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혁명 (The Eternal Empire)

개요


진달래 혁명은 1974년 3~4월 대한제국에서 전두환의 쿠데타 세력에 반대해 일어난 시민혁명이다.

혁명이전

1932년부터 시작된 군사독재는 한국에 큰이득도 가져다 주었지만,그속에서 시민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1961년 박정희가 집권한후,민주화요구가 빗발치지만 1964년 한성올림픽,1970년 평양 엑스포등을 개최,민중의 시선을 돌리는 동시에 자신들의 성과를 과시한다.
그속에서 군사정권이 43년차를 맞은 1974년도 밝아왔다.

눈보라

1974년 1월 22일 설날을 맞아 박정희는 국립중앙극장에서 연설을 진행했다.그렇게 연설이 진행되던 오전9시 54분,총성과 함께 박정희는 쓰러졌다.
치료하려 애를 쓰지만 결국 박정희는 숨을 거둔다.범인은 일본의 극좌 독립단체인 적군파소속의 강본무[1]였고,현장에서 체포된다.
한국은 혼란에 빠진다.추모행렬이 줄을 이었지만 이사건을 호의적으로 보는 이도있었다.사람들은 독재의 끝을 희망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또다른 독재자의 등장을 우려한다.
그속에서 권력은 군내 개혁파인 김원봉에게 넘어간다.이후 급진적 개혁이 추진되자 군내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전두환을 위시한 쿠데타 세력은 기존체제의 유지를 선언,다음권력자는 전두환이 될것임을 선언한다.그러자 전국에서 시위가 시작된다.

온대한을 뒤흔드는 함성

한성,부산,평양,심양,장춘,화경,강호까지 전국이 시위대로 가득차기 시작한다.이에 전경에 진압을 지시,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체포되기 시작한다.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국민들은 절대권력자를 더이상 원치 않았다.하지만 군부에 대한 지지는 바닥을 치다못해 경찰에 전경마저 시위에 가담하기에 이르고 급기야 군부에 대해 방관하는 황제마저 물러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이에 쿠데타세력은 계엄선포및 군대투입을 군장성들에게 언급한다.이에 내부에서도 반대가 극심했으나 전두환은 강행을 촉구했고,이에 군내에선 전두환에대한 반기,즉 역쿠데타를 계획한다.

진달래가 피어나다.

정승화를 주축으로 류병헌,장태완등의 장군들을 주축으로 이우친왕또한 군주제 존속을 위해서라면 개혁을 수용해야한다 판단,동참을 결심한다.
그렇게 4월 13일 새벽 1시 황궁,총리관저등에 습격이 진행되었고,전두환 총리를 체포하고,이건황제를 폐위시키기에 이른다.
새벽동안 전두환의 계파 소속인물들을 체포,아침에 군사독재의 종결및 빠른시일내에 민주적인 총선을 개최할것을 선포했다.

이후

그후 황제의 주도로 군사정부시절의 규제를 철폐하고 제도를 다듬고 논의하고서 1975년 1월 15일 총선이 열린다.
이후 민주주의의 아래 한국은 번영하기 시작한다.군사정권의 규제에 눌려있던 문화가 번성하고 외교또한 개선되며 동방의 악의 제국에서 k-pop의 나라,영화강국등의 긍정적 이미지로 변화한다.또한 한국의 영향력 아래있던 여타 국가들도 민주주의가 도입되며 아시아에 봄이 찾아왔고,대한의 전성기도 이 이후로 시작된다는 평가도 많다.

기타

그리고 현재 민주화가 선포된 4월 13일은 자유절이라는 공휴일로 지정되어있다.
진달래혁명을 상징하는 곡으로 임을위한행진곡과 그날이 오면등이 있다.

  1. 본인은 일본식으로 읽은 오카모토 타케시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