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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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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는 세라쿠스 성역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 세계관: 메이사/알헤나 | 문서 제작자: 리반 | 분류: 국가/설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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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k=메이사/알헤나
메이사/알헤나
Astrum Imperium
Universae Imperium apud Seracus Ratio
아스트룸 제국
세라쿠스 성역내 보편 제국
C.A 4C.A 423
Flag of Asturm Empire.png Coat of arms of Asturm Empire.png
국기 국장
표어 Requiescat in pace.
편히 잠들기를.
수도 유스툼 유디키움
Justum Judícĭum, C.A 26~C.A 126
테라 상타
Terra Sancta C.A 126~C.A 432
정치
공용어 보편 아스트룸어
정부 형태 원수정전제군주정
제국 황제[1] 아스티니스 1세
Astinis I, C.A 26~C.A 45
루키스 엘라누스
Lucis Helionus, C.A 342~C.A 381
직권 집정관[2] 루시우스 아우르키스
Lucius Aurcis, C.A 67~C.A 81
입법 아스트룸 보편의회
Universaeconcílĭum Astrum
역사
 • 세라쿠스 성역전쟁 C.A 4년 ~ C.A 26년
 • 평화의 도래 C.A 45년 ~ C.A 115년
 • 황제독재정 확립 C.A 121년 ~ C.A 167년
 • 혼티누스 반역 C.A 321년 ~ C.A 344년
 • 남북 세라쿠스 성역분열 C.A 432년 6월 7일
기타
국교 아스트룸 에클레시아
Astrum Ecclésĭa
통화 아스트룸테르티우스
Astrumtertius
  1. '임페라토르'(Imperátor)로 불리며, 평화의 도래 이전까지는 '레그눔렉스'(Regnumrex, 종신직)라는 칭호를 겸임했다.
  2. '콘술리스 오르디우스'(Consules Ordius)라고 불린다.

아스트룸 제국(보편 아스트룸어:Astrum Imperium) 혹은 '세라쿠스 성역내 보편제국'(보편 아스트룸어:Universae Imperium apud Seracus Ratio)은 세라쿠스 성역(보편 아스트룸어:Seracus Ratio)을 중심으로 하여 유지된 우주 제국(보편 아스트룸어:Spatio Imperium)을 말한다. 세라쿠스 성역전쟁 이후 임페라토르 아스티니스 1세(보편 아스트룸어:Imperátor Astinis I)가 '세라쿠스 성역의 황제'로서 즉위한 이후, 우주력(보편 아스트룸어:Cosmonis Annus) 432년 남북 세라쿠스 성역 분열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제국 수도는 테라 상타(보편 아스트룸어:Terra Sancta)이며,[1] 주변 성역 내로 이른바 아스트룸 문화권(보편 아스트룸어:Astrum Culturam Sphaera)을 형성 및 전파하면서 제국 분열 및 해체 이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개요

우주력 26년에 공식 성립된 아스트룸 제국은 인류 보편 사회에 의거된 인류 중심 국가(보편 아스트룸어:Humana-Sitas Terraia)로서 분류된다.[2] 단편적으로 제국에서 공용어로 사용되던 보편 아스트룸어(보편 아스트룸어:Universae Astrumilicus)는 과거 지구 정부(보편 아스트룸어:Civitatis Terraia)가 채택한 행성 통합어인 라틴어(보편 아스트룸어:Latine)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과 제국의 확고한 문화와 사회 체제의 모습이 지구 정부의 문화와 매우 닮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아스트룸 제국은 형식적인 왕정만을 표방하여 군주인 임페라토르(보편 아스트룸어:Imperátor)를 중심으로 '콘술리스 오르디우스'(직권 집정관)(보편 아스트룸어:Consules Ordius)가 이끄는 제국 내각(보편 아스트룸어: Ministerium Astrumus)과 제국 보편의회(보편 아스트룸어:Universaeconcílĭum Astrum)가 중앙 정치를 이끌었으나, 평화의 도래 시기 이후에 시작된 대규모 군벌 성행과 지방 분열이 가열받던 시점에서 제국 내각제국 보편의회로 구성된 중앙 정권이 단일화된 정책을 펼치지 못한 채 사실상 직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당시 제국의 군주였던 레오트라키스 2세(보편 아스트룸어:Leothracis II)를 중심으로 한 황제파성역 연합함대를 통해 혼란을 잠재우고 황제 독재정(보편 아스트룸어:Imperátorautarchy)을 확립하면서 제국 중기부터 전제정이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국명

국명인 '아스트룸 임페리움'(보편 아스트룸어:Astrum Imperium)은 보편 아스트룸어로 '불멸의 제국'을 의미한다. 세라쿠스 성역전쟁 시기에는 공식적으로 '아스타르메디아'(아스타리에어:Astarmedia)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림뷔르베르펜 전투(보편 아스트룸어:De bello Limburwerpen) 이후 지구 정부에 맞서 '단일한 우주 독재 정권에 맞서 무너지지 않겠다.'라는 구호에서 해당 국명이 유래된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외에 C.A 37년에 제국 보편의회에서 채택한 '세라쿠스 성역내 보편제국'이라는 명칭도 제국 관공서와 공문서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지구 정부 중심의 '단일 인류 국가' 수립에 대해 저항하는 한편, 비인류 세력권과 이들 문화에 동화된 이들에 대해서는 포용적 면모를 보이고 있는 '보편 국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3]

지구 정부[4]에서는 아스트룸 제국을 '인류의 기치를 부정한 괴뢰국'이라는 혹평을 하면서 여전히 '단일 인류 국가 수립'을 기치로 하는 정책을 펼쳤다. 또, 지구 정부는 여러 번 아스트룸 제국 침공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 한 경우가 있으나, 무력 행위를 통한 제국 침공에 대해 많은 정책가들과 고위직들이 회의심을 가지고 포기함에 따라 사실상의 실현은 포기되었으며, 이후에는 아스트룸 제국이 남북으로 분열됨에따라 이론만으로 그쳤던 본 침공 계획을 부분적으로 실현시킬수는 있었다. 비인류 연맹(보편 아스트룸어:Aliena Foederatio)에서는 '제2의 인류제국'(보편 아스트룸어:Secundum imperium Humanum est)으로 부르기도 했다.[5]

국기와 국장

Vexillum of Astrum
Flag of Asturm Empire.png
보편 아스트룸어 Vexillum Felicitatem
동방어 繁榮旗, 번영기

아스트룸 제국의 국기인 번영기(보편 아스트룸어:Vexillum Felicitatem)는 일반적으로 흑백으로 구성된 삼색기 중앙에 제국의 국장이 있는 것을 말한다. 관공서를 비롯한 행정 기관에서는 보통 국장을 새긴 국기를 사용했으며, 일반 제국민들은 국장이 없는 삼색기를 주로 사용했다. 삼색기로 된 기반은 과거 지구 정부에 맞선 민중 중심의 혁명적 기치를 뜻하며, 국기의 흑백은 각각 '우주의 모습'과 '순수한 이성'을 의미한다. 국기 중앙에 위치한 국장은 '복된 삶과 축복받은 별'을 뜻한다. 제국 내에서 사용되던 상선기, 상징기 등은 대체로 번영기를 변형한 형태인 경우가 잦다.

