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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보름달 (1877)

환의 어릴 적 추억은 그의 아버지 영이 없이, 어머니 조씨와 유모, 그리고 조부 공의 그것만 남아있다. 이환의 아버지 영은 환이 세 살이 되었을 무렵에 짧은 생을 마감하여 저 자신이 아들이 장성해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영의 아비 공까지 수심에 잠겨 활력을 잃게 하였다. 유년기에도, 그리고 한참 후에도 환은 조부 공이 그러하였듯 항상 아버지 영을 그리워하였다. 조부 공은 환을 아끼었다. 공 또한 제 명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남겨질 작은아이에게 추억이라도 남겨주자 하였다. 유년기의 환은 근심없이, 그저 아이가 되어 웃고 울었다. 용상에 오를 지존이 아닌, 한 아이로 유년지를 지샜던 것이다.

하지만 환에게는 그 유년기조차 빠르게 끝나게 되었다. 공이 죽어, 환이 무슨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찬 옥좌의 주인이 되었던 것이었다. 용상에 앉아 나라를 굽어살필 수 있었지만, 환은 어렸고, 주위에는 외척이라고 쓰고 도적떼라고 읽는 이들만 널려있었다. 도적떼들은 환이 조부 공에게서, 그리고 더욱 더 상대로 올라가 태조에게서 물려받은 나라를 마음대로 휘저었다. 환의 신민들은 고통받았고, 신음하였으며, 배곯고 굶주렸다. 무언가를 바꾸어보려던 이들은 전부 도적의 날에 요참 된지 오래였고, 의로운 선비들은 이 땅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환도 장성해가면서 자신의 신민이 요순의 치세가 아닌 걸주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환에게는 이것이 가장 슬펐다. 자신은 이 나라의 큰 아버지인데, 아들 딸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단 것이 말이다. 아버지 영이 하였던 것처럼 무언가를 해보려 하였으나, 시시건건 도적떼의 감언과 참언은 그를 멈춰세웠다. 그는 술을 마시고, 궁녀를 취하였다. 환의 어머니 조씨가 눈물로 환을 꾸짖어보고, 훈계하고, 빌어보았지만 환은 그리하지 않았다. 어짜피 무언가를 할 수도 없었으니, 이리 몸이라도 달래야하지 않아야겠는가. 도적떼들은 환의 모습에 마음을 놓고, 제들의 산채로 돌아가 연회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환의 병세를 지래짐작하고, 그리하였다.

그러나, 환은 끝내지 않았다. 영의 총기를 물려받아 영민한 환은 도적떼들을 올가미에 묶어 잡는 것을 짜고 있었고, 제 힘을 키웠다. 외숙이 제게 찾아왔을 때, 환은 자신이 건재함을 도적들에게 알렸다. 불비불명. 환은 몸을 풀고, 다리를 움직여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도적떼들은, 저들의 목에 칼이 들어올까 끝내 일을 저질렀다. 환의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하나 둘, 도적들에게 지존이 누구인지 피로써 알려주었다. 환은 불비의 작새가 아닌, 등상의 소룡이었다.

모든 것을 하나 둘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옛 옳은 풍습을 되돌려 도적떼가 찾아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쌓았다. 신민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썩어 문드러진 나라의 중주를 새로 끼우기 시작하였다. 환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였다. 저 자신의 생을 태워 이 나라에게, 그리고 자손 만대에게 번영을 물려줄 수 있다면 어찌 그리하지 않겠는가. 끊임없이 고통을 감수하면서 앞으로 달렸다. 돌이 굴러와도, 바람이 불어도, 그리고 때론 가시밭길을 지나가면서도 환은 웃었다. 적어도 자신의 선택으로 길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은 멀리서 이방인이 왔어도, 북적이 다시 본성을 드러냈을 때도, 천명을 이어받았을 때도, 웃었다. 다리는 꼿꼿하게 펴 있었다.

침상에 누워 환은 조용히 제 어린시절을 가만히 앉아 떠올려보면, 그다지 좋지 못한 기억만 남아있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더 나아가서 성년이 된 후 몇 년까지도, 어쩌면 생애 전부가 그다지 좋지 못한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환에게는 걱정도, 후회도 한 톨 없었다. 제가 이루고 싶던 것, 하고 싶던 것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니, 어찌 흉금에 잔재가 남아있겠는가. 환은 웃으면서 제 앞에서 울고 있는 아들같은 동생, 천에게 말하였다.

'바른 것을 다시 세우고,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근심이 무슨 연유로 남아있겠는가. 천명을 다시 받아 비로소 하늘로 올라가니 상제께 청하여 한을 수호해주리라 하겠다. 슬피 마라, 전부 내 명이다.'

그리고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눈꺼풀의 무게가 환을 짓눌렀다. 환은 눈을 감았다. 두 번 다시 앞을 볼 수 없을 것이겠지만, 입꼬리는 올라갔다. 환은 웃었다.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다.

을해년 제83회 중추원 회의 - 군 예산안 (1936)

"다들 그 입 다무시오! 지금 경친왕 전하의 어전에서 무슨 망발들이오? 누가 보면 당신네들이 패싸움이나 벌이는 시정잡배 천것들인 줄 알겠소! 그대들에게는 이 대한의 의원이라는 자각도 없소? 부끄러운줄 아시오!" "저저저! 그 무슨 궤변이란 말이오! 청빈의 가치를 잊은 그대들 대한당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소!"

시정잡배들이 싸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이곳. 금빛으로 빛나는 이화문이 벽에 걸려있고, 그 아래에 세 자의 한자가 멋들어지게 써 있는 곳, 중추원.

여러 당파의 의원들이 모여 국정을 의논하는 그 곳에서, 의원들은 입씨름에서 주먹다짐으로, 종국에는 마치 시골의 무지렁이 석전패 마냥 명패며 잡기며 하는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토론"을 하고 있었다

"후...조용히들 하시오."

그 한심한 작태를 보다 못한 경친왕이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하자. 패싸움을 벌이던 의원 무리는 그제야 경친왕의 어전임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좌중이 완전히 진정되었음을 확신한 경친왕은 참고인 석에 앉아있는 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강 대장, 이어서 말해도 좋소."

이강은 경친왕의 허가가 떨어지자,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읍하곤 주위를 슥 둘러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다시금 말씀드리옵지만, 아국의 군은 온전한 제국의 방위를 위하여 추가적인 예산의 증액이 필요하옵니다. 작금의 부족한 예산으로는 군관들의 녹봉조차-"

이강의 말을 끊으며 정장을 말끔이 입은 남자가 소리쳤다.

"아니, 지금 군에 들어가는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탁지부 협판이 이르길 군이 타가는 예산이 청조의 서태후가 축재한 비자금에 비견된다 하였소! 대관절 그리 많은 예산을 받고도 더 받으려 함은 사사로운 목적이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소!"

"당장 그 더러운 입 다무시오! 당장 세속오계와 삼강오륜도 모르는 마씨잡변을 숭상하는 무리답게 사군이충의 뜻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황상폐하를 수행하며 보국안민하는 군을 되도 않는 망언으로 헐뜯는구려!"

"뭐요? 지금 뭐라 하셨소! 마씨잡변!? 공자께서 이르길 민심이 천심이라 하였는데-"

불과 일각도 체 지나지 않았건만, 다시금 서로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소란을 피우는 의원 무리들의 꼴을 보다 못한 경친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만! 그만 좀 하시오! 더 이상 못 들어 주겠군, 회의를 하는 의미가 있기는 있는거요? 여는 개인의 자격이 아닌 대한국 황실의 일원으로서 이 자리에 임하였소. 헌데 나(孤)를 앞에 두고 망언만 늘어놓으니, 그대들은 그대들이 대한의 의원이라는 자각이 있기나 한 거요?"

경친왕의 노기에 맥을 못 추던 의원들은 경친왕이 중추원을 나가버리자, 아무런 의미도 없이 서로 바라만 보다 자진 해산했다.

