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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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 Serica.png
영어: Kingdom of Serica
네덜란드어: Koninkrijk Serica
민난어: Sa-Pa Ông-kok
광둥어 : Saa1 Baa1 Wong4 Gwok3
세리카 왕국
沙巴王國 (사 파 왕 국)
국가 세리카, 나의 조국
(중국어: 沙巴我的故土, 영어: Serica, My homeland)
국화 용안
(중국어: 龍眼, 영어: Longan)
표어 太平一統世界 평화는 세계를 통일한다.
(영어: Perfect Peace unifies the World)
Serica Orthographic.png
면적 73,904 km2 (아시아 35위, 세계 121위, 아시아 0.16%)
이전 국가 - 1920px-Naval Ensign of Japan.svg.png 세리카 일치시기 (1941-1945)


인문 환경


인구 총 인구 7,650,245‬‬명(2020년 기준) / 세계 102위
민족 구성 한족 83.2%
말레이인 9.5%
타밀인 3.7%
원주민 2.8%
기타 1.1%
인구 밀도 103.5명/km2
기대 수명 86세(2020년 기준)
출산율 1.43명(2020년 기준)
공용 문자 한자, 주음부호, 로마자 등등
종교 분포 무종교 32.1%
기독교 28.1%
이슬람교 22.6%
불교 12.2%
도교 3.9%
기타 1.1%
HDI 0.937(2020년 기준) / (Very high세계 8위)
국군 세리카 국군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단원제, 의원내각제, 단일국가, 성문법주의(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6.05(2020년 기준)
결함있는 민주주의(세계 75위)
국왕 얀와이(甄䤧)[1]
국가
요인
총리 친지쾽(錢知強)
부총리 응아이처이윈(倪翠炫)
국회의장 야우얀(游仁)
감찰원장 탐휜(譚暄)
사법원장 칭힝호우(程卿昊)
집권 여당 세리카 국민당(登嘉樓國民黨)
  1. 표준 중국어로는 '전후이'(Zhēn Huì), 민난어로는 '찐힛'(Chin Hit), 일본어로는 '신와이'(シンワイ)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소유권 절대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
명목
GDP
전체 GDP $3725억(2020년 기준)
1인당 GDP $48,691
GDP
(PPP)
전체 GDP $4291억(2020년 기준)
1인당 GDP $56,089
수출
입액
수출 $1,465억(2020년 기준)
수입 $1,474억(2020년 기준)
외환보유액 $2,980억(2020년 기준)
신용 등급 무디스 Aa3
S&P 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세리카 파이(登嘉樓塊)
ISO 4217 SCF
국가
예산
1년 세입 $1,862억(2020년 기준)
1년 세출 $1,756억(2020년 기준)
지니계수 33.8(2020년 기준) / Low


단위


ccTLD .sc, .沙巴
ISO 3166-1 687, SC, SSC
국제 전화 코드 +671
법정연호 싱밍(成明)[1]
DST UTC+8(세리카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날짜 형식 yyyy-mm-dd
운전석(통행 방향) 왼쪽(우측 통행)
  1. 표준 중국어로는 청밍(Chéng Míng), 민난어로는 셍벵(Sêng-Bêng)


외교


유엔 가입 1965년 10월 13일 가입
유엔 회원국 승인 여부 193개국 승인
수교국 191개국 수교
(시리아, 코소보, 쿠바 미수교)
Laandak.jpg
Tinhing-Skyline-from-Bund.jpg
Mount-kinabalu-summit-02.jpg
세리카의 경관[1]

세리카 왕국(중국어: 沙巴王國 사바웡궉, 영어: Kingdom of Serica 킹덤 오브 세리카), 줄여서 세리카(중국어: 沙巴, 영어: Serica)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국토는 보르네오 섬 동북부와 그 부속도서이며,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육지 국경을, 필리핀과는 술루 해를 경계로 접해 있다. 전체 면적은 73,904 km2시에라리온(71,740 km2), 파나마(75,517 km2)와 엇비슷하다. 인구는 약 760만 명으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캄보디아(약 1,600만 명) 다음으로 많다.[2] 수도는 싱틴(承天), 최대 도시는 엘로푸라(伊罗布拉)[3]이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광둥성 출신의 모험가인 얀잉(甄鉶)[4]명나라 난민 집단을 이끌고 브루나이 술탄의 도움을 받아 싱틴에 정착한 것이 세리카의 시작이었다. 이후 내륙으로 진출한 호이퐁시(開荒史, 개황사)들이 개척지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판쥐(藩主, 번주)를 칭하면서 번진 시대가 열렸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영국, 네덜란드 등 서구와의 교류를 확대하며 번영하였으며, 호이픽 전쟁을 끝으로 번진들이 폐지·편입되면서 중앙집권제의 확립과 함께 근대화 개혁이 추진될 수 있었다.

