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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서도 샤오랑샤오랑 청년이 제일이여! 허허.”
건장한 체격의 한 청년이 크지 않은 규모의 마을의 중추를 담당하는 노인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칭찬 공세를 받고 있다. 그야 당연하다. 청년은 어제 한 노인의 무너진 집 지붕을 수리해 주었으며, 그제는 마을에 출몰해 행패를 부리던 멧돼지를 잡았고, 사흘 전에는 실종되었던 아이를 찾아 주었다. 방금 그 말을 듣기 직전까지도 마을에 목재 장작을 공수해 주는 길이었다. 이 마을에 청년 말고 젊은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청년은 마을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은 확실하다. 숫기가 없는 청년은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도리어 적절한 웃음과 교류로 마을 사람들과 적잖은 친분을 쌓았다.
청년의 이름은 리샤오랑리샤오랑. 청년은 마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인물 중 한 명이지만, 놀랍게도 청년은 마을에 살고 있지 않는다. 청년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인적 드문 산의 숲속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는데, 그 가족은 청년의 아버지, 어머니와 청년의 나이 어린 동생들. 조상님의 묘를 지키기 위해 소수의 가족 구성원으로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청년의 집과 가족은 ‘이런 곳에 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지만, 청년과 청년의 가족은 마을 사람들과 허울 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마치 한 마을 구성원인 것처럼 지내고 있다.
청년의 아버지는 쇄했다. 아직 나이가 3535세이니 노화로 노쇄했을 리는 없고, 본인의 주장으로는 불치의 어떤 병에 걸렸다고. 청년과 청년의 가족이 극진히 간병하고 있으나 불치임은 사실인지 병세가 호전되지 않고 나날이 악화되어 갈 뿐이다. 이제쯤 집안의 가장이 된 청년이 단순히 정이나 연 때문에 마을의 일들을 해결해 주고 있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
그날은 유독 불행이 겹치는 날이었다. 거센 바람 탓에 나무가 송두리째 뽑혀 날아갈 정도였으며, 그를 동행하듯 하늘은 시커먼 구름이 내리앉아 빗줄기를 쏟아내릴 채비를 했다. 분명 마을에도 적잖은 소란이 발생했을 터였으나 청년에겐 우선 제 집의 안위를 살피기도 바빠 마을로 내려갈 겨를조차 없었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그 전조를 알아챘던 청년이었기에 미리 대비를 해둔 덕에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한 차례 소재앙이 다녀간 후의 꼴은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웠다.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은 제 모습을 잃은 채 온갖 곳에 줄기와 뿌리와 잎을 흐트려 길목을 틀어막았고, 땅과 흙이 범람했다가 꺼지길 반복하여 산 능선이 아예 뒤바뀐 것 같을 정도였다.
우선 그 모든 흉으로부터 모진 매를 맞은 제 집과 가족의 안위를 살폈다가, 청년은 뒤바뀐 산길과 흐트러진 나무 잔해를 해치며 마을로 내려갔다. 예상대로 마을은 적잖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청년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은 그대로였지만, 실상은 그 예상보다 훨씬 거대했기 때문. 마을은 단순히 소재앙이 지났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거의 궤멸 직전 상태에 놓였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 많던 마을 사람들 중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으며, 이곳에 건물이 있었으리라곤 짐작도 들지 않을 정도로 자재와 먼지가 난잡히 뒤섞여 있었다.
청년이 이 참경을 목도하고 처음으로 느낀 것은 끝없는 절망과 공허. 뒤늦게 몰려오는 의문. 몸 쓰는 일만 하던 청년일지라도 단순히 거대한 자연이 휩쓸고 갔다고 하여 이 정도 참상이 일어날 수 없으리란 것쯤은 알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마을에 멸망이 내린 것일까. 청년은 한순간 잃었던 이성을 되찾고 폐허가 된 마을을 헤집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거의 반나절을 쉬지 않고 헤진 덕에 청년은 거대한 건축 자재를 수십 개쯤 들어올렸을 때 겨우 미약하게나마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고 가며 청년과 실없는 농담을 자주 주고받았던 삼촌뻘 되는 사람이었다. 머리 절반이 짓눌리고 팔과 다리는 한 짝씩 뜯겨져 나갔으며 그 모든 꼴이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분명 가만 바라보기엔 견디기 힘든 꼴이었지만 근 반나절을 같은 행동을 반복해 오며 수많은 자신의 아는 사람들 또한 이렇게 됐음을 보았을 청년이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급했다. 아니, 오히려 격분했다. 아니, 오히려 이성이 없었다. 언제부터.
