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흐레샤티츠키 (개화)


녹우크라이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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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극동 공화국 제3대 대통령
보리스 흐레샤티츠키
Борис Хрещатицький
출생 1881년 7월 23일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돈 지방 뮤스카 군
국적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녹우크라이나 녹우크라이나
대한민국 대한민국
사망 1956년 6월 21일 (향년 74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성부 종로구 경성대학교병원
묘소 녹우크라이나 녹우크라이나 볼로디보스토크 성 안드레아 사도 국립묘원[1]
임기 초대 우크라이나 극동군 총사령관
1918년 7월 29일 ~ 1924년 4월 5일
제3대 녹우크라이나 대통령
1934년 6월 10일 ~ 1950년 3월 23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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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황립 페이지 군단
종교 동방정교회
소속 정당 무소속 (최종 당적)
성향 중도우파 - 우익

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녹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공주의
최종 계급 우크라이나 극동군 대장 (☆☆☆☆)
최종 보직 우크라이나 극동군 총사령관
참전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내전
서훈 야로슬라우 현공 훈장 (1918)
만주 광영대훈장 (1935)
대한민국 무궁화 대훈장 (1939)
녹우크라이나 영웅 훈장 (1958) / 사후 추서
우크라이나 영웅 훈장 (1995) / 사후 추서

개요

녹우크라이나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의 제3대 대통령. 군인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극동군 총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녹우크라이나가 소련에 합병된 후에는 망명정부 수장을 지냈다.

상세

보리스 흐레샤티츠키는 1881년 러시아 제국 서남부 돈 지방의 부유한 코사크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러시아 제국군 보병 장교로 임관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였다.

러시아 내전 발발 당시 그는 극동 지방에서 고위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극동 공화국을 선포한 극동 지방의 우크라이나인들이 흐레샤티츠키에게 우크라이나 극동군의 사령관을 맡아달라고 요청하였다. 흐레샤티츠키는 시베리아 지방의 백군 군벌이었던 알렉산드르 콜차크와의 관계도 무난했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은 흐레샤티츠키를 통해 백군과 협력하여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제안을 수락한 흐레샤티츠키는 우크라이나 극동군 총사령관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는 적군과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해 극동군을 이끌고 콜차크가 지휘하는 백군에 합류했지만 콜차크군이 적군에 패배하면서 흐레샤티츠키는 극동군을 이끌고 녹우크라이나로 서둘러 복귀하였다.

흐레샤티츠키는 극동군 전력만으로는 러시아 적군을 상대할 수 없으므로 외교적 해결책의 필요성을 녹우크라이나 최고의회와 정부에 타진했고 녹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 간섭군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시베리아 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1920년 흐레샤티츠키는 극동 지역의 새로운 질서를 결정한 하바로우스크 조약에서 녹우크라이나측 협상단 부대표를 맡았다.

1924년 극동군 총사령관직을 내려놓은 흐레샤티츠키는 자서전과 회고록을 출판하고 녹우크라이나 안보재단 상임이사 등을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30년 정계에 투신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보수 정당인 우크라이나 국민당에 입당하였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후 그는 1934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1938년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1940년 제3차 극동전쟁에서 녹우크라이나가 소련에 합병되자 한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한국에서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를 이끌다가 녹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56년 경성대학교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사후에 원래는 함경북도 종원군에 위치한 오극란인 공동묘지에 묻혀있었으나 소련의 붕괴로 녹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녹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으로 유해가 녹우크라이나 측에 인도되었고, 1994년 녹우크라이나판 현충원인 성 안드레아 사도 국립묘원으로 이장되었다.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 1930 - 1931 정계 입문
1931 - 1934 입당
무소속 1934 - 1956 탈당
사망

선거 이력

각주

  1. 1994년 이장
  2. 1940년 부터는 망명정부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