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탕알란드 왕국
Köngerdømmet Bertangaland
Royaume de Bertangaland
Kingdom of Bertangaland
Rouantelezh Breizh
국기 국장
표어 "Enhett er nøkllen till seigern"
"단결은 승리의 열쇠"
국가 Martis till Øst
동쪽으로 진군하라

베르탕알란드 왕국의 위치
수도 헤스테인
북위 47° 08′ 서경 1° 20′
정치
공용어 베르탕알란드어
지역어 프랑스어, 영어, 베르탕알란드 게일어,이탈리아어,히브리어
국왕 시구르드 12세
총리 비르기트 게르다-알란스도티르 에겔린
역사
성립  
 • 위그노 전쟁 1562년 3월
 • 헤스테인 조약 1598년 4월 13일
 • 퐁텐블로 전쟁 1685년 10월 23일
 • 빈 회의 1815년 6월 9일
지리
면적 34,023km2 (138 위)
시간대 CET (UTC+1)
DST CEST (UTC+2)
인구
2017년 어림 4,550,418명
2011년 조사 4,561,327명 (124위)
인구 밀도 120명/km² (97위)
경제
GDP(PPP) 2017년 어림값
 • 전체 $3485억 (51위)
 • 일인당 $76,589 (3위)
HDI 0.915 (13위, 2016년 조사)
통화 크로네 (BEK)
기타
ISO 3166-1 799, BE, BER
도메인 .be
국제 전화 +331

베르탕알란드 왕국(베르탕알란드어: Köngerdømmet Bertangaland, 프랑스어: Royaume de Bertangaland, 베르탕알란드 게일어: Rouantelezh Breizh)은 서유럽에 위치한 반도 국가이다. 동쪽으로는 프랑스,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하며, 남쪽과 북쪽으로는 각각 비스케이 만과 영국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영국에 접해있다. 영토의 넓이는 34,023km²이며, 기후는 주로 해양성 기후를 띈다. 노르드인, 프랑스인, 게일인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지만 범노르드주의 정서가 강하며 그로 인한 민족 갈등의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공용어는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베르탕알란드어이지만, 프랑스어베르탕알란드 게일어도 사용된다.

본래 로마 제국의 속주인 갈리아의 일부이자 게일인들의 땅이였지만. 859년 경 헤스테인바이킹들의 정착 이후 급격히 노르드화 되었고, 이후 잉글랜드의 후원하에 상인 공화국으로 성장하였다. 백년 전쟁 이후에는 한자 동맹에 소속되어 프랑스 산하의 상인 공화국으로서 알프스 이북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부흥하였다. 하지만 16세기 종교 개혁칼뱅주의의 영향으로 개신교화 된 후 프랑스의 박해를 받았고, 베르탕알란드 독립 전쟁이후 베르탕알란드 대공국으로서 독립해 빈 회의 이후 네덜란드와 함께 왕국으로 승격되면서 지금에 이른다.

베르탕알란드 왕국은 입헌군주국이지만, 현재까지도 국왕의 권한이 강하다. 수도는 왕가의 이름을 본 딴 도시인 헤스테인이다. 헤스테인 왕가의 소유이자 10세기 경부터 이어진 프레이야 그룹으로 대표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상업국가이다.

국명

베르탕알란드 왕국의 국명은 브레틀랜드 제도의 옛 이름인 브리타니아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브리타니아는 기원전 320년 무렵 마르세이유에서 브레틀랜드 제도까지 여행하였던 그리스의 지리학자 피테아스가 이 지역을 프레타니케(Πρεττανικη) 또는 브레타니아이(Βρεττανίαι)라고 부른 것에서 연원하였으며, 고대 로마 시기에는 주로 브레틀랜드 제도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하지만 당시 오늘날의 베르탕알란드 반도에 해당하는 지역은 갈리아 아르모니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갈리아 아르모니카라는 지역명을 대신하여 브리타니아라는 표현에서 파생된 브레이스흐(Breizh), 베르타옌(Bertaèyn), 브르타뉴(Bretagne)등의 지명이 쓰이게 되었으며, 노르드인의 정착 이후 위 표현들을 노르드어로 변형한 베르탕알란드(Bertangaland)라는 이름이 등장하였다. 이후 노르드인들이 베르탕알란드의 주류를 이루면서 노르드인의 표현인 베르탕알란드가 이 지방을 대표하는 명칭이 되었고, 훗날 베르탕알란드 왕국의 정식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역사

선사 시대

베르탕알란드 반도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네안데르탈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인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들은 서유럽 전역의 다른 네안데르탈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콜롬바니안이라 불리우는 베르탕알란드 네안데르탈인들의 자체적 문화도 가지고 있었다. 이후 베르탕알란드 반도에 도달한 최초의 현대인류는 약 3만 5천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들을 흡수하여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로마 시대 - 중세 초기

