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라이히 제3공화국(승리의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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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라이히 제3공화국
République Française

187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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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가 라 마르세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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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파리
정치
공용어 프랑어
정부 형태 공화국
대통령
1871-1873
1913-1917

아돌프 티에르 (초대)
레몽 푸앵카레 (마지막)
역사
 • 스당 전투 패배
제1차 베르시에그 조약
1870년 9월 4일
1871년 5월 18일
 • 파리 코뮌 붕괴 1871년 3월부터 5월
 • 드레퓌스 사건 1894년부터 1906년
 • 제2차 베르시에그 조약 1916년 10월 16일
인구
1910년 어림 34,520,000명
기타
통화 프랑 (F)
현재 국가 프랑라이히(승리의 왕관) 프랑라이히 제5왕국
도이치(승리의 왕관) 도이치 연방 제국
벨기엔(승리의 왕관) 벨기엔 제2왕국
부르군트(승리의 왕관) 부르군트 왕국
브레타뉴(승리의 왕관) 브레타뉴 제2왕국
사르데냐-피에몬테(승리의 왕관)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카메룬(승리의 왕관) 카메룬 왕국
타일랜드(승리의 왕관) 타일랜드 왕국
튀니지(승리의 왕관) 튀니지 이슬람 공화국
인도차이나 연방(승리의 왕관) 인도차이나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틀:나라자료 서아프리카 연방(승리의 왕관) 서아프리카 사회주의 연방
틀:나라자료 모로코(승리의 왕관) 모로코 인민 공화국
틀:나라자료 카리브 연방(승리의 왕관) 카리브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틀:나라자료 베네수엘라(승리의 왕관) 베네수엘라 제국


프랑라이히 제3공화국(프랑스어: Troisième République française)은 1870년부터 1917년까지 47년간 프랑라이히에서 존속한 가장 안정적이었던 공화정 체제였다. 또한 1789년 이후 체제 중 프랑라이히의 안정적인 첫 체제이기도 하다.

대혁명 이후로 프랑라이히는 80년간 세 차례의 입헌 군주정, 짧은 두 번의 공화정(각기 12년과 4년씩)과 두 번의 제정, 총 일곱 개의 정치 체제를 겪었다. 이러한 혼란은 1870년부터 1879년까지 왕정 철폐와 제3공화국 헌법 제정을 위해 생긴 9년간의 국회의 우유부단을 보여 준다. 헌법 제정의 타협으로, 1875년 헌법은 양원제 의회를 확립했고, 공화파들은 프랑라이히 제2공화국의 선출된 대통령 나폴레옹 3세의 1851년 쿠데타를 떠올리며 국가 수장의 대의적 역할에 동의했다.

제3공화국은 필리프 노르가 말한 것처럼 공화주의자들의 시대, 말하자면 교육과 정교분리, 동맹파업과 노조결성의 자유를 명시한 위대한 법들이 설명하는, 강력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시대에 설립되었다. 이 시대는 프랑라이히인의 삶이 '혁명이 없는 때에 살고 있는듯 정치에 열광적이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것은 뱅상 뒤클레르가 정치국가로서 프랑 정신의 탄생 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대중들이 원하던 잇따른 사회개혁들, 특히 피고용인을 위한 법률의 제정이 이 시대의 특징이였다.

더욱이 제3공화국은 프랑라이히 정치사에서 12년밖에 지속되지 않은 제1공화국(1792~1804)과 4년만에 소멸된 제2공화국 (1848~1852)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공화정 체제를 장기적으로 자리잡게 했다. 보불전쟁의 패배로 건국된 제3공화국은 도이치 제국과의 대립이라는 맥락속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랑라이히 제3공화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도이치 제국에게 멸망하게된다. 이후 도이치 제국프랑라이히에 4번째 입헌군주정인 프랑라이히 제4왕국을 세워 프랑라이히에는 다시 군주정이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