청년이 무너질 듯한 표정으로 다급한 몸짓을 하며 대답을 부추겼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대체 무엇이 왔다 간 것이냐고. 죽어가던 사내는 숨을 내쉬기도 버거웠고, 마지막 숨을 내쉬기 전 단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을 뿐이다. “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이성을 놓쳤던 청년이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더욱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귀”, 하지만 대뜸 “귀”가 무엇이련가? 그 순간 청년의 뇌리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운명의 점지처럼 그것은 생생하게 지금의 길을 밝혀 주는 듯했다. 잔뜩 쇄했던 청년의 아버지가 종일 앓아 누우면서도 늘 입밖으로 내던 말.
“마귀가 올 거란다.”
청년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그 길로 곧장 집을 향했다. 냅다 뛰었다. 땅도 하늘도 겨눠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뛰었다. 넘어져 무릎팍이 까지고, 그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반사적으로 내딛은 손바닥이 까졌다. 이따금 바위나 나무 줄기에 잘못 처맞아 몸 곳곳에 작지 않은 부상이 남기도 했다. 그곳에서 흐른 피가 땅을 적셔 청년이 지난 길을 알 수 있게 해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것은 청년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청년은 내달렸고, 결국 집에 다다랐다. 마귀가 올 거라던, 늘 그 너머를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청년의 아버지 되는 사내는 전에 없을 정도로 쇄했다. 마치 마을이었던 곳에서 마주한 사람처럼,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청년은 물어야 했다. 아버지, 당신이 말씀하신 마귀란 무엇입니까, 마을은 마귀라는 것의 소행입니까, 요 며칠의 자연재해 또한 마귀의 소행입니까, 어째서 사람들이 이리 죽어야 했습니까, 당신은 어찌 알고 계셨습니까, 당신의 쇄함, 당신의 비밀, 정체, 그 모든 것. 머릿속을 정리하기만도 바쁜 청년을 앞서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듣거라, 샤오랑샤오랑.”
사내는 말을 이었다. 숨이 오가는 것조차 버거운 몸으로 말은 어찌 그리 술술 내뱉는지 신묘할 따름이었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청년에겐 관여되지 않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마귀가 있단다. 그들은 매우 흉포하지만, 그들과 맞서 싸우는 이들 또한 존재하지. 그들을 퇴마사라고 한단다.”
청년은 경청했다.
“나 또한 퇴마사였단다.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귀들과 싸워 온 거야.”
청년은 경청했다. 사내는 자신이 이리도 쇄한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이 나이에 이토록 쇄한 것은, 마귀들의 마기가 이곳까지 범람하지 못하도록 나의 신기로 그것을 억눌렀기 때문이란다. 그것이 누적되니 응당한 결과지.”
청년은 의아했다. 사내는 여전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겐 시간도 기력도 남지 않았구나. 나의 천명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네게 이 엄중한 천명을 넘겨 주어 내 마음이 무겁지만, 너라면 나보다 잘 해내리라 믿는다.”
청년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사내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청년이 머릿속을 겨우 정리하여 그 모든 것을 입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사내는 여전히 청년을 앞서 마지막 말을 이었다.
샤오랑샤오랑, 모든 것을 잊고 홀로 남더라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기억하거라. 혼란스러울 네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너를 바로잡아 줄 것이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부디 너 자신을 잃지 말거라. 너는… 샤오랑이다.
…….
삶과 죽음이 그리도 면벽하다면 어째서 생물은 모두 쥐고 살아가는가.
그것은 생물의 책무이자 윤회를 거듭하는 속죄이다.
그러나 잊지 마라.
생물은 그 자체로 고귀함을.
너는 살아 있음으로써 충분히 고귀하다.
사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숨이 끊겼다. 청년은 혼란스러웠고, 혼란스러움에 잠시 슬픔을 잊었다.
