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쟁

14년 전쟁(영어: 14 years war)은 2320년부터 2334년까지 괴뢰 국가, 루네바스사르타디움제 1차 반란의 본래 의의와 고향을 탈환당하고 쫓겨난 것에 대한 격노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초반에는 사르타디움의 군대가 준비가 되지 않된 것에 더불어, 루네바스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몇 개월만에 사르타디움 국군이 전쟁 준비를 끝냈고, 이 둘은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이 전쟁은 9년쯤 지나자, 전쟁은 이제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기 시작했고, 결국 2334년, 사르타디움루네바스와 협상을 진행하여 종전이 맺어졌다.

전개

발발 배경

곡창지대를 제외한 모든 도시의 변두리에선 부랑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아리스트란도 주의 주지사는 이러한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여러 시스템들을 도입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변두리에 있는 부랑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폭발하여 그들은 주지사를 몰아낼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언론 등을 통해 반란의 범위가 확산되다가 결국 진압당해 그들은 원래부터 이러한 정권에 불만이 있었던 기술자, 연구원을 비롯하여 여러 고학력자 인력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이 바로 제 2대륙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임시적으로 중규모 캠프를 만들어 살아가기 시작했고 테라포밍의 기술에 동원되었던 기술자와 연구원 등등이 아리스트란도 주에서 가져온 부품들로 중장비를 만들어 테라포밍 작업에 들어갔다. 시간이 꽤 지난 후 그들이 선언한 국가가 바로 루네바스이다.

사르타디움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괴뢰 국가이자, 반란군이었다. 이 둘은 당연히 대립 관계에 놓였으며, 특히 루네바스는 자신들의 고향인 사르타디움의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영토 탈환 운동'을 진행 중에 있었다. 이 둘은 점점 상황이 나빠지며 가끔식 무력도발이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였고 결국, 루네바스 공화국이 항상 주장하던 '영토 탈환 운동'을 실현할 때가 왔다는 명분으로 2320년 8월 15일, 사르타디움 공화국에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그것으로 선전포고를 끝마쳤다.

전쟁 초반

사실 사르타디움은 전쟁을 예견하지 못했다. 한다 하더라도 지금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덕분에 전쟁이 시작된 후인 초반에 아주 극심한 타격을 입게된다. 초반의 전세는 해상전으로 진행되었다. 제 1차 방어선에서 사르타디움 국군의 함대가 루네바스 국군과 교전을 치렀고, 이들이 해상전을 치르는 사이 그들은 본인들의 영토에 대규모 폭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치열한 공방전 끝에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하나가 박살났다.
루네바스 공국군은 그 기세를 틈타 제 1차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수많은 전략물자와 함께 사르타디움 공화국 본토에 상륙하였다.
교전지역이 처음에는 남해안, 두 번째는 해안가, 세 번째는 루네바스 공국군 본인들이 박살낸 해안가 도시에서의 시가지 전투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금방 사라지는데 성공하였다. 2개월만에 전쟁 준비를 마친 사르타디움군은 해안 방어와 방공 시스템을 강화하였고, 해군 병력의 대부분을 남해안에 집결시킴에 따라서, 이제 좀 제대로 된 교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사르타디움 반격의 상징이자 전쟁의 터닝포인트인 해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1차 네르스필레 해전'이다.

제1차 네르스필레 해전

2326년 7월 10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 이 해전은 14년 전쟁 중에서 과연 가장 큰 해전이라 할 수 있다. 훗날 어느 조직의 주요 전투함선이 된 구축함 아퀼라 호가 참전한 이 해전에서 양측 둘 다 전력을 다해 엄청난 해전을 진행하였고, 이 해전은 사르타디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훗날, 이 해전을 이끌었던 제임스 쿡 제독은 대통령 궁에 동상으로서 우두커니 서있다. 그 만큼 이 해전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큼을 알 수 있다.

전쟁 후반과 종전

개전 후 9년 정도 지나자 소모전의 양상을 띄우며, 양측 다 의미없는 전투를 하며 계속 피로에 찌들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제는 두 공군 모두 피해가 상당히 컸기에 공군부터 수복하느라 공중전을 치르지 않아서 민간인의 피해의 정도가 급격히 낮아졌단 것이다. 그렇게 5년을 더 피로하게 전쟁을 하다가 결국 양측이 모여 협상[1]을 진행함에 따라, 2334년 12월 4일에 종전이 체결된다.

결과

영토에 변함이 없다! 놀랍게도 두 국가 모두 피해만 있었을뿐, 큰 이득을 본 것이 없었다.
거기에 말만 종전이지 사실 전쟁이 끝난 2334년 이후에도 근 20년간은 루네바스 공국군의 버려진 잔여부대가 사르타디움 공화국 영토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정부 직속 정규군과 소규모 전투를 치렀다.
14년 전쟁이 끝난 뒤인 2335년, 국방부의 신임 장관으로 헬릭스 워싱턴Helix Washington 이라는 자가 등극하게 되면서 2354년까지 이어진 루네바스 잔당군의 교전은 그의 활약으로 막을 내렸다.[2]

사실상

피해

전략 물자 면에선 사르타디움 해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의 대부분은 해상전이 주류였고, 공군이야 루네바스와 사르타디움과 비교하면 루네바스가 압도적으로 피해가 더 컸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르타디움 공화국의 방어전략과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었던 덕택이었다.

민간인의 피해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처음 14년 전쟁이 치러진지 1개월 정도 지났을때, 사르타디움 영토의 남쪽 40% 정도 되는 영토가 시가지 전투, 대규모 폭격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그로 인해 사상자는 물론 실종자, 피난민 등 여럿 발생하였다.

  1. 협상이라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 실제로 이 당시 협상공간은 루네바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플리우스 고에너지 빔포를 내장한 인공위성 '다모클레스'는 루네바스의 수도 지역에 빔포를 겨누고 있었다. 즉, 루네바스 측에서 본인들에게 불리한 조약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도를 포함한 반경 10km 내의 모든 것이 작살이 날 수 있었다!
  2. 사실 여기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즉 혼자서 이뤄낸 것은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