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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최은주 청화국 황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9월 17일과 18일에 걸쳐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였다.

본 회담은 총리가 아닌 황제가 참여한 첫 청미정상회담이다. 게다가 최은주가 처음으로 갖는 해외순방이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본래 김재인 총리대신이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궁내청 장관이었던 前황실군 대장 박현창"이런 급박한 시국에 국가원수도 아닌 총리가 정상회담에 나가는 것이 뭐가 중요한 정상회담이냐. 청화국의 국가원수는 황제폐하다." 라며 태클을 걸어서 김재인 총리가 아닌 최은주 황제가 직접 정상회담에 나가게 된 일례가 없는 최초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사실 부정적으로 본다면 현 시점에서 해외순방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점도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1차 독도 해전으로,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로 아직까지도 냉랭한 탓에 이들 국가순방은 사실 힘들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각각 정상구 민의원 의원, 강필성 민의원 의원까지 보내 당시 청화국 정부의 사죄와 두차례의 배상금 전달[1], 공군과 해군의 독자적인 행동을 설명하고 사과하려 했으나,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이 청화국 해군의 공식적인 사죄가 있기전까지는 [2] 어떠한 대화도 할 수 없다면서 단호하게 거부하여 대통령과의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도가 지나친 언행으로 황제의 치욕적이고 수치스런 사죄와 천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배상를 강요하였고 이는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더 어렵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이 정체되고 답보된 현 상황을 탈피해야 하는 중요성이 대두되어 미국방문이 우선시 되어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미국 재야는 제1차 독도 해전 이전부터 김재인 및 황실의 대미관이 과연 어떠한지를 알고 싶어했던 것도 있었다. 

일정

확대 정상회담에는 청화국 황실에서 오성일 황실 외교전담관, 김인책 황실 국가안보전담관, 임명도 황실 국방치안전담관, 황주연 황실 정책전담관, 강창국 주미 대사, 한현주 황실 국민소통비서관, 김병일 경제비서관[3][4] 등이 참석했으며, 미국 측에서는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NSC 선임보좌관 등이 참석했다.

정상 회담 이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 언론발표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합의문 채택불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과

왜 갔는지 모를만큼 성과가 아예 없었다. 회담 중에 청화국 해군의 18일 담화문으로 미국과의 관계마저 냉랭해졌다. 일각에서는 김재인 내각의 외교능력이 절망적이고 군을 바로잡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으며 최은주 황제의 외교능력이 비난했다.

영향

회담 이후 한북미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급기야 김재인 총리대신은 20일에 있었던 기자회견장에서 해군 강제해산새로운 군대의 창설이라는 카드를 공군과 육군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주

  1. 첫번째는 해전 종료 직후 1,200억원, 두번째는 한국정부의 거절로 전달되지 못했다.
  2. 청화국 공군은 내각이 했던 것처럼 사건 직후 박지은 중령과 이석규 공군참모총장, 이한서 합참의장이 공식적인 사과와 자체적으로 공군에서 기부금을 모아서 한국정부에 555억원을 배상하였지만 청화국 해군은 한성범 소장이 비공식적으로 사죄한 것 외에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무시하고 있다.
  3. 내각 소속의 비서관이 아닌 황실소속의 비서관이다.
  4. 이들 전담관의 명목 서열은 내각의 국무대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실권은 국무대신들이 쥐고있다.