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성부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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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의 행정구역
황도특별시
皇都特別市 | Hwangdo Special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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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휘장
시청 소재지 중구 백범로 117
하위 행정구역 24구 6군
면적 5,602km2
인구 13,436,294명(2023)
인구밀도 2379.73명/km2
시간대 UTC+8:30
시장
허태석(초선)
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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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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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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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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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번호 064
ISO 3166-2 KR-49

강서구 신시가지

중구 중앙로터리와 중앙공원[1]

개요

대한국의 하계수도. 황도 대도시권의 중심도시이다.

명목상 하계수도이지만 황제와 황실 일원이 상시 거주중인 평안궁이 소재해있고, 국회와 총리관저를 비롯한 중앙성청이 모두 위치해있는 한국의 정치행정상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 성경하르빈 양대 도시 가운데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며 경제문화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서울과 더불어 한국의 종축의 양대 핵심 도시중 하나이다.

현대적 도시로 개발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당초 교통의 요지로 기능하기 시작하며 발전했기 때문에 철저한 계획도시인 것이 특징이다. 서울 강남에서나 볼법한 격자형 도시구획과 가능한 긴 직선도로로만 모든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다만, 수십년에 걸친 개발 과정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라는 거대한 위기도 만났고 세조 황제의 급작스런 천도 결정으로 인해 도시 계획이 매우 많이 변경되어 시내지구는 계획도시 치고 주거와 행정, 경제지구등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난잡하게 섞여있다.

역사

부여의 수도였다. 발해때는 부여부에 속했다. 이후 요, 금, 원에 속하다가 만주족이 차지하게 되었고 청이 건국된 이래로 청의 땅이었다. 1800년 청나라 황제 가경제가 장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79년 심양조약으로 간도등 남만주 일부가 대한국에 할양되자 이 지역은 요녕반도와 더불어 러시아와 대한국의 치열한 각축장이 된다. 1899년 한러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고 대한국은 할빈 조약을 통해 외흥안령-오제강 이남 연해주를 할양받았다. 이로써 명목상 청의 강역이었던 만주 일대는 사실상 대한국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멸망하고 청황족은 한국으로 망명했으며 범조선주의 이념에 따라 만주족도 조선민족의 일부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대한국은 이를 명분으로 만주족의 땅이 자신의 땅이라고 선언하여 만주 일대를 모두 손에 넣었고 이에따라 장춘도 대한국에 편입되었다.

190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심양과 할빈을 잇는 중간도시로 발전하였고 1918년 만주성이 신설되고 만주성의 수부로 선포되었다. 1938년 일본제국이 대한국을 침공하였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서울이 함락되자 정부는 의주로 후퇴했다가 후방에서 더욱 안정적인 지휘가 가능한 장춘으로 이동해 이곳을 임시 수도로 삼고 전시 내각을 꾸렸다. 1945년 전후 이곳을 마음에 들어한 세조가 이곳으로 천도하기를 바랬고 여러 계획 끝에 1952년 1월 1일부로 대한국의 새로운 수도로 선포되었다. 1947년부터 1961년까지는 천자의 도시라는 뜻에서 ‘천도(天都)’였으나 세조 승하 직후 선종의 칙령으로 ‘황도(皇都)’로 개명되어 지금에 이른다.

1970년대 지방분권정책이 실시되면서 정부 직할시였던 서울과 함께 시의회를 독자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계수도로 선포되었다.

도시 구조

정치

사민당의 지지세가 강했지만 점차 대한공산당등 다른 좌파 야당으로 지지세가 이동하고 있는 추세이다.

  1. 좌측 상단 건물부터 시계 방향으로 중앙경무청사, 재무부1청사, 한국은행, 국무조정실청사, 내각부1청사, 황도특별시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