청년은 사내의 말이 무엇이었는지, 영겁의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청년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는 초라했다. 청년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곤 마을 사람들과 청년의 가족들뿐이었으나 마을이 괴멸하듯 사라졌기 때문에 그마저도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들의 장례까지 함께 치러야 할 지경이었다. 빈자리만 가득했으나 당초에 자리라곤 채울 수도 없이 협소한 가정이었기에 모순일지도 모른다. 협소하나 허무한 공간에 적막만이 흐르니 공기는 더욱 무거웠고, 그에 무게를 더욱 싣듯 이어 쏟아지는 굵지 않은 빗줄기가 무심하게 하늘 밑을 적셨다.
청년의 가정에 아버지는 이제 없다. 아버지가 일찍이 쇄하고 청년이 나이듦에 따라 가장은 청년이었으나, 한 가정의 최고 연장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존재가 무너지니 가정이 휘청하는 것은 예사였다. 뿐만 아니라 청년의 가정과 중추를 맺었던 마을이 괴멸한 것도 큰 계기가 되었으리라. 청년과 청년의 어머니, 그리고 청년의 어린 동생들 몇 명만이 남은 가정은 더 이상 가정의 기능을 할 수 없다. 가정의 밥벌이였던 마을에서의 일도 마을이 괴멸하며 사라졌고, 가정의 의지였던 아버지도 죽었다. 청년은 아직도 슬픔과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헤매고 있다.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 있다. 총체적 난국.
한마디만 더 붙이자면, 설상가상.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한 이 가정에 더 한 추락이 어디 있겠냐 싶지만, 안타깝게도 정말로 존재했다. 청년은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무너진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일거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야만 했다. 여전히 아버지가 남겼던 마지막 말들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으로만 남았지만, 지금은 남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급선이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청년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보이게 된 것. 그리고,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느껴지게 된 것.
그것은 분명 짐승은 아니었다. 눈코입에 팔다리까지 제대로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도 아니었다. 생긴 것이 사람이라고 말해 주지만, 저 먼 데서부터 직관적으로 알려 주는 직감이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 주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전에 없이 느껴지는 이것은 또 무엇인가. 몸이 가볍고, 힘이 넘치는 듯한 감각. 이전에도 사람치곤 힘깨나 쓴다고 알려져 있던 청년이었지만, 그 감각은 당초에 인외였다. 사람… 아니, 생물이란 것의 범주와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감각.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이다. 이 또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이 모순적인 감각을 처음 목도한 청년은 의문을 가졌다. 마치 아버지에게서 마귀의 존재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았다.
……?
그래, 마귀. 분명 아버지는 그때 마귀와 퇴마사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셨다. 청년은 곧 의문이 풀린 듯한 태도로 자신이 겪기 시작한 것을 정리하듯 나열해 보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았던 짐승도 사람도 아닌 것은 마귀이며, 자신이 느끼고 있는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감각은 퇴마사의 것이라고. 마귀를 벌하는 힘, 전능한 ()의 힘. 청년은 이 힘을 신기(神氣)라 부르기로 하였다. 내가 퇴마사가 되면 가정을 다시 부양할 수 있을까. 퇴마 활동이 밥벌이가 되는가. 퇴마사가 되면… 아버지처럼 단명하는가. 청년의 머릿속을 지나는 수많은 의구는 단 한 가지의 결단으로 점철되었다.
아, 퇴마사가 되어야겠다.
그저 그것뿐이다. 계기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청년 본인조차도. 그러나 자신이 품고 있는 신기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본능적인 무언가를 점지받았기 때문이다. 퇴마사는 분명 밥벌이도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퇴마사였던 아버지가 가정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퇴마로만 살아가는 퇴마사들이 삶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뛰어넘은 신체이므로 가정을 부양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귀는 전국 어디에나 득실거리므로 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퇴마를 이어나가면 된다. 하나같이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도 청년이 품은 신기가 확신을 주었다.
본격적으로 퇴마사를 자처하며 신기를 다루게 된 청년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아직 용급의 마귀는 퇴치가 불가하더라도 어렵게나마 봉인할 수 있으며, 견급과 호급 정도는 무리 없이 퇴치할 수 있게 되었다. 낯설기만 했던 신기도 점차 손에 익어 이젠 신체의 일부처럼 다룬다. 생각 외로 퇴마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좋지 못했지만, 월등해진 신체로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일거리를 구하며 가정을 다시 부양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아버지가 죽은 슬픔과 마을이 괴멸한 절망은 아직도 떠올리자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과거를 통해 성장하듯 청년은 딛고 나아가기로 했다.