역사

아스트룸 제국사
C.A 4 ~ C.A 423
세라쿠스 성역내 보편 제국
지구 정부
(A.D 23세기 ~ A.D 2411)
아스타르메디아 분리운동
(A.D 2408 ~ A.D 2411)

우주 식민지연합
(A.D 2406 ~ A.D 2411)
세라쿠스 성역 자치운동
(A.D 2411 ~ A.D 2418)
세라쿠스 성역 연맹
(A.D 2415 ~ A.D 2418)
세라쿠스 성역전쟁
(C.A 4 ~ C.A 26)
타르폰 전투, 림뷔르베르펜 전투
(C.A 8), (C.A 12)
전기 제국기
(C.A 26 ~ C.A 121)
평화의 도래
(C.A 45 ~ C.A 115)
전기 제국 붕괴기
(C.A 115 ~ C.A 213)
황제 독재정 수립기
(C.A 121 ~ C.A 167)
제국 중흥기
(C.A 167 ~ C.A 213)
제국 쇠락기
(C.A 213 ~ C.A 423)
클라우스 도미나투스 체제
(C.A 245 ~ C.A 287)
쿠데타 시대
(C.A 290 ~ C.A 321)
제국 멸망기
(C.A 321 ~ C.A 423)
혼티누스 반역
(C.A 321 ~ C.A 344)
제국 남북 분열
(C.A 423)

아스트룸 제국의 성립은 '단일 인류 국가'와 '인류 우선주의'에 의거된 지구 정부 중심의 우주사회 사상을 정면에서 부정하게 되면서 시작된 저항-분리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초기 수립 과정에서 대다수의 지도자들이 주장한 '보편 공화국'(보편 아스트룸어:Universae Publiclum)의 수립은 무산되었으나, 그 의지와 일부 사상적 측면에서만큼은 제국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제국 중기부터 확고하게 잡힌 전제군주정(보편 아스트룸어:Absoluta Monarchia)에서도 부분적 공화주의 사상종족 평등 사상인류 우선주의에 대항하는 대표 사상으로서 제국 학자들에 의해 상당부분 보존될 수 있었다. 이것은 훗날 남북 세라쿠스 성역분열에서 공화파(보편 아스트룸어:Publicia Demes)와 청색파(보편 아스트룸어:Caeruleum Demes)들에 의해 다시끔 우주사회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국가 사상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아스타르메디아 분리운동

국제 연합을 대신하여 초국가적 통합 기구로 변모된 지구 정부가 우주 개척에 중심이 되는 워프(보편 지구어:Warp) 기술 개발을 위해서 음의 에너지 밀도(보편 지구어:Negative energy density) 연구 과정에서 발견된 이종물질(보편 지구어:Exotic matter)을 활용하여 스페이스 엔진을 개발, 이른바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보편 지구어:Alcubierre drive) 워프 기술을 안정적으로 성공 및 상용화시킴에 따라 그동안 워프 기술 개발에 사용되던 천문학적인 에너지 비용과 이용하기에 어려웠던 막대한 위험 감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6][7]

지구 정부는 그동안 시간과 투자에 제약된 채 억눌려 왔던 우주 개발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음으로서 여러 우주 정책 수렴 과정에서 박차를 가할 수 있었고, 인류 내에서 엄선하여 선발된 약 80만 명의 식민지 예비 정착민들을 통한 우주 식민원정(보편 지구어:Space colonial expedition)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8] 당시 지구는 이미 태양계를 비롯한 근처 외부 항성계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으나,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적합한 행성을 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지구 내에서도 드론, 인공지능에 개발과 이에따른 인류를 향한 부작용, 걷잡을 수 없이 피해를 주던 변이 자연현상들은 더이상 인류가 지구 안에서의 삶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기에 이르렀기에 워프 기술의 대대적인 상용화는 인류에게 한줄기의 빛을 선사했던것이나 다름없었다.

2차례에 걸친 우주 식민원정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자, 본격적인 우주 이주 정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지구 정부에 독선적인 행태에 대해 반발하던 저항가들과 범죄자들이 이주 정책의 중심이 되었으나, 나중에는 일반 시민들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도 그 이주 혜택이 차례차례 적용되었다. 이로서 지구 정부는 인류의 모성인 지구를 주축으로 한 강대한 우주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지구 정부에 혜택을 받는 우주 식민지들은 빠른 산업화를 일구어내어 우주 내에서 지구 정부의 영향력을 확대시킨 반면에, 지구 정부에 대항하던 저항가들과 범죄자들이 이주한 행성에 대해서는 이러한 혜택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서, 우주 식민지간의 기술 격차는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9]

이런 과정에서 지구 정부는 더 넓은 우주 지역으로의 탐사를 통해 인류와는 다른 비인류 지성체과의 접촉이 가능해짐에 따라 우주 생물학을 비롯한 연구/기술적 측면에서 극도의 변혁이 일어났다.[10] 지구 정부는 향후를 운명을 결정지을 인류 우선주의인류 선민주의를 내세워 '인류를 제외한 모든 지성체들은 인류의 영도 아래 존속해야 한다.'는 표어를 들어 지구 정부에 입맛에 맞게 진화와 개발을 반복, 억제, 종속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구 정부의 정책은 전인류적으로 반향을 일으켰으며, 절대 다수의 종족 평등주의 사상을 추구한 사상가들과 일부 시민들, 심지어 이를 암묵적으로, 혹은 표면적으로 지지하는 고위직들에게조차 상당한 반감을 일으키면서 위기를 겪게 되었다, 지구 정부는 이들을 지구 정부가 통치하는 우주 식민지 권역 내에서도 가장 변경에 위치한 외딴 행성, 아스타르메디아(보편 지구어:Astarmedia)로 유배형을 보내게 되었다.

아스타르메디아에 도착한 이들은 이전에 정착해 있던 인류와 빠르게 동화하면서 반지구주의(보편 지구어:Anti-Globalism)를 내세우게 되었다. 이들은 주변의 지구 정부에게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던 비혜택 식민지들과의 빠른 교류와 협력을 갖추어 나름대로의 우주 항공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구력 기준, 서기 24세기에 이르게 되었을쯤에는 지구 정부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상당 부분 따라잡을 수 있었으며 지구 정부 역시 이를 눈여겨 보면서 이들의 교류-협력을 방해하거나 지속적으로 억압 정책을 펼쳤다.

