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데 판파니
Carlo de Fanfani
로마냐 공화국제30대 총리
임기 1957년 1월 18일~
대통령 엔리코 데 세니에
전임: 에토레 보르디가(제29대)
신상정보
국적 로마냐 공화국
출생일 1892년 10월 21일(1892-10-21)
출생지 로마냐 왕국 산 사보나 주, 베르나치 시
거주지 로마냐 공화국 리에치 시,
총리 공관
정당 민주노동당
학력 리에치 대학
종교 무교
배우자 사별
자녀 1남

칼로 데 판파니(이탈리아어: Carlo de Fanfani)(1892년 10월 21일 ~ )는 로마냐 공화국의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다. 노동부 장관, 농림부 장관, 외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1957년에 민주노동당 - 대중시민당 연정을 통해 총리에 취임한다.

초기 생애

산 사보나 주, 베르나치 시에서 태어난 판파니는 당시 유명한 지방 검사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정교회인인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그의 모친은 매우 신앙심이 깊었다. 수도 리에치에 있는 리에치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수학와 물리학에서 뛰어났으나, 후에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기로 선택하고 1925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력

교육자로서의 삶과 정치인으로서의 삶

판파니는 대학 교수와 정치인의 이중 경력을 수행하였다. 정치경제학자로서 그는 다수의 종교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하고 연관지어, 유로파 대륙에서 자본주의의 개발을 다루는 중요한 전문의 저자였다. 그의 학위 논문은 〈정교회, 자본주의와 종교개혁〉으로서 로마냐어로, 1935년에는 각국의 언어로 발간되었다. 1936년 판파니는 아레초 대학의 학장 직책을 받아들였고, 1943년까지 아레초 대학 학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1943년, 로마냐의 독재자인 단눈치오가 모든 성인 남성을 전쟁에 징발하는 법령을 공포하면서 판파니는 그의 동료 교수들, 제자들과 같이 중립국이었던 헬베티아로 망명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44년 4월에, 국왕의 명령으로 단눈치오가 체포되어 처형된 다음에야 판파니는 로마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판파니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헬베티아 명명 시기, 자신과 함께 망명을 온 대학 교수들의 망명정당인 인민 연합에 참여를 하면서부터인데, 판파니는 당시 인민당 당수였던 엔리코 데 세니에와 친교를 다지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계 입성

유능한 행정관이자 조직자인 판파니는 인민당 내에서 진보적인 좌익 노선을 대표하였다. 판파니는 자신의 전공이었던 정치경제학과 종교 분야 간의 연결을 분석하는데 노력하였고, 곧 기독교의 바람직한 가치와 자본주의의 바람직한 가치를 결부하여, 보다 더 진보하면서도 안정된 사회를 꿈꾸었다. 바로 이 점에서 판파니와 엔리코 데 세니에는 관점이 달랐고, 결국 판파니는 세니에와의 갈등 끝에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인민당을 탈당,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게 된다.

1946년 4월, 공화국이 들어서자 판파니는 제헌 의회 총선에 출마하여, 그로세토 주를 대표하는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원내에 진출했고, 민주노동당을 원내 3당으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제헌 의회에서 판파니는 안토니오 아마토, 세니에와 함께 헌법 조항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신헌법의 첫 번째 조항[1]은 반공주의자이나 사회적으로 진보적이었던 판파니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었다.

1946년 8월, 헌법이 공포되고 난 뒤, 그는 자유민주당안토니오 아마토 총리 내각에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농민에게 균등한 경작권을 주기 위해 토지개혁법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으로 토지 개혁을 촉진시켰고, 그 공로로 인해 2차 아마토 내각에서 다른 각료들이 교체될 때, 판파니는 노동부 및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아마토 총리와 판파니는 각종 현안에서 의견 차를 보이며 충돌하였고, 민주노동당과의 갈등에 지친 아마토 총리는 의회해산을 선언, 다시 재총선을 치르게 된다. 여기서 아마토 총리는 새로운 연정 파트너를 물색했는데, 고심 끝에 아마토 총리는 남부동맹을 위시한 남부 지역을 군소 정당들과 연정을 획책한다. 여기서 민주노동당 당수였던 판파니와 인민당 당수였던 카를로 디 만치노는 남부지역 정당과의 연정은 지역 간 감정을 촉발시킬 일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던 와중, 남부 순방을 끝마치고 돌아오던 아마토 총리가 북부 분리주의자인 데비토 모란디의 폭탄 테러에 당해 사망하고 만다. 정국은 급속도로 경색되었고,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다.

각주

  1. 로마냐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은 인민에게 있으며 헌법과 국민에 따라 행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