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스테인 Hæstein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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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년 루나에서의 헤스테인, 이탈리아 기록화 | |
지위 | |
난테스 왕국 국왕 | |
재위 | 859년 - 866년 |
전임자 | - |
후임자 | - |
베르탕알란드 왕국 국왕 | |
재위 | 866년 - 896년 |
전임자 | - |
후임자 | 헤밍 헤스테인손 |
신상정보 | |
출생일 | 834년 |
출생지 | 덴마크 리베 |
사망일 | 896년 |
사망지 | ? |
가문 | 헤스테인 가 |
부친 | ? |
모친 | ? |
배우자 | 비그디스 |
자녀 | 보 헤스테인손 헤밍 헤스테인손 |
종교 | 노르드 신화 |
헤스테인(고대 노르드어: Hæsteinn)은 베르탕알란드 반도를 통일한 전설적인 바이킹이다. 859년 덴마크인들을 이끌고 난테스에 정착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생애
초기
헤스테인의 이른 시절은 거의 알려져있지 않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834년 리베에서 태어났다. 855년에 일어난 누아르무티에 전투 등 서프랑크 왕국에 대한 바이킹들의 여러 침략에 연루되어 있던 것으로 전해지며, 오랜 방랑 생활 끝에 300여 명의 덴마크인들을 이끌고 859년 루아르 강 인근의 난테스에 정착했다.
스페인과 지중해
862년 헤스테인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인 비외른 야른시다와 함께 62척의 배를 이끌고 지중해 항해에 나섰다. 첫 공격은 무슬림들이 지배하던 알헤시라스에서 일어났고, 북아프리카의 여러 항구 도시들과 발레아레스 제도에 대한 공격이 뒤를 이었다. 카마르그에서 겨울을 난 헤스테인과 비외른은 서프랑크 남부의 론 강을 거슬러 올라 나르본, 님, 발랑스, 아를을 공격했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그들은 루나와 피사를 공격했고, 아르노 강 하구의 피에솔레를 공격했다. 최종 목적지였던 콘스탄티노플까지 방문한 그들은 귀환 도중 북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인 노예[1]들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나바라 왕국의 팜플로나를 공격했고, 7000파운드 가량의 금과 은을 가지고 돌아와 지중해 항해를 무사히 끝마쳤다.
베르탕알란드의 왕
865년 난테스로 돌아온 헤스테인은 렌의 백작 살로몬과 동맹을 맺었고, 서프랑크의 왕 샤를 3세에 대항하는 군대를 일으켰다. 866년 브리사르트 전투에서 로베르 4세 강철공의 군대를 패퇴시킨 그는 부르주를 황폐화한 뒤 오를레앙을 공격했다. 872년 봄에는 앙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873년 10월 샤를 3세가 직접 지휘한 공성전에서 대승하면서 베르탕알란드 내의 모든 서프랑크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1년 뒤 살로몬이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헤스테인은 베르탕알란드의 유일한 왕으로 군림했다.
잉글랜드에서의 헤스테인
말기
896년 차남 헤밍 헤스테인손에게 왕위를 물려준 헤스테인은 배 한 척을 이끈채 홀로 바다를 향했고,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전례 없는 가장 악명 높고 전설적인 바이킹 중 하나였고, 루아르와 솜의 옛 전사라는 이명을 널리 알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