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mmunist 1968, 2022 | CC-0 |
부여의 대기업 | |||||||||||||||||||||||||||||||||||||||||||||||||||||||||||||||||||||||||||||||||||||||||||||||||||||||
---|---|---|---|---|---|---|---|---|---|---|---|---|---|---|---|---|---|---|---|---|---|---|---|---|---|---|---|---|---|---|---|---|---|---|---|---|---|---|---|---|---|---|---|---|---|---|---|---|---|---|---|---|---|---|---|---|---|---|---|---|---|---|---|---|---|---|---|---|---|---|---|---|---|---|---|---|---|---|---|---|---|---|---|---|---|---|---|---|---|---|---|---|---|---|---|---|---|---|---|---|---|---|---|
[ 펼치기 · 접기 ]
|
서북그룹 西北 | North Western Group | |
---|---|
국가 | 부여 (다국적기업) |
창립일 | 1972년 9월 10일 |
주소 | 청나라 요녕도 묵던현급시 |
창업주 | 김헌철 |
총수 | 김서진 |
규모 | 대기업 |
유형 | 복합기업, 다국적기업 |
종업원 | 약 26만명 |
시가 총액 | 62조 1,700억원 | 부여 9위 |
개요
청나라 및 조선 지방을 거점으로 두고 있는 부여의 기업이다. 2022년 기준으로 재계서열 9위이다.
역사
남포현급시에서 주물 공장을 운영하던 김헌철이 1972년 가업을 이어받으면서 서북제철을 창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초기에는 남포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주물 회사였지만, 남포현급시가 중국과 부여,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허브 항구로 발전함에 따라 서북제철의 수요도 늘어났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남포를 넘어 조선 북부 및 만주 지역에서 제일가는 제철 회사가 되었다.
이후 김헌철 회장의 지도 하에 제조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을 시도함에 따라 현재와 같은 재벌 기업이 형성되었다.
1997년, 동남아시아발 경제 위기로 인하여 한차례 휘청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으나, 2005년 김헌철 회장이 황립검찰청에 의해 구속되면서 일대 위기를 맞았다. 이후 서북그룹은 서북중공업 사장이었던 박근태가 회장직에 취임하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2020년, 박근태 회장이 고령을 이유로 일선에서 은퇴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자, 김헌철의 차남이자 서북모터스 회장인 김서진이 신임 총수로 선출되어 현재에 이른다.
정치
창립자 김헌철은 자유민주당의 창립 발기인으로, 대표적인 야권 성향의 정치인으로도 활동하였다. 이 때문에 2005년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찌되었든 김헌철의 아들인 김서홍 역시 현재 자민당의 대표로 재직중일 정도로 서북그룹은 부여 야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야권 뿐만 아니라 부여 황실 및 여당과도 밀월 관계를 형성중인 것으로 보인다. 애시당초에 김헌철이 199~2000년대 당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친분이 있는 정치인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였다.
산하 기업
- 서북모터스
- 서북중공업: 약칭 서중
서북금융: 리먼 브라더스 사태 당시 매각되었다. 이후 성율그룹에 포함됨에 따라 이름을 성율금융으로 바꾸었다.- 서북화학
- 서북일렉트릭
- 서북학원재단
- 서북오일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