20세기의 혼란 속에 세리카는 주권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이념 갈등,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붕괴로 위기를 겪었으며, 결국 1941년에 제국주의를 앞세운 일본제국의 침략으로 식민지화되었다. 연합국의 도움을 받아 1945년에 해방되었지만 그 직후 좌우익간의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혼란에 맞닥뜨려야 했다. 결국 보르네오 민족해방군이 무력 투쟁을 선언하면서 세리카 내전(1959 ~ 1968)이 발발했으며, 제1세계의 도움을 받은 정부군이 힘겹게 승리를 거두었다.

내전 이후에는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이 진행되었다. 특히 1970년대의 유전을 발견하면서 오일머니를 통한 경제 회복에 나섰고, 1980년대에는 플라자 합의로 경상수지 흑자까지 누리면서 연평균 8%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후 홍콩,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면서 라부안 자유무역지대를 세우고 제조업금융업의 투자하는 등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함에 따라 '아시아의 다섯 번째 용'(The Fifth Asian tiger)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현재는 첨단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다국적 기업 유치를 통한 안정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리카는 의원내각제 입헌군주국을 표방하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내전 이후에는 세리카 국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당 우위 정당제가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 현재 국왕은 얀와이(甄䤧)이며, 총리는 친지쾽(錢知強)이다. 삼권분립을 통해 정치 권력을 분산하고 있으나. 감찰원의 경우 따로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국민투표를 통해 감찰위원이 선출된다.

국가 상징

국호

세리카(Serica, 西理鈣 사이러이코이)라는 이름은 본래 중국 대륙의 서북부 일대를 일컫던 'Sēres'(그리스어: Σῆρες, 세레스)에서 유래되었다. 그 의미는 '실크의 땅' 또는 '실크의 원산지'로 비단의 한자인 '絲'(Sī)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그 뒤로 중국 대륙을 이르는 말이 다른 이름들로 바뀌면서 잊혀졌다가, 17세기 싱틴에 정착한 화교들과 비단 무역을 하던 유럽 상인들에 의해 새로이 알려지게 되었고, 보르네오 동북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다시끔 사용되었다. 영국보호국 시절에는 북보르네오(North Borneo, 北婆罗洲)라 불러지기도 했다.

중세 이전까지 이 지역을 이르는 정확한 용어는 없었다. 이후 송나라에 의해 '포니'(Po Ni)라 불려졌는데데, 이는 브루나이보르네오 섬을 달리 이르던 말이기도 했다. 한편, 브루나이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는 세리카를 주로 '상류' 혹은 '북쪽'을 의미하는 '사바'(Sabah, 沙巴)라고 부른다. 이는 현지에서도 정식 국호인 세리카와 함께 자주 표기되고 있는 이름이지만 그 어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랍어로 '아침'(صصا)이라는 뜻이 되기에 아랍 상인들이 붙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외에 필리핀 주위에 태풍 지대 바로 남쪽이라는 위치 때문인지 말레이어로 '느그리 디 바와흐 바유'(Negeri di bawah bay, 바람 아래의 땅)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국기

얏 윗 케이
日月旗 | Sun Moon Flag | Jat6 Jyut6 Kei4
400px
용도 민간기, 정부기, 상선기
채택일 1877년 9월 29일
비율·요소 3:4, 푸른색 바탕의 노란색 원과 초승달
설계자 얀판 (甄釩)
구스타프 오버베크 (Gustav Overbeck)[5]

국장

세리카의 국장
沙巴國章 | Coat of Arms of Andalas
400px
용도 공식 국장
제정시기 1920년 7월 23일
설계자 얀거이 (甄鉅)

국가

세리카 응오딕구토우
沙巴我的故土 | Serica, My Homeland | Serica Tanah Airku
Saipo, My homeland Lyrics.png
지위 공식 국가
채택일 1890년 8월 13일
작사가 이우인윅 (姚賢旭)
작곡가 자무엘 헤르만 (Samuel Hermann)

국화

룽응안
용안 | 龍眼 | Longan
Longan Flower.jpg
지위 공식 국화

자연환경

보르네오 섬의 지형
Serica geography.png

세리카의 총 면적은 약 73,904 km2로 서쪽은 남중국해, 북동쪽은 술루해, 남동쪽은 술라웨시해로 둘러싸여 있다. 세리카는 총 1,743 km에 달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295.5 km가 침식되고 있다. 세 개의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해안선으로 인해 광범위한 해양 자원이 국내로 공급된다. 1961년, 영국의 도움을 받아 옆나라인 사라왁과 함께 국제해사기구(IMO)의 공동참가국이 되었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술루해보다는 남중국해술라웨시해가 훨씬 더 크다. 이들 해안선은 주로 니파야자로 구성된 맹그로브(紅樹林, 홍수림)으로 덮여 있다. 왕실국유지의 소유지는 331,325 ha를 차지하며 전국 맹그로브의 약 57%를 차지한다.

