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후소 제국


Fuso title.png

일본어: 神聖扶桑帝国
영어: Sacred Fuso
신성 후소 제국
후소제국 국기.png 후소제국 국장.png
국기 국장
표어 帝国永久なるべし
제국은 영원할 것이다
국가 신대봉축가
수도 도쿄도(東京都)
정치
공용어 일본어(日本語)
천황(天皇) 키요히토
태정대신(太政大臣)
의정대신(議政大臣)
판무대신(判務大臣)
휴우가 신지로
타테야마 와타루
시가 카즈나리
역사
정부수립  
 • 천황제 복고 (겐무 신정) 1333년
 • 메이지 신정 1868년
 • 쇼와 유신 1947년
지리
면적 414,108㎢
내수면 비율 0.79%
시간대 UTC (UTC+9(도쿄표준시), UTC+8(서부표준시))
DST 없음
인구
2016년 어림 158,379,040명
2017년 조사 158,382,044명
인구 밀도 382.47명/㎢
경제
GDP(PPP) 2017년 어림값
 • 전체 6조 5273억 9917만 9372$
 • 일인당 41,213$
HDI 0.896
통화 후소 엔 (SFY)
기타
ISO 3166-1 392, SFS, SF
도메인 .sf
국제 전화 +81


신성 후소 제국(일본어: 神聖扶桑帝国, しんせいふそうていこく 신세이후소테이코쿠[*], 영어: Sacred Fuso)은 동아시아의 후소 열도와 타이완 섬, 그리고 그 부속 도서 6,800여 개를 영토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서쪽에는 1969년 부산 조약을 통하여 독립국의 지위를 회복한 조선공화국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러시아 연방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1947년 쇼와 유신을 통하여 천황을 절대 권력자로 하는 흠정 헌법이 제정된 이후로 신성 후소 제국의 정치 체제는 바뀌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국가의 사회 통제가 국제 사회로부터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도는 도쿄도(東京都)이며, 국기는 일장기, 국가는 신대봉축가(神代奉祝歌), 공용어는 일본어이다. 사용 문자는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이다.

국호

후소(扶桑)이라는 명칭은 최초에는 중국의 고대 전설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산해경은 동방의 바다 가운데에 흑치국이 있으며, 그 북쪽에 후소라는 거대한 나무가 있고 바로 그곳이 태양이 나오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정사 24서중 하나인 양서(梁書)에서는 후소의 위치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왜국의 동북쪽 3천여 킬로미터에 문신국 (文身国)이, 다시 그 동쪽 5천여 킬로미터에는 대한국(大漢国)이, 다시 그 동쪽 8천 7백여 킬로미터에 비로소 후소국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면, 후소라는 나무는 거대하고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 그 지역에 많이 자라는 나무로서 나라의 이름의 유래가 된 것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후소국에서 왔다고 주장했던 케이신이라는 이름의 승려가 한 증언에 의한 것이고, 다른 사서와의 교차 검증 과정에서도 각국의 명칭과 위치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고대와 중세의 후소에서 스스로 이 명칭을 최초로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것은 죠간(貞観) 원년, 즉 859년의 일이다. 이 명칭을 사용한 것은 주로 외교관계에서 내지는 대외적으로 중국을 의식하고 쓴 한시나 불교와 관련해 언급할 때였다. 이후 고다이고 천황은 그 전까지 사용되던 왜(倭), 일본(日本) 등의 명칭을 모두 후소(扶桑)로 대체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이후에도 이 명칭이 정착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다만, 후소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여전히 일본어(日本語)로 불린다.

역사

고대

후소의 고대 시대를 언제까지로 여겨야하는 지는 학자에 따라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무가적 봉건제가 시작된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이전까지를 고대로 칭하는 의견이 대세이다. 후소 열도에 현생 인류가 도달한 것은 대략 4만년 전, 구석기 시대로 추정된다. 후소의 신석기 시대는 새끼줄 무늬의 토기와 토우가 발굴된 점에서 착안하여 조몬 시대라고 칭하고, 이 시기에 해수면이 상승하며 네 개의 큰 섬 등으로 이루어진 현재 후소 열도의 모양이 거의 완성되었다.