허나, 지구 정부의 적은 외부의 아스타르메디아를 비롯한 변방 우주 식민지만이 아니었다. 지구 정부를 이루던 동방 연합(보편 지구어:United Eastern States(U.E))과 태평양 연맹체(보편 지구어:Pacific Federation(P.E))간의 우주 식민지 운영 및 향후 우주 무기 기술에 대한 생산 및 활용 기술을 두고 대립이 이어졌다. 이러한 대립은 태평양 연맹체에서 먼저 시작된 핵전쟁에서 지구 내분은 가속화 되었으며, 결국 지구 내에서의 인류 문명은 붕괴되었고 더이상 지구는 인류를 비롯한 다수의 생물들이 살수 없는 황폐한 행성으로 변모하였다. 살아남은 지구 정부는 황급히 을 새로운 지구 정부의 거점지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우주 식민지들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세워진 인류항로국(보편 지구어:Ministry of Humankind fairway)을 조직, 우주 식민지 관리에 대한 총괄권을 맡게 되었다.

우주 식민지에 대한 총괄권을 위임 받은 인류항로국우주 식민지간의 대립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한편, 식민지간의 협력을 분쇄시키기 위하여 온갖 권모술수를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시리우스-안드로메다 분쟁이 있었으며 이들 분쟁은 지구 정부에 숨은 의도를 모른 채 더욱 격화되었을 뿐이었다. 오직 이러한 의도만을 파악했던 곳은 아스타르메디아였으며, 아스타르메디아는 비밀리에 규합했던 우주 식민지들의 대표자들끼리 접촉하여 보다 공고한 협력 체계를 위해 우주 식민지연합(보편 지구어:United Colonies of Space)의 창설을 선언했다.

지구력 2408년, 우주 식민지연합아스타르메디아를 중심으로하여 본격적인 지구 정부 저항 운동에 나설 것을 선포했다. 지구 정부와 은중에 지구 정부를 지지하는 일부 식민지, 혜택 식민지는 우주 대표 회의를 개최 및 만장일치로 아스타르메디아를 주축으로 한 반정부운동에 대한 진압을 개시할 것을 결의했다. 다만, 지구 정부핵전쟁지구의 몰락을 겪은지 그리 오랜 시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 한번의 전쟁에 대한 다수의 시민들의 생각은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또, 지구 정부군에서의 비대한 우주군의 비질서적 운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구어지기도 했으나, 당시 지구 정부 세력권 내 모든 언론이 관제화되면서 금세 사그라들었다.

한편, 급속도로 비대해진 인류항로국은 급기야 지구 정부군까지 간접적인 운용에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상 인류 항로국에 의해 조종받는 지구 정부는 공공연히 우주 식민지연합지구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제3 비주류 식민지들을 의도적으로 억압하고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우주 식민지연합에게 더욱 지구 정부를 타도할 정당성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지구 정부우주 식민지연합 양측에 합류하기 어려운 비주류 식민지들은 이러한 지구 정부에 억압과 만행에 진저리를 느끼면서 더욱 우주 식민지연합에 가담하고 협력하기 시작했다. 인류항로국의 이러한 식민지 억압과 권모술수를 통한 식민지간의 대립 정책은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이에 지구 정부우주 식민지연합 내에서 가장 동떨어진 외곽 행성, 칼라우스(보편 지구어:Calaus)를 선제타격하면서 본격적인 아스타르메디아 분리운동이 시작되었다. 사실 우주 식민지연합지구 정부가 많은 착복과 부정부패로 얼룩지었더라도, 강대한 지구 정부군의 존재로 인해 지구 정부를 향한 타격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전면적인 개전에 대해 무리라고 생각했기에 직접적으로는 '반 지구 정부 및 타도 운동'을 내세웠을지라도 실상은 '우주 식민지연합의 자치 혹은 독립 운동'의 숨은 의도로서 개전하였으며, 분리운동 과정에서도 다수의 우주 식민지연합의 대표자들은 지구 정부와 물밑 교섭을 진행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허나 이러한 물밑교섭은 큰 진전을 보이질 않았으며, 지구 정부군은 파죽지세로 우주 식민지연합의 수도성이었던 아스타르메디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우주 식민지들은 지구 정부군의 공세로 인해 전의를 상실했으며, 결국에는 아스타르메디아의 대표이자 우주 식민지연합의 의장이었던 김한(보편 지구어/동방어:Kim Han, 金翰)[11]은 정식으로 지구 정부에게 항복할 것을 선언함으로서 지구력 2411년 4월, 아스타르메디아의 분리운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12]

세라쿠스 성역 자치운동

아스타르메디아 분리운동이 실패로 끝나가면서 우주 식민지연합에 가담했던 비혜택 식민지, 비주류 식민지들은 지구 정부 더욱 거세진 탄압과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이들 식민지들 중 일부에서는 여전히 산발적인 저항 운동이 벌였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지구 정부군에 하나둘씩 진압되고는 했다. 특히나 승리에 도취되었던 소수의 지구 정부군은 일부 식민지들에 대한 약탈과 학살을 거듭하면서 '도살꾼'이라는 악명이 붙으면서 혜택 식민지들을 비롯한 지구 정부 지지자들 조차도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탄압과 착취에 시달리던 다수의 식민지 내에서는 지구 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의지와 투철한 정의심으로 다시끔 힘을 합하기 시작했다.

세라쿠스 성역의 중심 식민지 행성인 유스툼 유디키움(보편 아스트룸어:Justum Judícĭum)의 행정 장관이었던 툴리우스 아스티니스(보편 아스트룸어:Tulius Astinis)는 우주 식민지연합의 구 대표자들과 제2차 저항 운동을 계획할 것을 논의했다. 그는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하여 지구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혜택 식민지에서의 지구 정부를 향한 선동과 내란을 주동했으며, 지구 정부군을 탈영한 반역 군인들을 받아들이고 이를 세간에 알리면서 지구 정부를 적극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지구 정부를 옹호하던 관제 언론들조차도 지구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으며, 시민들은 지구 정부에 군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지구 정부군을 향한 대대적인 부정부패 색출과 군비 감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구 정부군 내에서도 잦은 하극상과 소요 사태가 끊이질 않음에 따라 혼란은 가중화되었다. 이에 더이상 지구 정부에 몸을 담아두기 어려웠던 양심적인 고위층, 식민지들에게 동조하던 군 간부들은 유스툼 유디키움을 향한 도피로 이어지게 되었다.

