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승리의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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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 연방 제국의 구성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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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스터라이히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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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템베르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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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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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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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로트링겐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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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령 발트해
ink=도이치 (승리의 왕관)
도이치 연방 제국
프로이센 제국
Preußen Kaiserreich

1936년
프로이센 제국.png 100px
국기 국장
국가 프로이센의 노래 (Preußenlied)
프로이센 제국 영토.png
수도 베를린 북위 52° 30′ 02″ 동경 13° 23′ 56″ / 북위 52.500556° 동경 13.398889° / 52.500556; 13.398889
정치
공용어 도이치어
황제 프리드리히 4세
역사
 
 • 왕국 승격 1701년 1월 18일
 • 도이치 통일 1871년 1월 18일
 • 프로이센 제국 선포 1936년 1월 18일
지리
면적 500,756km2
시간대 BDZ (KW+0)
인구
2020년 어림 103,256,400명
인구 밀도 206.2명/km2
경제
GDP(PPP) 2020년 어림값
 • 전체 8조 8089억ℳ
 • 일인당 85,310ℳ
통화 마르크 ()
기타
ION 3166-1 002, PR, PRE
도메인 .de
국제 전화 +1

프로이센 제국(도이치어: Preußen Kaiserreich) 혹은 프로이센(도이치어: Preußen)은 도이치 연방 제국 구성국 중 하나이며, 도이치 연방 제국의 맹주국이다. 프로이센의 황제도이치의 황제를 겸임하며, 프로이센의 황태자도이치의 황태자를 겸임함과 동시에 알자스-로트링겐 공국공작을 겸임한다.

프로이센 제국은 북쪽으로는 덴마크, 리투아니아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바타비아벨기에, 룩셈부르크, 동쪽으로는 백루테니아와, 폴란드, 남쪽으로는 알자스-로트링겐, 바덴, 바이에른, 체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프로이센 제국의 면적은 500,756 제곱킬로미터이며, 기후는 온대 기후에 속한다. 수도인 베를린은 프로이센의 수도이자 연방 제국의 수도이며, 함부르크, 브레멘, 하노버, 프랑크푸르트, 쾰른 같은 대도시들도 속한다.

국명

프로이센(도이치어: Preußen, 잉글랜드어: Prussia 프러시아, 고대 프로이센어: Prūsa, 폴란드어: Prusy, 리투아니아어: Prūsai, 라틴어: Borussia, Prutenia)이란 국명은 이 지역에서 중세 초부터 살기 시작한 발트어계 프루스(Pruss)인에서 유래했다. 프로이센은 1947년까지 도이치 북부에 있었던 주로서 1918년까지는 베를린을 수도로 한 호엔촐레른가의 왕국이었다. 발트족의 일파인 프루사(고대 프로이센어: Prūsa)에서 이름을 땄다. 한자 표기로 보로사(普魯士/普魯斯) 또는 보로서(普魯西)라 하기도 했다.

역사

초기

고대에는 발트계의 프루스(Pruss)인이 살았으나, 12, 13세기경 동도이치 식민운동, 도이치 기사단의 정복 등을 거쳐, 구츠헤르샤프트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1525년에 도이치 기사단령프로이센 공국으로 되어, 호엔촐레른가(家)가 지배하게 되었고, 1618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지기스문트가 공국을 상속하게 되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동군연합(同君聯合)이 성립되었다.

프로이센 왕국

1657년 대선제후(大選帝侯)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폴란드의 종주권에서 벗어나 1701년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왕국이 되었으며, 프리드리히 빌헬름프리드리히 1세로서 즉위하였다. 그 이후 급속히 중앙집권화를 추진시켜 관료제를 정비하고 군대를 강화하여 프로이센 형(型)의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했는데, 그 중심이 된 것이 구츠헤르다.

18세기에 들어서자 프리드리히 2세는 국내의 절대주의를 강화하는 동시에 외스터라이히 왕위계승전쟁, 7년 전쟁 등의 외정(外征)을 통하여 슐레지엔, 서프로이센을 병합함으로써 분산적이었던 영토의 통일을 일보진전시켰다.

나폴레옹 전쟁과 도이치 통일

18세기 말부터 프랑라이히 혁명에 대항하여 대프랑라이히 동맹에 참가하였으며, 또한 3회에 걸친 폴란드 분할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출현으로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패배하고 1807년 틸지트 화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패전을 계기로 슈타인, 하르덴베르크에 의한 프로이센 개혁이 단행되었으며, 또 대(對)나폴레옹 해방전쟁에도 성공하였고, 이어 빈 체제하의 반동시대에 돌입하였다.

자유·통일 운동을 억압하다가 1848년의 3월 혁명을 맞았으나, 이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융커적 지배 체제를 다시 강화하였다. 그러나 반면 관세동맹을 주최하여 통일에 일보 전진하였다. 이 무렵부터 도이치 통일에 관하여 외스터라이히와 다투었으나, 비스마르크가 나타나면서부터는 군비를 강화하고, 1866년 프로이센-외스터라이히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 도이치 연방을 해산시키고 북도이치 연방을 건설하였다. 또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결과, 1871년 도이치 제국이 성립하였는데, 이 제국은 반(反)프로이센주의를 억압하여 프로이센주의를 추진시켜 나갔다.

프로이센은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을 획득하였다. 대왕 프리드리히 2세는 계몽군주를 자처하며 강력한 국력을 키워나갔다. 1866년 프로이센-외스터라이히 전쟁의 결과로 외스터라이히도이치 연방에서 밀려나자, 프로이센은 도이치 내의 최대 강국이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라이히 전쟁(보불전쟁)의 승리로 프로이센빌헬름 1세베르사유 궁전에서 즉위, 프로이센을 맹주로 한 도이치 제국이 성립하였다. 1913년부터 1917년까지 이루어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한 도이치 제국은 전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했다.

프로이센 제국

1935년 11월, 도이치 전국적으로 프로이센의 중앙집권적인 통치에 반발하는 반프로이센 봉기가 발생한다. 봉기는 내부의 분열과 강경 진압으로 인해 1936년 1월 16일에 완전 진압된다. 이틀뒤인 도이치 통일 100주년 기념식에서 도이치 내의 5개국에 대한 강력한 자치권이 주어지는 도이치 연방 제국이 선포된다. 또한 도이치 연방 제국의 선포와 함께 프로이센 제국 또한 선포되었다.

정치

프로이센 제국은 도이치 연방 제국을 포함하는 국가로 정치 전체적으로 도이치 연방 제국에 종속된다. 때문에 모든 선거는 도이치 연방 제국의 선거이고, 이는 다른 구성국들의 선거와 목표나 기간이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