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 타츠야

Flag of Thawa.png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내용은 태화국 공식 설정입니다.
이 문서는 리반이 작성한 가공 국가인 태화국과 관련된 공식 설정이기 때문에 함부로 편집을 시도하시면 반달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꼭 수정여부를 설정자에게 물어봐주십시오. 다만 오류 및 오타 교정은 반달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Japanese Thawa.png
역대 태화 총독
1대
가바야마 스케노리
2대
시바
타츠야
3대
아쿠츠 야스마사
시바 타츠야
司波 達也
司波 達也.jpg
인물 정보
본명 시바 타츠야
출생 1870년 4월 24일
사망 1906년 2월 9일
가족 관계 시바 미유키(아내)
경력 일본제국 육군 소장, 태화 총독, 문부 대신
의원 선 수 선 의원

시바 타츠야(일본어: 司波 達也)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이른 나이에 일본 제국군 고위 직급에 올랐으며, 2대 태화 총독을 역임하였고 이후에 문부 대신을 역임하던 중, 과로사하였다.

초기 이력

1870년 4월 24일, 시바 타츠야는 스오 국 야마구치에서 조슈 번의 번사였던 시바 타츠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미야이다. 그는 부친 쪽 가문인 시바 가문의 가주로서 성장하였다.

이후의 자세한 그의 어린 시절은 알려진 바 없으나,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사관 생도 6기)를 졸업하여 1884년부터 일본 제국 소좌의 계급으로 태화 총감부 치안청에서 근무하였으며 청일 전쟁 참전, 12.19 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화족 계급 아래에 공3급 남작 작위와 함께 총감부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1903년에 파격적인 인사안으로서 소장으로 진급하고 대본영 운수통신차관, 육군사관학교 교감직을 거쳐 태화 총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태화 총독

1903년, 태화 총독으로 부임한 그는 초대 총독인 가바야마 스케노리와 대조적으로, 이전 총독 부임 시기에 일구어지던 기반 시설 확충 및 댐 건설을 전면 중단할 것을 단행 및 일본 신민과 태화 식민지인을 각각 '일등민(一等民)'과 '이등민(二等民)'으로 구분하고는 강력한 민족 차별 정책을 실시하였다. 또한, 강력한 무단 통치를 단행할 것을 공포하여 스스로 사법권, 입법권, 행정권을 장악하고는 '태화주차헌병조례'(台和駐箚憲兵條例, 1903년 4월 3일)를 발표하여 일본 헌병을 증원하고 경찰 업무를 겸임하는 방안을 조치했다. 일본 헌병대에서 총 2,000여 명의 인원을 충원 받아 각 지역에 헌병대 분견소를 세우고서는 태화를 억압하기 위하여 총칼을 휘두르게 되었다.

무단 통치를 시작한 뒤, 그는 태화를 일본의 속령으로 여기면서 '집회해산령'(集會解散令)을 공포하여 태화인들이 설립한 모든 사회 조직 및 단체를 해산시켰으며, 식민 통치의 효율화를 위해 기존 행정 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통폐합하였다.

사망

총독직을 맡은지 3년 후, 사이온지 킨모치 내각에서 문부 대신직을 제의 받음에 따라 태화 총독직을 사임하고 문부 대신직을 역임하던 중, 갑작스런 과로사로 사망하였다. 향년 37세. 한편, 그는 자신의 유언으로 "인민의 수호자와 태화민을 위하여 영혼을 섬긴 이"라는 묘비명을 쓰고 태화에 안장될 것을 간절히 바라였다고 하나, 후임 총독인 아쿠츠 야스마사가 항일 운동의 불씨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불허하여 결국 고향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태화에서의 평가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생각보다 훌륭했다고 볼 수 있으나, 총독으로서의 정치적 자질은 특출난 부분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태화에서는 일본 총독의 통치 시기를 재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재임 시기와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볼 겨를이 없다고 학계에서는 결론을 내리짓고 있다. 또, 그가 전기 무관 총독들의 무단 통치에 영향을 끼쳤기에 현재도 태화국의 사회 및 학계에서 비판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국에서는 마이너한 인물이었으나, 당시의 근친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시스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게 아니냐는 농담거리로 이용되고 있다.

이야깃거리

성격적으로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고 하는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감정보다 이성을 늘 우선시 하였다고 한다. 중요한 건, 이것이 나아가 12.19 운동 당시 자행된 학살과 총독직 수행 과정에서 벌어진 탄압에 대해서도 "맡은 바 열심히 한 일"이라며 스스로의 그릇된 행위를 부정치 않는, 심각한 소시오패스였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상대방을 평가할 때 '배경(출신)'만을 따지다든지, 사회적 권력을 타고나면서 억압받는 이들의 상황을 고려치 못하는 눈 뜬 장님으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모습을 안게 되었다.

자신의 여동생인 시바 미유키와 결혼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에서는 묵인해주었다고들 하는데, 결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로사 하면서 사실상 묻혀지게 되었다. 민간에서도 행해지는 정략 결혼으로 근친혼 자체는 빈번하긴 했으나, 형제-자매간의 혈연적 관계에 혼인이었기에 아무래도 현재의 이 부분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은 부정적.

실제 캐릭터 설정은 '마법과 고교의 열등생'의 주인공, 시바 타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