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티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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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테니아 제1 공화국
First Ziktenia Republic
파일:Ziktenia First Republik.png
국가 정보
존속 기간 1863년 ~ 1887년
정부 형태 대통령제 공화국
표어 자유여, 그대 앞에 이름 부르리라.
(Libe, Ahi'l Call uo Beforel uo.)
공용어 지크테니아 어
역사 정보
지크테니아 독립 혁명 1861년 ~ 1863년
제1 공화정 수립 1863년 4월 29일
코슈탈로프 분쟁 1879년
니아틸렌 제국의 침공 1887년
그외 정보
어림 인구 약 2,831,423 명
현재 국가 지크테니아 공화국

지크테니아 제1 공화국(영어: First Ziktenia Republic)은 현재의 지크테니아 공화국에 위치하여 존속했던 공화정 국가이다. 정식 명칭은 "자유의 지크테니아 공화국"이었으며, 1861년에 시작된 폴리티나비아 대분열로 인한 폴리스트니아 연방의 해체로 지크테니아 지역의 통치권이 공백화되자, 이에 지코르 아르벤이 이끄는 독립군의 노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면서 건립되었다. 이후 1887년에 니아틸렌 제국의 침공에 의하여 공화정은 붕괴되었다.

독립 배경

1861년에 비롯된 폴리티나비아 대분열은 연방 체제의 붕괴에 큰 증폭제로 작용하였다. 당시 연방의 국왕이었던 엘릭헨 2세의 무능력한 수습과 대책으로 연방 국민들은 분노하였고, 당시 연방 정부의 안일한 정책은 연방 국민들을 고통에 시달리게 했다. 이에 대분열을 시작으로 연방을 이루던 수많은 연방 국민들은 각각의 "민족 국가 수립"을 외치면서 궐기하였고 이에 연방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엘릭헨 2세가 해외로 도피하면서 연방은 막을 내렸다. 이때, 연방 정부의 뒤를 이어 구 연방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버샬 왕국은 버샬 민족을 중심으로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방해하고 압력을 가했다. 소수민족들은 버샬 민족에 압재에 대항했으나, 수적으로도 물적으로도 밀렸기에 쉽사리 그들만의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에 역량이 부족했다.

지크테니아 독립 혁명

버샬 왕국은 명목상 구 연방의 전 지역을 통치했으나, 지크테니아 지역에서의 만큼은 큰 영향력을 행사치 못했는데, 이는 다른 소수민족들이 각각의 수많은 지역들로 분산되었던 모습과는 다르게 지크테니아 지역에서의 지크테니아 토착 민족이 약 80%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강대한 세력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샬 왕국은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왕국의 종속될 것을 요구하였고 지크테니아 인들은 이에 대항하고자 지크테니아 독립정부를 수립하였다. 독립 정부 수립에 분노한 버샬 왕국은 대규모의 징병령을 내려 지크테니아를 무력으로 합병할 것을 감행하였다.

이때, 지크테니아 독립정부에서 육군 총관직을 지냈던 지코르 아르벤마샤오카 전투에서 버샬 왕국군을 전멸시킴에 따라 지크테니아 지역이 독립하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되었고, 이러한 소식을 들은 소수 민족들은 일제히 봉기하여 왕국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버샬 왕국에서도 이러한 조치에 따른 내부 분열로 인하여 왕정이 붕괴되면서 버샬 독립국이 수립되었고 구 연방 지역은 각 민족들의 독립 중소국으로 난립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버샬 왕국을 격퇴했던 지크테니아 독립정부는 1963년, 공화정의 수립을 선포하면서 독립국임을 대외적으로 알렸고, 초대 대통령으로 민족과 독립의 영웅인 지코르 아르벤이 추대되었다. 이로서 지크테니아 지역은 오로지 지크테니아 인들만의 민족 국가로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공화정의 존속

지코르 아르벤 대통령은 약 3년 남짓의 재임 동안 개혁정책을 실시하였다. 세속주의를 표방하고 복장 개혁을 지시하는 한편 남녀 평등 교육을 실현하는데도 기울였다. 지크테니아 제1 공화정은 지코르 아르벤의 개혁 정책에 따라 근대 국가로 태동하기 시작하였고, 지코르 아르벤의 뒤를 이은 대통령들도 그의 유지를 따라서 근대 개혁에 힘을 썼다.

코슈탈로프 분쟁

코스탈로프 지역의 통치권은 마샬레우 공화국에게 있었으나, 지역의 민족 비율은 압도적으로 지크테니아 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하른 케달은 마샬레우 공화국에게 코스탈로프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고 마샬레우 공화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을 안게 되었고 결국 1879년, 코슈탈로프 분쟁이 발발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코슈탈로프 분쟁 내용을 참조.

코슈탈로프 분쟁은 수많은 폴리티나비아 반도의 분쟁에 전초전이 되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끼쳤고, 결국 폴리티나비아 반도는 각 중소국들의 분쟁으로 혼란을 안게 되었다.

제국의 침공과 멸망

이 상황을 눈여겨 보던 니아틸렌 제국은 틈을 노려 지크테니아 전 지역을 합병할 계획을 세웠고, 당시 니아틸렌 제국에 지나친 내정 간섭에 분노하여 자체적으로 설립되었던 "지크테니아 민족회"가 지크테니아를 방문했던 코시알로프 대총독을 살해하면서 이를 빌미로 침공을 결심했다.

제국의 침공에 지크테니아는 폴리티나비아 반도 전역에 도움을 요청했고 난안 공화국헬레티버 공화국에게도 지원을 요청하나, 폴리티나비아 반도는 이미 수많은 분쟁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고, 나머지 두 국가는 제국의 침공을 묵인하였다. 결국 지크테니아는 제국군에게 끝까지 저항하다가 1887년, 수도였던 테이노아른이 함락되면서 지크테니아 제1 공화국은 건립 25년만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