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다 아키히데 (安田哲秀, 1943년 1월 20일 ~ )는 아키시오의 전 정치인, 교수로, 개혁당 소속으로 1992년부터 1996년 당대표 사임시까지 아키시오의 총리를 지냈다.

아키시오 공산당 출신이나, 공산당의 끊임없는 계파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현실성 있는 진보, 지속 가능한 사민주의 정책 등을 주창하며 개혁당을 창당하였다. 창당 당시만 하더라도 야권 분열을 주도하였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개혁당 또한 박스권에 머무를 것이라는 예상을 받아왔으나, 신페이 내전을 계기로 이탈한 국민당 성향 유권자,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집권에 성공한다.

현역 최다선인 10선을 기록한 현재는 개혁당의 상임고문이며,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는 나오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생애

이야기거리

  • 집권 여당의 당 대표, 총리 등을 맡아왔고 현역 최다선이라는 점 때문에 기자들의 많은 공격과 취재를 받아, 여러 말실수가 기사를 타기도 했고. 대표적으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본어: そういうこともあるし、そうじゃないこともあります) 혹은 줄여서 그럴 수도 있고…… (일본어: そういうことも...). 1992년 민주개혁당 합당 선언 기자회견 당시, 사회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당의 방향성이 변화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당내 지도부 및 구성원과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변을 한다는 것을 저런 식으로 답해버리는 바람에, 반대파로부터 '간을 본다'고 하여 "간잽이" (일본어: 塩加減物 시오카겐모노[*])라는 멸칭이 생기게 되었다. 더욱이 악센트가 심한 억양으로 유명한 미야하라 방언을 사용하다보니, 국회에서의 그의 발언이 회자되는 일이 유별나게 많다.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1271B5> {{{#ffffff 연도}}} ||<#1271B5> {{{#ffffff 선거 종류}}} ||<#1271B5> {{{#ffffff 소속 정당}}} ||<#1271B5> {{{#ffffff 득표수 (득표율)}}} ||<#1271B5> {{{#ffffff 당선 여부}}} ||<#1271B5> {{{#ffffff 비고}}} || || 1972 || 국회의원 총선거 (후지시로 도 제4선거구[1]) ||<#828282> 무소속 || 10.3% || 낙선 (3위) || || || 1976 || 국회의원 총선거 (후지시로 도 제4선거구) ||<#F90000> 공산당 || 17.0% || 낙선 (3위) || || || 1980 || 국회의원 총선거 (후지시로 도 제4선거구) ||<#498C00> 개혁당 || 45.3% || 당선 (1위) || [2] || || 1984 || 국회의원 총선거 (후지시로 도 제4선거구) ||<#498C00> 개혁당 || 51.2% || 당선 (1위) || [3] || || 1988 || 국회의원 총선거 (후지시로 도 제4선거구) ||<#498C00> [[개혁당 (아키시오)|<span sty

  1. 하나바 구 일부 지역. 아키시오 신칸센 기준 이남 지역에 해당하며, 국회의사당이 있다.
  2. 초선.
  3. 재선. 민주당과 단일 후보로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