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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
辰曙
국가 태해월국
창립일 1886년 6월 19일
창업주 진고철
총수 진월명
본사 태해월국 중경부 재화구 명산로 393-254 그랜드진서
규모 대기업
유형 복합기업, 기업집단
종업원수 184,998명(2023년)
매출 391조 5,294억 해월(2023년)
영업이익 44조 1,221억 해월(2023년)
시가총액 624조 9,887억 해월(2023년)[1]

진서SOHA그룹 혹은 SOHA해월국 재계 1위의 복합기업집단이며, 세계 각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연혁

진서SOHA, 약칭 SOHA는 19세기 중후반, 설립자 진고철(辰攷哲, 생 1819 몰 1886)의 한 가게에서 시작되었다. 당대 해월은 바다를 낀 이웃국 일본의 개방을 비롯해 서양 열강의 침입을 확인한 뒤, 일본(1853)에 이어 두번째로 개방을 결정(1857)한 국가였는데, 진고철 역시 얼마 없는 재산을 털어 개방 직후의 일본에 여러번 방문한 뒤 신 문물을 접했고 일본에서 고철을 들여와서, 해월에서 건축자재나 공장에서 쓰이는 기계 제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 등을 팔았다.

​ 그런데 그의 아이디어가 해월에서 적극 먹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게가 점점 커지더니 경(京)자가 붙는 대도시에는 그의 가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설립자의 동향을 보는 시선과, 한순간도 피하지 않았던 소망과 노력, 열정은 진서라는 기업의 창조가 실현된 원동력이 되었다. ​

설립자 진고철은 원래 해월의 사학을 운영하던 진영수라는 인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진고철의 아버지 진영수는 유명한 상인으로,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심성이 착했고 재상이었던 김상의 제자였다. 몰락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국자감에 들어가서 수학하고 싶었지만 출신으로 인해 입학을 거절당했다. 과거를 보려 했지만 이 역시 거부당했다. 진영수는 자신의 선생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했고 되려 사회적으로 천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녀와 신분고하로 차별하지 않고 두루 모이게 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 그러나 19세기 초에 들어 사학을 경계하는 정부의 규제가 심해지고 19세기 중반에 들어서 사학을 말살하자 부친 대에서부터 더이상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했는데, 그는 이 상황을 매우 애석해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상당한 돈이 모인다면 근대적인 교육재단을 만들어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게끔 하고 싶었다. 그렇게 진고철 회장은 돈이 모이자 해월 최초의 근대적 사학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진고철은 1886년 죽기 직전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진서(辰曙)라는 회사와 그 산하의 진서학원을 세웠다.


진고철의 장남, SOHA 제2대 회장 진성무(辰誠貿, 생 1845 몰 1909)는 아버지의 부고 이후 직을 승계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열정적인 투쟁의 삶을 보며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웠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우선이라는 "천이교본"(天利敎本)이다. 진성무는 1886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총수직에 취임했다. 당시 그는 진서가 그리 큰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장이라는 칭호가 없이 그저 사장이라고 불렸다. 진성무 회장 시대에 진서SOHA는 거듭 발전하여, 마침내 회장을 총수직의 명칭으로 확정했다. 진성무 회장은 아버지의 꿈이자 자신의 목표였던, 진서 사학의 확립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는 진서 학원 산하에 진서대학교를 개교(1886)했다. 또, 진성무 회장은 1890년대 초에 해월 정부에 지속적으로 권리 재인정을 요청함과 동시에 내각부에서의 호의를 쌓아 근대 사학 운영권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었다.

​ 진성무 회장의 상업적 전매특허 중 하나는 바로 현재 진서SOHA식품의 전신인 진서식품회사를 산하로 설립한 것이었다. 1890년대에 들어 서구식 문화의 도입이 가속화하자 진서그룹은 중경부에서, 처음으로 팥빙수를 대중적 제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시원하고도 달콤한 음식은 여름에 만민들에게 큰 유행을 불러왔고 진서의 자금 확장에도 기여해 사학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1901년 2월 15일, 진성무 회장은 사학 중 최초로 중경부에 진서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이는 현재의 진서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및 고등학교의 기원이 되었으며 진서교육재단이 본격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사건이기도 했다. 진성무 회장은 1886년부터 1908년까지 재임했으나 1908년경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여 둘째 아들 진성전이 서른넷의 나이에 회장직을 승계했다.

