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센 도

신센 도(일본어: 新川部)는 신센 막부의 거점지이자 타이난 공화국 신센 시대에 수도를 말한다. 다키우에 미노루(高上実縷)가 수도를 난세이 도(南背部)로 옮기기 전까지 약 130년 간 타이난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행하였다.

개요

신센 도는 신센 막부를 개창한 미나미 이노시타(南衣囊下)가 왕정막부를 개창하면서 기존의 불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거점지의 필요성을 느끼고서는 평범한 정착지의 불과했던 신센 켄(新川縣)을 '도'(部)로 승격한 것이 시초이다.

막부의 정치 구심점이었던 신센 쇼(新川城)는 교토(京都)의 헤이안쿄(平安京)를 본따 동서 남북으로 긴 외성을 건축한 뒤 바깥은 조카마치(城下町)를 형성하고 성내 북쪽에는 왕궁을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신켄 쇼 조성 이후 130 여년이 지나는 동안 신센 쇼는 여러 차례 모습이 바뀌었는데, 중대한 계기는 미야카미의 난(宮上の乱)으로 발생한 난리통에 신센 쇼 전체가 민란으로 인하여 막무가내로 훼손되면서 손실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타이난인들이 아는 신켄 쇼의 건축물들도 이때 화를 면치 못했다. 서서히 성이 재건되긴 했지만 예전같이 복구할 만한 역량이 모일지 않자 성은 남북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오늘날 성의 남쪽인 미나미토미치(南土道) 일대에만 사람이 거주하고 북쪽의 타카세미치(高世道)는 논밭으로 전락하였다.

이랬던 신센 도를 다시 부흥시킨 인물이 미나미 토코야마(南床山) 쇼군인데 토코야마는 성을 정비하는 한편 외성 경계에 추가적으로 토성을 쌓았다. 이때의 성곽은 정방형의 신센 쇼와는 달리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이다. 수도를 신센이라고 부르던 것을 그대로 가져와 이 성곽 안쪽을 신중(新中), 바깥을 신외(新外)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개척사들을 모아 개척사 거리인 카이타쿠미치(開拓道)를 형성한 것도 그의 지시에 따른 것.

신센 시대 말기의 신센 도는 문화 및 정치 중심지로서 대도시의 위상을 유지했다. 일본 통선사 일행으로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에는 에도(江戶)보다도 번화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