비서가 모는 차를 타고 밖으로 나온 이강은 말 없이 차창의 밖을 바라보았다.

거리 한켠에선 새빨간 완장을 차고 붉은 깃발을 흔들며 '우리에게 쌀 한 홉이라도 보장하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행진하는 노동자 무리를 검은 제복과 철모를 쓴 전투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있었고, 구석진 골목마다 노소를 따지지 않고 추례한 꼴의 노숙자와 고아들이 넝마를 걸치고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 위대하던, 빛나던 제국의 위상이 어찌 여기까지 추락했는가. 지금껏 내가 보아왔던 것은, 믿어왔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믿어오던 모든 것에, 환멸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장군님, 도착했습니다."

"음."

사저로 돌아가던 이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항상 푸르던 하늘의 색이 누렇게 바래 있었다.

해 (1936)

달이 해를 대신하여 중천에 떴을 때, 한성 동대문 인근에서는 때 아닌 추격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놈 잡아!"

"노인네가 뭐 이리 빠르데?"

간신히 몸을 피한 남자는 숨을 고르면서 기전에 있던 일을 회상하였다.

"...그리하여 불필요한 무력이 사용된다 한들...".

낮, 중추원에서 개혁을 선언한 이강의 연설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 제국의 황상폐하의 명을 받드는 대한당의 일원인 그 였지만 이 한마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의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군을 동원해서 이 제국을 장악했다 하여도 과연 이 모든 인원을 전부 그 잘난 '개혁' 시켜버릴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하며 그는 구 대한당 의원들이 모여있는 건물로 향하였다.

밤이 깊었다. 대략 아홉 시 정도 되었을까. 저 이강 무리가 통금령을 내렸으니 어쩔 수 없이 이 즈음에서 해어져야 했다.

뚜벅. 뚜벅. 뚜벅.

양장과 구두를 입은 장정 둘이 그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하였다.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였다. 마치, 사람 두어명 쯤 죽어도 모를 것 마냥..

그쯤에서 생각을 끝낸 그는 이제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늙은 몸을 움직여 재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이강 그놈이 정녕 대한에 의기있는 의원들까지 죽이려고 하는 것인가. 정녕 이 대한을 저 덕국처럼 전쟁에 미친 나라로 만들려는 것인가.

숨을 다 고른 그는 다시 움직이려 하였으나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 느낌이 그를 막아섰다.

"괜히 따로 끌고와서 처리할 필요 없으니 우리야 좋군."

"노인네. 마지막을 할 말 있어?"

최후를 직감한 그는 담담하게 말을 남겼다.

"백성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는 충성할 필요가 없다. 대한의 신민들이여, 그대들을 탄압하는 이들에 끝까지 저.."

청소 (1937)

세상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있겠냐마는, 오늘 청소는 평소보다 좀 더 까다롭다. 집안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벌레새끼들을 제거해야 해서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비충들이 여기저기 숨어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극약처방을 할 필요가 있었다. 벌레를 청소하는데 소모될 물자가 아까웠지만, 내버려둔다면 금방 새끼를 쳐 큰 우한이 될 것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야 도시 전체를 불태워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서야 공들여 점령한 까닭이 없어지기에, 포격으로 벌레먹은 건물들을 도려내기로 했다.

포격이 근처에 떨어지면, 숨어있던 비충들이 화들짝 놀라 이리 저리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을 중대원들이 깔끔하게 청소했다.

포격에도 비충들이 나오지 않으면, 대대에서 살충제를 받아와 의심스러운 곳을 청소했다. 주변에서 비충들이 털썩하고 쓰러져 컥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벌레새끼들 다운 역겨운 소리였다.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는지 죽거나 다치는 장병은 없었다. 어떻게, 청소는 꽤나 잘 되고 있는것 같다.

직례 (1937)

대한으로 따지자면 경기도 즈음 되는 권역을 완벽하게 장악한 대한군은, 요새화된 북경지역을 넘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행군 중단. 이곳에서 오찬을 해결하고 간다"

김정오 참령이 이끌고 있는 제국군 제 11사단 2보병대대는 지난을 앞에 두고 고작 40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까지 왔다. 가마솥을 깔고 모락모락 밥을 짓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희미하게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김 참령님. 저기, 남동쪽에 움직이는 무리 같은 것이 보입니다."

"확실한가? 이 인근은 분명 아군이 확실하게 뙤놈들을 몰아냈다고 하였는데."

"제 소견으로는, 뙤놈 피난민인 것 같습니다."

피난민.

아니 저것들을 피난민이라고 불러줘야 할까. 아무튼, 명칭이 어찌되었든간에 직예마저 대한군에게 점령당하자 북경에서 잠시 비충을 없앤 일에 찔린 것들이 제 발을 저린 것 같았다고 김정오는 생각하였다.

김 참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부하에게 말을 걸었다.

"상부에서 지침한 바에 따르면, 우리는 문명 개화로서의 짐을 진 것이라고 하였지?"

의아한 표정을 지은 부하, 안우생은 곧 대답을 하였다.

"옙. 이강 총리께서 직접 명시한 바에 따르고, 또 제국군 헌장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안우생이 김정오 참령의 눈을 바라보자 안우생은 어딘가 서늘함을 느꼈다. 뒤이어, 김정오 참령이 조용히, 안우생이 들릴정도로 말을 꺼냈다.

"그럼 문명개화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도태된, 쥐새끼같이 이 아주의 문명을 갉아먹는 것들을 처단하는 것도 우리 제국군의 짐이겠지."

안우생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 곧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김정오를 바라보았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 얼굴이지만, 차마 하지 못하였다.

"...."

"그래, 전 대대도 필요없겠지. 중대 하나만 호출해서 저 비충들을, 아니 비충만도 못한 것들을 청소해보지."

안우생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 경레를 올리며 말하였다.

"..충성"

제남 (1937)

저 높으신 양반내들이나 고상한 취미로 가볼 수 있는 해외여행을, 나는 다른식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꽤 유쾌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한반도에만 갇혀있던 때와는 다르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참령님이 말한대로 청도를 지나 동영, 직례를 거쳐갔다. 주위에 많은 고난도 있었고, 봉변에 처할 뻔 하였지만 대한 필승의 군대답게, 때마다 승리를 거머쥐기 일쑤였다. 이번에 아군이 들어온 곳은 그 유서도 깊다는 제남이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그 조조가 이 제남 땅의 상으로 임명되었다고 하였었다. 아무튼, 그런 제남 땅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내 짧은 생에 이런 경험을 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유서가 깊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주변을 파도 파도 보물들이 나온 것은 예사이오, 뜨신 온천물은 전장에서의 피로를 풀어주는 단물과도 같았다. 여자들은 말할 것이 뭐가 있을까, 물론 뙤놈들 답게 안면이 그리 잘나지는 않았지만 도시 사람들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주위 민가에 있는 뙤놈들에게 재물이 부족하여 조금 '빌렸'다. 물론 제 분수를 알지 못하고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곧 원만한 합의가 있었다. 몇몇 반항을 하던 벌레들이 있었지만, 곧 우리의 손에 들린 먼지털이개로 바스러졌다. 그리 될 것 같았으면 그저 사리고나 있지, 쯧.

무엇이 되었든, 이 여행은 즐겁다. 이래서 높으신 양반내들이 여행을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경 (1937)

수 많은 주인들이 군림하여 천하를 바라보았던 곳, 남경은 이제 동방에서 찾아온 새 주인을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새 주인들은 저들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위풍당당하게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장병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어두운 그늘만이 져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그들의 상부에서 지시한 이 잘난 도시, 남경 진입이라는 명령 때문이었다. 서양의 야소 탄생일 이전에는 집으로 잠시 보내주겠다 약조하였으면서 이런 명을 내려놓으니 어찌 울분이 차지 않으랴.

척. 척. 척.


발 맞춰 행진하던 그때,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적이다!"