가장 먼저 유스툼 유디키움에 발을 들인 인물은 지구 정부군 소속의 제6함대를 이끌고 망명을 했던 티에린 발렌티누스(보편 아스트룸어:Tierin Valentinus)였다. 그는 툴리우스 아스티니스와 접선하여 지구 정부와의 전쟁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를 거친 뒤 이를 실행에 거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전쟁 발발 당시에도 세라쿠스 성역군의 총사령관으로서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14][15] 티에린 발렌티누스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많은 군 지휘관들과 기술자, 고위층의 망명 및 협력은 식민지들의 2차 저항운동의 불씨를 앞당기게 되었다.

툴리우스 아스티니스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2차 저항운동의 실패를 예감하고서 이번 저항운동을 통해 자치권을 획득하는 선으로의 계획으로 그쳤으나, 지구 정부에서 망명해 온 행정, 산업 개발 등에서의 고급 인력들을 비롯하여 일부 군 지휘관들이 이끌고 온 함선들은 지구 정부군에 대항할 세라쿠스 성역군(보편 아스트룸어:Seracus Ratio Militum) 조직하는데 기반을 마련하게 되면서 지구 정부로부터의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2차 저항운동의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여타 식민지들에게도 전달되어 성역 전쟁 발발 이전까지 중립적 태도를 보였던 이들 식민지들이 개전 후 빠른 속도로 식민지 독립파에 협력하는 양상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지구 정부는 많은 고급 인력들과 함대들이 유출되는 일이 벌어지던 와중에도, 이전의 선례를 생각하여 걷잡을 수 없이 자만감에 빠져들었으며, 일선에 나선 병력들의 관리마저도 손을 놓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구 정부의 행태에 진절머리를 앓은 일부 선량한 고위층과 시민들은 문드러질때로 문드러진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기 위한 구상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곧 신정부파(보편 아스트룸어:Novus-Gubernatio Demes)라는 이름으로 조직 및 체계화되면서 세라쿠스 성역군과 협조하게 되었다.

세라쿠스 성역전쟁 및 종결

우주 식민지연합지구 정부의 선전포고 이후 했던 첫번째 작업중 하나는 지구력이라는 명칭을 대체할 중립적인 용어인 우주력이라는 통합된 역법 질서로서 고정적인 달력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세라쿠스 성역은 지구 정부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우주력을 공인된 단일 역법 체계임을 선포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표면적인 대립만을 표방했던 세라쿠스 성역-지구 정부간의 분쟁은 격화되었다. 우주력 공인에 대해 지구 정부가 '과거 지구 정부를 위협했던 반역 세력을 연상시킬 행동을 엄격히 금하라.'라는 포고문을 보냈으나, 세라쿠스 성역과 여타 비주류 식민지들이 이러한 포고를 무시하자, 식민지 반역이라는 죄목을 들고 이들 식민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아스타르메디아 분리운동이 종결될지 대략 5년만에 다시끔 식민지와 지구 정부간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아스타르메디아 분리운동이 당시 우주식민지 연합의 국력적 측면에서의 한계와 타 식민지들의 비협조적 행태로 몰락했던 것이라면, 이번 세라쿠스 성역전쟁지구 정부의 명분 잃은 전쟁을 규탄하던 많은 식민지들이 세라쿠스 성역에 가담하게 되었고, 국력면에서도 세라쿠스 성역은 망명한 지구 정부군 소속의 함대들과 함께 자체적인 우주 군함들을 생산해낼 수 있는 산업 기반을 마련했다는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기에 이전의 분리 운동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심지어 지구 정부군은 유능한 장교진들을 대거 정치 숙청과 망명으로 잃어버림에 따라 만성적인 군 인력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것은 곧 전략적, 정책적 측면에서의 지구 정부군이 할수 있는 행동이 극히 제한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기에는 이런 전쟁 상황에서의 지구 정부는 어느정도 우세를 갖추었기에 전쟁의 기간은 길어지면서 장기전의 양상을 보였다. 허나, 점차 지구 정부군이 개전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군의 질적, 양적 수준에서 앞서고 있던 것을 타르폰 전투(보편 지구어:Battle of Tarpon)를 기점으로 하여 수많은 연패로 이어지면서 지구 정부군의 전선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으며, 지구 정부와 식민지간의 길고 긴 분쟁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는 림뷔르베르펜 전투로 인해 지구 정부는 더이상 식민지 연합에 맞설 저항심을 완전히 잃음과 동시에 기존의 지구 정부 내 기득권층은 신정부파에게 와해되었으며, 새로이 신정부파로 구성된 시리우스 정권은 공식적으로 세라쿠스 성역을 비롯해 비혜택 식민지, 비주류 식민지에 대한 독립을 보장하는 시리우스 선언을 통해 세라쿠스 성역전쟁은 발발한지 22년만에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16]

성역 전쟁의 종결 이후 세라쿠스 성역을 사실상 하나의 통일된 독립 세력으로 고안한 툴리우스 아스티니스를 비롯한 다수의 건국 공신들은 '하나의 단일화된 정치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법 아래의 영도'를 근거로 한 보편 황제의 지위를 갖춘 임페라토르를 주축으로 한 제정 체제를 고안하였다. 이런 단일화된 우주 정치 체제는 이전에는 없었으나, 이후에는 많은 우주 정치사상에 영향을 줄 하나의 기준점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었다.[17] 이에 세라쿠스 성역에 독립을 이끌어낸 최대 공신이었던 툴리우스 아스티니스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추대로 우주력 26년, 임페라토르 지위에 오르면서 과거의 로마 제국을 떠오르는, 범우주적 보편 제국의 첫 탄생을 알리게 되었다.

제국의 수립과 전기 제국의 형성

툴리우스 아스티니스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추대로 합법적인 전제 지위에 오른 것은 맞으나, 그것이 1인 독재의 기틀을 제공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아스티니스 자신조차 역시 전제군주로서의 노력을 보이는 기미가 없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임페라토르라는 지위는 평화의 도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습이 가능한 종신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18] 이것이 초기 제국을 이끄는 원수정(보편 아스트룸어:Principatus)의 모습이었다. 공식적으로나 형식상으로 임페라토르제국 보편의회(보편 아스트룸어:Universaeconcílĭum Astrum)의 승인과 허울뿐인 제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서 추대되었으며, 후계자 지명에 있어서도 보편의회의 승인은 필수불가결적이었다. 이렇듯 일부 부분 공화주의자들이 예견했던대로 '황제의 역할은 권력을 내세우는게 아닌, 권위를 앞세워 제국을 단결하는 것'이라는 원칙 아래 행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누그러진것은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제국 혼란기를 거친 후였다.

