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폭동

폭동 지역을 불시검문하는 해영국군.
날짜 1947년 1월 25일 ~ 3월 4일
위치 해성국 해성국 해성행정시 전지역
참여자 해성민주당원 및 반정부 준군사조직인 자유정의대를 비롯하여 대략 3,000명의 폭동자
원인 왕정체제 및 이성훈 내각에 대한 불만
결과 이성훈 내각의 붕괴 및 사회적 내란 분위기 조성
피해
사망자 223 명
부상자 413 명

1.25 폭동은 공화주의자 및 반왕정주의자들이 이성훈 내각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정부 준군사 조직인 자유정의대 및 일부 시민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다. 해영국 내부에 사회적 질서 붕괴를 야기하였으며, 사상자만 600명 단위가 넘어가는 대규모 사건이었다.

개요

공식명칭으로는 1.25 사태라고 표현하나, 정부 혹은 민간에서는 "1.25 폭동"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뚜렷한 목적 없이 내각이 왕정을 지지한다는 모호한 이유만으로 유혈 사태를 일으킨 것에 대한 현대인들의 반감이 명칭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사건을 이후로 1951년, 공화 쿠데타 직전 동안 해영국은 극도의 사회적 혼란과 과도기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50년대의 침체기를 맞이하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경과

결과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