한 병졸이 소리를 듣자 마자 소리를 질렀다. 순간, 제국군의 눈빛이 달라졌다.

분노에 차오른 눈빛, 자신들의 원한을 풀 대상을 찾으려는 탐색의 눈까지. 자랑스런 대한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의양군 각하, 제발 재고하여주십시오! 남경에서 고삐를 놓아버리면 제국의 위신이 말이 안된-"

"그만하지. 그리고, 난징에 살고 있는 잠재적인 적들을 모조리 처리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의양군 이재각은 눈앞에 있던 남성의 말을 끊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고생한 제국군을 위해서, 그리고 저 뙤놈 수괴들에게 경고를 해주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일세."

"그러나 저 청국노들을 죽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지 않사옵니까! 오히려 뙤놈들을 죽인다 할지어라도, 이 제국에 득이 되기는 커녕 실만 가져올 것입니다. 아직 제국과 협력하던 군벌들까지 저 가정부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자네, 마음이 너무 약하군. 그리고 정신력도 부족한 것 같구려. 대한제국의 황군에게는 지켜야 할 최저한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겠나? 또 번벌들이 날뛴다 한들, 충용무쌍한 제국군이 격퇴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겠는가? 저 뙤놈들에게 동정적인 자네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 사람은 마음을 굳혔으니 이만 가보게."

의양군의 말이 끝나자 남자는 꾹 참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경례를 올린 후 방을 벅찼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단지 몇 가지 간단한 말로 수식하기에는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의양군의 허가 아래, 분노와 울분에 찬 제국군에게 시내로 도망친 중국군 잔당을 수색한다는 명분이 주어졌고 이는 곧 수 많은 피가 흐르게 시작하였다.

어느 방앗간에서는

"살려주세요! 아이가, 아들이!"

탕.

"이 뙤놈새끼는 뭐라 씨부린거네?"

"거 '내 좆이나 빨라'라고 했는데 기래?"

"거 돌았나? 각설하고 다른 뙤놈이나 찾으러 가제"

어느 농가에서는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으흐흐, 거 가만히 있어. 좋은거 해준다니까 좋은거?"

어느 공터에서는

"으흐흑... 아퍼... 아빠..."

"김 상졸, 이년 기가 막히니까 먹어봐라"

"아, 괜찮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서."

"새끼, 가리는거 봐라"

어느 의원에서는

"아아아아악!" "으, 이게 뭐시냐, 니미 씹할 것 같네"

"아우 시발 핏덩이구만, 야 그거 저리 던저라. 아우, 뙤놈새끼를 왜 굳이 배 갈라가지고 본다냐."

"아직도 자료가 올라오지 않았는가."

"송구하옵니다, 군 각하. 병사들이 '처리'에 열중하여서.."

"하하하! 괜찮네. 오히려, 이는 제국 남아로서의 사명을 다 한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닌가? 그래. 더 쉽게 이 남경을 처리하기 위해 군에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주도록 하게."

이재각은 웃으면서 명을 내렸다.

그는 제 조국이 강대하단 것이 행복하였다.

시합 (1937)

동방에서 악귀가 쳐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었다. 조카와 형수, 그리고 동생은 이곳 또한 위험하다며 피난길에 올랐다. 그들은 나 또한 따라오라고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끌으려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뭍혀있는 이 땅을 떠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이곳에서 남아있기로 하였다.

설령 악귀라고 하여도, 가엾은 민초들에게 무슨 일을 하지는 않겠지.

이리 안일하고 멍청한 생각을 하면서.

...

조선군이 들어오자 난징은 지옥도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옆집 진아이링은 병졸들에게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하였다. 병졸들은 그녀의 여린 몸 구석구석을 유린하였고, 탐하였다. 그녀가 끌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를 직감하였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앞집 천 아저씨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돌아가셨다. 딸이 보는 눈앞에서, 자신이 준 선물을 끌어안은 딸이 보는 눈앞에서, 그 무엇보다 사랑하던 딸이 보는 눈앞에서, 저 악귀들은 아저씨를 총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두개골을 으깨어 사람의 몰골을 찾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천 아저씨의 딸 또한, 그리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하였다.

공포가 머리를 채웠다. 이성은 날라갔고, 오직 그 때, 같이 피란길에 오르자고 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무서웠다.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주위가 얼추 진정된 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래 밖에 나올 수 있었다. 떠나기 전에 장강 하류에 배를 놔두겠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곳을 향해, 떨리는 두 다리를 움직였다.

나는 뛰고 또 뛰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생각에서 밀려난지 오래였다. 능선에 올라 난징 시내를 보니 이곳 저곳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불에 타는 건물들의 소리가 아우러져 귀를 찌르고 있었다. 이건, 지옥이었다. 난징은 지금 지옥이었다

이 지옥도 얼마 안남았다. 저 언덕만 넘으면, 저 가로수만 넘으면, 빠져나갈,

...

허벅지가 욱씬거리는 통증과 함께,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눈이 떠졌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팔다리가 꼼짝도 할 수 없도록 단단히 묶여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이들이 수두룩하였다. 어림잡아도 수백정도 될까.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지"

"-보! 내가 먼저구만 그래!"

군관으로 보였던 남자 둘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난 후, 왼쪽에 있던 남자가 허리춤에 있던 칼을 꺼냈다.

"시, 작!"

그리고 호각이 불리자 남자, 군관이 저 앞에 있던 아이의 목을 칼로 베었다. 참수, 그 옛날에 하던 형벌을 지금 이렇게 하다니. 야만적이었다. 저 옆에 손을 흔들던 남자는 뭐라뭐라 말하면서 종이에 글을 적고 있었다. 환도를 들고 있는 남자는 내 이웃의 머리 째로 자르고 있었다.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비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피,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다가오고 있다. 다가오고 있다.

눈앞이 흐려지며,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군관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

"뭐라는거야?"

"장형필, 4분 지났다! 느림보 녀석아, 빨리 해!"

"알겠다, 알겠어! 그래, 얼른 끝내주마!"

끝내 남자의 칼이 내 목을 향해 쇄도했다. 한번에 끝나지 않았다. 두번, 세번, 네번. 천천히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눈 앞에 여러 광경이 펼쳐졌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

검은 어둠이 나를 덮쳤다.

...

"이런, 105 밖에 못채웠구만." "또 졌나? 한심하기는. 좀 잘 해봐라. 다른 놈들 더 잡아와주랴?" "우라질,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주마"

주먹밥 한 덩이 (1938)

조식으로 잡곡과 쌀겨가 대부분이고 쌀알이라곤 찾아보기도 어려운 흙투성이의 주먹밥 한 덩이를 간신히 건졌다. 어제는 분명 두 덩이였던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도 이제 반절로 줄었다. 날카로운 쌀겨가 목구멍을 긁었는지 목 안쪽이 아파왔다.

이 생활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이제는 날짜마저 가물가물해져만 간다. 동이가 쳐들어온다고, 같이 피난을 가자고 하던 이웃들을 태어난 고향을 떠날수는 없다며 뿌리치던 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아들은, 아내는 무탈한지, 내가 잡혔을 때 잘 피신했는지가 궁금하지만, 이곳에선 바깥의 소식이라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험상궂은 간수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이 곳은,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이 보이면 간수가 총으로 쏘거나 몽둥이로 사람들을 두들겨 팼다.

배를 곯아도 가족과 함께 있던 그 때가 행복했었다. 내 땅도 아니고 소작받은 땅에 불과했으나 이웃과 함께 논을 갈던 그때가 즐거웠다.

이제 겨울이 오는 것 같다. 한끼에 한 덩이만이 지급되는 것도 점점 그 양이 줄어가는 것이 보이고 있다. 작업반장이 어제 작업한 물건이 불량이라며 채찍질한 등이 아려왔다.

또 아침으로 겨가 잔뜩 섞인 잡곡 한덩이가 나왔다. 팔을 들어 입에 넣으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다. 몸이 무겁다. 흙바닥이 내 머리를 놓아주지 않겠노라 말하는 것 마냥 머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와중에, 옆에서 누가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가 않았다.

