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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จักรวรรดิสยาม
시암제국
시암제국 국기.png 시암제국 국장.png
국기 국장
표어 제국, 불교, 그리고 황제
국가 우리는 폐하의 충실한 신민이라(ข้าวรพุทธเจ้า)
KakaoTalk 20171023 203947969.jpg
수도 크룽텝
정치
공용어 시암어
지역어 라오어, 베트남어, 중국어, 영어 등
정부 형태 시암식 입헌군주제, 의원 내각제, 양원제, 다당제
황제 라마 10세
내각총리대신 잉락 친나왓
역사
 
 • 수코타이 건국 1238년
 • 아유타야 건국 1351년
 • 톤부리 왕조 성립 1768년
 • 라타나코신(차크리) 왕조 성립 1782년 4월 6일
 • 시암제국 성립 1815년 4월 1일
 • 1932년 시암 군사혁명 1932년 6월 24일
 • 태평양 전쟁 승전 1945년 8월 15일
 • 싱가포르 반환 1999년 12월 24일
지리
면적 2,302,989㎢ (12위)
시간대 TST (UTC+7)
인구
2016년 어림 220,000,00명 (5위)
경제
GDP(PPP) 2017년 어림값 어림값
 • 전체 5조 5,740억 달러
 • 일인당 30,203$
HDI 0.782
통화 시암 바트 (SAB) (฿)
기타
도메인 .sa
국제 전화 +66

개요

시암제국은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하는 식민제국이자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국토는 미얀마(버마)를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와 그 아래의 말레이 반도, 보르네오 섬의 동부 말레이 지역(보르네오 섬 북부), 하이난 섬, 그리고 싱가포르 섬이다. 세계 12위 규모인 2,302,989㎢의 영토는 그린란드보다 크고, 콩고민주공화국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인구

인구는 약 220,000,000명이며 이 가운데 대부분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거주하고 있다. 세계 5위 규모의 인구이며, 인도네시아보다 근소하게 적고 브라질보다 많은 인구이다. 수도인 크룽텝과 그 인근의 수도권, 동부 해안권 지역에는 모두 2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 중이며, 크룽텝에는 약 1200만 명이 거주 중이다.

역사

톤부리 왕조의 흥망성쇠

아유타야가 함락되기 직전 아유타야를 탈출한 탁신 대왕은 시암 동남부의 찬타부리로 피신하고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중국인의 지원을 받아 힘을 길러 반년 만에 아유타야를 탈환한다. 하지만 아유타야는 초토화 된 상태이고 더 이상 버마 군을 막기에도 적절하지 않아 수도를 현 방콕 서부인 톤부리로 했다. 톤부리-방콕은 17세기 프랑스군이 주둔했을 때 요새를 만든 곳이고, 아유타야에 비해 방어가 용이한 편이었으며, 해상으로 진출하기도 편했다. 이런 이유로 탁신 대왕은 1768년에 톤부리(현재 크룽텝의 인근 지역)을 수도로 정한 후, 아유타야에 웅거한 세력들을 모두 통합한다. 1769년에는 태국 중부는 물론이고, 캄보디아 서부지역까지 통일시키고 남으로는 말레이에 진출하며 라오스는 완전히 통합시키는 등 빠르게 뻗어나갔다.

1774년부터는 북부의 버마 세력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1776년에는 치앙마이 지역의 란나 왕국을 영구히 통합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탁신 대왕은 버마의 공격을 물리치고 아유타야를 통합하고 라오스, 캄보디아를 다시 식민지로 만드는 쾌거를 누렸으나, 안타깝게도 말년에 정신병에 걸려 부처로 자칭하고 포악한 정치를 펼쳐 강제로 구금되었다. 이 반란은 탁신의 친우이자 탁신 대왕과 함께 정복 전쟁을 펼치던 프라야 차크리 장군에 의해 정리되고 그가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다. 유폐되었던 탁신 대왕은 반란 와중에 살해당했다. 차크리 장군이 세운 왕조가 현 시암의 왕조로 지금 왕조는 짜끄리 왕조, 라타나코신 왕조, 방콕 왕조 등으로 불린다. 라마 1세로 즉위한 프라야 차크리는 탁신 대왕의 정복전쟁을 이어나가고 1782년에 수도를 톤부리의 차오프라야 강 건너편인 방콕으로 이전했다. 이 때 아유타야 지역의 폐허에서 자재를 운반하여 건설함으로써 방콕이 아유타야를 대신하는 수도를 의미를 명확히 하였다.

