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혁명
january uprising
참가자 시위대-봉기군 330~460만명
좌표 모스크바, 키예프 등 다슈
장소 러시아 주요도시 대다수
날짜 1953 1.2~1.27
사망자 17만명 이상
부상자 36만명
원인 철위대의 자치국 군정화
결과 러시아 구국정부 붕괴

개요

1월 혁명은, 러시아 공화국과 그 위성국들에서의 혁명으로, 전체주의적 정권에 대한 반발로 발생하였다.

진행

발단

슬라비아는 45년부터 권위주의적이었던 철위대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으며, 48년 이후에는 전체주의적으로 변화한다. 그러던 52년, 철위대는 식량 및 경제적 실패로 심각한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으며, 군국주의에 의해 경제 역시 붕괴되었다. 전국적인 시위가 발발했는데, 철위대는 이들의 진압을 위해 영향력이 낮던 자치국의 시위대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완전 병합을 선언하고, 자치구의 러시아화를 선언한다.

전개

당연히 이러한 정책에 반발한 수많은 민중들은 대규모로 봉기했고, 친철위대적이었던 위성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헌데, 위성국들과 철위대는, 이들에 대한 초강경 진압을 시도했고, 대략 4500명이 사망했다. 이러한 사건에 분노한 민중이 대도시로 집결하면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당황한 경찰은 이들에게 무차별 난사를 시작했고, 6500명이 사망했다.

절정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분노를 늘리는 것에 불과해, 결국 모스크바에서만 150만명이 봉기한 거대 시위로 발전한다. 경악한 철위대는 3개 사단을 투입해 이들을 분쇄하려 시도했고, 수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그러던 중, 수도기갑근위사단 사단장 빅토르 바실렙스키 소장은, 철위대의 이러한 진압에 대해 분노하고, 수도기갑근위사단 2개를 이끌고, 시가지에 진입에 전투를 벌인다. 결국 유효한 대전차전 장비를 갖추지 못한 특전사단은 붕괴되어, 결국 혁명군은 정부 청사로 진입한다. 철위대 지도자 샤실로프는 도주중 체포되어, 2월 1일 모스크바 광장에서 처형당하고, 철위대는 붕괴되어, 러시아 임시위원회가 열려, 7월 이내로 헌법 제재정과, 대대적 선거를 약속하게 된다.

결과

결과적으로, 자치국과 위성국들에 대한 재편성이 이루어지고, '동등한 권리'하에, 어떤 소속국의 영향도 받지 않는 슬라비아 연방을 명시한, 신연방조약이 체결된다. 이 일 이후로, 보수-권위주의적 세력은 파괴되어, 제기에 수십년 이상을 소비하고, 극적 세대교체가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