이후 베르탕알란드 반도에는 켈트족에 속하는 5개 부족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브레틀랜드 제도의 도서 켈트족들과 문화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베르탕알란드 반도는 기원전 51년 무렵 로마 공화정의 일부로 편입되기 시작하였으며, 기원전 13년 무렵에는 로마의 속주 가운데 하나인 갈리아 루그두넨시스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켈트족들의 도시는 로마식으로 재건축되어 콘다테, 다리오리툼, 콘데빈쿰과 같은 도시들이 탄생했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는 앵글로색슨인의 브레틀랜드 정착과 겹쳐 많은 인구의 도서 켈트족들이 베르탕알란드 반도로 이주해 들어왔고, 이로 인해 코르노얼리돔노니아 등 많은 소 왕국들이 탄생했다.

바이킹 시대와 베르탕알란드 왕국

8세기 말 유럽은 점진적인 농업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는 추운 스칸디나비아 반도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한정된 자원을 넘어 늘어나는 인구를 제어할 수 없었던 노르드인들은 유럽 각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859년에는 덴마크 출신의 바이킹 헤스테인이 노르드인들을 이끌고 낭트에 정착했는데[1], 이는 베르탕알란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서프랑크 왕국샤를 3세에 대항하여 의 백작 살로몬과 동맹을 맺은 헤스테인은 873년 앙제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프랑크 세력을 몰아내고 베르탕알란드를 통일하는데 성공했다. 에를렌두르 헤밍손의 치세에는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노르망디의 일부와 콘월, 이를란드베이사피요르드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상인 공화국

자연환경

베르탕알란드 반도는 대서양을 향해 북서쪽으로 쭉 뻗어있다. 면적은 약 34,030km²이다. 북쪽으로는 영국 해협이 있고, 남쪽으로는 비스케이 만과 면한다. 서쪽 켈트 해에 에우사 섬이 있다. 베르탕알란드의 해안선은 많은 곶과 만들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해안선 길이는 약 2,860 km이다. 주변에는 80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이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큰 섬은 남부의 베인윌 섬이다. 베르탕알란드와 프랑스의 노르망디 사이에는 몽생미셸 섬으로 유명한 쿠에농 강이 흘러 두 지역의 자연적인 경계를 이룬다.

정치

현 베르탕알란드의 국왕 시구르드 12세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 국가임을 표방하지만, 사실상 국왕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절대군주제 국가에 가깝다. 베르탕알란드 헌법에 의하면 국왕의 권한은 "국왕은 내각의 동의 아래 왕권을 행사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왕권의 범위는 사실상 무제한이고 내각이 국왕의 의견에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국왕에게는 사실상 절대적인 권력이 부여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국왕은 이런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음에 따라 엄격한 도덕 기준과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이 요구 된다는 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현재 베르탕알란드 왕국의 국왕은 시구르드 12세이며 2016년에 즉위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팅기외(Þingið)는 베르탕알란드의 입법 기관으로, 10세기경 노르드인 지주들에 의해 결성된 전통 의회에서 출발했다. 팅기외는 추밀원을 제외한 베르탕알란드 내 최고 기관으로서, 의결권과 총리 선출권, 내각불신임권을 가진다. 팅기외는 단원제 의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부에서 인정한 6개 민족 집단[2]에서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되어있다.

정당

정당제의 특징은, 각 민족 집단별 모임인 '블록'이 실질적인 정당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름과 같은 성향의 정당이라도 민족 집단별로 5개씩 존재하며 그로 인해 원내정당만 20개가 넘어가지만, 팅기외 내에서는 민족 집단별로 분화된 정당들이 형식적으로나마 '연합체'로 통합됨에 따라 서류상 원내정당들의 수는 일반적인 다당제국가의 수준과 비슷하다.[3] 독자성이 강한 5개의 민족 집단으로 균열되어 있는 베르탕알란드의 특성상, 같은 정당 계열에 속하더라도 민족 집단별로 독립적인 지역 정당의 형태로 활동하는 것은 베르탕알란드 정당제의 특징이다.

선거

팅기외는 기본적으로 전석 비례대표제를 시행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다른점으로는, 국가에서 인정한 5개 민족 집단의 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여 선출하는 방식으로, 다수 민족 집단의 당대표가 총리직을 맡는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매번 의회와 총리직은 다수의 인구를 차지하는 노르드인이 장악하는 형국이며, 타 민족들은 현 제도의 폐지 내지 의석의 균등화를 요구하지만 의회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과 노르드인 지배층의 묵살로 힘은 얻지 못하고 있다.

국방

경제

사회

문화

각주

  1.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발췌
  2. 노르드인,색슨인,라틴인,게일인,프랑스인,유대인
  3. 팅기외 내에서 연합체로 통합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블록별로 별도의 활동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