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기업전쟁 (기계들의 유산)


The 1st Corporate War
제1차 기업전쟁

인류는 생각했습니다. 이 전쟁이 마지막 전쟁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재앙은 이제 시작입니다.
경제발전의 어둠자속 기업과 정부는 더욱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고 민간인들은 죽어나갑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이 전쟁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것을.



개요

최초의 기업전쟁독일-영국 전쟁은 독일의 급격한 성장을 우려한 영국의 주도로 독일 수상인 베르하르트 폰 뷜로가 암살되는 뉘른베르크 사건으로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영독갈등이 폭발하게 되고 막대한 자본을 소유한 메가코프가 개입하게 되며 기업간의 전쟁으로 변화하게 된다. 기술이 현실보다 급격하게 발전하며 그만큼 규모도 커지게 되고 인명피해도 늘어나게 된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이나지만 전쟁 초반 러시아가 참전하지 않고 끝까지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며 협상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독일군이 전격전을 도입하며 영국에게 큰 충격을 먹게된다. 전쟁의 피해가 매우 심각해 훗날 영국발 대공황의 원인이 된다.

배경




1890년대 초 비스마르크를 이어 독일제국 수상으로 취임한 베르하르트 폰 뷜로는 기업을 통제하는 동시에 지원을 하며 경제를 성장시키는 고전적 기업주의를 내새우며 경재개발을 시작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2차 미국내전으로 혼란스럽던 미국, 보불전쟁으로 내부 혼란이 심화된 프랑스를 제치고 영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황제의 신임을 얻어 연임에 성공하고 군이 한아의 지휘체계로 통합되어 전투를 치루는 합동참모본부와 동시에 군사력도 성장시키는 국방계획을 제시하며 해군과 공군력 부문에서도 영국을 바짝 추격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하나 존재했는데 바로 뷜로에 의해 모든것이 지휘되고 통제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1899년 영국은 프랑스와의 협상으로 협상국을 결성하고 이탈리아를 동맹으로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이어 MI6를 동원해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지만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프랑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지만 1905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내전이 일어나고 전황이 불리해진 러시아 적군이 독일에 접근해 동유럽 영토 일부를 넘겨받는 대신 내전에 적군 측으로 개입한다는 민스크 조약을 채결하며 우크라이나의 막대한 자원을 사용하며 고질적인 자원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거기에 1907년 은행패닉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가 초토화되며 경제위기에 영향을 받지않은 독일이 영국의 국력을 제치는 기염을 토하게 되자 영국은 결국 뷜로 암살을 결정하게 된다. 1910년부터 암살 작전을 시작하였지만 독일 정보기관 제국정보국이 눈치채고 암살을 회피하는데 성공하나 1914년 1월 비밀리에 에베르트가 뉘른베르크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입수하고 그때 암살을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마침내 1월 21일 영국의 스파이가 그를 암살하는 뉘른베르크 사건을 일으킨다. 암살은 성공하였고 스파이는 곧바로 체포되 얼마뒤 영국의 짓이라는것이 들통나게 된다.

분노한 독일은 2월 1일 영국 대사한테 빌헬름 각서라는 이름의 최후통첩을 전달하지만 영국은 이를 무시하게 되고 2월 3일 독일제국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전포고문이 가결되며 독일은 영국에 선전포고를 진행하게 되고 오스트리아 제국과 동맹국을 결성한다. 같은시각 프랑스랑 이탈리아도 협상국 가입에 따라 독일에 선전포고를 진행하며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전되게 된다.

전개



2월 4일 독일군 총사령관 파룰 폰 힌덴부르크는 이전에 독일 장군 알프레도 폰 슐리펜이 프랑스와의 재결전을 염두하고 만들어둔 슐리펜 계획에 알렉사더 폰 린징켄 장군이 고안해낸 전격전을 도입한 제병협동전을 제시하고 2월 5일 독일군이 슐리펜 작전을 게시하며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를 침공하기 시작한다. 독일군 사이버 부대 X부대는 작전 시작과 동시에 프랑스군 통신을 마비시키고 있었고 대서양의 유보트 함대는 일시적으로 프랑스와 영국군의 항구를 공습하며 해군도 마비시키고 있었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이탈리아군은 합동 지휘본부인 FIE를 결성해 이를 막아보려 시도한다. 독일군이 새로 도입한 유인 전투로봇인 제국보병은 벨기에군과 네덜란드군을 학살하며 진격해오고 있었고 프랑스 국경에서도 독일군이 전격전을 시작하며 프랑스 내륙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2주만에 베네룩스 3국이 항복하게 되고 독일 전차부대인 제1 기갑군단은 프랑스군 보병을 밟아버리며 파리까지 진격해오고 있었고 3월 2일 베리됭에서 수십만이 넘는 포로와 민간인들을 학살했고 프랑스군 사령관인 필리프 페탱까지 사살허며 파리 코앞인 콩피에뉴까지 진격해왔다. 개전 1달만에 홯가전과 무차별 포격과 학살로 500만에 가까운 프랑스군과 민간인이 증발했고 군대와 정부는 붕괴직전에 놓이자 다급해진 영국은 급하게 징집한 병력 100만명을 프랑스로 급파하고 영일동맹에 따라 일본도 참전시키며 칭다오를 함락시킨다.