서해안 일대는 대규모 습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클리아스 반도는 여러 조수 습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밧신 습지센터로 알려진 습지센터람사르 습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세리카의 서쪽 지역은 일반적인 산지로, 세 개의 높은 봉우리가 존재하고 있다. 주요 산맥은 크로커 산맥으로 높이가 약 1,000 m에서 4,000 m까지 달하는 다양한 산들이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밧신 산(八仙山)이며 높이는 약 4,095 m로, 이는 히말라야 산맥오웬 스탠리 산맥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이다. 그 다음으로 높은 산은 닥로우시마딕 산(特鲁斯马迪山)[6]이며, 높이는 2,642 m다. 세번째로 높은 산은 밧신 산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2,579 m의 탐딩보우 산(潭頂部山)이다.

대부분의 산과 언덕들은 넓은 강과 계곡을 가로지르며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다. 대표적으로 서해안과 남부 평야, 내륙과 중앙을 향해 뻗어 있는 낮은 산맥의 언덕들이 있다. 세리카의 중부와 동부 지역은 대체로 낮은 산맥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평야이다. 동쪽 해안에는 세리카에서 가장 긴 지나 강(支那江)이 있으며, 길이는 약 560 km이다. 지나 강은 내륙 남서쪽 상류에서 시작해 술루 해로 빠져나간다.

세리카는 적도에 있는 열대 지형에 위치해 있어 열대 몬순 기후가 나타난다. 이로인해 북동부남서부는 두 차례의 장마를 경험하게 된다. 하루 평균 기온은 27°C(81°F)에서 34°C(93°F)까지 다양하며, 강수량은 1,800 mm에서 4,000 mm로 적지 않게 내린다. 국토가 필리핀태풍 벨트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해안 지역은 때때로 폭풍을 겪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1996년 12월 25일 최악의 열대성 폭풍그렉을 경험한 바 있다. 이 폭풍으로 1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200 ~ 300명이 실종되고, 3000 ~ 4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국토 전역을 이루는 암반인 순다 판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자바 해구에서 섭입함에따라 지진 발생의 빈도가 높으며, 2015년에 발생한 지진이 가장 최근의 사례이다. 한편 밧신 산과 함께 크로커 산맥마이오세 중간기부터 조산 운동에 의한 압축을 통해 상승하여 형성되었다.

역사

선사시대

팅가우 강(霆溝江) 근처의 마치 동굴(馬奓洞窟)에서 차칩 만(茶踥灣) 일대를 따라 발굴된 석기와 음식 잔해를 근거로, 이 지역에 가장 일찍 알려진 인류 정착지는 3만~4만 년 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지역의 초기 정착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들이 종적을 감춘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다. 허나 2003년, 국내 고고학자들이 중라우 현(中樓縣)에 위치한 콴섯레이 계곡(群㺷理溪谷) 유적지에서 발견한 석기들을 근거로 23만년 전에 인류가 이미 정착했다고 주장하나 정확한 분석 자료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한편 최초의 몽골로이드 이주는 5,000년 전에 발생하였는데, 동남아시아신석기 시대에 가장 큰 도자기 출토지로 유명한 링앗포우(嶺押浦)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고대 몽골로이드의 후손이 카다잔두순, 무루트, 오랑선가이 등 오늘날의 원주민과 유사성을 띄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중국 대륙 남부과 베트남 북부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이웃 지역인 사라왁칼리만탄의 토착 민족보다 필리핀대만의 여러 원주민 집단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민족학자찰스 호세(Charles Hose)와 윌리엄 맥두걸(William McDougall)의 발견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17세기 이전

