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리
Israelische Kanzler
1대
(1956 ~ 1968)
2대
(1968 ~ 1972)
3대
(1972 ~ 1980)
4대
(1980 ~ 1982)
5대
(1982 ~ 1984)
모세 다얀 콜트슈타인 귄터 예거 옵페르트 모르펜
6대
(1984 ~ 1992)
7대
(1992 ~ 1996)
8대
(1996 ~ 2000)
9대
(2000 ~ 2008)
10대
(2008 ~ 2012)
이슈크 라빈 크리스티안 힌터페르트 베르나르 젠 쉴러
11대
(2012 ~ 2016)
12대
(2016 ~ ----)
13대
(---- ~ ----)
14대
(---- ~ ----)
15대
(---- ~ ----)
보이겐 요아힘 예거 - - -

모세 다얀
Moshe Dayan

[1]
이스라엘 독립군 수장
재임기간
1949년 5월 7일 ~ 1956년 12월 1일
후임: 총리로 개편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재임기간
1956년 12월 1일 ~ 1968년 12월 1일
후임: 임마누엘 콜트슈타인(제 2대)
이스라엘의 국방부장관
재임기간
1968년 12월 1일 ~ 1972년 12월 1일
전임: 아르펠트 슐츠(제 2대)
후임: 리바이 에쉬헨(제 4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서기장
재임기간
1973년 6월 8일 ~ 1977년 1월 5일
전임: 기 몰레 (제 5대)
후임: 헤르베르트 프람(제 7대)
신상 정보
국적
오스만 제국 (1915 ~ 1924)
독일 제 2제국 (1924 ~ 1956)
이스라엘 (1956 ~ 1981)
출생
1915년 5월 20일,
오스만 제국 오크라
사망
1981년 10월 16일,
이스라엘 레이캬비크
정당
운동의 정당
학력
슈투트가르트 군사학교
종교
유대교 (세속파)
군인 정보
소속군
라이히스베어
이스라엘군
근무지
인도 주둔 독일군
이스라엘 북부 방어군
예비군
전쟁
제 2차 세계대전
이스라엘 독립전쟁
베트남 독립전쟁
일본 내전
직위
이스라엘군 최고원수

모세 다얀(히브리어: משה דיין, 독일어: Moshe Dayan)은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이자 3대 국방부장관, 사회주의 운동가였으며 현 이스라엘의 국부이다. 소속정당은 운동의 정당이었으며 운동당의 초대 서기장이기도 하였다. 1949년 독립전쟁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이 전사하자 직을 물려받았다. 이후 1951년 독일 베를린에서의 회담에서 에르빈 롬멜 독일 총리와 협의하여 이슬란트섬에 유대인 특구를 설치하고, 1956년 공식 국가로 출범시키기까지 하였다. 1956년 독립된 국가에서 압도적 득표율로 초대 총리에 당선되었다. 이후 12년동안 총리직을 맡으면서 이스라엘의 경제, 사회, 외교 등 전반적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물러났고, 4년동안 잠깐 국방장관직을 맡았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서기장을 지냈다. 1981년 66세의 나이로 레이캬비크에서 사망하였다.

이스라엘 최고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실제로 소련의 천문학적 지원을 받은 아랍 연합군을 2년 이상 저지시키고 약 20만명 가량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을 구출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에르빈 롬멜과 함께 연합군 최고의 명장으로써 대조선제국 격퇴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특유의 기습 및 기동 작전으로도 유명하다. 총리와 국방장관으로 재직 중이었을때 젊은 장군들을 군에 배치시켜 이스라엘군을 개혁하였으며, 군사 복지에 엄청나게 신경을 써줬다.

특이하게도 안대를 차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이는 1944년 태국 습격작전 당시 수류탄 파편에 맞아 한쪽 눈이 실명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