제국은 곧장 시리우스 정권을 '지구 정부의 유일한 합법적 정권'으로 인정하였으며, 지구 정부의 잔존 패잔병들과 기득권층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분노를 쏟아부었다. 우주 해적의 경우에는 시리우스 정권과 공동 군사 행동을 통해 점차 해결해 나갔으며, 시리우스 선언으로 독립과 자치를 획득한 주변 세력과는 불필요한 대립을 줄이는 한편, 온건한 중립 외교 노선을 지향하였다. 이것은 제국 세력권 외부의 분쟁에 대한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는 의미로서, 초기 제국의 불확실한 단일 체제를 위해서는 어느정도 필요했던 외교 정책이기도 했다.

전기 제국 시기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스스로 한계선을 갖춘 속주와 자치체제'였다. 평화의 도래 이후로 이러한 체제의 심각성이 노출되면서 제국의 첫번째 혼란을 야기하는데 원인을 제공한 제국의 실책이기도 했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불필요한 제국 중앙 정부의 지방 간섭은 도리어 단일 체제를 힘들게 일구어낸 제국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기도 했던 상황에서 가장 온건한 지방 정책으로서 각광을 받았으며, 이는 후대의 우주 제국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 부분이기도 했다. 또, 제국의 방임적 지방 행정제도는 제국 민중의 의사를 최대한으로 반영하는 부분이기도 했기에, 포퓰리즘적 성격을 띄면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점이기도 했다.

아스티니스 1세의 뒤를 이어 임페라토르를 세습한 그라티시누스(보편 아스트룸어:Graticinus)는 제국의 지방 행정체제를 구상하는 방안에서 수도 지위를 갖춘 유스툼 유디키움제국 보편의회와 황제 본인이 가지는 일부 속주를 제외하고서는 제국 중앙 정권에 대한 충성과 군사력 제공을 바탕으로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이른바 신봉건제(보편 아스트룸어:Novus-Feudalism)의 성립을 추진했다.

신봉건제원수정에 의거된 전기 제국 사회는 지구 정부의 몰락 이후 분열된 우주 사회를 지탱하는 단일 우주 제국으로서의 아스트룸 제국을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국가 요소로서 반영되었다.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받은 속주자치주들와 제국간의 쌍무적 의무/권위 관계는 평화의 도래 시기에 절정을 맞이했고, 이것은 곧 전기 제국의 쇠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제국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해결할 것을 나타내는 기로를 의미하기도 했다.

기술적으로는 정보 기술이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는데, 항성계와 항성계간의 통신 체제의 기반을 이룩하게 되는 고궤도 통신정거장(보편 아스트룸어:HPO CSS)이 개발되면서 당시 신봉건제 사회에 문제점으로 부각되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연락 체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연락 체계를 양식화하게 된 궤도 프로토콜(혹은 궤도 통신 규약)은 범은하 사회에 부각되던 제도선상의 프로토콜(혹은 제도선상 통신 규약)의 시초가 되었다.[19]

평화의 도래 시기

제국의 혼란과 분열

황제 독재정 확립과 중흥기

클라우스 비테파우스 재위기와 쿠데타 시대

제국의 쇠퇴와 반란기

제국의 남북 분열과 보편 제국 해체

정치

아스트룸 체제 변혁
Transmutatio autem in Respublica Alaniae Meridianae
철인 제정(아카데메이아주의)
Academiasm, Philosophernus
참주정(황제권위정)
Tyrannus
도미나투스 체제(전제군주정)
Dominatus

전기 제국 사회에서는 고전 지구 사회에서 상당한 철학적, 사상적 영향을 끼친 플라톤(보편 지구어:Plato)의 이상향과 그 기조를 부분적으로 따르는 철인 제정(보편 아스트룸어:Philosophernus) 지지론, 즉 아카데메이아주의(보편 아스트룸어:Academiasm)가 대두되었다. 이들은 "황제(임페라토르, 레그눔렉스)를 중심으로 한 이상적 참주정[20]의 실현"을 목표로 하였으며,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이성적 계급'[21]을 만들어냈다. 이런 계급사회를 고안한 아카데메이아주의자들은 제국 중앙정계의 핵심적 요소인 제국 보편의회제국 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학식과 이성을 갖춘 통치자 계급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국방의 의무를 지닌 이들은 수호자 계급, 그외에 전문성을 갖춘 기술자와 제국을 지탱하는 생산자 계급으로의 구분을 요했다.

철인 제정의 실질화는 4대 황제, 엘라세베루스(보편 아스트룸어:Elaeverus)에 이르러 적극 논의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엘라세베루스 황제는 혈통적 황위 세습의 단절과 황제의 책무를 이행할 적합한 인재를 선출하기 위하여 이른바 '제국 탁아청'을 설치한 뒤 철저한 능력 중심 성장을 통해 황위를 이을 책봉자를 몰색토록 하는 것으로 '전문 황제'를 육성토록 하였다. 이렇게 책봉된 전문 황제들이 통치하던 시기를 제국의 '평화'를 가져왔다는 의미로서 평화의 도래라고 불렀다. 평화의 도래 시기에는 전기 제국 체제가 다져지는 것과 동시에 전기 제국의 몰락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런 '전문 황제' 양육은 아르카디우스 1세(보편 아스트룸어:Arcadius I)가 종족 평등주의와 지나친 능력 위주 사회에 따른 건국 이념과의 대립을 이유로 폐기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철인 제정은 점차 퇴색화되는 것과 동시에 제국 각지의 지방 정부를 겨냥한 쿠데타와 군벌 세력의 득세로 인해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제도로의 체제 변혁을 이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즉 황제 독재정 혹은 참주정(Tyrannus)이 제국 전역의 대두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며, 전기 제국의 혼란으로 강력한 통치를 희망하던 민중들은 황제의 중앙 정권 장악을 적극 지지한다는 부분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황제 독재권에 강화를 바탕으로 클라우스 비테파우스 황제는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부분 공화주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던 제국을 향하여 '황제 전제정'을 내세우면서 1인 통치 체제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허나 클라우스 비테파우스가 내세운 도미나투스 체제, 즉 1인 통치 체제는 그가 사망하면서 주도권이 훼손된채 붕괴되었으며 연달은 중앙 정권에 대한 쿠데타와 급작스럽게 진행되던 허울뿐인 황제들의 즉위와 폐위로 인해 이전 전기 제국의 혼란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제국의 쇠락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는 혼티누스 반역으로 극에 달하기 시작했으며, 확고했던 황제의 권위와 권력은 추락하여 이른바 '궁중 암투의 자리'로 변모하였다. 통일 아스트룸 제정의 마지막 황제였던 마우르쿠스(보편 아스트룸어:Maurcus) 재위 동안 공화파청색파를 위시한 범-공화주의자들과 제정주의자간의 사상적 대립과 분열은 남북 세라쿠스 성역분열로 이어지면서 통일 제정 사회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황제