7세기 동안 스리비자야 제국의 지류인 비자야푸라(Vijayapura)로 알려진 토착 공동체는 보르네오 섬 북서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보르네오 섬에서 9세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독립 왕국은 북송의 지리학서인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기록된 포니(Po Ni, 班乃)였다.[7] 포니브루나이 강 하구에 존재했으며 브루나이 제국의 전신이라고 믿어졌다. 당시 중국 대륙원나라의 정복하에 있었는데, 1292년 초 쿠빌라이 칸은 이듬해 자바 침공을 위해 보르네오 북부로 원정대를 보냈으며, 이 원정의 결과로 상인 혹은 난민 출신의 많은 한족들이 지나 강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명나라 초에는 푸젠성 출신의 옹섬핑(黄森屏)[8]이라는 인물이 무하마드 샤의 딸과 결혼했으며, 여동생은 술탄 아흐마드와 결혼하는 등 현지 지배층과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485년에서 1524년에 이르는 볼키아 술탄의 통치 동안 브루나이의 제해권은 필리핀의 마닐라까지 확장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은 북보르네오와 술루 군도까지 미쳤다. 이 시기 동안 브루나이인들이 지금의 세리카로 대거 이주했다. 허나 내전을 비롯해 해적들의 활동, 포르투갈 등의 서구 열강의 도래로 인해 브루나이 제국은 위축되었으며, 1578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마닐라를 빼앗긴 것은 물론 수도가 일시적으로 점령되기까지 했다. 또한 속국이었던 술루 술탄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술루 제도에 대한 영유권까지 잃게 되었다.

세리카의 성립

1644년에 명나라이자성의 난으로 몰락하자, 많은 수의 유민들이 발생했다. 이들은 인근의 조선일본을 비롯해 베트남, 캄보디아와 같은 동남아시아로까지 이주했다. 그 중 광둥성 출신의 상인이자 모험가였던 얀잉은 휘하의 측근과 자신을 따르던 난민들을 이끌고 보르네오로 향했으며, 술탄 압둘 자이룰 아크바르의 허가를 받아 산밍 섬(新明)과 싱틴의 정착지를 세웠다.

한편, 쇠퇴기에 접어들던 브루나이 내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갈등이 끊이질 않았으며, 이런 상황에서 술탄 압둘 학쿨 무빈무히딘 간의 권력 다툼이 벌어지면서 브루나이 내전(Perang Saudara Brunei, 1660~1673)이 발발하였다. 무히딘은 싱틴에 정착해 있던 얀잉과 난민 집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얀잉은 이에 응함으로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무히딘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마하라자(Maharaja)로 임명해 보르네오 북부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했다.

설정 변천사

  • 실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내용임을 밝힙니다.

2020년 7월 8일 기준으로 동말레이시아(사라왁·사바)를 바탕으로 한 화교 국가를 만들었으나, 이전 설정과 컨셉이 겹친다는 점을 들어 7월 13일서말레이시아클란탄, 트렝가누를 영토로 한 화교 국가 컨셉으로 재개장했다. 허나 해당 지역이 실제로는 말레이인 무슬림의 중심지이자 고립적인 지형이었기 때문에 싱가포르와 같은 개방된 화교 사회의 성립이 가능한지 의문이 따랐고, 결국 7월 16일에 지금의 사바 주를 기반으로 한 화교 국가로서 새롭게 창작하고 있다.

각주

  1.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란닥의 해안가, 수도 싱틴의 아경, 밧신 산의 정상이다.
  2. 동남아시아에서 세리카보다 인구 수가 적은 나라는 브루나이(약 43만 명), 동티모르(약 120만 명), 싱가포르(약 570만 명), 라오스(약 700만 명)뿐이다.
  3. 광둥어로 '이로보우라이'(Ji1 Lo4 Bou3 Laai1)라 하며, '엘로푸라'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아름다운 마을'을 의미한다.
  4. 비슷한 시기에 캄보디아로 망명한 막끄우(鄚玖)라는 인물도 하띠엔(Hà Tiên)을 중심으로 한 반독립 국가를 건설한 바 있다.
  5. 1830~1894, 독일인 사업가이자 외교관이었다. 작은 어촌이었던 엘로푸라의 유럽계 정착지를 세웠으며, 그곳에 덴트 앤 오버베크 컴퍼니(Dent & Overbeck Company)라는 금융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세리카의 국왕, 얀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최측근으로서 외교·정치 자문 등의 도움을 주었다.
  6. 말레이어인 '트러스 마디'(Trus Madi)를 음차한 지명이다.
  7. 허나 이는 필리핀 파나이 섬(Panay)을 부르던 말로도 알려져 있어 포니의 위치에 대한 학계의 주장은 주요 논쟁으로 자리잡혀 있다.
  8. 귀족 직책인 '펜그란 마하라자 렐라'(Pengran Maharaja Lel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