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보르미아 왕위계승전쟁

개요

1차 보르미아 왕위계승전쟁은 중세시대에 벌어진 보르미아 연합왕국 내 최초의 왕위계승전쟁이다.

배경

보르미아 연합왕국은 선거군주제를 채택했으며, 보르미아 연합왕국을 구성하는 삼대 세력인 드라펜트 왕조와 타그란, 메라닌 동맹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 각 세력은 자신의 세력 출신이거나, 자신들이 후원하는 인물을 국왕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경쟁관계에 있으며, 그 중에서도 드라펜트와 타그란의 경쟁이 극심했다.

발단

왕위계승전쟁의 발단은 보르미아 연합왕국의 국왕 보르말로스 3세의 사망 후 벌어진 국왕선거에서 시작되었다. 드라펜트 출신의 국왕이었던 보르말로스 3세의 사인과 사망 과정에서 드라펜트 측은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타살당했다는 의심을 가졌으나, 진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왕선거의 결과로 타그란 출신의 글로멜리언 5세가 당선되자, 드라펜트측의 불만이 확대되었다.

드라펜트측은 보르말로스 3세의 사인과 사망에 누군가가 관여했다는 증거와 증인의 증언을 문서화해 제출했다. 그러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보르말로스 3세가 암살당했음에도 타그란 측이 무단으로 국왕선거를 강행했기에, 글로멜리언 5세의 선출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보르말로스 4세를 보르미아 연합왕국의 국왕으로 추대했다.

보르말로스 4세와 글로멜리언 5세를 중심으로 드라펜트와 타그란이 대립각을 세우면서, 각자 상대의 국왕이 무효임을 선언했다.

전개

반 드라펜트 연합 결성

국왕선거에 대한 불복과 그로 인한 갈등이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타그란은 이 분위기를 기회삼았다. 외교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인 타그란은 메라닌 동맹과 연합왕국 내 무소속 제후들을 포섭하고, 대외적으로도 투스와 베르테르 등의 열강으로부터의 지원도 약속받았다. 양지/음지를 가리지 않고 대 드라펜트 포위망을 형성한 타그란은 외교적으로 드라펜트를 압박한 다음, 무력충돌이 시작될 때 연합군을 결성해 드라펜트를 여러 방향에서 제압하기로 했다.

드라펜트 역시 외교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외교전에서 타그란에 비해 밀린 드라펜트는 타국으로부터의 지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던 대신, 최소한 드라펜트에 불리한 개입은 하지 않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그쳤다.

외교전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 드라펜트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확고한 명분이 필요했고, 보르말로스 4세야 말로 합법적 왕위계승자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보르미아 연합왕국의 수도에서 글로멜리언 5세보다 일찍 즉위식을 치룬다. 공식 즉위식을 거쳐 보르미아 연합왕국 국왕의 자리에 공식적으로 오름으로써, 드라펜트는 보르말로스 4세가 합법적인 군주라는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

보르말로스 4세의 즉위식과 함께, 반 드라펜트 연합은 행동에 나섰다.

반 드라펜트 연합은 타그란의 글로멜리언 5세를 중심으로 글로멜리언 5세가 보르미아의 진정한 군주이며, 보르말로스 4세를 참칭자로 청했다. 글로멜리언 5세는 타그란의 직할 세력과 메라닌 동맹의 지원병, 투스와 베르테르의 용병, 이 외의 알 수 없는 협력자와 타그란에 협조하는 영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들로 병력을 편성했다.

반 드라펜트 연합군은 글로멜리언 5세의 아들이자 총사령관인 멜릭스를 중심으로 메라닌 지원병 지휘관 엔리카르 돌셰, 투스와 베르테르 등 해외에서 모집한 다국적 용병단장 르샬레피아, 타그란에 협조하는 영주들을 대표하는 로데먼이 각 세력의 지휘관으로써 참전했다. 반 드라펜트 연합군의 목표는 보르말로스 4세의 폐위와 드라펜트 가문의 제압이었다.

반 드라펜트 연합군은 타그란의 직속 부대가 양적 주력을 맡고, 메라닌 지원병과 다국적 용병들이 정예병력, 영주들의 병력이 예비대 겸 후방 주둔 병력으로 편성되었다. 각 세력마다 역할을 정한 뒤, 드라펜트 제압을 위해 속전속결로 진격하면서 각 지역의 드라펜트 병력을 공격했다.

전쟁 초기, 드라펜트 가문의 병력은 반 드라펜트 연합군에 가맹한 영주들을 제압하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켜 속전 속결로 진격하는 반 드라펜트 연합군의 공세에 외곽 방어선이 붕괴되었다. 드라펜트 가문은 중앙집권화와 관료제에 적극적이었던 만큼, 그 중심인 보르말로스 4세를 선제 타격하면 승산은 연합군 쪽에 있었다.

드라펜트의 천도

드라펜트 가문은 반 드라펜트 연합군의 공세에 대해, 그들의 속공을 최대한 저지하고 시간을 끌어 항전할 시간을 번다는 전략적 목표를 세웠다. 보르말로스 4세는 반 드라펜트 연합군의 양대 목표가 드라펜트 가문의 제압과 보르말로스 4세의 폐위라는 점을 앞세워 그들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시간을 끌면 반 드라펜트 연합의 결속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르말로스 4세는 반 드라펜트 연합군이 수도를 장악하더라도 승리할 수 없도록 다음과 같이 대전략을 구상했다.