평화의 도래 이전까지 아스트룸 제정의 황제는 '군사 통수권자'를 의미하는 임페라토르(보편 아스트룸어:Imperator)와 국가 종신직인 '국왕'을 의미하는 레그눔렉스(보편 아스트룸어:Regnumrex)가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이에따라 황제는 '임페라토르'로서 '아스트룸 체제의 권위와 최고 명령권자'임을 밝힘으로서 표면적 국가원수임을, 그리고 '레그눔렉스'로서 '정부 수반'의 의미를 통한 제국 행정부의 수장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허나 평화의 도래 이후의 전기 제국의 혼란을 맞닥뜨리면서, 황제는 '레그눔렉스'의 실질적 권력과 그 권위가 손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신봉건제 체제에 따른 황제와 그 행정부의 제한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상황에서 '레그눔렉스'로서의 지위를 고집하기에는 여러모로 지적이 있었을 뿐더러, 덕성과 민중을 대변하는 '레그눔렉스'의 직책을 겸임할 시에는 '임페라토르'에 의한 평시 최고 집권 체제에 활용성이 사실상 무용지물로 변모한 상황이었기에, 이러한 점을 지적한 레오트라키스 2세가 '임페라토르'의 직책만을 황제의 직권으로서 인정하여 전제 체제의 기반을 쌓은 후로, 황제들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왕권에 대해서도 오직 해당 지위에 대해서는 세습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절대권을 손에 놓을 수 있었다.

클라우스 비테파우스는 '임페라토르'에 의거된 확고한 세습전제권을 바탕으로 이른바 체제 개혁을 통해 황제의 지위와 권위를 이른바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형식상으로나마 진행되던 '직권 집정관'의 조언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됨은 물론이며, 치세 도중 폭력 및 의무 수행 과정에서의 방해에 대해 최고형을 집행할 수 있는 신성불가침권, 제국 보편의회의 주요한 권리 중 하나였던 외교 인준권을 획득함에따라 '삼권체제'를 이룩하게 되었다. 이는 황제의 권위,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직권 집정관

직권 집정관(보편 아스트룸어:Consules Ordinarii)은 제국 행정부와 정무기관의 최고 지위이며, 위에서 언급된 황제의 군권과 통치권을 '대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직권 집정관의 가장 주요한 권리는 황제에 대해 절대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러한 조언 과정에서 황제는 직권 집정관에 대해 어떠한 인격적/신체적 침범을 가해서는 안되었다. 또한 집정관은 제국 보편의회를 '보편의회 의장'으로서의 소집이 가능하며, 보편의회에 대한 질서를 담당하고 기타 사무를 감독했다.

평화의 도래클라우스 도미나투스 체제를 거치면서 직권 집정관의 권리와 권위는 매우 훼손되어 사실상 방치되는 직책으로 변모하게 되었으며, 제국 말기에는 트라비누르와 직권 집정관의 직책을 겸임하여 황제에 대항할 의회 수호에 대한 권리와 실질적 평시 군사 행위에 대한 권리를 손에 넣음으로서 통일 제정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형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혼티누스 반역의 사례가 있다.

제국 보편의회

제국 보편의회(보편 아스트룸어:Universaeconcílĭum Astrum)는 황제의 권위와 권력에 대해 '합법'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아스트룸 인민의 주권기관이었으며, 또한 제국 보편의회는 황제가 공포한 정책에 대해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음은 물론, 타국과의 외교적 행동에 대한 전면적인 권한을 행사할 뿐 아니라, 황제의 지위에 대한 절차와 적법성을 통해 일시적으로 권력을 '대행'할 수 있는 최종 입법기관이기도 했다.

제국 보편의회는 직권 집정관과 비슷한 형태로서 제국 말기로 갈수록 그 권위와 권력이 훼손되면서 사실상 형식적 의결기관에 준하는 성격으로 변질되었다. 이 시기에는 공화파청색파를 위시한 세력들의 합법적 대항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제국의 분열을 야기하는데 일조하게 되었으며, 포퓰리즘 성격의 제국 말기 정당정치의 핵심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프렉토르와 트라비누르

프렉토르(보편 아스트룸어:Prector)는 황제 및 보편 의회 속주를 제외하여, 신봉건제에 기인된 원거리에 위치한 행성들의 군 통솔권, 행정권, 재판권의 광범위한 권리를 인정받은 직책이었다. 이들은 중앙 정치 체제의 불간섭과 일정한 조세 및 품목을 조달하는 대신에 그들의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또한 해당 직책을 세습할 수 있었고 이들의 후손들이 다시 중앙 정치에 개입을 하면서 후기로 갈수록 귀족 정치와 암투가 성행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전기 제국 시기에는 세라쿠스 성역 전쟁에서 활약했던 건국 공신들이 속주를 통치했기에 중앙 정권에 대해 복종 및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평화의 도래 이후에는 이러한 유대 관계가 극히 멀어졌고, 중앙 정권의 권위 약화로 사실상의 반독립 체제를 이루며 제국의 안정을 훼손시켰다. 클라우스 비테파우스 황제의 중앙 행정화 체제 개혁 중에 하나로,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속주 관세권이 철폐되어 성계 단위로의 무역로가 활성화되고, 중앙 정부의 적자 재정이 흑자로 변화함에 따라 세력이 크게 약화되기도 했다.[22]

제국 전역이 실시간으로 기술의 혜택을 모두 공유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프렉토르의 통치에 따라 행성의 기술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일부 프렉토르들은 자신의 가족 및 그 측근들에게만 암암리에 퍼지던 개조 과학 기술[23]과 우주 단위의 각종 지식들을 누리는 혜택을 받은 반면, 행성 거주민들은 과거 태양계지구 시절에 있었던 퇴폐적, 전근대적 사회에 머무는 경우도 있었다.[24]

쿠르시스 락티움

제국 내각

군사

성역 연합함대

성역 예비전단

행성 방위군단

지역 자치전단

지방 행정

황제/보편의회 속주

자치주

종교

우주 식민지 시절과 초기 아스트룸 제국은 지구 정부에 영향을 받은 구종교의 영향이 막강했으나, 아폴로코스 칙령(보편 아스트룸어:Edictum Apolocos)을 통해 제국민들의 종교적 자유가 폭넓게 인정됨에 따라 비인류 종교가 제국 내에서 세를 늘리거나 유입되는 등의 다채로운 종교 문화가 발달하기도 하였으며, 각 지역의 전통 신앙이 한데 융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제국 쇠락기클라우스 도미나투스 체제를 거치면서 황제의 권력이 공고화된 후기 전제정부터는 황제와 황가 일원을 제국 전역을 관통하는 신적 존재임을 강요하는 등 황제 1인 독재 체제를 위한 정치적 산물로 변질되기도 했다.

