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няжество Восточнгород
折江公國
보스토치고로드 공국
제강 공국
국기 국장
표어 один за всех и все за одного
모두를 위한 하나 그리고 하나를 위한 모두
국가 Элефтерия и танатос
자유냐 죽음이냐
수도 보스토치고로드Восточнгород
최대 도시 그로드노Гро́дно
정치
공용어 보스토치니 어
국민어 한국어, 일본어, 표준 중국어
공작Князь 보리스 사인노프Борис Саинно́в
평의회 의장Спикер 김문욱金文昱
역사
독립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
 • 폐쇄도시화(ЗА́ТО) 1943년 7월 11일
 • 독립 및 왕정복고 수립 1957년 4월 21일
 • 보스토치고로드 위기 1962년 10월 27일
지리
면적 1689.4㎢ (182 위)
내수면 비율 2.3%
시간대 VST (UTC+9)
인구
2018년 어림 858,900 명
인구 밀도 508.5 명/㎢ (13위)
경제
GDP(PPP) 2018년 어림값
 • 전체 $189억 (146위)
 • 일인당 $22,004 (59위)
통화 보스토치고로드 루블 (RUB)
기타
ISO 3166-1 648, DV, DVG
도메인 .dv
국제 전화 +83

보스토치고로드 공국(러시아어: Княжество Восточнгород)은 동해 연안에 위치한 도서국가이다. 러시이어를 사용하는 동슬라브족보스토치인(Восточнкие)들을 포함하여 한국인(韓國人), 일본인(日本人) 등의 다수의 동양계가 이루어진 다민족국가로 볼 수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제강 공국(折江公國)으로 부르는 경우가 잦다.

데카브리스트의 난(Восстание декабристов) 이후에 이주한 일부 귀족들을 중심으로 보스토치고로드 공화국(Восточнгород республика, 1829 ~ 1923)이 수립되었으나,[1] 소비에트 정권 수립 이후에 공화정이 붕괴된 뒤에는 '극동의 크론슈타트'(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Кронштадт)라고 불리며 소련의 군사 시설이 밀집하였던 폐쇄 도시(ЗА́ТО)로 지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에 보스토치고로드 자유당을 주축으로 하여 사인노프 가(Саинно́в)를 위시한 독립 운동 세력이 미국일본 등의 제1세계의 지원을 받아 1957년의 독립 및 왕정복고를 선언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을 이탈, 후에 쿠바 위기와 더불어 보스토치고로드 위기를 겪는 등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로 낙인되기도 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에 성립된 러시아와 관계 회복에 나서게 되었으나 친러 성향의 보스토치니 인민당이 공작 폐위 및 공화정 수립을 내걸자 이에 반러 성향의 자유당과 군부가 12월 혁신을 내세워 이들의 활동을 제압하고 자유당에 의한 친미, 반러 성향의 일당 우위 체제를 수립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이 일시적으로 얼어붙은 것을 시작으로, 우크라이나유로마이단 사태 당시에 친러 정책을 펼친 빅토르 표도르비치 야누코비치(Виктор Фё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를 비판하고 친서방주의 우크라이나 정권에 호의를 표시하는 등 행보로 인해 현재까지도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각주

  1. 공작의 지위와 귀족제는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보스토치니 시민"의 이름하에 민회가 설치되고 독자적인 보스토치고로드 대주교 선출권을 획득하는 등 봉건 공화제 성격이 강했기에 일반적으로 공화국 시대라고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