피곤하다. 잠이 억수같이 쏟아졌다. 눈이 내렸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눈을 참 좋아하셨는데.

낙양 (1939)

한때 찬란하게 번영하던 중화의 도읍이었던 낙양은 저들이 그저 동이, 오랑캐라고 여긴 족속들에게 처참히 굴복된 채 한낱 잿가루만 날리고 있었다. 옛 황제가 머물렀던 궁궐은 그저 그런 것이 있었구나- 라고 추정되는 터만 남고 사라졌으며 수많은 이들이 어우러져 있던 거리는 어두운 낯빛만을 얼굴에 새긴 이들만이, 혹여나 저 마귀들에게 들킬까봐 심장을 졸이며 있을 뿐이었다. 하나 둘 장정들이 들어섰지만,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청야전술로 인해 그저 폐허가 되어버린 낙양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아니 오 부위, 진짜 여기서 잘거라고?"

"어쩔 수 없지 않나. 다른 곳은 여기보다 더 열악한 처지인데."

야영을 할 곳도 마땅치 않았고, 배도 채울 것이 그리 많지 않아 주먹밥 한 두 덩이만 배급되었다. 병졸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고, 가족을 보게 해달라는 요구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다. 사병들이 최근에는 장교가 하는 말을 더럿 듣지 않는 일도 있어 총을 뽑아들고서야 명이 이행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상부에서 떨어진 명은 없나? 낙양을 함락시켰으니 저들이 항복할 만도 한데."

"우라질, 그런게 있으면 좋겠군."

똥 씹은 표정으로 동기인 오 부위의 말을 들은 정 부위는 대답하였다

"..좀 지치지 않나? 이 땅에서 얼마나 더 피를 손에 묻혀야 하는..."

"쉿. 큰일날 소리를. 군기교육대에 끌려갈 수 있으니 조심하게나."

지친 나머지 위험한 소리를 하는 오 부위를 막으며, 정 부위는 조용히 제 막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후, 얼마나 더 해야하는지. 안사람이 해주었던 밥을 언제 먹었더라.'

순간 든 생각을 지우려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부족한 물자와 식량을 채우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개봉 (1939)

고 송대의 수도였던 개봉에 입성한 후, 이우는 아버지 이강의 말을 떠올렸다.

"굳이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는 저 오만에 빠진 중국인들에게 이 문명을, 우리 대한의 위엄을 알려주려무나."

평소 성실함과 애국심으로 아버지, 이강에게 큰 총애를 받던 이우는 이번 전쟁이 이 신성한 대한민족의 성전임을, 가엾고 열등하며 저열하게 짝이 없는 저 미개한 한족들에게 문명을 알려주는 성전임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충성! 정위님, 이 인근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주위 한족들은 종적을 감추었으며 감춘 척 하였다 한들 아군의 가스 공격에 다 비명하였을 것입니다."

"좋군. 흠. 부위."

"예, 정위님"

지금 황실의 후손으로, 대한 황실의 피를 조금이나마 이은 존재로서 이 대한을 위해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던 이우는 뒤이어 부위에게 명을 내렸다.

"개봉에 있는 천명을 이은 이들의 유산을 이 청국노의 후손들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옙!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것들을 보호할 능력조차 없는 이들에게서 대신 보호를 맡는 것도 옳은 일이지 않겠는가. 가서 개봉시장을 불러오게나."

그 말을 들은 부위, 노복선은 눈을 빛내며 답을 하였다.

"존명!"

황혼의 앞 (1944)

요 며칠간 항상 맑았던 하늘에, 창천에 머물던 태양 아래로 저 멀리서 먹구름이 하나 둘 씩 모이더니 그들을 모두 감추어버렸다.

태양은 저 자신이 아직 이곳에 존재하노라, 모인 구름사이로 빛을 비추고 있었으나 이를 본 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주변 곳곳에서 포화와 함성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화의 불길은, 저 대륙 뿐만 아니라 비로소 이 제국의 강역까지 다가왔다.

하늘에서, 이 끔찍한 전쟁의 불길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는지 눈물이 뚝뚝, 한두방울씩 떨어졌다.

곧 장대와 같은 비가 내릴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땅의 아들과 딸들은 설령 비가 내린다 하더라도, 포화가 몸을 찢는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이 땅과 함께할 것을 마음 속 깊이에 새겼다.

황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양 노을을 바라보며 (1945)

한차례 폭격기가 휩쓸고 지나간, 한때 동아 문명의 정수라 불리우던 한성은 무가치한 회색의 잿가루와 수 많은 돌무더기로 화해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던 거리는 상처입고 거지꼴을 한 장정들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만이 정처 없이 배회하고 있었고, 그 아름답던 기와집들은 한줌의 돌무덤으로 변해 그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대관절 무엇을 잘못했기에?'

멀찍이서 불타버린 시내를 바라보던 사내는 점차 희끗해져가는 노쇠한 머리로 대체 무어가 잘못되었는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되물어 보아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마땅히 대한의 건아라면 황상을 받들어 모시고 역천을 꿈꾸는 마씨 반역도당들을 때려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문명인의 의무로서 실패민족을 계도하고, 예의범절을 알지 못하며 사람된 도리조차 알지 못하는 양이놈들을 아주에서 몰아내는 것은 마땅히 잘 교육받은 아주인이라면 기립해 박수를 보내 마땅한 선행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하잘것 없는 잿더미로 변한 한성이, 차디 찬 바닥에 누여진 수 많은 장정들이, 너희는 이미 전쟁에서 졌노라 쓰여진 적들이 뿌려대는 삐라가 말하는 사실은 그가 아는, 아니 믿는 '진실'과는 아주 큰 괴리가 있었다.

아니다. 이건,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멍청한 천것들이 시킨 일도 똑바로 하지 못한 탓이다. 꼴에 황실이라는 것들이 사사건건 훼방을 놓은 탓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끝끝내 그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지기엔 그는, 제국은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의 서쪽 끝짜락에서 노을을 흩뿌리던 태양이 천천히 가라앉았고, 붉게 물든 하늘 뒤로는 검푸른 하늘만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이강은 눈을 감았다.

대아전쟁 이후

이 세상의 한구석에 (1945)

압록강 너머 의주 바로 위에 있는 안동에 거주하는 이주선씨는 원래 의주의 변두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의주의 한적한 연안 지역에서 김 양식을 하였었다. 제국 최대의 공업도시였던 의주에는 수십만의 시민이 거주했고, 이들을 위한 여가시설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그녀도 역시 휴일이나 축젯날이 되면 축제를 즐기고 의주에서 여가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1937년 중국에서 시작된 전쟁은 과거의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했던 의주를 점차 광기의 소굴로 만들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황군이 교착상태에 빠진 뒤부터는 가정의 행복마저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부의 총동원령에 의거, 가업으로 이어오던 김 양식을 그만두고 너트와 볼트를 만들어야 했으며, 그녀의 지랄맞던 오빠는 황군으로 징집되어 머나먼 전선으로 떠났다. 그래도 항상 긍정적이던 그녀는 언젠가 모두 끝나리라는 믿음을 갖고 지냈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향을 등지고 시집 온 안동의 낯선 생활과 시집살이는 매우 고되었다. 고된 시집살이를 버텨낸 자신을 기다린 것은 싸늘한 주검으로 전선에서 돌아온 그녀의 오빠였고, 제국이 광기에 빠져들수록 그녀도 웃음을 잃고 있었다. 국가가 배급하는 식량은 하루가 멀다며 줄어들고, 귀축영미의 함대를 요격하고 채 몇 년이 지나지도 않아 반상회에서는 폭격 대처 요령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쇠로 된 거대한 새들이 폭탄 다발을 떨어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1945년 봄, 한성 폭격 이후 대한의 강토는 미군의 폭격기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당했다. 해군기지와 군수기지가 있던 안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가 주말을 맞아 시내에 나왔을 때도 미군의 폭격기들은 어김없이 안동에 찾아왔다. 그녀는 피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집 앞에 떨어진 불발탄이 터지는 바람에 그녀의 시누이와 조카가 명을 달리했다. 45년 여름이 가까워지자 미군의 폭격은 폭격기뿐만 아니라 전투기까지 가세해 폭격을 실시하였다. 결국 그녀의 시어머니와 남편은 매일같은 폭격으로 위험한 안동에서 그녀만이라도 한 번도 폭격당하지 않은 그녀의 고향 의주로 잠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그녀가 귀향하려던 날 아침, 그녀는 마지막으로 짐을 싸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섬광과 함께 일어난 버섯구름이 의주 방향에서 목격되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에 그녀는 먼저 매일 듣던 HLKY 방송의 주파수를 맞춰보았으나 한국방송 의주 방송국의 주파수에는 정주 방송국에서 연락하려는 음성만이 울릴 뿐이었다. 하루가 지난 뒤에야 그녀는 어제 의주에 미군의 신형 폭탄이 떨어진 것을 전해 들었고, 가족을 걱정해 의주로 가려던 그녀는 의주가 위험하다는 친정의 만류로 안동에 남아야 했다. 며칠 뒤 황국이 항복하였고, 여름의 끝물이 찾아올 때야 그녀는 고향 땅에 발을 딛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폭탄이 터졌을 때 의주 한복판에 있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폭탄이 떨어진 직후 어머니를 찾으러 여동생과 함께 의주 시내로 들어갔다가 기력이 떨어지며 반점이 생기는 병에 걸려 이미 죽은 뒤였다.