허나 종교의 국가화, 단일화는 그만큼 종교가 가지는 영향력의 힘을 이용하여 사회체제의 보호 장치의 역할을 행사함으로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건설하고자 했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록, 클라우스 비테파우스 황제 이후로 후임 황제들이 이러한 역할의 중추가 되는 종교 문화 제도를 공고화하는데에는 사실상 실패하였으나, 여전히 단일화의 명맥을 갖추었던 후기 종교 문화는 사회적 권위와 권능, 절대적인 의미로서 후기 제국 사회에 전반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임페라토르 쿨투스

'임페라토르 쿨투스'(보편 아스트룸어:Imperátor Cultus)는 이름 그대로 '황제 숭배'를 말한다. 황제 독재정의 확립을 기반으로 하여 절대 군주이자 신적 존재임을 표방하였던 클라우스 비테파우스 황제는 체제 개혁 과정에서 제국의 종교를 크게 2가지로 분류화하였다. 하나는 전제정을 공고화할 변질된 정치적 산물인 '황제 숭배'였으며, 다른 하나는 기존 종교들의 융합적 형태인 아스트룸 에클레시아였다. 이외에 분류의 대상이 되지 못한 비주류 종교들은 모두 말살하였다.[25] 클라우스 비테파우스는 황제 숭배를 거역하는 이들 일부를 본보기로 처형하면서 종교 정책의 단호함을 보여주었으며 제국 종교국을 설립하여 암암리에 퍼져있는 비주류 종교들의 신앙 활동을 철저히 검역하는 한편, 임페라토르 쿨투스 혹은 아스트룸 에클레시아로의 개종을 적극 권장토록 했다.

아스트룸 에클레시아

사회/문화

아스트룸 제국은 보편 제국이자 우주 제국이며, 지구 정부를 대신하여 인류-비인류 공동체 사회를 부분적 측면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관철해낸 인류 중심 국가이기도 했다. 우주 문명 척도에서 사실상 유일한 항성-은하 진출 기술을 습득한 인류였기에 유지될 수 있었던 제국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만큼 후대에게 시사하는 점이 컸던 아스트룸 제국은 사회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에서도 후대를 위한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26]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이 깊숙히 자리잡고있다.

반-특이점 사회

이미 오래전 지구 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기술적 특이점(보편 지구어:Technological Singularity)을 맞닥뜨린 인류는 이른바 '기술이 기술을 만든다'라는 법칙에 얽매여 인간의 자기실현과 주체적인 삶을 사실상 배제한 채, 인공지능 중심의 폐쇄 사회로 이끌어지는 경험을 한 바 있다. 비록 이러한 기술적 특이점을 통하여 인류는 우주 사회의 본격적인 진출을 결심하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지만, 여전히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지구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낀 이들도 많았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초기 우주 식민원정에 다양한 의도 가운데 '인공지능에 의해 빼앗긴 인류의 주체적 삶을 회복하자'를 구호로 한 인본주의자들의 입김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지 오래였다.

이러한 부정적인 특이점 인식은 초기 철인 제정을 주장했던 아카데메이아주의자들중에서도 강력히 대두되었다. 대표적인 전기 제국의 철학자였던 게오르에 비트미어(보편 아스트룸어:Geore Vitmeer)는 기술적 특이점과 인공지능 사회에 대해 "인류는 이미 겪어왔다. (기술적 특이점이 야기한 퇴보된 사회를) 두 번 이상 겪을 이유까지야 있겠는가."라고 답하면서 인류 사회가 다른 유사인류 혹은 기술적 특이점에 의해 잠식되는 경우를 경고하였다. 이러한 반-특이점 인식의 사회는 제국이 최종적으로 분열되는 시기에 이르는 수백년의 기간 동안에도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다. 후기 제국의 사상가이며 《영원론》으로도 유명한 타오 라흐디예(보편 아스트룸어:Tao Rachdiye) 역시 제국 사회가 고도 사회에서 특이점 사회로 이행되는 변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자 하는 사회적 경향에 대해 "영생적 삶을 추구할 수 있으면서도 이를 바라지 않으며, 타의적 삶을 욕구하면서도 이루지 않는, 이러한 역행적 행위들은 마땅히 존경과 칭송을 누려야 할 제국의 이성적-주체적 경향"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허나 가장 큰 문제점은 제국이 이러한 반-특이점 사회에 대한 과도한 애착으로 인하여 기술적 측면에서의 발전이 사실상 정체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레이먼드 레이 커즈와일(보편 지구어:Raymond Ray Kurzweil)과 같은 1세대 특이점주의자(보편 지구어:Singularitarian)들이 "기술적 특이점을 거치게 될 경우, 인류로서는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없고, 모방할 수 없는 기술적 복잡성을 띄게 된다."라고 얘기했던 바처럼, 제국의 상당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수백년간 과거 지구 정부 시기에 사실상 기술적으로 완성화되었던 기술들을 모방하고 개량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른바 수확가속의 법칙(보편 지구어:Law of Acce lerating Returns)에 의거하여 필연적으로 기술적인 쇠퇴 상황을 거듭할 수밖이 없도록, 제국 사회가 자초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반-특이점 사회가 아스트룸 제국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다. 시리우스 조약을 통해 행성 독립을 선언한 뒤에 과거 지구 정부와 같이 기술적 특이점을 통한 기술 진보에 적극적이었던 스타우라오스 제1공화정(보편 아스트룸어:Primi Res publica Stauraos)은 단순직 외에도 전문 직종까지 인공지능으로 대체함에 따라 평등을 기초로 하던 사회 체제 유지에 실패하였으며, 기득권층은 이를 방종하면서, 최종적으로 사회 붕괴와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 케이스였다. 유토피아적 사회라는 공상적 생각하에 기술적 특이점이 야기한 수많은 산재된 문제에 대해 제국의 많은 현실주의적 학자들은 "기술적 특이점에 대한 낙관성이, 인류와 지성체에 대한 나태와 몰락을 이끈다."라는 주장이 상당한 신빙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에 기인되지 않은 것일까 한다.

