 동문은 물론, 다음 목표는 자기들이 되리라 생각한 고구려대학교 및 연수대학교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수도서울대학의 상징 '쌰'자 교문이 배틀수트로 철거되던 날, 이들은 3D 프린터를 이용한 사제총기와 화공과에서 만든 사제폭탄으로 무장하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K3 소총, K16 기관총, K4 유탄발사기까지 동원해 어떻게든 진압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경찰 8명이 순직하였고, 이후 사망자가 2명 늘어 순직 경관은 10명이 되었다. 경찰청과 국정원의 조사에 의하면, 이 시위는 나라사랑당 간부들이 일본의 인터넷 암호지령에 따라 사전에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여 젊은 우경 청년대학생들을 대거 동원하여 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휴전 중이라 자기네들은 직접 나설 수가 없기에 그들의 손을 빌린 것이다.

그리고 학력폐지법 표결을 앞두고 한 교원이 오늘 앞으로 투서를 보냈고, 오늘은 이 투서를 선전포고로 간주하여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녀의 대국민담화에 대다수의 시민들은 공감을 표하며 더 이상 폭력시위로 인하여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는 데 동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학력폐지법이 국회의 표결을 앞둔 날, 국회 앞에서는 다시 교직원단체와 소위 명문대 동문회에서 주도하는 대규모 반정부집회가 있었다. 국회 앞에서 있었던 이날 집회의 주제는 '학교 제도 철폐 반대' 및 '교직원 생계보장', 그리고 '오늘 정권 퇴진'이었다. 이에 국회가 위치한 영등포구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시위대에 맞서는 군 병력은 'KBS-01 화랑' 배틀수트가 30대, 'K3A1 금랑' 전차가 16대였다. 국방부에서는 미리 사전에 안내방송을 통하여 평화적인 시위만을 보장할 뿐, 국회 100 미터 이내에 진입하는 시위자에게는 가차 없는 사격과 발포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위대는 무장을 하고 국회로 돌진하였으나, 전차와 배틀수트의 활약으로 진압되었다.

한편, 군대가 시위대를 막는 사이 오늘을 노리고 무인기 한 대가 대통령실을 향해 날아갔는데 수도호위사단과 경호실의 활약으로 무인기는 격추되었고,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무인기는 일본 시마즈 중공업에서 만든 자폭용 무인기로 주로 대전차 공격에 쓰인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날 저녁 뉴스에서는 시위대가 전차를 전복시키고 불을 지르는 장면, 시위대원 두 명이 군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 배틀수트가 시위대를 짓밟는 장면이 보도되었으며 수도서울대학에서 있었던 장면도 재방송되었다. 이어서 이번 강경진압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여론조사기관의 데이터를 근거로 발표되었는데, 이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여론조사 풀'에서 전국의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실시한 전화응답에서 '군대의 진압이 과격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13%인 반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무려 78%, 나머지 5%의 국민은 '모름 또는 무응답으로 조사됐다는 것이었다. 이날 시위에서 무인기로 오늘을 암살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일본의 지령을 받고 암약 중인 나라사랑당 당원이며, 이들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일본령 부산을 왕래하며 거액으로 매수된 신친일파임이 밝혀졌다는 수사결과 발표도 있었다.

이후에도 저항이 아예 끝난 것은 아니어서, 일부 강경파들이 연수대학교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기는 했지만 전차와 배틀수트, 헬기를 동원한 입체작전으로 수뇌부는 몰살, 추종자들도 절반은 죽고, 그 절반은 빈사상태, 나머지는 체포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3송이의 무궁화: 리덕스>

피의 광복절

2045년 8월, 제2차 한일전쟁의 원인이 된 사건. 휴전 종료를 앞두고 오다 요시히토는 느닷없이 한국에 평화회담을 제의했다. 평화회담을 위해 한국의 외교부장관 민경모가 일본령 부산으로 향했고, 일본의 외무상 구로다 요코[黑田陽子] 및 여러 수행원들이 그를 맞이하러 누리마루에 나와 있었는데, 느닷없이 일어난 폭발 사고로 이들은 전원 사망했다. 테러리스트들이 한국어를 사용했고, 거기다 사살당한 테러리스트들 중 하나는 재일교포로 알려지기도 해서 오다는 이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는데, 실은 이것도 오다의 작전이었다. 오다는 사형수를 동원해 일본어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대신 한국어만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마치 테러리스트가 한국인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또한 구로다 외무장관은 오다의 강경주의에 반대하는 온건파였고, 이에 테러를 일으켜 그녀를 제거한 것이었다. 평화회담이 100년만에 돌아온 광복절인 2045년 8월 15일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날을 "피의 광복절"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한국과 일본의 서로에 대한 증오는 날이 갈수록 커져갔고, 자기 나라에 있는 상대 국민에 대한 보복도 일어났다.

태안 반란

진 코퍼레이션은 화교 출신의 진백권 회장이 설립한 기업으로서, 경공업부터 중공업까지 다방면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내놓는 제품마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문제는 몇년 전, 신형 배틀수트 사업에서 시작되었다. 진 회장은 야심차게 'BTX-002 해치'를 내놓았는데, 파일럿의 사고를 직접 기체에 전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시스템을 탑재한 치우에게 전차에 다리를 달아놓은 것 같은 투박한 디자인의 해치가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차기 배틀수트는 현재중공업의 해치로 결정되었고, 실의에 빠진 진 회장은 시름시름 앓다가 전쟁이 시작될 즈음 세상을 떠났다. 진 회장 사후 회사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는데, 원래대로라면 진 회장의 아내와 딸인 진아영이 회사를 상속받게 되어 있었으나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동생 진숙권이 회장 자리를 노리면서 일이 터지게 된 것이다.

사실 진 전무는 우수하고 인덕이 있는 진 회장과 비교되며 항상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진 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회사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반란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 전무는 해치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각국에 해치를 수출하려고 했고, 그 대상국 중에는 일본도 있었다. 이때 진 전무를 눈여겨본, 친일 성향의 23대 대통령 이준식이 그를 돕기로 하면서 일은 더 커졌다. 이준식은 오다와 비밀리에 접촉해 총독이 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전국의 범죄자들이 해방구를 찾아 몰려들면서 반란군의 세력은 더 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국가정보원에서 요원을 침투시켜 놓았고, 이를 통해 방위군이 진압에 성공하면서 태안 반란은 진압되었다. 한편 이준식과 진숙권은 방위군에게 패배해 도주하다 두 사람을 포기한 오다에 의해 폭사했다.

  1. 1969년 11월 5일 일본 공산주의자 동맹 적군파 53명이 흉기준비집합죄로 체포되어 이 조직의 약체화로 연결된 사건
  2. 단 작가는 이석기를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다.
  3. 박정희는 내란을 일으켰지만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았다. 반면에 전두환과 노태우는 반란죄, 내란죄, 수뢰죄로 구속 기소되어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받았다. 그러나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은 이들에게 특별 사면을 내림으로써 내란죄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내란죄 처벌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일이었다. (어용사전, '내란음모죄' 주석)
  4. 박남일, 어용사전. '내란음모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