그녀의 여동생도 몸에 푸른 반점들이 생기며 기력을 잃고 있었다. 너무도 불공평한 이 상황이 슬펐고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우리가 무엇을 했다고 이런 비극을 당해야 했는가? 이내 그녀는 그 모든 비극이 구주, 중원, 강남, 남방에서 벌어진 황군의 수탈에 대한 대가였음을 깨달았다. 반도에 진주해 거리에서 순찰을 하는 미군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대한의 원죄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그간 겪었던 모든 일을 떠올리며 어느 공책에 그를 기록했다.

수십 년 뒤, 이주선의 유품을 정리하던 손녀는 그녀의 일기를 발견해 펼쳐본다. 전쟁에 대한 깊은 고찰로 가득한 일기의 내용을 본 그녀는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출판을 결심하고, 마침내 집필해낸 소설의 이름을 짓고자 궁리하고 있었다.

깊은 생각 끝에 그녀는 가장 알맞은 제목을 떠올려 곧장 키보드를 두들겼다.

남아있는 모든 이들 (1945)

예전에, 아마 짬탕인지 부대탕인지 무언가를 나눠준다기에, 며칠동안 연명하던 나무껍질 죽은 내다 버리며 터벅 터벅 시장한 배를 이끌고 오랜만에 거리로 나섰었다. 한동안 먹을 것도 챙겨야해서 넉넉하게 받아오기 위해 집에 있는 식기란 식기는 모조리 긁어모아서 섰었다. 앞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줄어들었다. 그러나 내 앞에서 부대탕이 다 떨어졌다고 하였다.

"죄송합니다. 탕이 다 떨어졌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뭐라고? 나, 난 이걸 먹으려고 2시간은 기다렸단 말이야! 당장 뭐라고 가져오라고!"

앞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아이들과 부인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고, 오늘도 피죽이나 나무껍질 죽을 먹을 수 밖에 없나보다라고 아이들에게 일러주니 당시 8살이 된 몽구가 울음을 터뜨렸었다. 화가 치밀어올랐었다. 나도 이렇게 피죽과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렇게 야단을 치려고 하려던 찰나, 왠 노파가 다가와 말을 걸었었다.

"홀홀. 배가 고프구나. 그래, 이 할미가 만든 주먹밥이라도 먹으련?"

고생을 많이 한 듯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작은 주먹밥 여러 개를 꺼내 아이들에게 주었다. 순간 말리려 하였지만, 그 작은 주먹밥이 그리도 좋다는 듯 울음을 뚝 그치면서 먹는 것을 보고 그런 마음은 싹 날라갔다.

아이들이 먹는 동안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식 중 여럿은 폭격으로 이미 죽었다고 한다. 손자 셋이 있는데 하나는 전쟁터로 끌려갔고 하나는 밥도 못먹고 아사했다 하였고, 하나는 만주 땅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노파의 말들은 참 안타까웠지만, 그 때 대한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일은 아니었다. 당장 나만 해도 남동생 몇은 전쟁터로 끌려갔고 누이들과는 생이별했다. 아버지는 고된 서울행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밥을 드시지 않고 아버지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을 겨우 말렸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노파는 얼굴에서 따뜻한 미소와 자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보고는

"젊은 청년이 벌써부터 죽을 상을 하면 안되지. 갈 날 가까운 나도 안하는 것인데"

라며 농마저 던졌으니. 어떻게 그리 지낼 수 있는지 노파에게 조심스럽게

"어째서 그런 고난을 겪고도 태연하실 수 있으십니까?" 라고 물었는데, 노파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길

"내 생에 이보다 더한 일도 많이 겪었고, 고된 일은 더욱 많았다우. 그런데도 어찌어찌 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하늘은 내게 시련은 주어도 실패는 주지 않는 것이지 않겠는교- 하고 웃으며 지내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개떡과 같은 소리인지, 다 죽어가는 노인네의 헛소리겠거니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러나 1년, 2년이 지나면서 다른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노파의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내가 그 노파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나는 젊은데다가 한창 때인데, 하고 버텨냈다.

지금에서 보면, 그 노파는 인생의 진리를 통달한, 죽은 얼굴을 하고 다니던 나에게 찾아온 귀인이 아닐까 싶다. 그때 노파를 만나지 않았으면, 당시로써는 가족들과의 사이도 험악해졌을 것이 분명하고 뒷날에는 시련이 찾아왔을 때 견디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니까.

나중에 노파를 찾으려고 사방팔방을 돌아다녀도 소식 하나 알 수 없었다. 그 장시에 다시 돌아가서 수소문을 한 3년정도 해서야 만주로 간 손자가 불러서 백산으로 향했다는 것만 알게되었다.

지금 아마 흙으로 돌아간 그 노파가 나를 보면, 무슨 말을 해줄지 궁금하다. 젊은이가 죽을 상이었는데 이제야 좀 사람답다고 할까.

반딧불이의 묘 (1945)

강명 24년이었다. 나는 당시 전라도 최대 도시였던 군산 옆 마을에서 살았었다. 원래는 군산에 집이 있었지만, 사정이 어렵게 되어 군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었다. 정이 든 고향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우편을 통하여 간간히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지내는지, 우리가 다시 만나면 무엇을 할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덕암에서 새로 아이들을 사귀었다. 유쾌하고 말썽을 잘 피우는, 지금 서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골아이들의 모습이 보이는 순박한 이들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커가니 원래 군산 아이들과의 소식도 하나 둘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속으로는 '이 배신자놈들, 발로 궁디를 뻥 차주겠다' 라고 욕하기도 했었다.