같이보기

우주 제국 지위의 계승
Spatio Imperium
없음
(사실상 지구 정부)
[! 1]
아스트룸 제국
Astrum Imperium
콜랍수시아 제2제정
Secundi Collápsusia Imperium
[! 2]
  1. 초기 우주시대에는 우주 제국이라는 개념과 정의가 없었거나 그 지위를 산정하기에 모호했으나, 아스트룸 제국 이후로 이러한 개념과 정의가
    어느정도 체계화됨에 따라 지구 정부를 '부분적 우주제국'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2. 아스트룸 제국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면서 군사적 성과를 거두는데는 성공했으나, 다문화권 융합에는 실패하면서 '부분적 우주제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스트룸 시대 세력도
메이사/알헤나, Meissa-Alhena
아스트룸 시대 세력도
Flag of Asturm Empire.png
아스트룸 제국
Astrum Imperium
Flag of Primi Res publica Stauraos.png
스타우라오스 공화국
Res publica Staur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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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 합중국
United of Sola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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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티츠 독립국
Independent State of Ortiz

각주

  1. 건국 초기부터 황제 독재정 확립 이전까지의 시기인 C.A 26년~C.A 126년은 유스툼 유디키움(Justum Judícĭum)이 수도의 역할을 행해왔다.
  2. 다만, 지구 정부와 같은 단일 인류 국가 혹은 인류 우선 국가와는 다른 개념이다. 주류 종족으로서 인류가 국내 종족 비율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다. 비인류에 대한 차별적 정책을 공공연히 우선시하거나 이를 적극 이용하는 인류 우선주의에 대해서는 제국 중앙 정권 차원에서 엄격히 규제하고 처벌하고 있다.
  3. 실제로도 제국 중앙 고위직에 오른 비인류 출신의 인물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전기 제국 혼란 당시에 활약한 제3 성역함대 사령관이었던 루겐 하이지엘 에스타 라덴(Lugen Hizel Esta Laden) 등이 있다.
  4. 시리우스 정권 붕괴 이후에 성립된 이른바, 태양계 합중국(보편 지구어:United states of Solar System, USSS)을 의미한다.
  5. 제1의 인류제국은 당연히 지구 정부다.
  6. 당대에도 알큐비에레 드라이브 기술을 이용한 우주 개척이 활용되었으나, 위에서 언급된 문제점들로 인해 우주 개척을 위한 지구 정부의 정책에 적극 활용하기에는 어려웠다.
  7. 다만, 초기에 스페이스 엔진이 상용화 되던 시기에는 냉동수면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우주 식민지 개척에 나서는데 치중하였던 상황이라, 큰 각광을 받지는 않았다.
  8. 냉동수면 기술을 활용하던 초기 우주 팽창 과정에서는 그나마 현실성 있는 태양계 주변의 화성금성, 등을 비롯한 고체 행성에서 패러테라포밍(Paraterraforming) 수준에 그치는 것이었다.
  9. 지구 정부에 대한 저항 운동과 제국 수립의 첫 단추를 채웠던 아스타르메디아 역시, 이러한 비혜택 식민지 중 하나였다.
  10. 이를 통해 비인류 지성체의 표피를 비롯한 표본 연구가 가속화되어 지구 내 생물 기술만으로는 커버하기 어려운 의학, 생명학 등에서 장족의 발전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11. 이름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지구 정부내 민족 구성체계 내에서 동방 민족으로 분류되는 '한족'(韓族)계 우주식민지인 출신이었다.
  12. 이때 책임을 통감한 김한은 항복 선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 정부의 유배 행성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택하게 되었다.
  13. 이때의 학살극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 군인들은 이를 폭로하거나 자결함으로서 우주 전역에 지구 정부군의 만행을 알리기도 했다. 단편적으로, 타우로스 행성 학살에 연루되었던 식민지군 사령관, 빅 우르 중령은 "더이상 군인은 시민을 지키는게 아닌, 시민을 공격하는 존재가 되었다."라는 한탄과 함께 자결하면서 큰 여파를 주었다.
  14. 그는 세라쿠스 성역전쟁 종전 이후에 주요 요직에 발탁되어 제정 확립에도 일선에 나선 공로가 있어 건국 공신으로 인정받았으며, 아스티니스 1세가 그에게 하사한 제국 식민지는 발렌티누스 가문이 세습 통치하게 되었다.
  15. 그가 이끌었던 제6함대는 성역 연합함대 편제화를 통해 제1 성역함대의 물적, 인적 기반이 되었다.
  16. 우주력 12년에 일어난 림뷔르베르펜 전투 이후로 사실상의 지구 정부군과의 전면적인 전투는 없었으나, 우주 해적들과 연계한 일부 잔존 병력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C.A 26년까지 전쟁을 벌인 것으로 기록되었다.
  17. 실제로도 아스트룸 제국의 '원수정 체제와 이후의 중기 제정'은 우주 역사학우주 정치학을 연구할때 필수적으로 거론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18. 이때에는 임페라토르로 불리기보다는 종신직을 의미하는 레그눔렉스(Regnumrex)로 불리는 경우가 잦았다.
  19. 지구 정부의 항성계 집권 시기에는 이러한 통신망 체제를 구현하는 대신, 별도의 성계 연락선을 이용하여 통신 체제를 활용해 왔다. 이러한 구시대적인 통신이 꽤 오랜 기간 유지해온 이유는, 아스타르메디아 분리운동을 기점으로, 식민지 행성들의 협력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20. 이후에 전기 제국이 몰락하는 상황을 거치면서 황제의 전제정치가 확고화되어가는 참주정(Tyrannus)와는 의미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여기서 언급되는 '참주'는 권위를 앞세운 이성적 통치자를 의미하면 후자의 참주정에서 정의하는 '참주'는 '폭군 혹은 전제통치자'를 의미한다.
  21. 물론 이런 계급제는 제국 사회의 종족 평등주의만민주의를 전면에서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닌, 형식상의 계급사회를 통한 계급간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여 효율적인 국가 통치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22. 이외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진행된 은하국민주의에 따른 절대제정과 국가주의에 대한 로망에서 비롯된 코스모 르네상스의 진행, 변방 속주들에게 압박을 가하던 외계 광전사, 우주 해적들에 대한 간섭도 한몫했다.
  23. 아래 단락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제국은 공식적으로 '반-특이점 사회'를 지향하기에 기술적 특이점을 통해 개발된 지식ㆍ기술의 상용화 및 이용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24. 심지어는 그러한 속주 행성들 내부에선 성역 단위로의 인류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못하고 신의 노여움이나 외계인으로 치부하는 일도 잦았다.
  25. 그는 지독한 전제 체제 확립에 나선 인물이기는 했으나, 초기 종교 정책을 살펴보았을 때, 종교가 국가 통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리라는 늬앙스의 발언을 한 기록과 실제로 도미나투스 체제 초반에는 비주류 종교들의 활동을 묵인했던 것을 근거로하여 그의 종교적 색채가 매우 옅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철저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수립하고 몰락하는 제국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함이었다고 추정된다.
  26. 긍정적인 것로는 그동안 고등 생명체를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인류비인류 고등 생명체와의 접점이 생기면서 종족평등주의가 실질적인 가시화를 이루는데 영향을 주었다. 반대로 부정적인 것으로서는 여전히 인류 종족을 비롯하여 '지상문명'에 대한 우월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른바 외계해상문명 등에 대해 환경적 맥락을 고려치 못한 채 그 수준이 고등 문명에 어울리지 않다는 인식을 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