​ 진성전(생 1874 몰 1956) 회장 시대는 국제화의 미약한 시작과, 사학의 확립기로 축약할 수 있다. 진성전 회장이 재임하던 시기의 말인 1940-1950년대에 들어 진서그룹은 처음으로 상표에 SOHA라는 이름을 붙여 미국 뉴욕ㆍ프랑스 파리ㆍ독일 베를린ㆍ영국 런던 등지에서 활발히 연락사무소를 두고 전자 제품을 현지에 출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진서그룹은 독자 기술이 부족해 독일의 기술을 일부 수입해 국내와 외국에 출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1940년대 중반 시작한 독자 기술에 대한 연구는 비로소 1950년대 초반에 빛을 보기 시작해, 독자적인 흑색TV와 세탁기 개발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에 신 기술을 운용해 적극 출시했다. 호황기에 접어들던 국내에서는 진서그룹의 전자제품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서구 등지에서도 SOHA 브랜드의 인지도가 상승하는 등 진서그룹은 해월에서 대기업, 세계에선 이제 막 진출하기 시작하는 유망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또한 그의 시대에 대학 이하의 진서 사학이 설립되었고 사회에서 확고히 자리잡았다. 일례로 진서사대부중ㆍ고교(1909)와 진서사대부여중고교(1937, 진서사대부중ㆍ고교에서 분리) 개교 역시 그의 시대에 일어났으며, 학교교육 연구와 학생장학을 관할하는 진서교육연구소(1952)도 진성전 회장 재임기에 설립됐음을 미루어 보아 그의 투철한 기업가적 정신과, 교육적 공헌을 살펴볼 수 있다.


1956년 6월 12일, 진성전 회장의 사후 그의 장남인 진구선(辰求璇)이 마흔여섯의 늦은 나이에 제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재임기(1956-1983)는 1차 공업의 쇠퇴와 제조업의 번영, 그리고 석유파동(Oil crisis in the Middle East)로 대표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늦은 나이에 회장직에 올랐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야심과 현실적이고도 원대한 계획을 품으며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열심히 일했다. 아버지인 진성전 회장이 사망하자 회장직에 오른 진구선은 1차 공업의 부분을 축소하고 전자기기 제조에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 국내의 독자 2세대 세탁기 개발과 더불어 흑색 TV 2세대의 안착을 기획하며 진서그룹 산하에 SOHA전자를 설치했다. 마침내 SOHA 브랜드가 국내와 해외에 걸쳐 알려지기 시작하며, SOHA의 전자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다. 그러나 1960-80년대 초 사이 중동에서 석유파동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진서는 무리한 확장에 의한 자금난을 겪게 되었고,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진구선 회장은 급작스레 발생한 뇌출혈로 인해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진구선 회장의 지위는 그의 손자 진명수(辰明綏, 1964-) 에게 이어졌다. 진명수 회장은 진구선 회장의 첫째 아들인 진명재(辰明渽, 1942-1979) 진서교육재단 이사장의 아들이었고, 본래 아주 훗날 아버지의 직을 이어 받을 예정이었으나 아버지의 급서로 인해 할아버지의 직을 바로 받은 것이었다. 19세의 나이에 당시 진명수 회장은, 미성년자여서 회장직에 오르지 못했기에 그의 작은아버지였던 진우철(辰祐喆)이 그가 성년이 되기까지 업무를 대행했다. 진명수 회장은 1991년 성년이 되어 회장직에 올랐고, 조부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긴축에 들어갔으며 이로 인해 1992년 "진서그룹 근로자 대량 실업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 진명수 회장은 전자제품에도 관심이 많아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SOHA전자의 다양한 제품을 기획토록 했다. 특히 현재 SOHA의 주력 스마트폰ㆍ노트북 주력 제품, "SOHA i" 시리즈 등등이 모두 진명수 회장의 시대에 기획되고 출시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진명수 회장은 회장 중에서는 오랜만에 사학 진흥에 큰 관심을 가졌다. 21세기에 들어 해월국은 교육과정의 개정이 여러번 이뤄졌는데, 진명수 회장은 신 교육과정에 걸맞는 학교의 주체적 특수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재단에 자금을 적극 지원하는 등 21세기 교육리더를 키우기 위한 전진을 대폭 이루었다.

​ 그러나 진명수 회장은 잦은 병치레로 인해 본인 혼자 경영을 지속하기 힘들다 판단하여, 2022년 6월 1일을 기해 회장직을 내려놓고 외동아들인 진월명(辰月明, 1998-)에게 물려주었으며,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남아 아들의 경영을 보조하고 있다. 현재 진서그룹의 회장은 진월명 회장으로, 그는 21세기 진서SOHA의 신시대 혁신경영을 이끌 젊은 주역으로 기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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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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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재 진우철 진명수 진월명
진서대학교 총장진서교육재단 이사장
  1. 해월국 기업 중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