그 일은 8월 초, 내가 학우들과 동이 트기도 전 야산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곤충들을 한번 잡아보자고 했던 때 일어났었다. 야산에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학도병 훈련도 받는 그 학교를 모가지 떨어질 각오하고 째고서 갔었다. 내심 월요일이라 등교하기도 영 그랬고, 또 가봤자 '황국신민이라면 무엇을 해야한다느니',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귀축영미를 때려잡자' 같은 쓸데없는 것이나 배울 바에는 맞아 죽더라도 나중에 죽을 것이니 놀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왠지 오늘따라 감이 좋지 않았지만, 모든 걱정을 떨치고 산으로 들어갔다. 야산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다른 아이들은 풍뎅이, 사슴벌레같은 소위 인기있는 것들을 잡는데 성공하였는데, 나는 고작 반딧불이 따위나 잡았었다. 괜한 심술을 부려서 확 던지다시피 채집장에 넣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재수에 옴 붙었다 생각하고 동이 트는 것도 봤으니 내려올 찰나였다. 멀리에서 자주 들은, 공습 '훈련' 때나 들을 수 있던 폭격기 소리가 찾아왔다. 다들 우왕좌왕 할 때, 그것들은 우리를 지나쳐 앞으로 갔다. 멍하니 가는 곳을 본지 수 분 지났을까, 갑자기, 밝은 빛이 한 쪽에서 환히 터져나왔고, 뭉게구름 같은 것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본능적으로 꺼려짐과 무서움이 느껴졌고, 이는 나 말고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느꼈었다. 다들 어딘가 멍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봤고, 눈치 빠른 몇몇 아이들은 군산 쪽에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느끼고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산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기억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공포를 직면하면, 누구든지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가 허겁지겁 달려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여쭈어보니, 군산은 지금 아무 것도 없는 폐허라고 하였다. 풀 한 포기, 사람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고, 그저 폐허가 된 도시 터만 남아있었다 하셨다. 운이 좋게도, 아버지는 군산으로 가던 도중 왠지 모르게 촉이 좋지 않아 멈추셨는데, 변을 피하셨던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스멀스멀 잊었던 것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폐허가 된 군산과, 그곳에 있던 내 친척, 친구들, 공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 친구 분들.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무슨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잘 있을까, 무사는 할까 생각하였지만, 그 아버지가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들은 모두 떠났구나. 마음 속에 무언가가 꺾인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 시간동안 멍하니 내 방에서 있었던 것 같다.

저녁 즈음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내 방에 찾아와서 서울로 가자고 하셨다. 군산이 그리 잿더미가 되었는데, 옆 마을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될까. 백부가 계신 서울이라면, 나을지도 모른다 하니 얼른 짐을 챙겼다. 피하지 못한 이들의 죽음이 안타까웠으나, 나 또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다리가 터져라 걸어갔다. 다시 그땔 떠올려 보면, 어떻게 걸었는지 의문조차 들었다. 물론, 죽기 싫어서 뛴 것에 가깝기도 하였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 해도 놀라울 정도였다.

가기 전에, 아침에 잡은 반딧불이가 채집장에서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떠나기 전 자기 고향 땅에라도 묻히라고, 흙을 파 주었다. 위로 솟은 봉분을 보니, 내가 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떠올라졌다. 나는 반딧불이가 아닌 사라진 모든 인연들을 묻어준 것이었다.

서시 (1945)

서대문 형무소에서 석방되어, 비로소 자유인으로 거듭나게 된 동주는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향기로운 흙내음이 코를 간질이고,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은 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살아있는 것들은 그 자체로 소중할 터인데. 그리고, 스스로를 불태워 죽어가는 이들 또한 소중한데. 잡생각을 접어두고, 동주는 발을 옮겨 고향, 용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품에 가진 것은 종이 한 뭉치 뿐이었다. 그러나, 이 한뭉치는 동주에게는 금덩어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말이고, 겪은 것이 헛 되지 않았다는 마지막 증거였다.

열차는 이미 폭격으로 엉망이 되어서 한창 복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사용할 수 없었다. 어찌저찌, 광무 이전에나 탔던 말에 두 볼기짝을 붙이고, 삼수갑산을 넘어 청진 쪽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만주로 넘어가는 길 또한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몸에 호신장비 하나 없으면 속옷 한 벌 빼고 싹 다 빼앗기기 일수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고향으로 가겠다는 의지 하나를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두만강을 건너서 간도 땅으로 넘어갔다. 이때부터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였다. 언제는 강물을 찰박찰박 걸어서 갔었고, 언제는 숲 속을 헤쳐나갔었다. 나무 껍질을 뜯어서 죽을 끓여먹었기도 했었다.

수 일이 지나, 고향 마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산과 내, 나무와 들이 눈에 익은 모습 그대로였다. 동주는 기대에 부푼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문을 두들겼다. 어머니, 그리운 그 분, 흉터가 가득한 손을 밀어서, 문을 열으셨다. 동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크게 숨을 들여쉰 후에 말을 하였다.

"다녀왔습니다"

고향 (1946)

하와이에서 대한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은 이승만의 두 발이 부산항에 닿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승만은 착잡한 심정으로 배에서 내려, 찬란히 빛나던 항구가 폐허 속에서 재건하고 있는 모습으로 변한 꼴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서울로 가는 길은 더욱 험해졌다. 고조와 고종, 두 대제 시절에 전부 닦아놓은 길은 온데간데 없이 끊겨지기 일쑤요, 겨우 있는 길 또한 주위에 사람들이 널부러져있는 것은 일상이였다. 고향집 해주로 가보니 다행히도 이승만의 아들과 며느리가 반겨주었다. 세 가족은 저녁 즈음에 며느리가 몰래 담아놓은 술로 상을 차려 회포를 풀기 시작하였다.

이승만은 이강의 집권 이후, 대한당 대권 유망주였던 만큼 제거 혹은 해외로의 낙오 최순위였다. 이 또한 잘 알고 있었기에, 이승만은 자진해서 주미한국대사를 청해 미국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었다. 그로부터 9년 뒤에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말이다. 미국에서는 죽을 고생을 다하였다. 꼴통들이 선전포고문을 선제공격한 후에 보낸 것이 가장 황당한 일이었다.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것은 이승만에게는 일상이었다.

이봉수는 이승만이 떠난 뒤에 한동안 병사들의 감시망에 올랐었다. 아버지를 닮아 눈치가 빠른 그 였기에 미행이 붙었다는 것은 잘 알았었다. 이제 그를 지켜줄 뒷배는 없었고, 챙겨야 할 가족은 있었기에, 그는 조용히 지냈다. 전쟁이 한창일 때는, 40줄의 나이임에도 공장의 직공으로 동원이 되었었다. 겨우 전쟁이 끝난 후에는 겨우 농지와 꽁쳐둔 쌀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는 있었다. 이봉수의 아내 또한 이봉수와 비슷한 처지에 쳐했었다.

술을 홀짝이면서 밤이 지나갔고, 다시 아침 해가 뜬 것을 본 이승만은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였다. 폐허가 된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9년 간 외지에 떨어진 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곧 이승만은 품 속에서 노트를 꺼내 미국에서 둔 아내에게 받은 만년필로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였다.

한성부 서대문형무소 158번 수감자 (1948)

"158번 수감자, 면회다."

"예. 나가겠습니다."

두꺼운 철문이 열리자, 손에 수갑을 찬 채 한 남성이 독방에서 나왔다. 수염이 덥수룩한 것을 빼면, 무릇 저잣거리의 여인들의 마음을 훔치다 못해 강도짓을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간수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냉담하게 수감자를 끌고 면회실로 갔다.

면회를 하러 온 이는 수감자가 예측하지 못하였던 인물이었다. 평소 사이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의문점이 있던 형이었다. 이 형이 여기에 무슨 일인지, 눈을 휘동그래 떴지만 이내 평상시 얼굴로 돌아와 수감자는 제 형을 바라보았다.

간수가 "면회 시간은 20분이다" 라고 한 후 문을 닫자 형이 먼저 말하였다.

"우야, 잘 지냈느냐."

"못난 아우야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형님은, 어찌 잘 계신지요."

수감자, 이우는 형 이건에게 되물었다. 이건은 쓴웃음을 지은 채 대답해주었다.

"글쎄,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알지 않느냐."

건과 우의 부친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 제국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저승으로 제 혼자만 도망친 후, 이건은 제 친족들을 없는 살림에 챙기느라 큰 고생이었다. 가뜩이나 전범의, 그것도 A급 전범 중의 A급 전범이라고 할 수 이강의 아들들이었으니 좋지 못한 시선이 따라오는 것은 예사였다. 언제는 이강의 아들인 것을 알아본 이가 -아마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이건의 멱살을 잡고 노호성을 토해낸 것을 겨우 피한 적이 있었다.

