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노인. 언젠가 지구에는 노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세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았던 시절. 자연스럽게 늙고 죽는 것이 허락되었던 세상. 죽음을 사회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맞이하는 세상. 오롯이 맞이할 아름다운 죽음을 꿈꾸며, 자신의 늙은 배우자와 노고를 달래며 흰색 침대에서 노을을 기대하던 환상적인 시대. 아. 그것이 낭만이 아닌가. 늙고 병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니..
"선생님 반갑습니다."
깔끔한 복장의 젊은 사내가 내 앞에 앉았다. 혈기왕성하고 열정이 보이는, 그야말로 청년이다. 나와는 다르지. 나는 늙었기에. 이 청년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말하시오."
"아 네. 우선.. 사전 고지대로 안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선 금일을 제하고 365일의 준비 기간을 맞이하시며.. 의식주에 대한 최소 요건은 국가로부터 제공받으십니다. 중증 질병 이하는 모두 구립 2차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가 제공.."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다 안다. 눈이 씻기도록, 안식년이 시작되기 1년 전부터 모든 내용을 정독했다. 혹여나 내가 더 살 수 있는지, 예외사항은 뭔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했으니까.
"여기까지 이해 되십니까?"
"압니다."
"아.."
짧지만 날이 서린 내 말에, 한편으론 어린 안내원이 주눅드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교육원에서 나온 직후엔 완전히 시스템에 절여져있으니. 네가 부럽지만 동시에 안타깝다.
"서류 교부도 고지로 인정하니 내게 다 설명할 의무는 없소."
"아.. 네 맞습니다.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교수. 내 직함. 교육원에서부터 서른 직전까지 목숨을 걸고 얻어내려고 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