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노 이슬라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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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Sereno Isla Islands, Lunairen Islands
스페인어: Islas Sereno
세레노 이슬라 제도
이슬라스 세레노 or 루나이렌 제도
Flag of Sereno Isla.png Coat of Arms of Serano Isla.png
국기 국장
표어 Una Tierra Sereno
고요한 땅
국가 Islas Sereno
"고요한 제도"
Sereno Isla on the Globe.png
세레노 이슬라 제도의 위치
수도 세레노스 시우데 Serenos Ciudad
정치
공용어 사실상 스페인어
산티아나 국왕
Rey de San Tiana
레온 3세
León III
세레노 이슬라 영주
Señor de Islas Sereno
호세 데 에르페레스
José De Hespérez
역사
영유권 선언 1828년 9월 17일
 • 영국으로부터의 반환 1835년 6월 11일
 • 보호령화 1890년 5월 3일
지리
면적 7,123 ㎢ (--)
내수면 비율 -
인구
2018년 어림 1,345명
경제
통화 페소 (SYU)
기타
ISO 3166-1 239, SIF, SI
도메인 .sl

세레노 이슬라 제도(스페인어: Sereno Isla Islands)[1]남대서양에 있는 산티아나의 실효지배를 받는 군도이며, 몇 안되는 산티아나의 해외영토이다. 영어권에서 부르는 명칭은 루나이렌(Lunairen)인데, 이는 초기의 정착민들이 프랑스생 루나이레(Saint-Lunaire)를 본고장으로 하던 주민 출신이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2]

역사

첫 발견과 상륙

세레노 이슬라 제도의 최초의 발견자에 대한 것에서는 영국산티아나 양쪽 주장은 엇갈린다. 산티아나에서는 16세기 초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으로 구성된 마젤란 탐험대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산티아나가 과거 스페인 인들의 거점지 역할을 했던 곳이었으니 그 연장선 상에서 역사를 풀어보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영국에서는 또 그들 나름대로 16세기 말 영국의 항해사 존 데이비스가 최초라고 주장한다.[3]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그래서 존 데이비스를 이 제도의 최초 발견자로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사실 양측의 주장 모두 다 문서로 확인된 기록은 없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오스만 제국피리 레이스가 제작한 지도에도 이 섬으로 추정되는 섬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6세기 경에 발견된 것은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반면, 세레노 이슬라 제도에 발을 디딘 최초의 상륙자는 17세기 말 스페인 탐험대라는 것에는 논란이 없다. 세레노 이슬라(Sereno Isla, 정확히는 Islas Sereno)라는 지금의 명칭이 이 탐험대가 해당 섬에 발을 디딜 때 바다가 잔잔한 곳에 있다 하여 이른바 "고요한 섬"이라 지은 것이다. 아무튼 스페인이 먼저 세레노 이슬라 제도에 발자국을 남긴 '기록'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정착 시도

처음으로 세레노 이슬라 제도에 정착한 것은 1764년 프랑스인들이다. 그러나 1766년, 프랑스 정착민들은 보상을 받고 세레노 이슬라 제도에 대한 권리를 스페인에게 양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1768년부터 본토 스페인 출신들이 아닌, 시스살레라테 요새(Fortaleza de Ciscalerate)와 리베네그로 요새(Fortaleza de Rivenegro)에서 넘어온 이른바 산티아나인(San Tianan)과 백인과 남미 원주민들과의 혼혈이었던 메스티조(Mestizos)들[4]이 세레노 이슬라 제도에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때 양측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4년 뒤 앞서 세운 산티아나인-메스티조들의 기지를 발견한 본토 스페인인이 침공해서 점령했으나, 이듬해의 양측간 화해 의미로서 이들 정착지를 반환했다. 그러다가 1778년 경제적인 문제로 퇴거하면서 스페인의 영유권을 표시하는 명판을 남겨두었으며, 산티아나와 메스티조들 역시 죄수 캠프로 섬을 이용하다가 중도에 철수하게 되었다.

산티아나로의 귀속화

1828년 산티아나는 세레노 이슬라 제도의 영유권이 산티아나로 귀속된다고 공식 선언하였으며, 이듬해인 1829년에 산티아나는 이곳에 독일 상인을 파견해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파견한 독일 상인이 불법적으로 어선을 나포하고 해적질을 하게 되자 자국 어선에 대한 해적질을 처단하고자 미 해군이 독일 상인의 기지를 포격해서 파괴하였다. 1833년 영국은 해적 행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주변 해역의 안전보장을 위해 전함을 보내서 세레노 이슬라 제도를 군사적으로 점유를 시도하였다.