겨우 피죽을 얻어와 가족을 먹여도,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어린 동생들은 배가 고프다고 보채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이전에 증조부 흥선군이 모아놓은 재산은 조부 완경군과 부친 이강이 다 써버린지 오래였다.

이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쓴웃음을 되돌려주었다. 그런 모습을 안타깝다는 듯 보던 이건이 이우에게 물어보았다.

"..후회하지는 않느냐."

"예. 제가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할지라도, 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이우는 단 한치도 그러한 마음이 없다는 듯 칼과 같이 회답해주었다. 이건은 그런 모습에 의문을 품은 듯 또 물어보았다.

"어찌 그러할 수 있느냐. 난.. 난 아직도 그때 아버지를 말렸어야 했다고 후회 중이다. 그때 다시 위정자들에게 한번만 더 믿음을 주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형님."

잠시 고요가 찾아왔다. 이우는 얇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흘러간 일은 흘러보내야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말린다고 말릴 수 있는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아들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이건은 그런 이우를 보고 뭐라 말하려다가 간수가 "2분 남았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조용히 하였다.

이우는 무어라 말하고 싶은 형의 마음을 이해했다는 듯, 침묵으로 회답하였다.

시간이 되었다. 간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우는 부탁을 하였다.

"청이와 종이를 부탁드립니다. 종종 찾아오셔주실 수 있겠습니까? 수감생활이 영 지루한 것이 아니지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우는 손목에 걸린 수갑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를 하였다. 이건은 이우가 나간 후, 혼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그래, 또 보자꾸나."

사필귀정 (1949)

거리에 앉은 남자는 무엇이 그리도 웃긴 듯 허허, 하고 계속 웃어댔다. 누군가가 그의 얼굴을 두 눈 똑바로 본다면, 의양군이라고 불리우던 이재각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그것도 두 눈으로 유심히 보아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마치 그가 지금 떨어진 상황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재각은 그것이 상관없다는 듯, 그저 웃기만 하였다. 광인의 웃음인지, 아니면 그저 기쁜 소식이 있어 웃는 것인지, 범인들이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웃고 또 웃을 뿐이었다. 누군가 그의 골을 쪼개 생각을 볼 수 있다면, 이재각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되어 기쁜 어린아이와 다름없다고 말을 할 것이었다.

이재각도 전장에서 자신이 무엇을 한 지는 알고 있었다. 가끔씩 중원 내륙으로 갈 때 그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였으니까. 남경에서의 원혼들이 그를 짓누르는 것인지, 불면에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 조국을 강대하게 만드는 초석의 일환이었노라라고 여기면서 가벼이 넘겼다. 하루, 이틀, 시간은 흘러가고 총과 화약은 떨어져만 갔다. 그가 지휘하던 병사들도 하나 둘 들판에 차게 식어만 갔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잠시동안의 전열을 갖추는 것이라면서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끝으로 가면 우리는 이길 것이니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이재각은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빛이 세상을 담는 꿈을 꾸었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옆에는 어제 같이 잠든 여인 뿐이었다. 섬광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섬광이 일던 그 때, 수 많은 원혼들이 그에게 달라붙어 원망하던 그 감각이 몸에 생생했으니까. 아흘 뒤, 그는 제국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뵈었던 황상께서 친히 옥음으로 이를 고지하는 사실에 놀랐으나, 더욱 놀랐던 것은 그가 행한 것이 연기처럼 날라갔다는 점이었다. 내가 했던 것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이었는데,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이재각은 그날 후로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다.

고통이 찾아왔다.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를 몰아세우는 고통 말이다. 남경에서 죽어간 원혼, 자신을 믿던 병사들, 그리고 고향에 남겨둔 동포들까지. 전부 다 그에게 학살자라고, 무능아라고, 그리고 실패자라고 꾸짖었다. 폐허가 된 거리는 그것이 진실이라는 듯 냉혹하게 그를 몰아세웠다. 그는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절벽 끝에 서 있었다. 모든 책임을 지고 순명할 생각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드는 생각이 있었다. 생각을 다시 곱씹고, 여러번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 끝에 이재각은 비로소 제 답을 찾아내었다.

패전 후 2년이 지나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거리도, 가로등도, 활기찬 이들의 얼굴도. 시간이 지났으니, 이재각 또한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신이 고통을 겪던 시절의 생각을 담아서, 그는 자신에게 꾸짖는 이들에게 반문해주었다. 그들은 무엇인지, 그대들은 무엇을 하였는지, 모두를 조소하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에게 꾸짖던 이들은 전부 사라진지 오래였다. 더 이상 그 날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됐다. 오밤 중에 깨어나 은장도를 휘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모든 것이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밥 한 그릇, 인연 한 켤레 (1956)

멀리서 이 나라 만인지상의 연설을 바라보던 한 남자는 모자를 고쳐 쓰며 몸을 돌려 거리를 빠져나갔다. 하늘에 구름이 조금 껴 있었지만, 썩 좋은 날씨였다. 한 이십 분 정도 걸었을까, 익숙한 거리가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강명 10년대 중반 즈음에나 자주 보던 거리였는데, 어찌 몸은 기억을 하는 것 같다며 남자는 생각하였다. 옆에서 구수한 된장이 끓여지는 냄새가 나길래 돌아봤다. 남자와 익히 면이 있는 주인장이였다. 남자는 주인장에게 웃으면서 인사하였고, 주인장 또한 오랜만에 보게 된 남자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후, 주인장이 점심을 먹을거냐고 물어보았고, 남자도 마침 출출한 참이었기에 한 숟갈 하기로 하였다.

입담 좋고 호방한 성격으로 유명한 남자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몇명이 듣고 찾아왔다. 남자와 다들 면이 있던 사람이었다. 다들 요 근래 남자가 보이지 않길래 죽거나 어디 변을 당했구나 생각하였으나, 살이 약간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별 다를게 없는 남자의 모습에 안심하였다. 나란히 탁상에 앉아 먹거리를 시켰고, 주인장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주방에서는 식기 씻는 소리, 물 올리는 소리, 밥 푸는 소리.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시킨 국밥이 제일 먼저 나왔다. 순대를 넣고 푹 끓인 국밥은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고춧가루와 소금을 탁 뿌려서 넣고, 뽀얀 국물이 빨갛게 물들일려고 휘휘 저었다. 하나 둘 다른 사람들의 밥도 나왔고, 어느정도 속을 채워서 다들 그동안 풀지 못한 회포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송진우는 그동안 연합국 최고사령부에서 녹을 받아먹고 일을 했었다고 말을 하였다. 그가 말하기로는 임금은 짜게 주면서 일은 또 어마어마하게 많이 시키는 고된 직업이었다 하는데, 원채 엄살을 많이 부리는 친구이기에, 옆에서 조동호가 핀잔을 주었다. 조동호 자신은 아무 일도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서 아내가 밭이라도 갈라는 잔소리나 들었다면서.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이만규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는 이번에 조선말큰사전을 새로 편찬하는 일을 맡았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기로는 어느정도 진척이 되어서 검수만 조금 하면 보여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남자는 항상 보이던 장택상이 이번에는 안보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송진우, 조동호, 이만규 이 친구들이 있으면 장택상 그 사람 또한 보여야 했는데 말이다. 송진우가 이에 답해주었는데, 장택상은 경찰에 다시 기용되어 일인자 자리를 노려보고 있다고 한다. 조동호가 줄 하나는 잘 서는 친구라고 뼈 있는 농담을 하였다. 문득, 조동호가 중요한 것을 잊었다가 다시 기억하였다는 듯 남자에게 무엇을 하면서 지냈길래 코빼기도 보여주질 않았냐며 물었다. 송진우, 이만규 또한 궁금하다는 듯 한 두마디씩 거들었다. 남자는 웃으면서 책을 쓰고 있느라 그랬다고 하였다. 무슨 책인지는 나중에 보면 알 수 있다면서, 출간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보여주겠다고 말하였다.