기원전 3세기 경에는 한반도와 중국대륙 남부호부터 인구가 유입되며 논농사가 시작되고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도입되었다. 또한 그로 인해 발달한 기술과 증대된 생산력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대규모 사회 집단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야요이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시기의 유물이 최초로 발견된 곳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기원후 3세기 경부터 400여년 정도의 기간은

중세-근세

신성 후소 제국의 역사에 있어서, 중세와 근세는 가마쿠라에 막부가 설립된 시기로부터 에도로 천도하기 이전까지의 기간이라고 여기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인 의견이다. 고다이고 천황이 약화되어가던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한 겐무 신정시기부터 에도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를 '교토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겐무 신정의 개혁 조치로 가마쿠라 시대의 봉건제는 소멸했으나, 기존의 무사 계급 중 다수는 토지 소유권을 바탕으로 여전히 권력을 유지했고,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와 어느정도 권력의 균형을 이루었다. 에도 시대에는 상인 계급이 성장하며 민권이 성장했으며, 이와 함께 중앙 정부의 권력이 보다 강해졌다. 이를 통해 천황, 무사 계급(귀족), 서민(상인) 간의 상호 견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의 민중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으며, 수 차례 대기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잇키'라고 불리우는 농민 봉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며, 인구수는 17세기에는 폭증한 반면 18세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근대

대체로 메이지 신정으로부터 제 1차 괌 조약까지의 시기를 이른다. 이 시기에 신성 후소 제국은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빠른 근대화를 이루어 냈으며, 곧 타이완과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등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국 측에서 참전하여 태평양과 중국의 동맹국 점령지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후 전간기의 세계적 호황과 식민지 경영을 통하여 국력이 신장되었고,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 보통선거제가 도입되어 의회정치가 활성화되는 한편 사회 전반에 자유주의적 풍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30년대 초에는 관동군이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였고, 이내 후소의 괴뢰 정부인 만주국이 수립되기에 이른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37년에는 중화민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부중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사회는 급격히 군국주의화되었고 점령지에 대한 수탈이 심해졌다. 이어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방공협정을 체결하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하게 된다. 후소 군부는 나아가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 1차 괌 조약의 체결로 후소가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또한 이 조약의 내용에 따라 부중전쟁 역시 점진적으로 종결되었고, 후소는 인도차이나와 중국의 점령지를 상실하였다.

현대

정치

전체 정부 조직

후소 제국 정부의 조직도.

후소 제국의 정부 조직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주제 정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제국 정부는 외견상 행정, 입법, 사법의 세 분야로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분야의 최종 결정 권한은 오로지 천황에게 집중되어 있다. 제국 정부의 주요 구성원은 아래와 같다.

직명 이름
천황 키요히토
태정대신 휴우가 신지로
대납언 히로모리 타케히코
외무대신 아베 유노스케
내무대신 무네타니 마사미
대장대신 아키야마 타카시
사법대신 무라타 사부로
문부과학대신 세키야마 타케오
상공대신 카와무라 미치코
농업환경대신 토야마 하지메
보건후생대신 이케다 마유코
삼군참모대신 도요타 쿠니모리
의정대신 타테야마 와타루
판무대신 시가 카즈나리
육군 장군 이노우에 고로
해군 제독 카시와기 히로스케
공군 막료장 야마고시 요시히코

국방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미합중국 다음으로 강한 수준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2017년의 국방비는 GDP 대비 무려 3.6%에 달해 약 2350억 달러에 이르렀으나, 대체로 평시에는 3.0% 내외를 유지하는 편이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국방비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중국의 분열과 그에 따른 안보 위협이 있다.

자연환경

지방과 행정구역

경제

외교

민족

전통적으로 후소인은 규슈 북부와 긴키 지방을 중심으로 한 문화를 발달시킨 야마토(大和) 민족과 동일시되어 왔으나, 후소 제국에는 야마토 민족, 조선 민족, 류큐 민족, 아이누 민족, 니브히 민족, 오로치 민족 등의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고 있다. 이 외에도 규슈 남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던 쿠마소 민족과 하야토 민족이 있었으나, 이들은 이미 고대 국가 건설 과정에서 소멸 및 융화되어 야마토 민족에 흡수되었다.

사회

신성 후소 제국의 사회는 국제 사회로부터 억압적인 사회로 평가받고 있다. 좌파 계열의 사상은 대체로 탄압받으며, 종교 역시 일본 신토와 불교 이외에는 간접적인 억압으로 인하여 극히 미미한 세력만을 가지고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잘 보장되지 못하여, 언론 자유 지수는 집계된 이래로 최하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여성 문제나 성 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는 비교적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편에 속한다.

문화

신성 후소 제국의 문화는 문학, 음식, 게임 및 애니메이션 등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7세기를 전후로 한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처음 유럽에 직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