이후 1835년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산티아나와의 분쟁 해결을 통해 영국 어선에 대한 해역 안정권을 보장할 것을 결의한 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다시끔 산티아나로의 영토로 귀속하게 되었으나, 이후에는 산티아나의 어선과 해군이 임시로 거처하거나 머무는 기지로서의 활용에 그치고 말았다.

에스페레스 가문과 영지 세습

한편, 임시 기지로서의 활용에 그쳤던 세레노 이슬라 제도는 1849년, 무역업자였던 아구스틴 펠릭스 에스페레스(Agustin Felix Hespérez)는 8명의 선원들과 20여 명에 이르는 파라과이 출신의 여성들을 데리고 이 섬에 상륙하여 지금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꽂고 정착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후 그는 기존에 존재했던 임시 기지들을 중심으로 생활권을 넓혀나가기 시작하였으며, 정기적인 항구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세레노스 시우데(Serenos Ciudad)를 건설하였다.

이후 1890년에 산티아나는 공식적으로 이곳을 자국의 보호령으로서 간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아구스틴 펠릭스 에스페레스의 아들이었던 빅토리노 이 에스페레스(Victorino y Hespérez)에게 영주(Señor) 직책[5]을 하사하였고 본 직책과 영지에 대한 세습을 허용하였으며, 빅토리노 또한 당시 산티아나의 국왕이었던 막시밀리아노 2세(Maximiliano II)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선언하면서, "세레노 이슬라의 국왕(Rey de Islas Sereno)"으로서 추대하였다.[6]

이후에 에스페레스 가문은 세레노 이슬라의 영주로서 지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만의 작은 왕국을 존속시켜 나갈 수 있었다. 심지어 빅토리노의 뒤를 이은 3대 영주는 농노 제도를 부활시켜 파라과이 출신의 여성들과 그들의 자식들을 농노로 지위를 격하시켰으며, 영주의 허가 없이 섬을 떠나거나 개인 토지를 소지할 수 없었다.[7]

근현대의 세레노 이슬라

1930년대 이후로 영주에 지나친 통치권에 대한 반발이 내부에서 거세졌으며, 전간기의 과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던 산티아나 내부에서는 에스네스투 데 오르살레스(Ernesutu De Orzáles)를 통한 전체주의 체제 확립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세레노 이슬라 제도에 대한 중앙 정부에 행정력도 강화되었으며, 이윽고 사실상의 에스페레스 가문은 명목적인 지위만 유지되었고, 농노제도 이에따라 폐지되는 수순을 겪게되었다. 한편, 남미에 활동하던 나치 독일의 지속적인 무제한 통상파괴 작전에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이들에 의해 침략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지금은 7대 영주인 호세 데 에스페레스(José De Hespérez)가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치정부를 구성하여 준독립국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세피난처로서의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에게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8]

각주

  1. 산티아나에서는 이슬라스 세레노(Islas Sereno)라고 칭하며, 이 명칭이 문법적으로 더 옳으나, 해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세레노 이슬라"라고 칭한다.
  2. 비슷한 사례로서, 영국의 영향력이 닿고 있는 포클랜드 제도의 또다른 명칭인 말바니스 제도(Islas Malvinas)의 어원도 프랑스의 항구도시인 생 말로(Saint-Malo)에서 넘어온 주민들이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3. 존 데이비스는 또한 포클랜드 제도를 처음으로 발견한 인물이라고 영국에서 주장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4. 백인들 중에서 특히 스페인포르투갈계를 지칭한다.
  5. 일반적인 영주(Load)의 직책과는 유사하나, 보통의 역할은 세습된다는 점을 제외하고서, 총독(Governor-general)과 같은 역할을 행사한다. (물론, 1900년대 이전까지는 영주의 발언권과 권한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6. 현재 산티아나 왕실은 공식적으로 해당 직함을 사용하지 않으며, 세레노 이슬라를 통치하는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고만 알려져 있다.
  7. 이러한 흔히 닫힌 사회라고 부르는 소규모 수준의 공동체 자체에서 농노제, 노예제는 현대에도 존속해 왔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표적으로 1978년까지 유지된 코코스 제도의 클루니스-가문(Clunies-Ross)의 통치가 있다.
  8. 물론 본토인 산티아나는 세레노 이슬라 제도와는 달리 상당히 계좌 계설이 어려우며, 법인세 또한 11.5%로 마냥 낮은 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