1.반 드라펜트 연합군이 수도에 도달할 때 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고, 병력의 출혈과 소모를 강요한다. 이를 통해 반 드라펜트 연합군 내 결속력을 약화시킬 기조를 마련하고, 지연의 책임을 묻도록 분위기를 형성한다.

2.반 드라펜트 연합군이 수도를 장악하더라도 그들만의 즉위식을 거행할 수 없도록 보르말로 연합왕국의 수도를 이전한다. 단, 반 드라펜트 연합군의 진격이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졌을 때 천도해야한다.

3.반 드라펜트 연합군이 수도를 장악한 뒤에는 방어전과 전력 유지에 집중하며, 병력이 수도에 집중된 틈을 타 측후면을 포위해 주력을 고립시킨다. 반 드라펜트 연합군의 목적인 속전속결이며, 이를 위해 주요 병력이 집결해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략기동으로 우회하고, 위장공세로 예비대를 소모시키도록 한다.

보르말로스 4세의 지시에 따라, 드라펜트 가문은 철저히 지연전에 나섰다. 내부적으로는 보르미아 연합왕국 국왕 즉위식에 필요한 절차와 물건, 기관을 시작으로 드라펜트 가문의 후방인 드라켄베르로의 천도를 시작한다. 이때, 지연전으로 발목을 묶음과 동시에 드라펜트 가문이 천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퍼뜨려 반 드라펜트 연합군에게 더 빨리 진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공작도 행해졌다.

그러나 드라펜트가 보유한 병력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기에, 드라펜트에서 실시한 지연전은 결과적으로 적의 공세를 잠깐씩 늦추는 축차투입형 방어가 되었다. 축차적으로 병력이 소모되면서 진격 자체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오자, 드라펜트 측은 최대한 빨리 천도를 시도했다. 하지만 반 드라펜트 연합 측에서도 드라펜트의 방어로 인해 작전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공세가 조금이나마 지연되는 상황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멜릭스는 반 드라펜트 연합의 내분을 막고, 빠른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드라펜트 수도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했다.

반 드라펜트 연합의 내분

드라펜트 측은 반 드라펜트 연합의 수도 총공격에 대해, 왕실과 핵심인사들, 주요 귀물은 미리 수도에서 탈출시킨다음 드라펜트 가문이 수도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는 것 처럼 보이기로 했다. 비밀리에 핵심적인 인물과 기물, 물자를 추스려 비밀리에 옮기고, 천도는 병력 분산을 위한 기만이며 수도에서 항전을 벌이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는 소문과 공작을 가했다.

반 드라펜트 연합의 첩자들은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수도로의 집중공세를 종용했다.

멜릭스는 드라펜트 수도에 대한 총공세를 단행, 드라펜트 수도에서 반 드라펜트 연합과 드라펜트 가문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드라펜트 가문은 요새화된 수도의 성벽에서 방어전을 펼치며 농성전을 벌였다. 활과 투석기를 비롯한 원거리 무장과 공성병기로 화망을 형성해 병력을 소모시키고, 성벽에서의 돌입시도를 최대한 차단했다. 그러나 반 드라펜트 연합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하며 드라펜트측의 방어를 분산시켰다. 반 드라펜트 연합의 숫적 주력인 타그란 측이 수도를 봉쇄 후 사방에서 공성전을 전개하며, 타그란에 협조한 영주들의 연합군이 후방을 차단하고, 원군을 보내려는 드라펜트 병력을 견제했다. 이때 메라닌 반도의 지원병과 다국적 용병단이 한 방향에서 집중공세를 펼쳐 방어선을 돌파했다.

용병단이 성벽을 돌파하고, 성문을 점령하면서 드라펜트 가문의 수도가 함락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수도 함락 이후에서 벌어졌다.

수도 함락 후, 반 드라펜트 연합군은 추후의 활동에 대한 논의를 거쳤다. 이때 반 드라펜트 연합군은 드라펜트 가문의 처분과 추후 보르미아 연합왕국의 구도 및 구조에 대해 양대 의견으로 나뉘었다.

확신파:타그란이 주축이 된 확신파는 드라펜트 가문의 완전한 섬멸과 보르미아 연합왕국 체제의 재편을 통해 드라펜트 가문의 흔적을 지우고, 보르미아를 새로 변혁해 투스, 베르테르, 로기라 같은 강국처럼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균형파:메라닌과 타그란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영주들이 주축이 된 균형파는 드라펜트 가문에 대해서는 영지 박탈과 보르말로스 4세의 폐위 등 '처벌'을 하되 드라펜트 가문의 존속을 유지하고 현 구조를 존속시켜서 세력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균형파는 드라펜트를 멸한 뒤, 타그란이 중심으로 떠오른다면 드라펜트를 정벌한 명분인 '드라펜트에 대한 견제'가 사라지고, 드라펜트와 다를 바 없는 독주체제로 변질될 것을 우려했다. 그 중에서도 메라닌 동맹은 드라펜트와 타그란의 균형을 맞춰 그로부터 최대한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었기에 드라펜트의 완전한 절멸을 바라지 않았다. 생존의 차원에서도 드라펜트나 타그란 중 한 곳이 주도권을 장악하면 메라닌 반도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어 두 세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국체 유지에 있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확신파와 균형파의 갈등은 그동안 있었던 전투의 지연과 갈등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