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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oat of Arms of Manchu-Joseon.png
조선 만주 연방
해당 관련 문서
주요 사건 포츠머스 조약·만주사변·국민당 북벌·산동출병·제남 사건·황고둔 사건
열하사변·중일전쟁·태평양 전쟁·만주 전략 공세 작전
주요 시설 및 단체 관동총독부·만주철도회사·관동군·만주군·대동아경제조사국·봉천군벌
동간도 주식회사·만주군관학교·만주척식회사·만주 국무원
주요 인물 및 용어 장쭤린·고모토 다이사쿠·다나카 기이치·이사와라 간지·아이신기오로 푸이·이은
송병조·이동녕·정샤오쉬·장징휘·만주 웨스턴·동북역치·2키 3스케

포츠머스 조약(Treaty of Portsmouth)는 1905년 9월 5일 미국 뉴햄프셔 주에 있는 군항(軍港)도시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 간에 맺은 강화조약을 말한다. 러일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당시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중재하에 러시아 재무장관 비테와 일본 전권외상 고무라 주타로 사이에 맺어졌다.

1904년 2월 8일에 만주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일본 사이에 일어난 러일전쟁이 진행 되던 중인 1905년 1월 2일, 뤼순항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그러자 일본제국의 급격한 팽창에 경계감을 드러낸 서구 열강이 외교 관계 조정 및 강화 문제를 제기하며 나서기 시작했고, 러시아 또한 여러가지 내부 사정으로 전쟁을 지속하고자하는 의욕이 감퇴된 상황이었다. 일본 또한 막대한 전비(戰費)를 소모하고 많은 병력을 희생해 가며 간신히 우위에 서있었으나 재정적, 군사적 상황이 이미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 같은해 5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이 이끌던 일본 해군이 쓰시마 해전(對馬島 海戰)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강화 회담을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일본은 미국이 중재역으로 나서 러시아와의 협상을 주선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주요 내용 및 결과와 영향

1.러시아 제국은 일본 제국이 만주에서 정치·군사·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또 만주 지역에 대해서 청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 지도·보호·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
2.러·일 양군은 만주 지역에서 철수하며 만주 지역은 청국 정부의 허가 아래 주권과 기회균등 원칙을 준수하도록 한다.
3.러시아 제국 정부는 청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 랴오둥 반도(뤼순, 다롄) 조차권, 창춘-뤼순 간의 철도, 그 지선,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모든 권리와 특권을 일본 제국에 양도한다.
4.일본은 만주의 철도들을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경영한다. 단 랴오둥 반도 지역은 그 예외로 한다.
5.일본 제국이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는 대신, 북위 50° 이남의 사할린 섬과 그 부속도서를 일본 제국에 할양한다. 그러나 이 지역은 비무장 지역으로 하며, 러시아 제국이 소오야(宗谷), 타타르 해협의 자유 항행을 보장한다.
6.동해·오호츠크 해·베링 해의 러시아 제국령 연안의 어업권을 일본인에게 허용한다.

위 양국간 서명된 조약에 따라 일본 제국은 사실상 만주 지역에 대한 경제적, 랴오둥 반도 일대에 대한 군사적 지배가 독점적으로 허용되었으며, 사할린 일부를 획득함에 따라 일본의 제국주의, 군국주의에 본격화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반면, 러시아 제국은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러일 전쟁에서 일본 제국에 굴욕적 패배를 당한 후, 내부적인 불만까지 폭발하여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함에 따라 무너지게 되었다. 이 조약의 성공적인 체결을 주선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선의 포츠머스 조약 인식

만해 한용운(韓龍雲)은 자신의 저서인 『조선 주권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서 위 조약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포츠머스 조약이 자칫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 야욕을 불살릴 수 있음을 알리는 전초전이라고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다. 이는 당대의 일부 지식인들과 독립주의자들의 인식을 대표하기도 했다.

넷째, (중략) “일본인은 기억하라! 마관조약(馬關條約), 포오츠머드 조약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갖은 흉계와 폭력으로 조선 주권을 유린할 수 있음을 어찌 모르는가! 오직 양국만의 평화만이 상호공존을 가능케 하니 일본은 깊이 각정하라.” - <조선 주권에 대한 감상의 개요>

다만, 아시아주의자들과 친일주의자[1]들 에게는 위 조약이 상당한 여파를 주었는데, 이는 "황인종이 백인에게 승리한 전쟁"이라는 인식이 깔려져 있었다. 당대까지 조선 사회는 일본을 2류 국가로 인식하였는데, 상대적으로 거대한 유럽 열강이었던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승리를 거뒀다는 것을 통해 일본을 아니꼽게 보거나 얕게 보던 인식이 무너지면서 친일주의(親日主義)와 대아시아주의(大亞主意)가 대두되는 결과를 낳았다.

  1. 반민족행위자(反民族行爲者)들과는 다른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