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양요 (경기만의 여명)
날짜1657년 3월 16일 ~ 1657년 4월 18일 (효종8년)
장소경기만 일대
결과 조선의 제한적 개항, 네덜란드의 승리
교전국
{{{나라이름}}} 조선국

{{{나라이름}}} 네덜란드

군대
(자료 없음) {{{나라이름}}} 피에르 클라위버르트
{{{나라이름}}} 뤼트 제이만
병력
585명 군함 및 상선 3척 병력 850명
피해 규모
18명 전사, 20명 부상, 15명 포로 14명 전사, 10명 부상


병신양요(丙申洋擾) 혹은 경기만의 여명 (네덜란드어: dageraad van baai Gyeonggi)는 1657년(효종 8년)에 발생한 네덜란드와 조선 사이에 발생한 전쟁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당시 좌초해 조선에 억류중인 네덜란드 해군 대령 헨드릭 하멜 및 그 일행에 대해 송환을 요구하였으나 조선 정부에서 '이방인은 외국인으로 내보낼수 없다.'가 법으로 정해져있어 송환을 거절하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경기만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한후 강화도에 상륙하여 조선군과 충돌한 사건으로 대한국니우홀란트의 첫 만남이라고 볼수있다.

피에르 클라위버르트 제독의 지휘아래, 기함 ‘암스테르담 호’를 선두로 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함선 9척이 경기만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한후 강화도에 상륙하여 초지진을 공격한다 조선군(지휘관미상)과 공성전 끝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초지진을 함락시키자 조정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화친을 요청하고 북벌을 위해 필요하다는 효종의 뜻과 그 지지세력의 의견으로 동인도회사 와 협상끝에 하멜과 그 일행들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송환하고 군산항을 개항하여 제한적인 무역을 허용하게 되었다.

명칭

병신양요는 1657년에 조선과 네덜란드(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발생한 군사적 충돌로서, 조선측에서는 이를 병신양요라 하여 병신년 조선과 서양 즉, 네덜란드사이에 발생한 전쟁 또는 소동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와 니우홀란트는 이 사건을 경기만의 여명 (dageraad van baai Gyeong-gi) 또는 1657년 화-한 전쟁 (Netherlands-Korea War of 1657)이라고 부른다.

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