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라이히 제4왕국 (승리의 왕관)

프랑라이히 제4왕국
Royaume de France

19181929
국기
파일:프랑라이히 제4왕국 지도.png
수도 파리
정치
공용어 프랑라이히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프랑라이히 국왕
프랑라이히 통령
필리프 8세
 • 프랑라이히 제4왕국 선포 1918년 4월 18일
 • 필리프 8세 즉위 1918년 4월 25일
 • 필리프 8세 붕어 1926년 3월 28일
 • 파리 쿠데타 1929년 4월 11일
 • 프랑라이히 제3제국 선포 1929년 11월 18일
지리
면적 362,915‬km²
인구
1922년 어림 34,302,000명
인구 밀도 94.51명/km²
기타
통화 프랑라이히 마르크 (₣m)
현재 국가 프랑라이히 (승리의 왕관) 프랑라이히 제5왕국
도이치 (승리의 왕관) 도이치 연방 제국
벨기에 (승리의 왕관) 벨기에 제2왕국
틀:나라자료 마살리아 (승리의 왕관) 마살리아 왕국
틀:나라자료 피에몬테 (승리의 왕관) 피에몬테 왕국


프랑라이히 제4왕국(프랑스어: Royaume de France)은 1918년 4월 18일부터 1926년 11월 16일까지 존속한 프랑의 4번째 왕정이다. 베를린 조약으로 인해 입헌군주제로 성립되었으며, 필리프 8세프랑라이히 국왕 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필리프 8세에게는 큰 권력이 없었고, 실질적인 권력은 프랑라이히 통령과 의회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였다.

제4왕국 시기는 이전의 프랑라이히 역사상 가장 평화롭던 시기인 제3공화국 시기의 다음이라고는 믿기지 못할 정도의 안정성을 보여주었다. 매일 프랑라이히 전역에서는 반도이치 집회가 시도때도 없이 발생하였으며, 이런 시위를 항상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또한 통령 또한 매년 교체되거나 암살당했다. 통령과 의회의 권력다툼도 심했으며, 각 정당들의 권력다툼도 심각하였다.

또한 프랑라이히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여 동맹국에게 막대한 배상금에 시달렸다. 프랑라이히 정부는 배상금을 확보하기 위해 프랑라이히 마르크를 미친듯이 찍어내어 프랑의 경제가 폭락한다. 또한 동맹국들의 군사적 압박 역시 프랑라이히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1926년 3월, 제4왕국에서 반도이치 정부가 들어서지 않게 버텨주었던 필리프 8세가 붕어한다. 필리프 8세가 붕어하자, 도이치 제국그로스브리튼 일랜드 연합 왕국은 자신들에게 친화적인 국왕을 세우기 위해 외교 전쟁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1927년, 아메리카 합중국의 경제시장이 붕괴된다. 이는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1년도 안되서 세계 경제는 붕괴되었다. 세계 경제가 붕괴되자, 인플레이션과 정치 분열로 골머리를 앓던 제4왕국 정부는 완전히 붕괴된다. 결국 1929년 4월, 나폴레옹 6세의 쿠데타군이 파리에서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제4왕국의 권력은 나폴레옹 6세가 차지하였고, 11월, 나폴레옹 6세프랑라이히 제3제국을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