그릇이 비워졌다. 든든하게 속을 채운 네 사람은 주인장에게 잘 먹었다면서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들은 이제 무엇을 할 지 서로서로 의견을 나누었고, 2차로 술집에나 갈까 하였고, 그리 결정하였으나 남자 혼자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아직 할 일이 있다면서 말이다. 세 사람은 아쉽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았고, 다음에 또 보자면서 인사를 하였다. 남자, 여운형 또한 그 인사를 돌려주었다.

헌문 7년 8월 15일 (1973)

"전쟁이 끝나고, 내가 뭔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까? 아 물론 집 생각도 났지만 당장 떠오른건 이 끔찍한 참호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이었고, 그 다음에는 저기 저 앞에서 드글드글하게 몰려오는 그 뙤놈,"

("그, 역시 순화해주시는게..")

"아 그래요. 아무튼 그 중국 놈들이 이렇게 딱 몰려오는걸 이제 어떻게 막지? 라는 생각이었죠. 아니 거 어제까지 살 맞대고 총 들고 싸우던 놈들이 갑자기 '황제께서 전쟁을 멈추시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조용히 후퇴할 때까지 기다려달라' 이렇게 말한다 한들 들어먹을리 있겠습니까? 나 같아도 자기네 고향 불지른 놈들 용서 안하고 보내지. 중국놈이나 일본놈들이 내 강산 점령했다가 저기 저, 어디냐. 경도의 소화가 항복했다니 우리는 조용히 물러가겠습니다- 할 때 들어먹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압록강 넘어서 올 때까지 한숨도 못자고 밤을 지샜어요. 전쟁도 끝났는데 죽을까봐. 실제로 같은 중대 안에서 그런 불쌍한 놈이 한 둘도 아니고 열 댓이나 나왔길래 안타깝다 했죠. 기대 품고 고향집 문 딱 열었습니다. 죽은 놈들 몫 까지 살아가겠다면서요. 그런데 막상 또 전쟁이 끝나서 집에 돌아가보니까, 애들은 꾀죄죄하게 있고, 쌀은 동나서 없고. 난 전장에서 뼈빠지게 굴렀는데 이게, 이게 뭔지 싶었습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넋 놓고 울고 싶었는데, 그것보다는 피곤함과 앞에서 아빠 오랜만에 와서 들러붙는 애들이 눈에 치였지요."

("자제분들은 지금 혹시")

"아, 큰애는 지금 사업한다고 머리 깨나 쓰고 있고 둘째는 양장입고 저기 한성에 있는 그, 제국대학에서 박사 하고 있답니다. 하여튼 계속 말하자면, 전쟁 끝나도 끝난게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죠. 굶주림이랑 그, 기아 말입니다.

기자님도 연배 꽤 있어보이시는데, 그 때 생각해보시면 주위에 싹 다 날라가서 논밭 하나도 없던 것만 떠오르실 것입니다. 갓길에 보면 픽픽 쓰러져 있는 사람들 있고, 전봇대에서 눈 흐리멍텅-하게 뜬 사람들 있고. 보통 그러면 십중팔구는 죽었겠구니 하고 신경도 안썼죠. 워낙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난 운 좋게도 이리 살아남아서, 긴 명줄을 이어가고 있죠. 말이 길었네요, 하여간 그 다시 말하지만, 어디서 말하는 것처럼 전쟁은 그리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연옥 가장 밑바닥 구렁텅입니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고, 죽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일 정도입니다."

-위 글은 헌문 7년(1973년) 8월 2일, 동아일보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한성대학 우 박사 (2011)

..우범선 전 시위대장과 첩인 주정씨 사이에서 태어나, 제국대학의 최고 박사가 된, 패전 이후 우리 대한에 수십년간 오지 않았던 보릿고개가 다시금 고개를 내밀 수도 있던 것을 막아낸 우장춘 박사의 공로를 기리면서 글을 마무리 하기 전에, 아래 우 박사의 개인적인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일기장의 내용을 꺼내보겠다.

[ 1년즈음 되니 감상이 새롭다. 맨 처음에는 이렇게나 힘들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다 손에서 치우고 어디 한적한 곳에서 쉬고싶다고 생각한 적을 세자면 일천은 넘을 것이다.

근 1년은 4시간 이상 편하게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한번은 쓰러져서, 제자들이 업고 의원에 찾아갔던 적도 있었다. 의사도 내 몸을 보고는 당장 휴식을 취하라고, 그렇게 일하다가는 단명할 수 있다 하였다. 한번은 내 어머니의 나라 일본에서도 10만원을 들고 나를 찾아와 모국으로 와줄 수 없냐며 설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그렇게 일신을 편안케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육천만 민족의 운명이 나와 내 연구실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누워있을 수 없었다.

(중략) 그리하여, 고지가 눈 앞에 다가왔다. 시험만 끝이 나면 곧 개량 배추와 쌀을 보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가면, 한번 찾아왔었던 일본으로 가서도 일해보고 싶다. 고통받고 있다던 이들이 많다고 하였으니, 그곳에서도 배곬는 이들을 구해보고 싶다. ]

이렇듯 우 박사 또한 개인적으로 손을 놓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 그가 겪었던 시련은 우리로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하루 4시간을 자면서 기약도 없는 연구를 달성하라 하면서 일하라 하면 초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끝까지 견뎌냈다. 물론 그 혼자서 이루어낸 것이 아니지만, 그가 없었다면 이러한 위업은 달성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우장춘연구소의 일년간의 뼈를 깎던 여정으로 당시 대한인들은 보릿고개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우장춘 박사는 일본으로도 가서 일본 농업을 부흥시켰으니, 그가 없었다면 아마 한일 양국은 전후에도 뼈저린 피해를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 박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주권수복 후 1956년 황제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황제였던 성조 또한 우장춘 박사의 공로를 직접 들었고 감사의 말을 하였다. 이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연구에 매진하던 우 박사는 과로로 십이지궤양이 악화되자 1959년 향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번쯤은 밥을 짓거나 먹으면서 이런 우 박사와 같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이 어떨까, 간단히 쓰면서 글을 마친다.

또 다른 하늘 (????)

하늘이 맑았다. 오랜만인 것 같지만, 어제도, 그제도 쭉 맑았으니 그저 착각이겠거니 하였다. 아무래도 요즘 나이가 들다 못해 폭삭 늙은 꼴로 내다니다 보니, 머리 속도 늙었나보다.

한때 건물 잔해만 남았었던 한성 거리는 다시금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소음과 비린내, 그리고 이따금 악취가 느껴졌다. 그 삶의 냄새를 콧 속 깊이 새긴 채, 또 걸어갔다. 뒤엉킨 사람들의 모습은 옛날 옛적의,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금 하였다. 저 멀리서 나를 보곤, 강정 한 소쿠리를 가져가라며 손짓을 하였다. 웃음을 짓고, 고개를 저으며 장터를 나왔다.

거리를 걷다보니, 아이들이 제 동무들과 짝을 지어 술래놀이를 하는 것이 보였다. 다 해진 신발을 신고 뭐가 그리 즐거운 지, 하하호호 동네가 떠나라 웃어댔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 실수로 뒤엉켜 넘어졌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벌떡 일어서 다시금 소리를 지르며 제 친구들을 쫒아갔다. 아이들과 한 척 떨어져 있던, 멀리서 온 듯한, 반딧불이 담는 통을 가지고 있는 한 아이도 어느샌가 어울려 놀기 시작하였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언덕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제 부모가 부르는 소리에 하나 둘 사라져가고, 전등이 켜지기 시작하였다. 깃대에서 휘날리는 국기는 운치를 더해주었다. 저 멀리서 해가 지고 있었지만, 영원한 밤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끝은 새 시작을 의미하기에, 시간이 흐르면 해는 다시 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