라타나코신(차크리) 왕조의 성립

라마 1세의 시기 시암의 영토는 더욱 확장되어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완벽한 속국이 되었고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한 란나 왕국도 복속되어 자체적으로 영토회복을 할 수 있었으며 버마와의 전쟁에서 비록 테나세림의 탈환에는 실패하였지만, 이후 이어진 보도파야의 14만 4천명 규모의 5개 방면으로의 침공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라마 1세 때의 영역은 그 이전 최대 규모였던 나레수언 시기의 영토 확장을 능가하는 것으로써, 명실상부한 동남아의 패자의 위치를 재구축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라마 2세, 라마 3세 시기에도 탁신 대왕과 라마 1세 시기만큼의 영토 확장은 아니었으나 계속되어서 시암의 라마 3세의 사망 무렵 시암의 영토는 현대 시암제국의 영토와 비슷한 경계선을 구축하게 된다. 이 당시에 시암은 라마 1세 말기부터 라마 3세 초기까지의 전쟁으로 베트남을 굴복시켰고, 이 지역의 총독으로 응우옌 가문의 푹 키에우를 임명하였다. 또한 1815년에는 시암이 보르네오 섬의 모든 지역을 장악하고, 크룽텝의 황실에서는 기존의 시암왕국에서 시암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라마 4세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1827년 영국군이 버마를 공격한 후 시암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을 믿은 위앙 찬의 차오 아누의 공격은 순식간에 진압당해 위앙 찬은 철저히 파괴되고 라오족들은 메콩 강 서쪽으로 강제이주 당했으며, 1836년 베트남에게 합병을 당했던 캄보디아의 저항운동을 지원하여 1845년에 다시 독립시키고 캄보디아를 시암의 강한 영향력 하에 둘 수 있었다. 하지만 라마 4세가 즉위하면서 제국주의의 물결을 맞닥뜨리게 된다.

라마 5세, 시암의 아버지

라마 9세의 할아버지인 라마 5세 출랄롱콘 대제는 시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는 왕이다. 해외에서는 라마 대왕이라고도 불렀다. 1905년에 노예제를 폐지하고, 교통망과 법체계를 선진화하는 등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하여 특별히 돋보였다. 이러한 개혁적 성격은 그가 서구식 교육을 완전하게 이수한 최초의 시암 국왕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처음 즉위했던 1868년에의 나이는 15세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섭정을 맡겼다. 이후 성인이 된 1873년부터 섭정을 그만두고, 직접 통치를 통한 개혁적 추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도적으로는 추밀원과 내각평의회, 재무부를 신설했다. 물론, 이러한 개혁에 대한 귀족의 저항도 적지 않았으나, 그가 추진한 유학 장려를 마치고 돌아온 세력이 복귀하자 저항은 곧 수그러들었다. 그는 국가 제도를 비롯한 문화에 이르기까지 서구적인 개혁을 선호했다. 왕자들에게는 정부의 요직을 맡기는 동시에 유럽 파견을 통해 선진 제도와 문화를 도입했다.

라마 5세 출랄롱콘 대제는 이에 보르네오 섬의 칼리만탄 지역을 영국에게 이양하고, 미얀마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영구적으로 포기, 싱가포르는 1900년부터 99년 동안 영국이 조차하기로 하였으며, 베트남 남부 지역의 프랑스로의 이양도 이어졌다. 이것이 그 유명한 대나무 외교이며 이 정책을 통해서 시암제국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라마 5세는 라마 3세가 전쟁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세의 침입 또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당시 위협적인 두 국가는 프랑스와 영국이었는데, 이 둘 사이에서 대나무 외교를 펼쳤다. 과거 루이 14세부터 이어져 온 프랑스와의 관계 덕분에 같은 편이라고만 생각했던 프랑스는 어느덧 가장 위협적인 국가가 되었다. 이런 프랑스로부터의 위협을 막기 위해 영국을 끌어들이고, 또 영국이 우세할 때에는 프랑스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아 독립을 지켰다.

현재 크룽텝의 두싯 지역은 1897년에 라마 5세가 만든 것으로, 유럽의 양식과 태국 풍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라마 5세는 유럽에 대한 동경이 각별하여, 지식인과 왕족의 유학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혁명의 바람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플랙 피분송크람의 몰락

초고도 성장의 시대와 현재

  1. 굵은 글씨는 각 계열의 종주국이거나, 독립된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다 또한 세계국가회의에도 공식적으로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