영국과 프랑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르만 폰 슈타인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기여코 파리 근교까지 진입해왔고 4월 1일 파리 공방전이 시작된다. 프랑스 정부는 수도를 보르도로 옮기고 로베르 니벨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일부 영국군은 엔 강을 방어선으로 남파리에 남아 항전하기로 결정한다. 독일군은 공군과 비밀병기까지 총동원해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고 있었고 프랑스군도 남아있는 병력과 무기까지 긁어모아 항전하고 있었다. 그사이 보르도로 수도를 옮긴 정부는 4월 23일 국가총동원령을 발표, 영국에서도 전쟁법이 가결되며 총력전 채제로 변하게 되고 당시 영국의 초거대기업인 롤스로이스가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자체적으로 무기를 개발하고 있던 롤스로이스는 영국 정부에 우수한 전쟁무기를 납품하고 있었고 믈렁 전투에서 협상국이 첫 승리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롤스로이스가 개입했다는 소식에 독일에서도 BMW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전쟁은 국가간의 전쟁에서 기업간의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한편 5월 8일 파리에서 분전하던 프랑스군이 전멸하고 사령관인 니벨 장군도 전사하며 파리는 끝내 함락되고 독일은 프랑스 전선 전체에 매서운 공세라는 이름의 대규모 공세를 진행하게 된다. 북쪽의 노르망디 해안부터 중부의 오를레앙까지 밀리게 되고 일부 부대는 일시적으로 투루까지 점령하기도 하는등 전황은 점점 악화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상국에서 제일 열심히 싸운건 바로 이탈리아군 이었다. 아리만드 디아츠가 이끄는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남티롤을 점령하고 을 공습하는등 전쟁 초반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고 영국과 프랑스와 달리 이전부터 오스트리아와의 분쟁을 대비해 전쟁준비를 해왔기에 병참상황도 좋았다. 아프리카에서도 영국과 프랑스 주둔군이 독일 식민지를 접수하였고 일본군도 호주군과 함께 아시아에 있는 독일 식민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고 독일 해군과 영국 해군간의 전투인 북해 해전이 일어나고 영국이 극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해상에선 영국이 주도권을 잡고 해안 봉쇄령을 내려 독일에 대한 봉쇄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선에서는 프랑스 비시까지 함락되며 본토의 절반이 날라가게 되고 프랑스 제1군단은 부대 전체가 독일군에게 투항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협상국의 사망자도 1000만명을 돌파하며 상황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이탈리아 본토 내에서는 징집할 성인 남성이 부족해지는 상황까지 오게된다.

하지만 독일도 무리한 공격과 영국의 봉쇄로 1915년 봄 물자가 부족해지는 상황에 직면했고 공세가 중단되고 프랑스에서 전쟁병기인 1호 보병이 공개되며 독일에 대적할만한 무기를 마련하게 된다. 독일군은 더이상의 공세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공세를 중단하며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시각 파리의 시민들은 독일의 통치에 대항하며 파리 폭동을 일으키지만 파리 대학살로 무참히 진압당하고 베르사유 궁전도 파괴시키며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이후 독일군에서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전쟁의 양상은 아군 소실을 방지하기 위한 참호전과 서로의 네트워크를 해킹시키는 사이버전으로 변화하게 된다. 한편 1915년 말 태평양에서 독일을 끝낸 일본군과 호주군은 캐나다,뉴질랜드군, 중국에서온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태평양 집단군이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에 보내게 된다. 이 지원으로 협상국에선 인력부족 문제를 한시름 덜게 되지만 독일도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통해 중국에서 노동자를 데려오며 인력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있었다.

1916년 2월 독일군은 봄의 새싹 작전이라는 대규모 작전을 준비하지만 영국군의 방어와 미국의 지원으로 실패하게 되고 중동에서 영국군이 메소포타미아를 함락시키고 오스만 제국 본토로 진입해오고 있었지만 오스만군 장군 무스타파 케말한테 저지 당했고 . 프랑스 전선에서는 영국이 철도 중심지인 비시를 탈환하며 천천히 진격해오고 있었다. 3월에는 이탈리아군이 카포레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오스트리아 본토로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프랑스 항공전역으로 영국이 제공권도 잡게된다.

1914년 4월 전쟁의 장기화로 영국에서도 병력부족과 인력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의회는 식민지인 동원법을 통과시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