단지 좋은 결말로만 끝날 이야기였다면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비극은 이미 시작되었고, 잠시 상승하다 다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본인도 모르게 꾸준히 추락 중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느 때와 같이 퇴마 활동을 이어가던 청년을 급작스레 거대한 무언가가 짓눌렀다. 그것은 청년이 숨도 쉬지 못하게 할 정도로 묵직했으며, 감히 무엇인가 확인할 염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청년이 처음 신기와 함께 고양감을 느꼈을 때처럼, 이번엔 그와 정반대로 압도적인 부정을 느꼈다. 공포, 절망, 부정, 좌절, 질투, 시기, 혐오, 증오, 분노, 복수. 마치 세상의 모든 부정을 때려박은 듯한 이 감각은… 마귀가 다룬다는 힘. 퇴마사가 신기를 다룬다면 마귀는 이것을 다룬다는, 마기(魔氣).
낯설 것도 아니었다. 마기란 모든 마귀가 가지고 있는 힘이며 지금껏 마귀를 상대해 오며 수없이 목도하고 싸워 온 힘이니까. 하지만 맹점은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기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기의 힘이 위험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 이것은 생전 가늠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가늠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등급에 어느 존재의 이름을 담은 다른 마귀들과 달리, 등급의 이름 자체가 어느 개념 그 자체인 존재들.
멸급滅級.
멸급의 수는 셀 수 없는 마귀 중에도 단 다섯뿐이다. 그런 멸급이 왜 이런 별 볼 일 없는 곳까지 온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근처에 인간이라곤 청년과 가족들뿐이었으며, 마귀는 인간을 취한다는 것. 청년은 감히 일어서 있기도 숨을 겨우 내쉬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짓눌렸지만, 그럼에도 움직였다. 집에 남은 가족들이 위험하다. 이길 수 없음을 안다. 이기기는커녕 싸움의 성립도 불가하고, 애초에 싸움이 아니라 사냥이라 부름이 마땅함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였다. 그래야만 하니까.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의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청년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꾸역꾸역 도착한 집에는 적나라한 혈웅덩이가 온 집을 적실 만큼 흩날려 뿌려졌으며, 그 중심에는 원형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헤진 시체 몇 구가 있었다. 굳이 그 시체의 신원이 누구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오히려 얼굴만은 똑똑히 보였기에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 앞을 고고히 서 있는 붉은 눈의 사내는 그후에야 눈에 들어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근방을 짓누르고 있는 마기가 저 사내에게로 점철되어 갔다. 청년은 퇴마사였기 때문에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붉은 눈의 사내가 청년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청년은 남은 가족마저 잃었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절망감을 표출할 수도 없이 사내의 마기에 짓눌린 채였다. 사내는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그랬다. 사내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가만히 서서 자연히 뿜어지는 마기가, 청년과 이 일대를 짓누른 것이다. 청년은 이를 직접 마주하고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아, 멸급.
붉은 눈의 사내가 청년에게로 다가왔다.
네놈에능성이 보는군.
날 증하나? 그래, 증오겠지.
몇 마디 말을 건네지만, 마기로부터 버티기만도 버거운 청년은 사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더욱 오해라. 나 찢어발기 싶어질 큼.
사내의 손에서부터 거대한 검이 생겨난다. 사내는 청년에게 검을 겨눈다. 검을 다루는 검사로서 가히 완벽에 가까운 자세였다.
그리고…
사내가 마지막 말을 잇는다. 어쩐지 그 말만은 수백 년이 지나서도 똑똑히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강해져라.
끝없이 갈망하여 강해져라.
내가 만족하고,
네놈이 만족할 때까지 강해져라.
머지 않아 네놈이 볼 만해질 수준까지 성장하길 고대하겠다.
──天羅水成.
…….붉은 눈의 사내가 팔을 움직여 쥔 검을 휘두른다.
고기가 무참히 썰리는 적나라한 소리가 퍼진다.
곧이어 혈이 난잡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퍼진다.샤오랑은, 죽었다.
샤오랑은, 마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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