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일본 내전
날짜1928년 6월 16일 ~ 1928년 9월 26일
장소일본 제국 (신한국) 일본 제국 도쿄부 주변
결과

일본 제국의 붕괴

교전국
일본 제국 (신한국) 질서파 일본 제국 (신한국) 통제파
지휘관
일본 제국 (신한국) 마쓰이 이와네 일본 제국 (신한국) 나가타 데쓰잔
병력
일본 제국 (신한국) 51,000명 일본 제국 (신한국) 27,000명
피해 규모
사망자 3,000여명
실종자 13명
부상자 13,000여명
사망자 12,000여명
실종자 5,000여명
부상자 3,000여명

제1차 일본 내전(일본어: 第一次日本内戦 다이이치지니혼나이센[*]) 혹은 군부 전쟁(일본어: 軍部戦争 군부센소오[*])은 1928년 6월 16일9월 26일 사이에 황도파로 대표되는 질서파통제파 간의 싸움으로 일본 제국이 붕괴되게한 원인이다.

같은해 6월 4일에 발생한 황고둔 사건의 주동자인 고모토 다이사쿠의 처분에 대한 군부대 의견 대립인 고모토 사건에 의해 촉진되었으며, 6월 15일 발생한 도쿄 쿠데타로 인해 발생했다.

전쟁 기간 동안 소규모 전투가 도쿄부 근처에서만 발생했으나, 그 과정에서 국회의사당 폭사 사건쇼와 천왕을 비롯한 황가 구성원들이 통제파 급진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이에 대한 질서파도쿄 포격으로 인해 도쿄부가 수도의 기능을 갖추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버리기까지 하였다. 또한 도쿄 쿠데타 직후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을 비롯한 친왕들까지 살해해 황가 혈육이 끊기면서 제국이 붕괴되게 된다.

배경

1928년 6월 4일, 관동군 소속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가 봉천 군벌의 지도자인 장쭤린 암살을 시도한 황고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일본과 봉천 군벌 간의 관계는 완전히 깨져버렸고, 이에 대해 독단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고모토 다이사쿠 대좌를 처분하게 된다. 이때 일본 제국 육군은 그를 예비역에 편입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낼려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마쓰이 이와네와 그의 의견을 따르는 황도파 장교들과 의회와의 의견대립으로 인해 고모토 사건통제파황도파-의회 간의 대립으로 커지게 된다.

결국 고모토 대좌는 군법회의에 회부되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통제파6월 15일, 도쿄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도쿄 쿠데타) 쿠데타가 발생하자 여러 부대가 도쿄를 이탈하여 질서파로 뭉쳤으며, 다음날에 결국 내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진행 과정

통제파는 내전 발발 하루만에 도쿄부를 점령하고 쇼와 천황을 인질로 잡았다. 황도파가 중심이 된 질서파는 이 때문에 도쿄부 내부로 진입하지 못한체 기다려야 했다.

8월 12일, 동북역치로 손을 잡은 봉천 군벌국민정부의 지원하에 한국 광복군일본령 조선에서 조선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며, 삽시간에 조선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 이에 9월 3일, 질서파일본 제국의 대표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부산 조약을 체결하여 일본령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통제파들은 국회의사당을 폭파시킨다.

국회의사당 폭파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인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갈망하던 도쿄 시민들이 9월 10일, 폭동을 일으켰다. (도쿄 폭동) 폭도들은 다음날에 황거까지 침입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황거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결국 9월 13일, 황거에서 폭도와 통제파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으며 결국 다음날에 황거는 통제파가 점거한다.

황거를 재검거한 통제파 중 급진주의자들이 쇼와 천황을 비롯한 천황 일가족들을 살해하면서(쇼와 정변) 통제파 내에서도 갈등이 발생한다.

쇼와 정변으로 쇼와 천황과 그의 일가족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질서파에게 전해들어갔고, 9월 17일, 이들은 도쿄를 포격한다. 도쿄 포격으로 인해 도쿄부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통제파의 방어진지 또한 큰 타격을 입는다. 9월 19일, 도쿄 전투가 발생하였고, 7일간의 전투 끝에 통제파의 항복으로 내전은 종료된다.

결과

천황의 혈육이 끊기게 됨으로써 일본은 민주국으로 변하게 되었다. 수도인 도쿄부가 포격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거기에다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결국 1928년 10월 1일, 나고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조선 독립전쟁으로 한반도에는 독립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독립전쟁으로 관동군 또한 격파되면서 일본 군국주의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내전을 일으킨 통제파 수뇌부는 항복후 할복하였으며, 몇몇 살아남은 자들은 재판없이 바로 처형되었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